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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의진 Feb 04. 2023

기록의 인증, 역량의 인증

기록을 통해서 스포츠를 즐기고 학습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평가도구의 설계, 체육 교사로서의 전문성이 발휘되는 최고의 순간


km, m, cm, mm, mile, Yard, Feet, Kg, g, mg, lb, ounce, gallon...어떠한 것을 측정하여 그 정도를 알 수 있게 해주는 단위를 뜻한다. 그런데, 똑같은 길이와 거리도 미국에서는 피트(feet), 야드(yard), 마일(mile)을 사용하고 우리나라에서는 미터(m)를 사용한다. 메이저리그 야구 중계방송에서는 투수가 던진 공의 속도를 마일로 표현하지만, 우리나라 야구 중계방송에서는 킬로미터로 표현한다. 사람들은 우리나라에서 시속 150km의 공을 던지는 투수가 메이저리그에서 시속 100마일의 공을 던지는 투수보다 상대적으로 빠른 공을 던진 것인지 한 번에 이해하기가 어렵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역사상 대제국을 건설했던 국가들이 도량형의 통일을 최우선 과제로 삼았던 것 같다.


그런데, 도량형의 통일만으로 혼란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측정도구 자체가 실제로 정확한 것인지 신뢰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시장에서 쌀을 살 때 쌀집마다 ‘한 되’를 퍼 주는 나무틀의 크기가 다르다면 시장의 혼란은 오히려 더 커지기 때문이다. 똑같은 100미터 달리기 기록이라 하더라도 학교에서 교사가 스톱워치로 측정하는 기록과 올림픽에서 레이저 계측기로 측정하는 기록을 비교할 수 없는 이유다. 그래서 스포츠 현장에서는 측정도구의 타당성과 신뢰도에 따라 해당 기록의 가치가 결정되기 마련이다. 표준이란 그래서 중요하게 여겨지며, 어떤 일을 할 때 표준화를 추구하는 분야에서는 매뉴얼을 만들어 이를 준수하게 한다.


https://www.hellodd.com/news/articleView.html?idxno=62910


어떠한 개념을 얼마나 알고 있는지(할 수 있는지)를 알아보고자 어떠한 형태의 도구를 활용하여 측정하는 행위를 우리는 검사 또는 평가라고 부른다. 교육 현장에서 평가는 교실과 학교라는 작은 단위부터, 국가라는 큰 단위 때로는 국제적인 단위로도 실시된다. 교사는 자신이 가르친 내용을 학생이 얼마나 잘 이해하고 있는지와 동시에 자신이 얼마나 잘 가르쳤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교사로서의 전문성을 발휘하여 평가도구를 만들어낸다. 교육정책을 기획하고 실천하는 교육당국의 입장에서는 학생들이 최소한의 학업적 성취기준에는 도달했는지 여부를 확인하고 싶기 마련이다. 그렇기 때문에, 국가교육과정문서를 총론과 교과별 각론으로 세부적으로 규정하고 있으며, 주기적으로 전수 또는 표본을 대상으로 학업성취도 검사를 하고 있다.


학교체육 역시 마찬가지다. 학생들의 체력 수준을 점검하기 위해 '학교건강검사규칙'을 제정하여 국가적인 수준에 전국의 모든 학생들이 1년에 한 번씩 '학생건강체력평가'를 하도록 하고 있다. 과거를 돌이켜보면, 학생 대상의 체력검사는 이른바 '체력장'이라는 이름으로 매년 일제히 시행되어 고등학교 입학과 대학교 입학에서도 반영되던 시대가 있었다. 학생건강체력평가가 도입되던 당시에, '과연 이 검사방법과 판단기준이 정말 타당한 것인지'에 대한 논란도 컸지만 결국 도입되었고 국가적으로 표준화된 검사도구는 그 자체로 권위를 가지고 지금까지 시행되며 축적된 데이터를 근거로 학교체육 정책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학교체육의 개념이 단순한 '체력의 증진'을 넘어 '신체활동 문화를 향유하는 것'을 지향하는 시대에, 체육 교과 국가교육과정에서도 '스포츠'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시대가 되었다. 체육 교육에 몸담고 있는 사람으로서 '스포츠 역량'은 무엇이며, 이를 어떻게 확인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과 궁금증은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한다(물론, 내가 학교체육 담당 장학사라서 그런 것일지라도 말이다.). 체육 교사 시절부터 평가 도구를 설계하고 기준을 설정하는 과정은 내가 가장 좋아했던 일이다. 체육 교사로서의 정체성과 전문성이 가장 크게 발휘되는 순간이 바로 이 과정이라고도 생각한다. 가장 즐겁지만 가장 어려운 평가도구 설계의 과정, 교사라면 이 과정을 가장 사랑해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아래의 임용고사 문항 사례처럼 이러한 부분들은 교사 선발 과정에서도 실제로 강조되어 왔고, 현직 교사를 대상으로 하는 직무연수 등에서도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2005학년도 중등 체육 교사 선발 임용고사 23번 문항. 체육 교사가 어떻게 전문성을 발휘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정말 좋은 문제였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모든 교사들이 이 과정을 즐기지는 않는 것도 현실이다. 같은 학년의 수업을 함께 담당하는 교사들 중 일부는 동료 교사가 이 과정을 대신 해 주기를 기대하기도 한다. 단순히, 힘든 과정을 누군가 대신해주기를 바라는 현상만 있는 것도 아니다. 교사로서의 경력이 짧아서 자신감이 떨어지기도 하며, 특정 스포츠 종목에 대하여 자신감이 부족하여 해당 주제의 평가도구 설계의 역량이 부족할 수도 있다. 무엇보다,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이 실제로 어느 정도의 수준을 가지고 있는지를 가늠할 수 없을 때는 뜬 구름을 잡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 다른 교사들은 어떻게 평가도구를 설계하는지, 다른 학교에서는 어떻게 하는지 궁금하고, 도움을 요청하기도 한다. 때로는, 교육청이나 교육부처럼 권위있는 곳에서 학생건강체력평가처럼 체계적인 검사도구를 만들어 줬으면 하는 목소리를 내는 교사들도 있다.


장학사가 되어 학교체육을 담당해보니, 학교 체육 현장의 다양한 목소리가 모두 머리에 남게 된다. 더욱이, 코로나 기간에 힘들어했던 학교체육 현장을 보며 이들을 지원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 고민도 하고 무력감을 느끼기도 했었다. 한 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안개 속 같은 상황에서, 어떻게든 체육 교과 수업을 해내고 말았던 체육 교사들의 역량에 존경심도 들었다. 학생들이 원격 수업을 하며 혼자서 학습을 하더라도, 인생의 결정적 시기에 스포츠를 즐길 수 있는 역량은 반드시 길러주어야 한다는 책임감도 느꼈었다. 코로나의 긴 터널을 지나고 나서도, 일반적인 중학교 체육 교육을 받았다면 배구를 아주 잘 하지는 못해도 배구 경기에 참여할 수 있는 정도의 능력은 있어야 한다는 생각, 야구를 잘 하지는 못해도 기본적인 공 던지기와 받기는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 등이 머리 속에서 떠나지를 않았다.


정리해보면, 내 관심 분야는 '우리 학생들은 학교 체육을 통해서 스포츠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능력을 얼마나 학습했는가?'인 듯 하다. '서울에서 중학교를 졸업한 학생'이라면, 최소한 농구를 이 정도는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 학생이 스스로 자신의 농구 실력이 어느 정도는 된다고 자각할 수 있도록 해주고 싶다는 생각 등이 혼재되어 지나온 시간동안 내가 참여했던 사업들에 영향을 준 것 같다. 이런 생각은 나 혼자서만 하는 것이 아닐 것이다. 바람직한 방향으로 풀어낼 수 있다면 좋겠지만, 스포츠 분야별로 혹은 교육 단위별로 경쟁적으로 헤게모니를 잡기 위해 경쟁이 발생할 수도 있다. 골치아픈 일은 나중에 생각하기로 하고, (주제넘는 일이 분명하겠지만) 일단 체육 교사의 입장에서 장학사의 입장에서 '스포츠 역량을 인증하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체력·스포츠 역량을 인증하기 위한 검사도구의 개발 및 활용


학생의 입장에서 여러 명의 사람이 팀을 구성해서 하는 스포츠 경기에 참여할 때, 참여의 빈도와 깊이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스스로 자각하는 해당 스포츠 종목의 경기력일 것이다. 나는 축구를 어떤 포지션에서 역할을 잘 수행한다고 자각하고 있으며 해당 포지션에서 경기를 하고 싶은데, 자신이 원하지 않는 포지션의 역할을 부여받는다면 참여의 동기는 떨어지기 마련이다. 반대로, 스스로 자신의 역량이 부족함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감당하기 어려운 역할을 부여받게 된다면 그 역시 참여의 동기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학생의 입장에서 잘 하고 싶지만, 어떻게 해야 잘 하게 되는지 모르겠는 상황은 더욱 답답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걸 연습하면 해당 스포츠 경기력을 확실하게 향상시킬 수 있다'는 확신을 줄 수 있는 연습 방법이 주어진다면 학생은 최선을 다 해서 연습할 수 있을 것이다. 체육 교사의 전문성, 스포츠 지도자의 전문성이 발휘되는 순간이 바로 여기에 있다.


개인 교사의 차원과 개인 학생의 차원에서 가장 궁금한 부분은 '나는 얼마나 잘 하는가?', '내 수준은 어느 정도인가?'에 있을 것이다. 지역 차원 또는 국가 차원에서 학교체육 전체의 수준을 고민하는 사람이 입장에서는 '우리의 체육 교육은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는가?', '학교 체육 교육을 통해 학생들은 어느 정도의 수준까지 도달하는가?'가 궁금하기 마련이다. 교육청과 교육부에서 학생건강체력평가의 실시, 건강체력교실의 운영, 나이스 기록 입력 및 관리 등의 자료를 수집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도 동일한 맥락이다.


2023년 현재, 우리나라의 모든 학교는 학교체육진흥법학교건강검사규칙에 따라 '학생건강체력평가(P.A.P.S.)'를 운영하고 있다. 모든 학생들이 매년 봄이면 체육 수업시간 또는 특정일에 체력을 측정하고, 그 결과와 향후 운동방향의 처방을 제공한다. 평가결과 종합적으로 판단했을 때 건강을 위한 체력 향상이 필요한 학생들(4~5등급)을 대상으로 학교가 건강체력교실을 내실있게 운영하여야 할 의무를 부과하는 체계적인 구조의 학교를 통한 건강 관리 시스템이다. 과거의 체력장과는 다르게 각 체력요소별로 검사도구의 선택권을 부여함으로써 학교마다 다른 체육 교육 환경도 고려한 제도다. 학생건강체력평가는 체육 교사의 전문성을 신뢰한다는 전제를 바탕에 두고, 평가의 질을 관리하기 위해서 세부적인 매뉴얼을 제공하기도 하며, 필요한 경우 연수 등을 실시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가 결과를 믿을 수 있겠느냐는 자조섞인 목소리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체육 교사라면 당연히 전문성을 가지고 해야 하는 부분이기 때문에 학생건강체력평가 결과는 신뢰도 높은 데이터로 종합되어 학교체육 정책의 효과성 검증 및 방향성 설정을 밑바탕이 되고 있다.



문헌 연구를 제대로 해 본 것이 아니기 때문에 외국의 사례를 자세하게는 모르겠지만, 미국의 경우 체육 교사들을 중심으로 체력 및 스포츠 역량 검사도구를 오래 전부터 개발해 왔던 것으로 보인다. 자세히는 모르겠지만「미국 체육 교사 협회(A.A.P.H.E.R.D.: AMERICAN ALLIANCE FOR HEALTH, PHYSICAL EDUCATION, RECREATION AND DANCE)」라는 조직에서 오랜 기간 동안 체력 및 스포츠와 관련된 다양한 검사도구를 개발하여 보급한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https://www.pgpedia.com/a/american-alliance-health-physical-education-recreation-and-dance


https://www.youtube.com/watch?v=gIrI8EcqDP8

AAHPERD 청소년 체력 검사(1957, AAHPERD)


사실 내가 AAHPERD라는 이름을 기억하게 된 계기는, 내가 응시했었던 2003학년도 중등 체육 교사 임용시험에 출제되었던 문항을 통해서였다. 당시에 내가 이 문제의 정답을 맞게 썼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어떤 조직인지 몰라도 '권위있는 종합농구기능검사'가 존재하는가보다라는 생각을 했던 기억은 뚜렸하게 남아있다. 위에서 이야기를 풀면서 사례로 제시했던 중등 체육 교사 임용시험 문제도 그랬지만, 우리나라 교사 임용 시험이 문제의 질이 정말 좋고 실제 교사 생활을 하면서도 중요한 부분이 무엇인지를 잘 제시해주는 것이 아닌가 싶다.


2003학년도 중등 체육 교사 선발 임용고사 14번 문항. 체육 교사가 평가도구를 설계할 때 실제 경기력 향상에 도움이 되는지를 고려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eNGaBaMy79g

미국체육교사협회 농구 기능 검사 3 패스「AAHPERD Basketball Skills Test 3 Passing」(1984, AAHPERD)


학교 현장에 있을 때, AAHPERD Basketball Skills Test와 NBA AllStar Skills Challenge에 영감을 받아서 근무하고 있던 학교의 농구 학습환경을 고려하여 「농구 기술수행능력 평가 도구」를 스킬 챌린지 형태로 만들어 수업하여 학생들의 농구 수행능력이 나름대로 향상되는 것을 확인했던 경험이 있다. 이런 글 속에서 이렇게 표현하니 뭔가 굉장히 있어보이는 것 같지만, 교사로서의 나는 수행평가도구를 제대로 만들어 '이 것을 연습하는 것만으로도 실제로 해당 종목의 수행능력이 향상될 수 있으며, 그 자체로 학습과제이자 수행평가가 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했던 것이다. 쉽게 말해서 수업은 편하게 하되, 효과는 극대화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에 대한 고민이었다. 취지야 어쨌든, 이런 과정을 통해 수행평가 방법 및 기준을 어떻게 설계하고 어떤 검사도구를 개발하느냐가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던 계기였다.


https://www.youtube.com/watch?v=icOKBiw570M

농구 기술수행능력 평가. 한 학급 15명 미만의 여자중학교에 근무할 때, 열악한 체육관에서 어떻게든 농구 실력을 늘려주고 싶어서 만들었던 수행평가 방법이었다.




믿을 수 있는 공식 기록을 측정하여 인증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교육적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체육 교사들이 수행평가 도구를 개발할 때는 '적절한 성취기준을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이를 위해서 나는 [ 수행평가도구 개발 - 직접 시뮬레이션하여 데이터 수집 - 수업 - 수업 대상 학생 중 수행역량이 높은 학생을 대상으로 데이터 수집 - 평가기준 설정 - 수업 - 평가기준 조정 - 수업 - 평가 ]의 과정을 반복하며 평가기준을 다음어 나갔었다. 그런데 이 과정은 생각처럼 쉽지 않기도 하고, 특정 종목의 전문성을 가지고 있다는 사람들로부터의 비난 가능성 등으로 위축되기도 한다. 나는 예전부터 동료 교사들에게 국가에서 인증해준 교사 자격증과 임용 과정을 통과한 본인의 역량을 믿고 이 과정을 자신있게 하라고 이야기를 했었다. 아니, 동료교사에 대한 격려라기보다 나 자신을 위한 격려와 자신감을 불어넣기 위해서 였을지도 모르겠다. 장학사가 되고 나서 여러가지 사업을 펼쳐나갈 때도, 어떠한 기준을 설정해야 하는 순간이 되면 늘 고민 또 고민이 되는 순간이 계속되었다.


그런데, 때로는 어떠한 기준을 설정하지 않더라도 단지 양질의 경험과 신뢰도 높은 기록을 인증해주는 것만으로도 교육적 효과를 달성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최근의 나는 코로나를 거치면서 위축된 초등학생 체육, 모든 움직임의 기초가 되는 가장 중요한 종목임과 동시에 점점 더 체육 수업 내 비중이 줄어들어가고 있는 육상 종목을 활성화 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 고민하고 있었다. 마침, 이런 고민을 풀어낼 수 있는 사업을 기획할 수 있는 기회가 있어 근무하고 있는 교육지원청 관내의 서울체육중학교가 가지고 있는 육상의 전문적 역량을 활용한 「서울체육중학교 육상 페스티벌」을 기획하고 시행할 수 있었다.


육상 종목을 일반적인 경기 대회로 운영할 경우, 기록 또는 상대적 순위 경쟁을 통하여 입상자를 선정하게 된다. 몇 차례 회의를 통해 결정한 행사 기획의 가장 큰 지향점은 초·중학생들에게 '내가 얼마나 빨리 달릴 수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데 있었다. 실제 육상 대회에 참가하는 전문 선수들이 달리는 경기장에서, 실제로 과학적인 기록 측정에 사용되는 도구를 활용하여 정확하고 믿을 수 있는 기록을 측정하여 이를 공식적으로 인증해주는 것이 육상 페스티벌의 핵심 내용이 되었다.


처음에는 과거 체력장 시절의 100미터달리기 기록별 등급 점수표를 활용하여 학생이 자신의 수준을 정확하게 인지할 수 있게 해 주려고 했었다. 하지만, 어린 학생들에게 세계적인 선수의 기록, 우리나라 최고 수준 선수의 기록, 비슷한 또래의 우리나라 최고 기록 등을 제공함으로써 흥미를 불러일으키고 동기를 부여하는 방향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믿을 수 있는 진짜 인증서를 발급하는 것만으로도 초등학생과 학부모들에게는 큰 반향을 일으킬 수 있다는 의견도 중요한 부분이었다. 중등 체육교사의 입장에서 쉽게 예상하기는 어려웠지만, 일단 회의를 통해 정해진 방향대로 행사를 추진하였다.


「2022 서울체육중학교 육상 페스티벌」에 참가한 모든 학생들의 100미터 달리기 기록을 측정하여 발급해 준 인증서


실제로 학생들 특히 초등학생들은 인증서를 받아서 가는 것만으로도 너무 행복해 하는 모습이었다. 상대적으로 때가 묻었다고 느껴지는 중학생들 역시 인증서를 받아가는 표정들이 밝고 즐거움이 가득했었다. 특히, 인증서 한 편에 세계기록, 한국기록, 학생기록, 과거 체력장 기준표 등의 다양한 기록과 자신의 기록을 비교하며 100미터 달리기가 육상 종목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를 자연스럽게 이해하는 모습이었다. 엄청난 기록을 보여주며 향후 스포츠 꿈나무로서의 자질을 보여주는 학생들도 발견할 수 있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RbM8b6952BI

2022 서울체육중학교 육상 페스티벌




모든 교사들이 쉽게 활용할 수 있는 믿을 수 있는 스포츠 역량 검사 도구는 없을까


장학사로서의 꼰대적 기질과 욕심은 끝이 없는 것 같다. 주요 스포츠 종목의 역량 인증 도구를 개발하여, 서울의 학생이라면 이 정도는 도달했으면 하는 방향성을 제시해주고 싶다는 생각을 계속 하게 되었다. 2020년 코로나 상황에서 서울시교육청이 과감하게 시작했던 '서울 학생 온라인 스포츠 한마당'은 스포츠 종목별로 경기 방법을 영상과 텍스트로 설명하고, 실시간 영상회의 플랫폼을 활용하여 경쟁하는 방식이었다. 내 눈에는 이를 위해서 개발된 스포츠 종목별 경기 방법이 그 자체로 완벽한 평가도구로 보였다. 이것을 상대적인 경쟁이 아니라 기록을 구간별로 나누어 등급을 제시해주는 방식으로 역량을 인증하게 하면 좋은 체육 수업 도구이자 수행평가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63EV_0APrcY

2021 서울학생 온라인 스포츠 한마당 배구 종목 경기방법 설명 영상(2021. 서울특별시교육청)


내 머리 속에 딱 떠올랐던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초등학교 현장에서 널리 활용되었던 '줄넘기 인증제'와 '태권도 검은 띠'였다. 무엇인가 체계적인 시스템으로 학생의 해당 종목 역량을 인증해준다는 아이디어와 사례를 참고하면 좋은 것들을 만들어낼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줄넘기 인증제의 경우 표준화된 기준이나 사례는 없었다. 학교별로 조금씩 다르기도 했고, 학교가 아닌 여러 단체가 자신들만의 줄넘기 인증 과제와 판단 기준을 가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모두가 동일한 하나의 검사도구를 활용한다는 것이 수 년간의 장학사 생활을 통해 은연 중에 체화된 꼰대적 시각이었던 것은 아닌지 반성을 하는 시간이 되었다. 나 역시 체육 교사였을 때, 표준화된 것을 가져와 활용하기보다는 교사의 전문성을 살려서 우리 학교 환경에 맞고 우리 학생들에게 적합한 내용으로 교육과정과 평가도구를 구성하여 수업하기를 선호했다는 사실을 잊고 지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AAHPERD가 다양한 스포츠기능검사를 개발하고 보급했던 것처럼 양질의 스포츠 역량 검사 도구의 필요성은 분명하다. 모든 체육 교사들에게 필요한 것은 아닐지 몰라도, 어떤 교사와 어떤 학생에게는 꼭 필요한 부분일 수도 있다. 특히나, 코로나 시국에서 학생이 혼자서 연습하는 것만으로도 해당 스포츠의 재미를 느끼고 경기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좋겠다는 의견도 분명히 존재하고 있었다. 그래서, 관내 체육 교사들이 전문성을 발휘하여 학교 체육 현장에서 가장 많이 하고 있는 주요 종목 '농구·배구·축구'의 검사도구를 개발했었다. 교사와 학생들이 이해하기 쉽게 영상으로 자료를 만들고, 학교에서 활용하기 쉽게 포스터 형식의 자료와 매뉴얼을 함께 관내 초중고에 보급했었다. 그 시기와 방법에서 널리 활용되지 못하여 아쉬움은 남았지만, 이 과정에 참여한 교사들의 전문성 함양과 교육청의 경험적 지식 축적 등에서 의미있는 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이 자료들이 널리 활용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그 내용을 여기에 공유해 본다.




학생 스포츠 역량 인증도구(2021. 서울특별시강동송파교육지원청)


0. 학생 스포츠 역량 인증 검사도구 종합 설명서


1. 배구 (*연구진-신명중 구나영, 해누리중 조윤서)

https://www.youtube.com/watch?v=E_MsOTHTxgo



2. 농구 (*연구진-서울체육중 국민준, 방이중 황성룡)


https://www.youtube.com/watch?v=7XwWtfCyfsQ



3. 축구 (*연구진-신천중 이진, 해누리중 지혜연)

https://www.youtube.com/watch?v=PTmkJUlXEHU




스포츠에서 기록은 그 자체로 큰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학교체육에서도 마찬가지다. 기록을 어떻게 생산하고 가공하고 관리하느냐에 따라 교육적 효과성은 무궁무진하게 뻗어나갈 수 있다. 잘 만들어진 평가도구 하나만으로도 체육 수업이 성공할 수 있으며, 과도한 상대적 경쟁으로 흐려질 수 있는 스포츠의 본질을 절대적 기준에 대한 도전으로 변환하여 수업에 녹여낼 수도 있다. 교육 당국의 꼰대적 시각에서 보면, 데이터의 축적과 분석을 통해 정책적 방향을 설정하고 개선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앞으로 학교체육 현장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기록을 활용하는 방법이 더욱 발전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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