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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의진 Nov 22. 2022

우리가 꿈꾸던 학교 운동장의 모습

작디 작은 서울 학교의 운동장, 넓직하고 아름다운 지방 학교의 운동장

그 시절, 우리가 꿈꾸던 학교 운동장


40대 이상 성인들의 학창시절, 체육 수업하면 떠오르는 풍경은 십중팔구 축구와 달리기, 피구 등을 하던 넓디 넓은 흙으로 된 운동장일 것이다. 그렇다. 그 시절은 거의 모든 학교 체육이 운동장에서 이루어졌다. 일반적인 체육 교과수업 뿐만 아니라 연중 가장 큰 행사였던 운동회, 육상대회, 축제 등의 거의 모든 체육 및 스포츠 프로그램이 흙으로 된 운동장에서 진행되었다. 심지어 농구, 배구, 핸드볼 등의 실내 스포츠 종목 학교운동부의 훈련 역시 실외에서 진행되는 것이 어색하지 않은 시절이었다.


구글에서 '90년대 학교 운동장'으로 검색하면 나오는 사진. 실제로 저런 풍경이었다. (*출처-https://coolenjoy.net/bbs/gallery/3479748)


그 시절, 우리의 꿈은 번듯한 체육관에서 농구 한 번 해 보는 것이었다. 체육관은 커녕 콘크리트나 아스팔트로 된 농구장만 있다면 어디든지 달려갔던 기억이 있다. 농구는 흙으로 된 맨 땅에서, 나무 합판으로 만들어진 불투명 백보드 농구대에서 하는 것이 당연한 시대였기 때문이다. 어쩌다 한 번, 대회에 나가 딱딱한 바닥에 공을 한 번 튀겨보면 그 느낌이 그렇게 좋을 수 없었다. 집 앞마당 농구대에서 슈팅 연습을 하는 TV 외화 시리즈 속 미국의 풍경은 정말 천국같았다. 영화 속에 나온 미국 뒷골목 '세멘 바닥' 농구장도 멋지게 보이던 시절이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m9zg6p2eG8c

유튜브에서 '90년대 운동장'으로 검색하면 나오는 영상.


나와 같은 40대 또래들은 위 영상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들까. 아마도 기억 속에서 한 없이 미화된 추억이 아름답게 그려질 가능성이 크다. 지금의 내가 그 때의 영상을 다시 보니, 뜬금 없기는 하지만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첫째, 넓디 넓은 운동장의 크기가 부럽다. 2022년 현재, 서울 대부분의 초중고에는 체육관이 있다. 비가 오나 미세먼지가 심각해지거나 체육 수업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은 분명 체육 교육 환경적 측면에서 엄청나게 좋아진 것이다. 여기에는 이견이 있을 수가 없다. 하지만, 그 체육관이 넓디 넓은 운동장의 일부분에 지어졌다는 사실은 대부분 잘 느끼지 못하고 있다. 체력장이 있던 시절 거의 모든 학교에서 100미터 달리기 측정이 가능했지만, 지금은 학생건강체력평가의 순발력 측정 항목으로 50미터 달리기를 선택할 수 없을 정도로 작은 크기의 운동장을 보유한 학교가 많다. 그 옛날 열악한 학교 체육 환경이었지만, 뭐든지 할 수 있는, 6~7학급이 동시에 수업을 해도 가능할 정도의, 가슴이 탁 트이는 드넓은 학교 운동장은 지금 봐도 부럽기만 하다. 사실 일반적인 사람들과 다른 교과 교사들이 잘 모르는 것 중의 하나가, 체육 교사들이 실외 수업을 선호한다는 것이다. 체육과 스포츠에서 공간의 크기는 그만큼 중요하다.


둘째로 부러운 것은, 운동장 한 켠에 있는 철봉과 평행봉이다. 그리고 거기에서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운동을 하고 있는 학생의 모습이 그립다. 학교 운동장의 한 편에 건물들이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철봉과 평행봉 그리고 그 주변의 부드러운 모래들은 가장 먼저 사라지기 시작했다. 위험하다는 이유로, 어떻게든 운동장 공간을 최대한 확보해야 한다는 이유 등 다양한 이유로 사라진 것이다. 2000년대 이후 새롭게 신설된 학교들은 처음부터 철봉과 평행봉 등을 설치하지 않은 학교들도 많다. 생각해보면 지금의 초등학교에서는 안전사고로 인한 부상의 우려, 그리고 이와 연계된 학부모의 민원 등으로 체조 수업을 거의 하지 않고 있다. 육상과 체조 수업을 거의 하지 않게 된 이유를 환경적 측면에서 이해할 것인지, 아니면 달라진 사회적 배경으로 이해할 것인지는 시각에 따라 다를 것이다. 어쨌든, 저 시절 아마도 체력장 때문이라도 철봉이 친숙하던 시절의 학생들의 체력과 지금의 학생들의 악력과 근지구력은 분명 질적으로 다르리라 생각한다.


구글에서 '비 오는 날 학교 운동장'으로 검색하여 나온 이미지. 체육 수업을 교실에서 한다는 것은 좌절 그 자체였다.


그 시절 최고의 학교는 물이 잘 빠지는 운동장을 보유한 학교였다. 비만 오면 최소한 이틀은 체육 수업을 제대로 할 수 없는 국민학교를 다니던 나에게 아침까지 비가 와도 2시간이면 물이 다 빠져서 축구를 할 수 있던 고등학교 운동장은 행복 그 자체였다. 이제는 더 이상 비가 온다고 체육 수업이 교실 수업으로 대체되는 세상은 아닐 것이다. 물론, 축구를 해야 하는 타이밍에 실내에서 스포츠 스태킹을 하게 되어 좌절하는 학생들은 여전히 존재하겠지만. 2022년 현재, 체육 교사들이 꿈꾸는 학교 체육 환경은 어떤 것일까.




서울의 신설학교 vs 지방의 오래된 학교


2022년. 개교한지 3년도 안 된 서울의 신설 학교와 개교한지 40~50년은 된 지방의 학교를 시설적 측면에서 비교한다면 어떨까. 아마도 일반적인 사람들이 전자가 더 좋으리라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서울의 학교에서 근무하는 체육 교사의 입장이나, 여러 지방의 학교를 출장다니며 일하는 장학사의 입장에서는 조금 다를 수 있다. 아파트 숲 속의 오밀조밀 알차게 건물을 배치한 학교의 모습보다는, 넓직한 공간에 드문드문하게 지어진 학교의 모습을 더 선호할 수도 있을 것이다. 더군다나, 지방의 중소도시 학교가 위치한 주변환경의 풍경까지 고려하면 학교의 풍경 그 자체가 예술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5PTh4L_iiTM

제주 중앙여자고등학교 체육 수업 풍경. 웬만한 공원보다 아름다운 학교의 풍경. 이런 풍경이면 얼마나 체육 수업이 기다려질까.(*출처-박지혜 선생님 유튜브)


사람들은 좋은 동네에 새로 생긴 학교일수록 시설이 좋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다. 좋은 동네일수록 땅값이 비싸고 학교를 짓기위해 필요한 공간을 확보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다. 눈부시게 발전한 서울시내 한복판에 학교의 크기보다 훨씬 더 많은 학생이 다니고 있는 과밀학급이 많은 이유다. 사람이 쾌적함을 느끼고 안정감을 느끼기 위해서는 자신만의 공간을 최소한 만큼이라도 확보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이상적이지 않다. 과거에 지어졌던 학교의 교실 크기와 지금 신축 학교에 다니고 있는 우리 아이들이 머무르는 교실의 크기를 비교해보면 그 차이를 쉽게 느낄 수 있다. 단편적으로 생각하면, 교육부에서 학교를 지을 때 요구하는 기준이 있기 때문에 작은 면적에 학교를 짓겠다고 할 때 승인이 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도권에 신설된 학교들을 보면 운동장이 작다. 아마도, 새롭게 조성된 주택지구에 학교가 없을 경우에 발생하는 문제 등을 고려하면, 예외조항을 두어서라도 작은 학교를 짓도록 허락하는 것이 정치적으로 옳은 판단이었을 것이다. 학교가 없는 것보다는 작은 학교라도 있는 것이 현실적으로 더 나은 판단이라는 의미였으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체육 교육의 관점에서 작은 공간은 너무나도 열악한 환경으로 다가온다.


지방에서 오랫동안 그 지역의 중심 역할을 했던 학교들을 방문해 보면, 면적도 넓고 풍경도 멋진데 시설도 정말 좋은 경우가 있다. 어쩌면 그 지방의 소멸을 막기 위해, 거점이 되는 학교에 해당 지방의 모든 역량을 동원하여 학교를 좋게 만들 수밖에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역사적 맥락이나 시대적 현상과 정치적 흐름은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지방의 학교 교육 환경이 어떤 면에서는 서울의 일반적인 학교 교육 환경보다 좋은 경우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


지방 어느 고등학교의 운동장과 체육 시설, 동시에 야구/축구/육상/농구/배구 경기가 가능하다. 공립 고등학교가 웬만한 프로팀 못지 않은 실내 야구 훈련장도 보유하고 있었다.


서울에 살고 있는 한 명의 시민 입장에서 인구 감소를 체감하기는 쉽지 않다. 출퇴근 시간이면 어김없이 붐비는 대중교통과 꽉막힌 자동차 도로를 보면, 인구가 줄어들고 있다는 시대적 흐름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다만, 교육청에 근무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해마다 줄어들고 있는 학교당 학급수와 학생수는 문서를 통해서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다. 학교에 근무하고 있는 교사들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담임 교사를 계속하다보면, 해가 가면 갈수록 줄어드는 '우리 반 학생 수'를 정확하게 체감할 수 있다.


지방의 현실은 아주 심각하다고 들었다. 말 그대로 학생 수 급감으로 학교의 존재 자체가 위험하다고 한다. 아무리 드넓은 운동장이 있고 훌륭한 체육 시설이 있어도 거기서 즐겁게 운동할 학생들이 없다는 것이다. 서울의 학교는 학생들이 많아도 공간이 작아서 축구 경기를 할 수 없지만, 지방의 학교는 공간은 크지만 학생들이 없어 축구 경기를 할 수 없다고 한다. 어쨌든, 체육 수업 시간에 11:11 축구 경기를 할 수 없다는 것은 다르지 않으니 슬픈 일이다. 체육 교과 수업의 내용은 축구(한 팀 11명)에서 배구(한 팀 9명)로, 배구에서 농구(한 팀 5명)로, 탁구와 배드민턴 수업이 복식 경기 중심에서 단식 경기 중심으로 점점 변화하고 있는 듯하다. 어떻게 보면, 학교 체육은 학생 수 감소의 직격탄을 가장 먼저 온 몸으로 맞고 있는 분야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지방 출장 길에 만난 한 중학교의 체육 시설.jpg


지방 출장길에 만난 한 고등학교의 체육 시설.png


서울에서 학교의 크기는 대체로 역사가 오래된 학교일수록 면적이 넓은 것처럼 느껴진다. 초등학교보다는 중학교가, 중학교보다는 고등학교가 더 넓게 느껴지기도 한다. 실제로 학교의 면적을 수학적으로 비교한 연구 결과나 통계자료를 분석하지 않더라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와 비슷한 인식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서울에서 면적이 큰 학교로 이름 난 서울고등학교의 크기는 지도를 통해 인근의 다른 학교들과 비교해보면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다. 서울고의 경우 대학교인 서울교육대학교보다도 면적이 넓다. 운동장의 크기는 정규 야구 경기장과 축구 경기가 동시에 가능할 정도로 크다. 모든 학교가 이 정도로 넓직하다면 얼마나 좋을까.


학교 교육 시설의 질을 단순하게 면적으로 판단할 수는 없다. 점점 더 정교해지는 세상 속에서 학교 환경은 하드웨어적인 요소에 소프트웨어적인 요소를 융합하여 생각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넓직하고 아름다운 풍경을 가지고 있는 학교라면, 그 자체로 학생들의 정서 안정과 사색하는 습관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고 믿고 싶어진다. 지방의 학교에서 근무해본 적이 없어 감히 이야기하기는 어렵지만, 아파트 또는 주택 단지로 둘러 쌓인 작은 크기의 도심 속 학교보다는 자연 속의 한적하고 넓직넓직한 학교가 부럽다. 그 속에서 마음 껏 달리고 공을 차고 던지고 때릴 수 있는 환경이라면 더욱더 좋지 않을까.


서울고등학교와 인근 학교의 크기 비교, 초중고가 아닌 대학교인 서울교육대학교 보다도 면적이 넓다. 바로 옆 서초고, 서초중과 비교해보면 그 크기를 알 수 있다.


아이들은 그 사회의 미래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아이들을 교육하는 곳, 학교가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사회는 거의 없다. 하지만, 교육청에 근무해보니 학교란 곳이 모든 사람들이 당연히 좋아하는 시설은 아니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체감할 수 있었다. 예를 들면, 초등학생이 까르르 웃고 떠드는 소리는 누군가에게는 한 없이 아름답고 햇살같은 느낌의 소리지만, 누군가에게는 자신의 삶을 파괴하는 소음으로 다가올 수 있다. 아이러니한 것은 '초품아(초등학교를 품고있는 아파트)'라는 말은 들어봤어도, '중품아' 또는 '고품아'라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워낙 집을 마련하는 것이 어려운 세상이 되고 보니, 대부분의 사람들이 모든 인생을 걸고 마련했을 내 집에 대한 기대감이 워낙 크기에 일어나는 일이라고 이해하려고 노력은 하고 있다. 학교 교육에 몸담고 있는 사람 입장에서 사람들이 학생들과 학교에 조금 더 너그러운 마음과 행복한 기대감을 가져주기를 바라게 된다.




미국 대학교의 스포츠 시설, 이런 학교가 이 나라에 몇 개라고??


2016년 여름. 감사하게도 훌륭한 분들과 함께 한 행사를 통해 미국에 다녀올 기회가 있었다. God Bless Me!! 미국의 지리도 잘 모르는 촌놈이 미국의 북서부에 위치한 시애틀이라는 도시에 3~4일 머무르게 되었는데, 사실 거기에 뭐가 있는지도 잘 모르던 터라 말 그대로 아무것도 모르고 비행기를 탔었다. 도착한 다음 날인가, 우리를 이끌어주신 분께서 '도서관이 멋진 대학교'라는 키워드로 소개해준 워싱턴대학교(University of Washington)에 방문하게 되었다. 해리포터 영화에 나왔던 멋진 도서관에 다 함께 방문하기는 했지만, 사실 해리포터 영화도 대강대강 봤으며, 도서관과는 담을 쌓고 살았던 사람의 입장에서 큰 감흥이 없었다. 이 때 내 눈에 들어온 것이 바로 캠퍼스 맵의 한 켠에 보이는 거대한 스포츠 시설들이었다. 혼자만의 시간이 주어지자마자 재빠르게 그 구역으로 이동을 시작했었다.


워싱턴 주립대학교 캠퍼스 맵과 구글 지도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워싱턴대학교의 멋진 스포츠 시설들


가장 먼저 발길이 닿은 곳은 미식축구 홈 경기를 하기 위해 지어진 풋볼 스타디움(Husky Stadium)이었다. 대충 봐도 우리나라 K1 리그 명문 축구 클럽의 홈 경기장보다 훨씬 크고 웅장한 경기장이었다. 프로 스포츠 구단의 홈 경기장도 아닌데, 우리 식의 표현으로 하자면 '일개 학교의 운동장'에 불과한 경기장 치고는 입이 떡 벌어지는 멋진 스포츠 시설이었다. 부럽다는 표현을 넘어 말 그대로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 느낌이었다. 이 정도가 되니 대학교 경기임에도 불구하고, 여기서 경기가 벌어지는 날에는 시애틀 도시 전체의 축제가 된다는 이야기가 믿어졌다.


워싱턴 주립대학교 풋볼 스타디움. 직접 들어가 볼 수는 없었지만, 사이사이로 들여다 보기만 해도 그 놀라운 규모를 느낄 수 있었다.


https://namu.wiki/w/%ED%97%88%EC%8A%A4%ED%82%A4%20%EC%8A%A4%ED%83%80%EB%94%94%EC%9B%80


경기장 바로 옆에 위치하고 있는 연습용(?) 풋볼 경기장 역시 그 자체만으로도 너무나도 멋진 꿈의 그라운드였다. NCAA 상위리그에 들어가려면 갖추어야 할 최소한의 스포츠 시설 기준이 아주 까다롭다고 들었었는데, 그 말이 사실인 것임이 분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기장 바로 옆에는 NCAA 농구 경기가 펼쳐지는 엄청난 규모의 실내체육관(Alaska Airlines Arena)도 위치하고 있었지만, 아쉽게도 실내에 들어가볼 수는 없었다. 사진을 찍기 어려운 구조라서, 사진을 남기지는 못했지만 멋진 관중석까지 보유하고 있는 소프트볼 전용 경기장도 인상적이었다. 여학생 스포츠 활성화의 본고장답게 스포츠 시설에서도 확실히 다른 모습이었다.


허스키 스타디움 바로 옆의 풋볼 경기장(Outdoor Practice Facility). 평소에 풋볼팀이 훈련을 하는 공간으로 보였다.


바다와 맞닿은 도시인 시애틀의 특성답게 학교 안에는 요트, 조정, 카누를 즐길 수 있는 잔잔하고 멋진 수상 경기장이 위치해 있었다. 여유있게 배 위에 올라 노를 저어가는 학생들의 모습에서 이들의 대학문화 그 자체가 너무나도 부러웠다. 동시에, 본능적으로 우리 아이들이 이런 환경에서 교육을 받으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하이라이트는 바로 어마어마한 규모의 실내 운동장(Dempsy Indoor Center)이었다. 체육 교사라면 누구나 꿈꾸어 본 '뚜껑을 씌운 운동장'이 현실에 존재했던 것이다. 대형 실내 축구장의 경우에 유명 축구 클럽들이 훈련하는 장면을 방송에서 본 적이 있어 머리 속에 그림은 그려졌었다. 그런데, 이건 그 수준을 넘어 육상 경기용 트랙까지 설치된 진짜 실내 종합운동장이었다. 동시에 하는 것이 가능하도록 그물로 된 커텐이 공간을 구분해주는 디테일까지 정말 완벽했다. 상상했던 모든 것이 대부분 실현되어 있는 공간이었다. 스포츠 강국 미국, 육상 강국 미국의 이유를 어렴풋이나마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실내 운동장(Indoor). 실내 체육관이 아니라 말 그대로 실내 운동장이다. 실내에서 육상 경기와 미식축구, 축구 등의 넓은 공간이 필요한 실외 경기를 쾌적하게 할 수 있다.


실외 테니스 코트와 실내 테니스 코트.


스포츠 시설들이 모인 이 곳은 정말 엄청난 규모였다. 뭐, 재학생 수만 해도 어림잡아 삼만명은 된다는 이야기를 듣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웬만한 국가의 대도시 수준은 충분히 되는 것처럼 느껴졌다. 약간 과장해서 이야기를 해 보면, 여기서 올림픽을 개최해도 되지 않을까 싶었다. 그도 그럴 것이, 어마어마한 크기의 주차장도 있고 버스도 다니며, 심지어 트램으로 보이는 교통수단까지 있었다. 표지판을 볼 때마다, 이것도 있어? 정말? 하는 단어들로 가득했다.


끝없는 넒이의 주차장과 스포츠 컴플렉스 여기저기를 안내하는 표지판과 워싱턴대학교 스포츠 레전드들의 모습.


야구 경기장(Husky Ballpark) 역시 잘 정비되어 있었다. 딱 봐도 천 명 정도는 앉아서 관전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이는 시설이었다. 경기 중 투수들을 위한 불펜 시설도 잘 갖추어져 있었고, 상규적인 연습 공간으로 사용해도 충분하겠구나 싶을 정도로 잘 관리되고 있는 모습이었다. 심하게 표현하자면 이런 좋은 환경에서 야구를 하면, 지역 연고의 MLB 구단인 시애틀 마리너스에 저절로 입단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워싱턴대학교 야구 경기장(Husky Ballpark)


야구 경기장 바로 옆에는 엄청난 크기의 인조잔디 운동장이 펼쳐져 있었다. 풋볼 전용 연습장과는 다르게, 바닥에 다양한 색상으로 여러가지 형태의 라인이 그려져 있었다. 이로 미루어보건데, 이 공간은 학생선수들이 사용한다기 보다는 일반 학생들의 체육 수업과 자율 체육 활동 시 사용하는 공간으로 추정되었다. 입구의 안내문을 보니 대략적으로 내 예상이 맞은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좁디 좁은 운동장에서 복작대며 수업을 하던 당시의 나에게 이 공간은 너무나도 부러운 수업 공간으로 다가왔었다.


체육 수업(Recreational Sports Program)을 하는 곳으로 추정되는 실외 다목적 운동장(Sports Field)


미국을 제외한 거의 모든 나라에서 축구는 'Football'로 통하지만, 미국에서 축구는 'Soccer'로 통한다. 축구는 스포츠 천국 미국에서 마이너 종목이다. 하지만, 축구가 미국에서 아무리 마이너 종목이라고 하더라도, 스포츠 천국 미국에서는 축구에도 이 정도 지원은 받는 모양이다. 아니, 미국에서 축구는 여자들의 스포츠로 더 각광을 받고 있다고 하니 그 때문에라도 학교에서 활성화되어 있는 종목인 듯 하다. 워싱턴 대학교에도 멋진 축구 경기장(Soccer Stadium)이 있었다.


워싱턴 대학교 축구 경기장(Husky Soccer Stadium).


놀라움과 감탄사의 정점은 바로 육상 경기장(Husky Track)이었다. 오직 육상 경기만을 위한 전용 트랙과 필드라니 어찌 놀라지 않을 수 있을까. 트랙의 색도 일반적인 황갈색이나 파란색이 아닌 학교의 고유 색상인 보라색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필드 경기를 위한 천연잔디도 잘 관리되고 있었으며, 다양한 육상 종목의 시설과 도구들이 완벽하게 갖추어져있었다. 미국 육상의 힘이 저절로 느껴지는 공간이었다. 체육 교사의 입장에서는 가장 부러운 공간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시간이 없어 더 이상 돌아보지는 못했지만, 이 외에도 골프 연습장과 또 다른 운동장이 있음을 캠퍼스 맵과 구글 지도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스포츠 전문 기관이 아닌 일반대학교의 스포츠 시설이 우리나라 국가대표의 산실이라는 한국체육대학교 보다도 더 좋아 보이는 현실에, 새삼 스포츠 선진국 미국의 학교 체육 시스템이 부럽기만 했던 하루였다. 물론, 이런 시설을 학교에서 만들도록 영향을 준 문화와 제도가 있을테고, 이것이 가능한 경제적 여유도 있었을 것이다. 뒷 이야기와 역사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너무너무 부러웠던 기억이다.


6년 전 일이라 잊고 지냈지만, 사진을 다시 꺼내보니 당시의 감동과 생각들이 그대로 되살아났다. 당시만 해도 평범한 중학교 체육 교사였기 때문에 단순히 부럽기만 했었는데, 학교 체육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장학사가 되어 사진을 다시 한 번 보니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된다. 분명한 사실은 우리 나라의 20년 전 스포츠 환경과 10년 전의 스포츠 환경, 그리고 지금의 스포츠 환경은 분명히 다르다는 것이다. 우리도 점점 더 좋은 환경이 만들어지고 있다. 스포츠 문화적 측면에서도 사람들의 인식과 그 수준도 높아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 스포츠 문화와 학교체육의 발전을 의심치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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