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의 순간
아들이 7살 때부터 야구를 배우기 시작했다. 자꾸 팔을 다쳐서 팔 근육 좀 키워보겠다며 남편이 심기일전 하여 시작한 '아빠표 야구교실'이었다. 솔직히 할줄 아는 수준으로만 가르치겠다는 심산이었다. 그런데 아들이 꽤 진지했다. 제 아빠가 아무리 서운한 말을 하고, 매정하게 가르쳐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볼 던지는 연습을 하는 것이다. 마음이 여려서 조금만 혼내는 말을 하면 울어버리는 아들이었는데 말이다. 심지어, 한 여름 한낮에도 혼자 나가 공을 하늘 위로 던졌다가 받는 연습을 했다. 아파트 3층 창문에 붙어서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자꾸만 헛물이 켜지려 했다. 저러다가 정말 유명한 야구선수가 되는 것은 아닌지 기대감이 생기는 것이다. 위인전에서처럼 어릴 때부터 재능을 보이는 경우인가 싶었던 것이다.
급기야, 동네 야구 교실에도 가입했다. 속내는 실력 있는 야구 선수로 키우고 싶은 마음이었으나,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내색도 하지 않았다. 솔직히 아들이 천재적인 실력을 가진 것은 아님을 알았다. 하지만 밥 먹을래, 야구 할래 하면 야구를 하겠다고 나설 정도로 야구를 좋아하는 아이라, 언젠가는 실력이 일취월장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야구 선수가 될 수도 있으리라는 생각을 했다.
그로부터 5년 후, 초등학교 5학년이 된 아들은 시를 대표하는 청소년 야구팀의 감독 앞에서 실력을 보여줄 기회가 있었다. 그간 야구교실을 다니다 쉬다를 반복했기에 실력은 그만그만했다. 그런데 굳이 감독님 앞에서 실력을 보여주고자 한 것은, 야구 선수로의 진로를 결정할지 말지를 결정해야 할 순간이 왔기 때문이다. 뛰어난 재능을 가진 것은 아니지만 야구를 계속하며 미래를 꿈꿀지, 감독님 앞에서 듣고자 함이었다. 만약 감독님 대답이 시원치 않다면 당장 때려치우고 영수 학원에 보낼 심산이었다.
감독님은 공을 주고받을 선수 한 명을 불렀다. 그 아이는 아들과 같은 학년이었고, 쉬지 않고 야구만 해온 아이였다. 체격과 키가 작았지만 어딘가 날렵하고 다부져 보였다. 감독님은 아들과 그 아이가 함께 달려볼 것을 시켰다. 간발의 차이지만 그 아이의 발이 빨랐다. 볼을 주고받도록도 해보니 그 아이의 손이 조금 빨랐다. 남편과 나는 얼른 감독님 옆으로 달려가 무슨 대답이라도 듣고자 했다. 감독님은 매우 시니컬하게, '잘 하는 아이랑 시켜보았는데 간발의 차이로 뒤처지긴 하지만 하지 말라고 말릴 정도는 아니에요.'하고는 유유히 사라지셨다. 결국 원점이었다. 역시나 선택은 당사자들의 몫이었다.
그날 밤, 아들이 슬그머니 다가와 묻는다. 감독님이 뭐라고 하셔?
나는 슬그머니 대답했다. 간발의 차이래.
아들은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바라봤다.
간발의 차이, 머리카락만큼이나 미세한 차이.
지금 네 실력은 잘 하는 편과 못 하는 편으로 나눌 수가 없대. 컨디션에 따라 실력이 달라질 정도로 아직은 함부로 판단하기 어려운 상황이거든. 모든 것은 너의 선택이야.
아들은 한참이나 울 것 같은 표정을 짓다가 제 방으로 돌아갔다. 그러고도 1년 동안 야구교실을 다니더니, 어느 날엔가 와서 그만두겠다고 했다. 왜 그러느냐고 하니, 공부를 하겠다고 했다.
아들은, 간발의 차이로 공부를 택했다. 나와 남편은 한동안 심란했다. 꽤 오랫동안 야구선수의 부모가 될 수도 있음에 김칫국물을 먹었던 후폭풍이었다. 그러나 간발의 차이로 공부를 택한 아들의 선택과 시작을 진심으로 응원해주기로 했다. 수학과 영어 학원을 등록해주는 것으로 말이다. 별 수 없지 않은가. 아들의 시작을 응원해주는 부모의 역할이란, 심리적 위로와 경제적 지원처럼 확실한 것은 없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