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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나 Jan 06. 2024

안 돼요돼요돼요돼요돼요

응, 안돼


웃긴 이야기 중에 ‘동굴의 메아리’가 있다. 남자와 여자가 동굴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남자가 므흣하게 다가가자 여자가 “안 돼요”라고 소리쳤다. 여자의 말은 동굴 깊이 퍼져 메아리가 되었다.

“안! 돼요돼요돼요돼요~!”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부탁을 한다. 내가 원하는 것이나 지금 나에게 필요한 것을 누군가에게 요구한다. 식탁에서 맞은편에 앉은 사람에게 소금을 건네 달라고 할 수 있다. 빨래 건조기의 종료 음이 들렸을 때 가족 중 누군가에 개켜달라고 부탁할 수 있다. 양말을 뒤집어 벗어 놓는 가족이 있다면 똑바로 벗어달라고 요구하기도 한다.     

 

옷을 사러 가면 나에게 맞는 사이즈를 갖다 달라고 부탁하고, 입어봐도 되냐고 물어본다. 친구에게 책이나 돈을 빌려달라고 할 때도 있고, 가야 하는 곳에 동행을 해 달라고 부탁하기도 한다. 


외식을 할 때에는 으레 식당의 직원에게 물이나 반찬을 더 달라고 청한다. 추가 요청을 하는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면 각자의 색깔이 있다.      


-여기, 반찬 좀 더 주세요~

-이모~반찬 좀 더 주시면 안 돼요?

-저희, 반찬 좀 더 주시겠어요?     


스스로 어떻게 부탁의 말을 하는지 생각해 보면 평소의 언어 습관을 파악할 수 있다. 나 같은 경우에는 세 번째의 말을 주로 사용한다.      


주로 비난과 비판의 말을 많이 듣고 자란 나는 가급적 부정의 표현은 안 하려고 한다. 그 말이 꼭 부정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지 않더라도 가능하다면 긍정이나 가능성의 표현을 쓰려고 한다. 더불어 '공손함'을 좋아하는 편이다.      


예전에 있었던 일이다. 동네사람들과 놀이터에서 놀다가 나의 집에서 식사를 하기로 하고 아이들을 동반해 집으로 향했다. 나의 아이는 자기 집이니까 의기양양해서 직접 열쇠로 문을 열겠다고 나섰다. (아, 거기는 말레이시아라서 도어록이 없었다) 아직 네 살이 채 안 되었으니 손놀림이 날렵하지 못했다. 한 여성이 화장실이 급하다고 하며 "좀 빨리 열면 안되겠니?"라고 한 적이 있다. 짜증을 내거나 거칠게 말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 말이 내 귓바퀴에 달라붙었다.


내가 원래 그랬는지, 무슨 책을 보고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그 일과 상관없이 아이에게 특별히 신경 써서 한 말이 있다.   

   

“~하면 안 돼?” 


대신에 


“~해줄 수 있어?” 내지는 “~하자”, “~할 수 있어?”라고 했던 것이다.  

    

아마 어떤 육아 서적을 보고 시작했지 싶다. 정서적으로 폭력적인 언어 환경에서 자란 내가 혼자 깨치지는 못했을 것이다. 나중에 읽게 된 NVC 비폭력 대화에도 예문으로 등장하는 표현이다.      



구체적으로 바라는 행동을 제시하며
“(당신은) ~해 주겠어요?”     



내가 의도적으로 애쓴 덕분에 나의 아이는 허락을 구하거나 부탁을 할 때 “엄마 ~하면 안 돼?” 가 아닌 “엄마 ~할 수 있어?”라고 묻는다. 영어에서도 Why don't you 가 부정적인 뉘앙스로 쓰이지 않는다. 같은 맥락으로 한국어의 “~하면 안 돼?” 역시 부정적인 표현이라고 할 수는 없다. 완곡한 표현 중 하나라고 이해하고 있다. 


나는 요즘 ‘~면 안 돼?’라는 말에 꽂혔다. 주위에서 제안을 하거나 부탁을 하는 사람들의 말을 잘 들어보면  "~하면 안 돼? “를 많이 사용한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내 방송이나 공식적인 제안의 상황에서는 안 되겠냐는 표현을 쓰지 않는다.      


000 고객님께서는 안내 데스크로 와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승객 여러분, 질서를 지켜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국민 여러분, 저를 믿어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마지막은 특히나 어딘가 비굴하고 의뭉스럽다. 믿어주면 발등 찍힐 거 같은 호소이다.      



그리스 철학자 섹스투스 엠피리쿠스는 “가능하지만 가능하지 않다.”라고 했다. 그는 비독단의 믿음을 주장했다. 내가 보고 있는 것과 다른 사람이 보는 것이 다르게 보일지라도 적어도 그것이 나에게는 그렇게 보였다는 뜻이다.           


'~면 안돼?'라는 말이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다. 나에게는 그 말이 안 된다는 대답을 가정한 소극적인 저자세의 제안이나 부탁으로 들린다. 


은연중에 부정의 표현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일을 잘못했을 때 '망했다'라고 하거나 실수했을 때 '바보 아냐?'라고 문득 내뱉는다. 긍정의 표현으로 바꿔서 '망했다'는 '다시 해야겠다',  '바보 아냐?'는 '다음부터는 조심하자'로 말할 수 있다. 


"~면 안돼?"라는 말을 들으면 요즘 유행하는 '응, 아니'처럼 "응, 안돼"라고 응수하고 싶어 지는 장난기가 발동한다. ~하면 안 되겠냐는 말이 안 될 수도 있다는 가정의 울타리를 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적어도 나에게는 '~할 수 있냐'는 열린 가능성의 표현이 더 살갑게 다가온다. 




[이와 관련된 글을 찾아보려고 다방면으로 검색을 해 보았으나 비슷한 글도 찾을 수가 없었다. 아마 '~면 안돼?'라는 말에 이질감을 느끼는 건 나 하나뿐인가보다......동굴의 여자가 한 "안 돼요"의 메아리는 결국 해도 '돼요'였기 때문일까. ]





표지그림 : The Proposal, 1869 - John Pett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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