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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의진 Apr 18. 2021

학교, 좋아하세요?

나를 돌아보게 하는 질문에 답하기

장학사님은 수업하기 싫어서 장학사 되셨어요?


  얼마 전 선배 장학사님이 한 민원인에게 들은 질문이라고 한다. 내공 백단의 선배님이셨기에 자연스럽게 넘길 수 있으셨겠지만, 초짜 장학사들이 이런 질문을 듣게 되었다면 많이 흔들렸을 것이다. 일반인이 아닌 교사들 역시 장학사를 비판적으로 보는 시각에서는 할 수 있는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이른바, 학생이 싫어서 학부모가 싫어서 수업하기 싫어서 장학사가 되기로 마음을 먹은 교사가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교육활동이라는 본연의 직무를 소흘히 하면서 장학사가 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지는 교사들(실제로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오해하는 것을 포함하여)이 존재하는 것 역시 어느 정도는 사례에 근거한 지적이었으리라 생각한다.


  믿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겠지만, 적어도 내가 아는 장학사들 중에는 그리 편협하고 부정적인 동기로 살아가고 있는 분은 거의 없다. 왜냐하면, 장학사 선발에 있어 실사와 의견수렴이라는 아주 무서운 과정이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찌되었든 저런 질문이 나온다는 것 자체가 무언가 반성과 성찰을 하게 하는 것은 맞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나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 본다.


나는 학교를 교실을 학생을 좋아하는 교사였나?




네. 정말 좋아합니다.


나는 정말 학교를 좋아했다. 진짜다. (출처: 구글 이미지 검색)

 나는 아주 단순한 사람이다. 학교가 좋아서,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학교에서 학생들과 함께 운동하는 것이 좋아서 교사가 되고 싶었다. 좋아서 하고 싶었던 직업을 성취했으니 당연히 즐거운 삶이었다. 물론,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들도 당연히 있었지만(나 역시 누군가를 힘들게 한 적이 많았을 것이다.), 출근하는 길이 싫었던 적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학부모와의 관계에서, 동료교사와의 관계에서, 학생과의 관계에서 서툴렀기에 크고 작은 갈등이 없을 수는 없었다. 경험과 통찰력이 부족했고, 무엇보다 여유가 없고 조급한 마음에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별 것도 아닌 문제들로 큰 스트레스를 받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일 아침 학교가는 길은 즐거웠다.




학교가는 길 (*작곡: 김광민)


https://youtu.be/FoQfjyYn6NY

학교 가는 길( *출처: https://youtu.be/FoQfjyYn6NY )


 음악의 제목을 모르고 들어도 학교가는 길이 저절로 떠오르는 음악이다. 음악의 힘도 정말 대단하고, 이걸 음악으로 표현해낸다는 것이 더욱 놀랍다. 모든 학생이 즐거운 학교가는 길이 될 수 있도록 일을 열심히 해야겠다.




나는 왜 학교를 좋아했을까.


 학생이 학교 가는 길을 즐거워하는 것은 누구나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다. 하지만, 교사의 학교 가는 길은 직장인의 출근길을 의미한다. 직장인의 출근길은 힘들기마련인데, 어떻게 즐거울 수가 있었을까. 나에게 학교 가는 길은 출근하는 길이 아니라 학창시절 등교길과 같은 의미로 다가왔던 것 같다.


 오늘은 또 어떤 일이 펼쳐질까 하루하루 똑같은 것 같으면서도 다른 학교의 특성은 언제나 나를 설레이게 했다. 돌아보니, 교사였지만 학생처럼 학교를 다녔던 것이다. 몸만 커지고 나이만 먹었지, 정신연령이 딱 중학생에 멈추어 있어 그랬나보다하는 생각도 든다. 학창시절 선생님에 교감, 교장을 대입하고, 동급생 친구에 동료교사를, 후배 학생들에 가르치는 학생들을 대입하여 학창시절의 세계관을 그대로 옮겨서 살아왔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아이들과 함께 나누라고 국가가 나에게 위임한 시간, ‘수업 시간’은 내가 학교를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였다. 내가 좋아하는 체육을 싫어하는 아이들을 만났을 때, 상처받을 때도 분명 있었다. 하지만, 좋은 것을 함께 나누고 싶은 마음이 더 컸기에 수업은 항상 동기부여가 되는 일이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부족한 것을 보완하려 했고, 학습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매순간 짱구를 굴렸다. 모르면 전문가에게 물어서라도 알고 싶었고, 새롭게 알게 된 것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주변에 알려주고 싶었다. 좋아하는 일을 하기에 가능했으리라 싶다.


학생들이 생각하는 학교의 권력 피라미드. 믿거나 말거나 애들은 남자 체육 교사를 높은 서열에 둔다. 마치 ‘야생의 세계’ 같기도 하다.  *출처-학교의 풍경(조영선, 2011)

 사춘기 남학생들에게 체육 교사라는 존재가 조금은 특수하게 여겨지기에 다른 교과 교사들보다 유리한 점도 분명 있었을 것이다. 특히 일반적인 교실 수업에서 교사들을 힘들게 하는 아이들 중에 체육 수업 시간에는 아주 훌륭한 학생들이 있다. 이른바 노는 아이들, 일진들도 체육 교사에게는 살갑게 대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부분도 분명 영향을 주었으리라 생각한다.


 생각해보면 사춘기 남학생들 사이에서 운동을 잘 하는 학생들은, 본인이 원하지 않아도 ‘노는 아이들’이 먼저 다가와서 친해지고 싶어하는 경우가 많다. 수십년 전 내 학창시절을 돌아봐도, 내가 친해질 이유가 하나도 없는 아이들과 내가 알고 지냈었고 그들이 나를 괴롭게 했던 기억도 별로 없다. 운동을 잘 하는 사람에 대한 사춘기 학생들의 호감도는 그만큼 높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덕분에 학교생활 즐겁고 편안하게 했던 것이다. 운동을 잘 한 것이 정말 다행이고, 체육을 전공하고 체육 교사가 되어 학교에 있었던 것이 감사한 일이다.




예측할 수 없고, 다양성이 살아있어 즐거운 학교


 해당하는 학생들에게는 미안한 이야기지만, 고백할 것이 있다. 내가 제일 ‘고마워하는 학생’은 이른바 ‘학교에 왔다가 그냥 가는 학생’이었다. 분명 존재하며, 성실하고 묵묵하게 자신의 역할을 잘 하는 학생이 바로 이런 학생들이다. 교사의 입장에서 주의를 기울이지 않아도 너무나 훌륭하게 학교생활을 하기에 특별한 지도가 필요하지 않다. 교사로서 너를 믿고 지지하고 있다는 관심과 대화만으로도 래포 형성이 가능하며 공감과 유대감을 이루는 바로 그런 학생 말이다.


교실 내 학생 배치도. 그럴 듯 하다. (*출처- https://samstory.coolschool.co.kr/zone/story/tschool/streams/27815 )


 하지만, 학교에는 이런 학생만 있는 것이 아니다. 위의 그림에서 보듯이 다양한 학생들이 어우러져 살아가는 곳이 바로 학교다. 아무리 훌륭한 학생일지라도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배우는 곳이기도 하고, 다양한 부조리를 접할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학습하는 사회화 기관이기도 하다. 학생의 입장에서나 교사의 입장에서나 약간의 긴장감과 설레임을 바탕으로 하루를 살아가는 곳이 바로 학교인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학생의 수는 줄어들고, 동시에 왔다가 그냥 가는 학생들 역시 점점 줄어들고 있다. 즐거운 곳이 아닌 힘겨워하는 학생들 역시 더 많아지는 느낌이다. 아이는 어른의 거울이라는 말을 입증이라도 하듯이, 더 많은 학부모들이 힘들다고 호소하는 것 같은 느낌도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교는 누구에게나 설레임을 주는 단어가 아닐까 생각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학교’란 단어는 기대감을 준다. 물론, 누군가는 생활인의 자세로 직장인의 자세로 자신의 일을 해야 하기에 어쩔 수 없이 학교에 오고 있을지 모른다. 다행스럽게도 다른 직종에 비하면 진입장벽이 높고, 긴 시간의 준비과정이 필요하기에 가르치는 일에 적합하지 않은 사람이 교사가 되는 일은 드문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학교에 가는 일이 즐겁지 않은 사람들 역시 분명히 존재한다. 내가 좋아하는 학교를 모두가 좋아하게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갈 길이 멀다. 그래도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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