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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보루빵 Apr 28. 2020

이상적인 결혼이라 생각했다.

행복할 줄 알았다.

남편을 만난 건 직장에서였다. 그의 일처리가 맘에 들었다. 그는 영리했지만 약게 행동하지 않았다. 남자들 특유의 허세나 능글거림도 없었다. 조용하고 순했다. 이 남자다 싶어서 고백했고, 4년을 연애한 후 결혼했다.

예단 예물을 생략하고 둘이 모은 돈으로 전셋집과 신혼살림을 해결했다. 낡은 18평 아파트에서의 시작이었지만 소 생각대로 양가 부모님도움은 받지 않았다. 서로 무심한 성격 탓에 신혼생활이 알콩달콩하진 않았지만 편하고 좋았다.

이상적인 결혼이라 생각했다. 남편은 나의 이상형에 가까운 사람이었고, 오랜 연애로 서로에 대해 잘 안다고 생각했다. 둘다 결혼에 대한 커다란 기대보다는 현실에 맞춰가려는 향이 강했다. 또 누구의 간섭도 없는 독립적인 시작이었다.

이상적인 결혼이 위기로 바뀐 건 아이가 생기고 나서부터 였다. 남편은 일로 바빴고 나는 육아로 힘들었다. 그는 집에서는 편히 쉬고 싶어 했지만 나는 나를 도와주기 바랐다. 그의 편안함이 나의 수고로 이루어진다는 생각에 누워서 TV를 보고 있는 그의 모습만 봐도 화가 났다.

나의 힘보다 자신의 피곤함만 생각하면서 뭔가 시켜야 움직이는 그가 야속하고 원망스러웠다. 우리의 상황은 전과 180도 달라졌는데 여전히 자신이 누렸던 생활을 포기하지 않으려 하는 모습이 이기적으로 생각됐다. 또 나와 같은 마음으로 아이를 대하지 않는 것도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렇게 나는 그에게 잔소리와 비난을 쏟아냈고 그도 그것을 차곡차곡 쌓아가며 사소한 나의 잘못에도 심한 신경질을 냈다. 이상한 일이었다. 우리 둘 다 누가 봐도 괜찮은 사람들이었지만 서로에게는 세상 이기적인 사람들로 생각되었다.

서로를 미워했다. 누군가를 미워하는 건 많은 에너지가 들며 힘들다. 가까울수록 더 그렇다. 나는 불행했고 해결책을 찾으려 노력했다. 다행히 아이들이 크면서 힘든 게 줄어들기도 했고 여러 노력으로 지금은 위기를 가까스로 벗어났다.

이상적인 결혼이라고 생각했지만 우리의 결혼생활은 위기였다. 이상적인 시작이 결과까지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결혼생활에 무엇이 부족했는지를 얼마 전에 읽었던 김영민 작가의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를 통해 깨달았다.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연민"이었다. 우리는 서로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없었다. 각자 자신이 너무나 불쌍해서 상대방을 불쌍히 여길 마음의 여력이 없었다.

연민을 가질 때, 사람은 비로소 상대에게 너무 심한 일을 하지 않게 된다. 공자님이 왜 성인인지에 대해 맹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공자께서는 너무 심한 일은 하지 않으셨다."

서로에게 연민이 없던 우리는 서로에게 가차 없이 말하고 행동했다. 상대를 따뜻하게 대는 일상적인 습관을 만들지 못했다. 사랑이라는 순간의 감정이 아무리 뜨거워도, 그 애정이 생활 속에서의 따뜻한 습관을 만들어 주지는 않는다. 그것은 서로를 불쌍히 여기는 인간적인 연민에서 나온다.

나는 이상적인 결혼이란 게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이제는 이상적인 결혼생활을 위해서 필요한 건 사랑보다는 연민이라는 것은 알았다. 그 마음이 없었던 우리는 서로에게 잔인했고 결혼생활의 따듯한 온기를 하마터면 꺼트릴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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