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서문이 될 뻔한 엄혹(嚴酷) 버전과 온기 버전, 실제 전시 서문
학예사가 된 후 한 달 만에 나의 전시(?)를 열어야 했다. 말이 나의 전시이지 이미 작년에 기획되어 묵히고 묵혀진. '대'선배 학예사 그녀가 전시 서문을 써 내라는 명령에 몇 개 버전으로 써주었고, 이건 이래서 안 돼, 저건 저래서 안 돼 하며, 나중에는 내 글 이것 저것을 잘라다가 자기가 기획글을 써 버린.
"밑줄이 시옷이지?(밋줄)"라고 한 없이 약한 모습을 보이던 그녀에게 괜한 오기가 생겨, 그리고 학예사로서 첫 글이기에, 버리고 싶지 않아 여기에 건다. 더하여 실제로 전시에 걸린 서문도 또한 건다.
어떤 사람은, 지금은 시를 잊은 시대라고, 또 시를 사랑하는 법을 아예 배워 보지도 못한 시대라고 이야기 했습니다.
거기에, 시대는 지금 더욱 엄혹(嚴酷)합니다. 지극히 건조하고 아무 맛도, 아무 색도 발견하기 어렵습니다. 그믐날 밤, 바다 위를 끝 간 데 없이 덮어버린 어둠에 덩그러니 던져진 듯,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렵습니다.
지금, 시와 아름다움과 낭만과 사랑은 요원(遙遠)합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저, 시대의 어둠을 살라먹을 것은 여전히 시와 아름다움과 낭만과 사랑입니다.
여기, 열아홉 편의 시를 소개합니다. 열아홉 시인들이 그들의 시를 독자들을 위해, 누구는 단숨에, 누구는 한땀 한땀, 써 내었습니다. 그들의 온기가 한 획, 한 획, 전해집니다. 그들이 전하는 아름다움과 낭만과 사랑은 어둠과 건조함과 색 없음과 맛 없음을 걷어냅니다.
쉴 새 없이 너불대는 영상과 차갑게 인쇄된 글자들에서 살짝 벗어나, 열아홉 시인들이 전하는 위로와 아름다움과 사랑을 이번 기획 전시에서 한껏 느껴보시기를 바랍니다. 꾹꾹 눌러 쓴 그들의 손글씨가 여러분 가슴속에 감동으로 다가올 것으로 기대합니다.
2025년 2월.
친필 원고를 하나 하나 뒤적여봅니다. 누구는 단숨에 스윽스윽 써 내린 것도 같고, 누구는 한땀 한땀 수놓은 듯도 합니다. 그들의 온기가 한획, 한획 전달됩니다.
또 다른 날에 시인들의 손글씨를 하나 하나 톺아봅니다. 가만 보니 어느 시는 드라마에서 주인공이 읊었던 것 같고, 어느 시는 지하철 지나는 유리문에 고즈넉하게 혼자 서 있던 걸 본 것도 같고, 또 어느 시는 오래 전 국어 시험지에서 ‘이 시에서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하고 여러 사람을 곤란하게 만들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이제와 생각해보니, 시는 언제나 우리 곁에 있었던 것 같은데 애써 모른 척 한 것 같습니다. 시를 해석해 내야한다는 압박감 때문에 그랬는지, 시란 것을 너무 경외시 해서 그랬는지, 아니면 나는 시와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서 그랬는지 언제나 곁에 있었던 시를 애써 모른척 했습니다.
이제는 찬찬히 시를 읽어봅니다. 시를 해석하려 하지 않고, 시를 경외하지도 않고, 또한 나를 너무 낮추어보지 않고 찬찬히 시를 읽어봅니다. 시와 나 사이의 강고한 장벽이 점차 희미해집니다.
오늘 여기, 열아홉 편의 시를 소개합니다. 열아홉 시인들이 그들의 시를 독자들을 위해, 누구는 단숨에, 누구는 한땀 한땀, 써 내었습니다. 그들이 전하는 아름다움과 낭만과 사랑이 장막을 걷고 독자들에게 다가섭니다.
쉴 새 없이 너불대는 영상과 차갑게 인쇄된 글자들에서 살짝 벗어나, 열아홉 시인들이 전하는 위로와 아름다움과 사랑을 이번 기획 전시에서 한껏 느껴보시기를 바랍니다. 꾹꾹 눌러 쓴 그들의 손글씨가 여러분 가슴속에 감동으로 다가올 것으로 기대합니다.
2025년 2월.
<김순이 시인(제주문학관 명예관장)이 쓴 실제 서문>
시가 그리운 그대에게
-김순이-
시는 그대에게 무엇입니까?
이런 막연한 질문을 들이대며
가슴을 턱 막히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
시가 그리운 그대에게
여기
키를 낮추고 독자와 눈맞춤 하는
독자를 사랑한 시인들의 수줍은 친필을 보입니다.
몰명진 손글씨를 조곤조곤 따라가다 보면
거기
시인의 속울음이 있습니다.
그대의 눈물을 말없이 받아 안는
시인의 가슴이 있습니다.
나 그만 시를 사랑하고 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