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나 9시간전

나의 지지 않으려는 마음이 아들에게는 양보였다

비행기에서 

줄 서기를 정말 잘하는 나라 중에 일본이 있다. 


옛날에 뉴스에서 보니 지진이 나도 귀가하려는 도쿄 역의 버스 정류장의 모습은 질서 정연하기 그지없다. 

모두가 급한 마음에 한달음에 가족이 있는 곳으로 달려가고 싶을 텐데 의연하게 줄을 서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선진문화 시민 의식이란 저런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서울에서 줄곧 학창 시절을 보내다가 스물두 살 무렵 수원으로 이사를 갔다. 

친구들이 모두 서울에 있으니 약속 장소도 늘 서울의 어딘가였다. 때문에 나는 집 앞에서 광역버스를 타고 강남역으로 사당으로 이동해야 했다. 


당시에만 해도 광역버스를 타기 위해 줄을 서는 문화는 없었다. 

강남역에 타려고 하는 버스가 도착하면 사람들이 와아~~ 하면서 몰려가 어떻게든 먼저 타려는 쟁탈전이 벌어졌다. 


그러던 것이 언제부턴가 버스 번호판이 정류장에 서고, 바닥에 줄을 그려가며 사람들을 줄 세웠다. 

덕분에 공정하게 온 순서대로 버스에 탑승을 할 수 있었고 내 기억으로는 새치기도 전혀 없었다. 


질서 정연하게 줄을 서고 새치기를 안 하는 것이 시민 의식을 대변한다고 할 수도 있겠다. 


어떤 문화권에서는 새치기가 만연한 곳이 있다. 해외 공항에서 시큐리티에 줄을 서거나 복잡한 에스컬레이터를 줄 서서 타려고 할 때 줄을 서는 어떤 특정한 (언급하지 않겠음) 사람들을 많이 목격했다. 


그들이 노리는 것은 주로 어린아이와 동행하는 엄마 또는 젊은 여자들이다. 그들은 주로 컴플레인을 하지 않기 때문인 거 같다. 


누구든 새치기당하는 것을 좋아할까 싶다. 

어딘가에 줄을 애매하게 섰을 때 누가 새치기라도 할까 싶으면 바짝 긴장하고 그를 뒤로 보내게 마련이다. 


이번에 비행기에서 있었던 일이다. 

양쪽으로 마주 보고 있는 화장실에 두 줄이 생겼다. 


아래 번호 좌석 쪽으로 한 줄, 그리고 뒷번호 좌석 쪽으로 한 줄이었다. 

나와 아들은 앞 쪽 좌석으로 이어진 줄에 섰다. 


두 줄이 번갈아가며 한 명씩 화장실 문이 열리는 대로 공평하게 들어갔다. 

이제 아들의 차례가 되었는데 반대쪽 줄에 나이가 든 중년에서 노년으로 넘어가는 여성이 서 있었다. 

국적을 밝히진 않겠지만 한국 사람은 아니었으며 옷차림이나 발의 움직임을 보아 문이 열리는 순간 자신이 먼저 들어가겠다는 기세가 등등했다. 


나는 긴장했다. 

절대 순서를 빼앗기지 않으리라 다짐을 하고 문이 열리면 아들을 밀어 넣으려고 했다. 


긴장의 초침이 째깍째깍 지나가고 드디어 오른쪽 화장실의 문이 열렸다. 

안에서 남성이 나오자 역시 나의 예상대로 반대편 중년 여성이 문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나는 질세라 아들의 등을 밀며 "네가 먼저야!"라고 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아들이 꿈쩍을 안 하고 버틴다.


결국 중년 여성은 그 틈을 타서 먼저 화장실 안으로 유유히 들어가 버렸다. 

뭔가 약이 바짝 오른 나는 아들에게 네 차례인데 왜 안 들어갔냐고 했다. 


아들이 말했다. 




"엄마, 여자가 먼저야. 그리고 저 사람은 할머니잖아!!" 




순간 나는 말문이 막혔다. 

13살 밖에 안 된 아들이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여자를 배려하고 노약자를 우선한다는 마인드를 대체 어디에서 배운 걸까? 


나의 지지 않겠다는 마음이 아들에게는 양보가 되는 순간이었다. 


어차피 고마워하지도 않을 사람에게 무슨 배려를 하냐고 말하고 싶었지만 입을 뗐다가 그냥 꿀꺽 삼켜버렸다. 그리고 자리로 돌아와서 아들의 어깨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아들 남자가 다 됐네, 멋지다."




 


표지그림 : 캐나다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매거진의 이전글 어느 기쁜 날의 자긍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