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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인장 Oct 25. 2021

프로젝트 안암(安岩)

#06-7. 100명


#1 100.


21년 10월 23일, 총 108분의 손님이 다녀가셨다.

8월 31일 저녁 1명의 손님을 시작으로,  108분의 손님이 안암을 찾아주시기까지 약 53일의 기간이 머릿속을 흘러갔다. 1명의 손님을 보내고 앉아 느끼던 불안함, 막연함, 초조함과 준비를 위해 시장조사와 공사를 하는 기간 동안 지켜봐야 했던 좋지 않은 시장의 흐름에 대한 뉴스, 늘어나는 확진자 등 현실적인 문제에 내가 너무 성급한 게 아녔을까 싶었던 순간의 잔상들이 흘러간다.



스와니예에서의 시간들이 생각났다. 나는 팝업 때마다 참패를 겪는 직원이었다. 개인적인 성장을 위해 지금까지 내가 경험해본 적 없던 조리 방식을 기준으로 팝업 메뉴를 결정해왔고, 그 결정은 항상 팝업마다 달랐던 시스템에 어울리지 않거나, 소비자의 니즈에 맞지 않았다. 팝업 때마다 항상 남들보다 일찍 출근했고, 더 많은 준비과정을 해야 했다. 왜냐하면 능력에 비해 욕심이 많았고, 시도해본 적 없는 것들을 해야만 했으니까.  사람들은 내 음식을 선택하지 않았고, 그 음식은 다음날이면 직원식으로 올라가 놀림받기 일쑤였다. 그 과정에서 어쩌면 나는 시장의 흐름을 읽는 능력이 없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했었다. 나의 욕심에 비례했던 성실함은, 나를 더 안쓰럽게 만들었던 이유이기도 했다.


28명 남짓 들뜬 채로 앉아있던 스와니예의 공간에서 혼자 가득 찬 접시를 들고 뻘쭘하게 돌아다니던 순간이 떠올랐다. 한식으로 재해석해 만들었던 테린은 한식으로 해석했더니 머릿고기가 되어 있었고 "여기서 그걸 누가 먹어요"라고 말하던 손님의 말이 여전히 내 머릿속엔 남아있다. 인식과 형태에 대한 부정확한 나의 이해와, 결정을 의심하지 못해 모든 순간의 서투름을 수정할 기회가 없던 팝업들에서 항상 "나는 맛있던데"라고 위로받는 입장이었다.


치열했다. 해외에서 일해본 대부분의 요리사들이 겪었겠지만, 영어를 할 줄 모르는 아시안에 대한 인종차별도, 팝업 때마다 매력 없게 느껴지던 내 음식도 전부 내겐 상처였지만 덕분에 성장했다고 믿는다. 나는 스와니예에서 보낸 시간 동안 스토리텔링과 브랜딩, 그리고 소비자 중심으로 시장을 바라보는 방법에 대한 고민을 했고, 그 덕분에 주방 밖에서의 경험에 대한 욕구가 강해졌었으며, 다양한 경험을 포괄적으로 응용할 줄 알게 되었다. 발렌어스 때도 시장 경쟁력이 떨어졌지만 해결하려는 과정에서 나는 성장했다는 걸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 경험들이 모여 내가 안암을 시작할 수 있게 했다. 서툴러도 빨리 시작하고, 피드백을 듣고, 이야기를 오랫동안 할 수 있는 공간. 그 모든 경험들을 내가 제일 잘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공간. 그게 안암이다.




14 때부터 혼자 지냈다. 여러 가지 사정이 있었지만 학기 중엔 무료급식  끼를 먹고, 방학  끼니를 하기 힘든 입장이었다.  과정에서 만난 대다수의 어른들은  안쓰러워했고, 측은함으로 내게 건넨 소수의 친절들은 내가 어떤 어른이  것인지에 대한 기준으로 남아 주었다. 당시  친구들은 각자 자기 집에서 생쌀과 반찬을 우리집으로 들고 와서 밥을  먹곤 했는데,  경험이 나를 요리사가 되게 했다. 가진 재료로 친구들과 밥을  먹고, 요리왕 비룡의 주인공에 비유하며 재룡이라고 불리는 것을 즐거워했으며, 음식을 내놓고 표정을 보는 설레임과 초조함을 즐겼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이때의 기억이 그렇게 검색이 어려운 안암이라는 이름을 손에서 놓지 못하게 한 건 아닐까 싶다.)


100명의 손님은 어린 시절의 내가 음식을 만드는 사람이고 싶다고 생각하고 믿고 결정했던 이후 겪은 과정에 대한 위안이다. 누군가 내게 거봐, 이번엔 네가 틀리지 않았어. 네가 그동안 했던 일들은 틀리지 않았어 라고 이야기해주는 것 같아 울컥한다. 작은 가게를 경영하며 현실적인 피드백을 듣고, 운영을 할 수 있도록 자금을 마련하고 시장에서 생존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하지만, 내겐 그 위안이 더 소중하다. 나도 몰랐지만 나는 그런 위로가 필요한 사람이었다. 나는 도전을 좋아하고, 실패에서 무언가 배우고 더 성장해서 그게 언젠지 모르는 순간에 많은 것들을 얻길 바라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이 모든 순간이 쓸모없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은 손님들의 말 한마디 한마디다.




21년 10월 23일. 100명이 넘는 손님들이 나의 음식을 먹고 가셨다.

익숙해지길 바라지만, 당연한 일이 되지 않기 위해 휘적휘적 기록으로 남겨둔다.

그리고 나는 안암에서 14살 때의 그 설레는 표정으로 서서 손님들을 바라본다.

무엇인가 판단하기에 너무 빠르고, 성급하지만 내가 만든 음식을 먹기 위해 손님들이 줄을 서주셨다.

모든 팝업 때마다 뻘쭘해하게 서있던 26살의 나는 자신이 과정에 서있다는 걸 이해하고 있을까.

지금의 나는, 어떤 과정에 서 있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을까.


21년 10월 23일. 100명이 넘는 손님들이 우리 가게를 방문하셨다.

그냥, 기록으로 남겨두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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