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3. 21.(토)

by 김의진

10년 전의 내 머리 속에 상상했던 일은 아니지만, 의식의 흐름대로 살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40대 후반에 벌써 교감이 되어 있었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나는 교감이 된다면 어떤 교감이 되고싶다는 고민을 오랜 시간 깊이있게 해보지 않았다. 물론, 교육청에서 장학사로 일하며 힘든 순간이 몰아칠 때면 가끔씩 '어서 빨리 교감이 되어 학교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는 했었다. 하지만, 그건 순간순간의 일이었고 전체적으로는 학교체육 정책을 다루는 일이 너무 재미있고 거기에 집중하면서 시간이 가는 줄을 몰랐다. 어느 새 시간이 다가왔고, 갑작스러운 변화를 앞두고 '내가 잘 할 수 있을까?' 반문하며 돌아봤을 뿐이었다. 초·중등교육법 제20조 제2항에 명시되어 있는 '교장을 보좌하며' 이거 하나라도 제대로 해보자라는 다짐을 하기는 했지만.


제20조(교직원의 임무)
① 교장은 교무를 총괄하고, 민원처리를 책임지며, 소속 교직원을 지도ㆍ감독하고, 학생을 교육한다.
② 교감은 교장을 보좌하여 교무를 관리하고 학생을 교육하며, 교장이 부득이한 사유로 직무를 수행할 수 없을 때에는 교장의 직무를 대행한다. 다만, 교감이 없는 학교에서는 교장이 미리 지명한 교사(수석교사를 포함한다)가 교장의 직무를 대행한다.
③ 수석교사는 교사의 교수ㆍ연구 활동을 지원하며, 학생을 교육한다.
④ 교사는 법령에서 정하는 바에 따라 학생을 교육한다.
⑤ 행정직원 등 직원은 법령에서 정하는 바에 따라 학교의 행정사무와 그 밖의 사무를 담당한다.


사람들이 교감에게 기대하는 건 무엇일까. 고등학교 교감이라는 직책에 있는 누군가가 어떤 역할을 해주기를 바라는 관점은 저마다 다를 것이다. 자신이 처한 위치나 개인사적 맥락 등 다양한 상황에 따라 기대하는 바는 천차만별일 수밖에 없다. 3주라는 시간 동안 직접 겪어보니, 교감이라는 자리가 해야할 일도 참 많고 기대하는 모습도 참 다양했다. 솔직히 그 무게가 버겁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 타이밍에 그 일을 하지 않으면 학교가 돌아가지 않으니 어떻게든 해야했다. 내가 아무리 서툴러도 티를 낼 수가 없으니, 그냥 모르면 왜 그런지 슬쩍슬쩍 나머지 공부를 하면서 따라가고 있다.


역할기대 - 특정한 집단 또는 사회에서 개인이 차지하고 있는 지위나 위치에 적합한 외모 또는 행동과 태도를 취할 것이라고 가정하는 것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 상담학사전)


우리 학교의 교장님은 나에게 어떤 기대를 하고 있을까. 만약 그 기대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모두 알 수 있다면, 교감으로서 교장님께 인정받으며 으쓱댈 수 있다. 그런데 그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캐치하는 일이 참 어렵다. 나를 통해 우리 학교의 조직문화가 개선되길 기대할 수도 있고, 학생들의 생활교육이 잘 이루어져 평화롭고 안전한 분위기에서 학생들이 행복한 학교생활을 하게 만들어주기를 바라기도 할 것이다. 고등학교 특성에 맞게 학생들의 학력 수준이 일취월장했으면 하는 기대를 하고 계실지도 모르겠다. 아마도 대부분의 교장님들은 교감이 자신의 학교 경영 철학에 부합하는 의사결정을 하면서 구성원들의 화합까지 이끌어내기를 기대할 것이다. 쉬워보이지만 참 어려운 일이다. 지난 3주간 나는 교장님의 기대에 부응해 왔는지 자신이 없다.


우리 학교의 교사들은 나에게 어떤 기대를 하고 있을까. 지난 3주간 교사들을 만나며 내가 느낀 역할기대를 대강 나열해본다. 자신의 사정을 잘 헤아려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사람, 어떤 일의 본질을 파악하여 이해하기 쉽게 설명을 해주는 사람, 지지부진한 논의를 넘어 명확한 지시와 방향 설정을 해주는 사람, 교사를 믿고 위임하며 격려하는 사람, 때로는 감추고 싶은 일을 못 본척 슬쩍 넘어가 주는 사람, 자신이 한 일에 대한 격려와 인정을 해주는 사람 등 참으로 다양한 모습을 바란다고 느꼈다. 때로는 바람직한 방향이 아니라고 해도, 그렇게 해주기를 기대한다는 느낌도 받았다. 예를 들면, 그냥 하던대로 익숙한대로 할 수 있도록, 변화를 추진하지 않기를 기대하는 모습처럼 말이다.


어쨌든 확실한 것은 교감을 동료 교사로 여기지는 않는 모습이었다. 특별히 친해지고 싶지도 않고 이야기를 길게 할 필요도 없는 직장 상사, 딱 그 정도 거리의 느낌이랄까. 가끔씩 만날 때 불편하지만 않았으면 좋겠다는 느낌을 가지고 있는 듯 보였다. 생각해보면, 나도 교사 때는 본능적으로 교감님 옆으로 다가가지 않았다. 점심 식사시간에 어쩌다가 옆 자리에 동석이라도 하게 되면 뭐가 그리 부담스러웠는지, 어떻게든 최대한 멀리 앉으려고 노력했다. 입장이 바뀌고 보니 쓸쓸한 생각도 들고, 그 시절의 내가 왜 그랬을까 부끄럽기도 하다. 그래도 적당한 거리감을 원하는 사람이 많아서 다행스럽다. 본질적으로 별 볼일 없는 나라는 사람을 모두 드러내지 않아도 된다니 얼마나 큰 축복인가.


교사 때는 보이지 않던 부분인데, 학교에는 교사가 아닌 교직원들도 많다. 지난 몇 년의 시간동안 교육청에서 일반직 공무원들, 사회 각계 각층의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아왔다. 이제는 학교에서 교사가 아닌 사람들의 모습도 보이기 시작했다. 교감으로 일을 하다보면 우리 학교의 모든 교직원들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갈 수밖에 없고, 그렇게 해야만 학교라는 기관이 잘 돌아간다. 관리자형 인간이 아닌 실무자형 인간으로 살아온 내게는 가장 어려운 일인데, 그 일을 해야만 하는 자리에 있어 부담이 크다. 그냥 조심스럽게 다가가며 인간적으로 좋은 관계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도 없다.


지금까지 말한 모든 사람들이 다 학교를 이루는 사람들이다. 추상적인 말이지만, 이들이 모두 행복했으면 한다. 학교라는 직장에서 내가 행복해지기 위해서라도 그랬으면 좋겠다. 나부터 좋은 사람이 되어 주변을 행복하게 해주는 일이 정답일 것이다. 나는 누군가에게 좋은 사람일까.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 되는 일이 가능하기는 할까. 누군가에게는 실망감을 안겨주더라도 바람직한 방향으로 더 타당하고 더 정의로운 방향으로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의지와 자신감이 있을까. 주변을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 자리도 많겠지만, 교감은 참 많은 사람들을 신경써야만 하는 자리인 듯하다. 그래서 참 어렵다. 이 일을 수 년 동안 척척 해내며 버텨온 선배님들이 대단하게 느껴진다. 신기하고 재미있는 지점은, 그래도 교감으로서의 하루하루가 즐겁고 기대된다는 사실이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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