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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의진 Sep 02. 2024

교과서가 만들어지는 과정: 2022 개정 체육 교과서

2022 개정 교육과정 중학교 체육 교과서 작업 참여 후기


교과서. 교사라면 누구나 자신이 직접 교과서를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감사하게도 기회가 왔고, 즐겁게 교과서 개발 작업에 참여하였다. 교과서 작업에 참여하기 전에는 도대체 이 책이 어떤 과정으로 만들어지는지 너무나도 궁금했었다. 시간을 흘렀고, 여러가지로 미흡하기도 했고 아쉬움이 남기도 했고, 뿌듯한 마음도 컸고, 내가 만든 교과서가 교사들의 선택을 받는 지금에 이르러서는 여러가지 감정이 혼재하고 있다. 교과서를 써보고 싶다는 꿈을 가지고 있는 교사들이 있다면, 그 궁금증이 조금이나마 해소되기를 기대하면서 지금까지의 경험을 정리해본다.




'교과서'란 무엇인가


사람들에게 '교과서'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무엇일까. 우선, 교과서를 받는 날의 설레임과 교과서를 집에 가지고 왔을 때 부모님의 모습이 떠오르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교과서가 뭐라고, 앞으로 수업 중 보게 될 책의 무게감이 참 컸다. 그 무게감의 정점은 바로 새 교과서를 오래오래 쓰라며, 책 껍질(커버)을 달력이나 비닐로 씌워(포장?)주시던 기억이다. 달력은 두꺼운 종이라서 책을 잘 잡아주는 장점이 있지만, 있는 집 친구들은 투명한 비닐로 포장을 해오기에 상대적인 박탈감에 부끄러움을 느끼기도 했었다.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353/0000004543?sid=103


검색해보니, 지금 이 시대에도 어린 시절 추억을 가지고 있는 부모 세대가 자녀의 교과서를 정성스럽게 포장해주는 사례가 있다. 추억을 담아 달력으로 교과서를 포장하는 부모도 있고, '요즘 세대의 문방구' 다이소에서 판매하는 비닐을 구입하여 정성스럽게 교과서를 싸주는 부모도 있는 모양이다. 검색을 하다 보니 워낙 많은 부모들이 '이 작업'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되었다. 우리 집에서는 아이들에게 교과서를 포장해 준 적이 없기에 조금 뜨끔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https://cafe.daum.net/rocksoccer/ADs1/6718


https://blog.naver.com/nugurya/220294234202


교과서 하면 떠오르는 또 다른 이미지로 '시험범위 페이지'로 대표되는 지루함과 답답함도 있다. 반장의 대표 인사에 따라 인사를 하고 출석을 확인한 선생님은 '지난 시간에 몇 쪽까지 진도 나갔었지?'라는 멘트를 자주 했었다. 지난 시간 수업 내용을 떠올리며, 이번 시간에 할 내용까지 자연스럽게 이끌어내는 문장이었다. 시험 기간이 되면 '가정통신문'에 빼곡하게 적어 안내하는 교과별 시험범위를 보며 답답함을 느끼기도 했을 것이다. 교사로 학교 현장에도 근무했고, 자녀를 중학교에 보낸 학부모가 된 지금도 시험범위 가정통신문은 여전히 똑같은 방식으로 안내하고 있다.


서울의 한 중학교 '시험범위 안내 가정통신문'


교과서의 재미있는 이미지도 있다. 검색해보니, '교과서 튜닝'이라는 단어를 많이 쓰는 듯 했다. '교과서 장난'이라고 표현하는 사례도 많았다. 재미있는 사실은, 우리나라 학생들이 아닌 다른 나라 학생들도 교과서에 장난을 치는 사례가 많다고 한다. 다른 나라 학생들 역시 놀라운 상상력을 '지루한 교과서'에 투영하며 수업 중 '딴 생각'을 하며 버티는 경우가 많은 모양이다.


https://namu.wiki/w/%EA%B5%90%EA%B3%BC%EC%84%9C%20%ED%8A%9C%EB%8B%9D


'교과서'란 정확하게 무엇일까. 공무원으로서 명확한 레퍼런스가 궁금해졌다. 「초ㆍ중등교육법」 제29조(교과용 도서의 사용)에서는 교과용 도서를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제29조(교과용 도서의 사용)
① 학교에서는 국가가 저작권을 가지고 있거나 교육부장관이 검정하거나 인정한 교과용 도서를 사용하여야 한다.
② 교과용 도서의 범위ㆍ저작ㆍ검정ㆍ인정ㆍ발행ㆍ공급ㆍ선정 및 가격 사정(査定) 등에 필요한 사항은 대통령령으로 정한다.


이 법률 조항에 따라 「교과용도서에 관한 규정」을 대통령령으로 제정하였다. 「교과용도서에 관한 규정」 제2조(정의)에서는 교과용 도서에 관한 용어를 다음과 같이 정의하였다.


제2조(정의) 이 영에서 사용하는 용어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1. “교과용도서”라 함은 교과서 및 지도서를 말한다.
2. “교과서”라 함은 학교에서 학생들의 교육을 위하여 사용되는 학생용의 서책, 지능정보화기술을 활용한 학습지원소프트웨어(이하 “디지털교과서”라 한다) 및 그 밖에 음반ㆍ영상 등의 전자저작물 등을 말한다.
3. “지도서”라 함은 학교에서 학생들의 교육을 위하여 사용되는 교사용의 서책 및 그 밖에 음반ㆍ영상 등의 전자저작물 등을 말한다.
4. “국정도서”라 함은 교육부가 저작권을 가진 교과용도서를 말한다.
5. “검정도서”라 함은 교육부장관의 검정을 받은 교과용도서를 말한다.
6. “인정도서”라 함은 국정도서ㆍ검정도서가 없는 경우 또는 이를 사용하기 곤란하거나 보충할 필요가 있는 경우에 사용하기 위하여 교육부장관의 인정을 받은 교과용도서를 말한다.
7. “개편”이라 함은 교육과정(「국가교육위원회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 제12조제1항에 따라 국가교육위원회가 고시하는 국가교육과정 및 법률 제18298호 국가교육위원회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 부칙 제4조에 따라 교육부 장관이 고시한 국가교육과정을 말한다. 이하 같다)의 전면개정 또는 부분개정이나 그 밖의 사유로 인하여 교과용도서의 총 쪽수(음반ㆍ영상ㆍ전자저작물 등의 경우에는 총 수록 내용)의 2분의 1을 넘는 내용을 변경하는 것을 말한다.
8. “수정”이라 함은 교육과정의 부분개정이나 그 밖의 사유로 인하여 교과용도서의 문구ㆍ문장ㆍ통계ㆍ삽화 등을 교정ㆍ증감ㆍ변경하는 것으로서 개편의 범위에 이르지 아니하는 것을 말한다.


때로는 교과서 자체에 대한 무용론도 있다. 특히, 체육 교과는 상대적으로 더 큰 것 같다. 하지만, 교과서는 학교현장 개별 교사 수준에서의 수업 설계에 큰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는 아주 중요한 책이다. 누군가 '왜 이 수업을 하고 있는가?'라고 물었을 때, 가장 일반적인 대답이자 누구나 다시 반박할 수 없는 완벽한 대답이 '교과서에 있는 내용이다'라는 문장이기 때문이다. 수업 중 안전사고가 자주 발생할 수밖에 없는 체육 교과의 경우, 사고발생 이후 수업내용 선정에 대한 타당성을 검토하는 순간에 가장 완벽한 울타리가 되어주는 것이 바로 교과서이기도 하다. 이러나 저러나 교과서가 학교의 교육과정 운영에 가장 중요한 토대라는 것은 모든 교과에서 분명한 사실이다.




한 권의 '교과서'가 만들어지는 과정


교과서는 어떤 절차에 의해 만들어질까. 교과서 개발의 근거가 되는 기준이 바로 '국가수준 교육과정 문서'다. 교육과정 문서는 '총론'에 의해 전체적인 방향과 틀을 제시하고, '교과별 각론'에 의해 교과별 주요 학습내용이 설정된다. 한 번 국가수준의 교육과정이 확정되면, 이 교육과정이 전면적으로 개편되기 전까지는 동일한 교과서를 계속 사용한다. 전면적인 개정이 아닌 교과별 내용의 변경이 필요할 때만, 부분적으로 수정을 하는 형식으로 교과서를 계속 사용한다. 예를 들면, 체육 교과의 주요 내용이 스포츠 중 '배구' 경기에서 서브권이 있는 팀이 공격을 성공한 경우에만 득점하는 규칙이 서브권과 관계없이 득점하는 '랠리 포인트' 시스템으로 변경되었을 경우에 해당 부분만 교과서에 수정하여 반영했던 것이 '수정'의 대표적인 사례다.


국가수준 교육과정의 전면적인 개편 요구로 「2022 개정 교육과정」이 새롭게 등장하였다. 이에 따라 새롭게 교과서를 개발하게 되었으며, 나에게도 교과서 개발 작업에 참여할 기회가 생긴 것이다. 일반적으로 교육과정이 전면 개정되면 교과서가 개발되고 학교 현장에 적용되기까지 3~5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교육과정을 개정하겠다는 결정을 발표했던 교육부의 보도자료(2021.4.20.)에 따르면 「2022 개정 교육과정」 관련 추진 일정은 다음과 같았다.


2022 개정 교육과정의 추진 일정(2021.4.20. 교육부 보도자료 발췌)


위에서 발표한 일정에 따라, 실제로 2021년 하반기에 「2022 개정 교육과정 총론 시안」이 발표되었다. 주요사항을 담은 시안이 발표되었으니, 여러가지 절차에 따라 의견수렴 및 일부수정을 거치게 되었다. 교육부는 향후 일정을 다음과 같이 발표하다.


2022 개정 교육과정 개발 일정 (2021. 11. 24. 교육부 보도자료 발췌)


교육부의 계획에 따르면「2022 개정 교육과정 총론」을 확정하여 고시하는 시점은 「교과별 각론」과 동일한 2022년 하반기였다. 즉, 2022년 상반기에는 「2022 개정 체육과 교육과정」의 시안이 나온다는 이야기였다. 교육부의 추진 일정에 따라, 실제로 2022. 4. 22.에 「2022 개정 체육과 교육과정 시안」이 발표되었다. 학교체육 업무를 담당하는 장학사이자 학교 현장의 체육 교과 교사였던 나역시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기에, 이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글을 남기기도 했었다.


https://brunch.co.kr/@sobong3/97


교육부의 계획대로 2022년 하반기, 2022년 12월 22일에 새로운 교육과정의 총론과 교과별 각론이 모두 발표되었다. 체육과 교육과정의 경우 시안으로부터 크게 변경된 부분은 없었다. 다만, 현장의 의견을 반영하여 교과의 기본 틀인 영역 설정을 '운동, 스포츠, 움직임'에서 '운동, 스포츠, 표현'으로 영역명 중 하나만 명칭을 변경하는 정도였다. 2015개정 교육과정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보다 명확하게 규정한 내용이 많았는데, 이는 학교 현장 교사들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렴했기 때문이라고 느껴졌다. 이와 관련해서도 당시에 다음과 같은 글을 쓴 적이 있다.  


https://brunch.co.kr/@sobong3/113


시간이 흘러, 교과서 작업에 참여하여 교과서를 개발하는 경험을 하였다. 여러가지 생각을 하며 새로운 경험을 하고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교사로서 최고의 성취감을 느끼는 순간이기도 하였다. 대학에 합격하고, 교사가 되고, 대학교 강단에서 몇 학기동안 정규 수업을 담당해 보기도 하고, 원고를 요청받아 제출한 내용이 책으로 출판되기도 하고, 교사 교육에 참여하고, 장학사가 되는 등의 성취경험을 통하여 다른 사람들의 부러움도 제법 사는 삶이었다. 하지만, 내가 쓴 교과서로 학생들이 수업을 하게 되었다는 뿌듯함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이런 즐거운 경험을 몇 줄의 문장으로 정리하기는 어려운 느낌이다. 내 개인적인 경험을 다음 단락부터 '썰'로 늘어놓기 전에, 다음 그림과 같이 흐름도 형식으로 요약해 본다.


2022개정 체육 교과 교육과정이 교과서로 개발되어 학생에게 수업으로 도달하는 과정




교과서 집필진 구성


2021년 12월 경. 한 선배교사로부터 교과서 작업 참여 제의를 받았다. 교육청에 들어와 정신 없이 살다보니 잊고 있었던 분야였다. 하지만 늘 꿈꿔왔던 로망같은 일이기에 즉시 하겠다고 했다. 장학사의 일상에 교과서를 쓴다는 것이 무리는 아닐까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이런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다. 망설이면 기회가 날아갈까 뒤를 생각하지 않고 무조건 하겠다고 했다.


어? 그런데 이게 웬 일인가. 같은 날 다른 선배교사로부터 똑같은 제의를 받게 되었다. 이런 일이 하루 안에 일어나다니. 기분은 아주 좋았지만 둘 다 할 수 없었다. 상대적으로 나중에 전화가 걸려온 선배교사에게 '먼저 참여하겠다고 말씀드린 곳이 있다'고 말씀을 드렸다. 사실 먼저 제의를 했던 선배의 워딩은 '추천을 해 보겠다.' 정도였다. 최종 확정된 내용이 아니었기에 '두번 째 제의를 받은 곳도 하겠다고 말을 했어야하나...'하는 간사한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사람으로서의 도리는 아닌 것 같아 사실대로 말씀드리고 거절하였다.


2~3일 후, 전화를 줬던 선배로부터 확정이 되었다는 연락이 왔다. 드디어 교과서 저자가 되었다는 생각에 뿌듯함이 밀려왔다. 나는 어떤 영역을 집필하게 될지, 어떤 내용으로 구성해야 할지 마음껏 상상도 해봤다. 집필진을 구성하는 기준이 어떻게 되는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다만, 나에게도 현장의 교사 중 몇 명을 추천해 달라는 요청이 있었다. 최종적으로 내가 추천한 분들 중에는 함께 하게 된 교사는 없었지만, 어쨌든 나를 믿고 추천해 달라는 요청이었기에 기분 좋은 일이었다.


사실 교과서 작업이 끝나서 교과서가 세상에 나온 지금 이 순간까지도, 나에게 집필진을 구성하는 절차는 들여다 볼 수 없는 블랙박스와 같다. 이것은 출판사 입장에서도 영업 비밀 중 하나일 것이기에 내가 묻기도 어려웠고, 안다고 해도 세부적으로 이야기할 수 없을 것이다. 단지 추측만 해볼 뿐이다.


내가 추측하는 집필진 구성의 일반적인 절차는 다음과 같다. 우선, '책임 저자'를 가장 먼저 섭외한다. 다음으로, 책임저자를 중심으로 하는 집필진의 뼈대가 되는 집필진 내 핵심 그룹을 구성한다. 경험적으로 추측해보면, 전통적으로 이 핵심 그룹은 사범대학교 체육교육과 교수들로 구성되는 경향이 있는 듯하다. 이 다음부터는 여러 루트로 집필진 추천을 받는다. 이렇게 추천받은 사람들 중에서 핵심그룹 인원들과 출판사 담당자가 협의하여 저자를 확정한다. 자세하게는 모르겠지만, 일반적인 교과서 집필진 구성의 절차는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내가 참여한 출판사의 중학교 체육 교과서 저자들은 다양성을 가지고 있었다. 저경력의 참신한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는 현장 교사부터 중견 교사와 고참 교사까지, 남여 성비도 한 쪽에 치우치지 않게 적절하게 안배한 느낌이 들었다. 교감, 교장, 장학사도 있고 전국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어 특정 지역이나 특정 대학 출신이 주를 이루는 느낌도 아니었다. 아마도, 이렇게 구성하기 위한 어떤 방향성이 있지 않았을까 싶다. 다양성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집필하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들이 아주 즐거웠다. 배움이 계속되는 의미있는 경험이었다.




교과서 집필 계약 및 수입


이것 참, 정말 궁금했던 부분인데 막상 내가 교과서를 쓰게 되니 이야기하기가 참 어렵다. 계약서에 쓰여진 내용들이 있기 때문이다. 다만, 원고료가 밖에서 상상했던 것만큼 엄청나지는 않다는 정도의 이야기는 해도 괜찮을 것 같다. 단지 교과서를 쓴다는 사실만으로 큰 돈을 버는 것이 아님에 분명하다. 학교 현장에서 교과서가 치열한 경쟁을 이겨내고 사랑을 많이 받게 되면 이후에 인세 등으로 조금은 수입이 발생한다고 들었다. 사실 내 경우에는 교과서를 쓴다는 사실 자체에 큰 의미가 있었기에, 계약서를 쓸 때도 이 부분은 눈여겨보지 않았었다.


교사나 교수인 다른 저자들과는 다르게 나는 조금 특수한 상황이라 이런 부분들을 쉽게 이야기하기 어려운 측면도 있다. 실제로 내가 현장의 교사들에게 엄청난 영향력이 있는 대단한 사람은 아니다. 하지만, 교육청 관계자와 학교 현장의 교사라는 특수한 관계 때문에, 혹시라도 오해를 살 수 있는 여지가 있다. 이런 특수한 상황 때문에, 교과서 저자임에도 불구하고 내가 쓴 교과서를 선택해달라고 교사들에게 적극적으로 이야기하기가 어렵다. 출판사에서도 이런 부분을 충분히 이해해주는 듯하다. 잘은 모르겠지만, 나한테는 적극적인 홍보를 푸쉬하지는 않고 있는 듯 느껴진다. 참 미안하고 고맙다.




교과서 내용 집필


집필 과정은 말 그대로 회의의 연속이었다. 상견례 및 방향 설정을 위한 회의, 집필 영역을 배분하는 회의, 교과서의 틀을 구성하는 회의, 집필한 원고를 함께 살펴보며 서로간의 생각을 나누는 회의 등 참 많은 회의를 하였다. 전국에 흩어져 있다는 어려움으로 모든 회의에 모든 저자들이 다 참여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웬만한 회의에는 모두 직접 출판사 회의실에 모여 생각을 나누며 함께 고민을 계속했다. 자주 모일 때는 매 주마다, 학기 중 바쁠 때에도 최소한 월 1회 이상은 함께 모여 이야기를 나누었던 것 같다.


모두 자신의 생각이 있고, 자신이 하고 싶은 부분이 있고, 자신이 노력하여 작성한 원고에 대한 자존심이 있는 것이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최대한 드러내지 않고 회의에서 결정된 사항들을 따라가는 노력들이 인상적이었다. 자신이 없는 분야를 담당하게 되었을 때는 어떻게든 공부하여 만들어내는 모습들도 참 놀라웠다.


이번 교과서 작업에서 내가 주로 담당한 부분은 '스포츠' 영역의 '전략형 스포츠'였다. 그 중에서도 구체적으로 '농구', '핸드볼', '태그 럭비', '플로어볼' 이렇게 4가지 영역의 원고 작업을 집중적으로 하였다. 처음에는 '축구' 영역까지 담당하는 계획이었는데, 원고 분량을 모든 집필진이 평균적으로 적절하게 조절하는 과정에서 축구는 다른 분께서 집필하게 되었다. 그렇다. 내가 담당한 부분이 학교 현장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전통적인 팀 스포츠'였다. 부담은 컸지만, 너무나도 즐겁게 원고작업을 했었다.


내가 담당했던 부분을 집필하고 싶었던 다른 저자들도 있고, 반대로 다른 저자들이 담당한 부분 중에 평소에 내가 집팔하고 싶어했던 부분도 있었다. 이런 부분들은 함께 모여 회의를 하는 과정에서 적극적으로 의견을 제안할 기회가 있었다. 다른 저자들의 역량에도 여러 차례 감탄했었다. 그래서 큰 아쉬움이 남지는 않았다.


출판사 역시 괜히 출판사가 아니었다. 내 경우에는 나름 역사가 있는 메이저 출판사였는데, 교과서 개발 과정의 노하우에 자신감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저자 입장에서 이런 느낌을 받았기 때문에, 편안하게 믿고 따라갈 수 있었다. 이것이 출판사가 의도하고 계획한 방향이라면, 이 출판사는 나름대로 어떤 '시스템'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모든 출판사가 이러한 시스템을 가지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모든 일이 공식대로 되지도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 주 운이 좋게도 든든한 시스템 속에서 좋은 기회를 제공받았던 것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다.




나는 우당탕탕 작업에 참여했지만, 모든 과정은 준비된 시스템 속에서 계획적으로 진행되었다. 장학사의 일상에서 교과서를 쓴다는 것이, 단순하게 생각했던 것보다 더 힘든 일이라는 사실도 온 몸으로 깨달았다. 장학사 세계에서 '시간은 없는 것이 아니라, 만드는 것이다.'는 자조섞인 문장이 있다. 교과서 작업이 실제로 그랬다. 몸은 힘들었지만, 만들어낸 시간에 즐거운 생각을 하며 키보드를 두드렸다. 그렇게 나온 결과물이 바로 아래 그림과 같은 교과서다.



내 이름이 들어간 어떤 책이 출판된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누군가에게 큰 사건이다. 그 책이 그냥 책도 아니고 학교에서 학생들이 보는 교과서라면, 그리고 그 저자가 교사라면, 그 사람에게는 더 큰 의미가 있는 사건일 것이다. 이전에 내가 쓴 글이 책의 한 부분이 되어 출판되는 경험을 몇 차례 해 보기는 했지만, '내가 쓴 책'이라는 느낌보다는 '원고를 보냈었지' 정도의 느낌에 그쳤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느낌이 다르다. 마침내 내가 쓴 책이 세상에 나왔다는 느낌이 든다.


실제로 학교 현장에서 얼마나 사랑을 받게 될지는 잘 모르겠다. 기대했던 바와는 다르게, 신랄하게 비판을 받으며 선택받지 못할 수도 있을 것이다.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라도, 일단 나는 기분이 너무 좋고 뿌듯하다. 이제야 체육 교육 전문가로 인정을 받은 느낌이랄까. 아무리 많은 강의를 하고, 대학교에서 예비교사들을 대상으로 정식 수업을 해도 느끼지 못했던 뿌듯함이다. 교과서 여러 번 쓰신 분의 입장에서 이 글을 보면 우습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부끄럽지도 않다. 어린 아이가 그냥 기분이 좋을 때처럼 순수한 느낌의 뿌듯함과 기분 좋음이다. 이 교과서를 보는 교사와 학생 모두가 기분이 좋아졌으면 하는 바람, 실제로 체육 수업 시간에 스포츠를 제대로 배우고 건강한 삶을 살아가기 위한 역량을 함양하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https://22txbook.m-teacher.co.kr/book/view.mrn?id=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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