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데없이 코로나와 함께 등장한 용어 같지만, 곰곰 생각해보면 갓 조리한 요리를 따듯하게 먹기를 바라며 공들여 식재료를 일일이 포장하는 사람이 있었다. 엄마가 그랬다.
나는 이러쿵저러쿵 이사를 다녔다.
그럴 때마다 엄마는 양 손 가득 무언갈 든 채로 서슴없이 나의 집 문을 두들겼다. 보자기와 쇼핑백을 총동원한 짐꾸러미를 하나 둘 풀어헤치면, 마치 내가 굶고 사는 사람인양 먹을거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크기와 뚜껑의 색이 다른 통에 담긴 밑반찬 한 무리, 어디에 좋다던 - 난생처음 보는 즙류, 게다 특별한 날도 아닌데 잡채와 LA갈비, 새조개 샤부샤부 등등. 한 달은 끄떡없을 어마어마한 식량이었고, 그것들은 매번 별다른 수고 없이 바로 구워 먹거나 끓여 먹을 수 있는 상태였다.
하지만 매번 잔소리도 시작되었다. 조리하는 순서와 불의 세기, 보관 방법,... 그리고 무엇보다 후딱 먹어치워야 한다는 점이 강조되었다. 같은 이야기가 세 번쯤 반복되면 나는 건성건성 반응하기 시작하고 엄마는 서운한 마음을 슬슬 드러내기는 했다 - 현실 속의 감동은 웬만해선 정점에 도달하지 못한다.
심지어 비행기를 타고 한국을 떠나는 날, 커다란 이민 가방에 랩으로 칭칭 감은 김치 한 포기가 들어 있었다. 나는 한사코 만류했지만 엄만 그게 꼭 필요한 일이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그런데 그게 얼마나 완벽하게 포장이 되었던지, 옷더미 속에 파묻힌 김치는 아주 은밀히 정체를 감춘 채 어떤 냄새도 풍기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은 샌드위치를 먹고 또 먹어도 배가 부르지 않던 기이한 현상에 시달리던 어느 날, 묵직이 제 소임을 다했다. 흰쌀밥에 김치뿐이었는데 허기가 채워졌다.
그러고 보니, 나는 '파스타 밀키트(PASTA KIT)'를 만드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숟가락 개수도 안다, '는 말을 좋아한 적도 없는데, 호시탐탐 남의 집 부엌살림을 궁금해한다. 프라이팬은 보통 어떤 걸 쓰는지, 그것의 크기는, 재질은, 바닥 두께는,... 에어프라이어는 얼마나 보급이 되었는지,... 조리 도구에 따라 조리법도 맛도 조금씩 달라지기 마련이었고, 이제 그런 것들은 중대한 고려 사항이 되어버렸다.
누군가가 자신의 부엌에서 파스타를 요리하는 과정을 머리에 그리며 마치 레고의 블록과 같은 걸 만드는 일이 처음엔 무척 낯설었지만, 지금은 그것 나름의 의미와 재미를 알아가고 있다.
이제, 주기적으로 기온을 체크하여 만든 - 세상에서 가장 작은냉장고에파스타 밀키트와 잔소리가 생략된 레시피 카드를 담는다.
커피 봉투에 내용물을 담아 최대한 부피를 줄였다.
그런데 어찌 된 영문인지, 품목란에 '밀키트'라고 기재하여도 '밀키'라고 택배 송장이 출력되는 일이 종종 일어나는 바람에, 모니터 너머 어떤 존재(가령 A.I...)가 밀키트를 부르는 애칭이 그것인가 하여 갸우뚱 하지만, 아무튼 그것은 밀키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