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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싹 속았수다>의 흥행을 제주도 공무원답지 않게 보기

황금알을 낳는 닭을 잡지 않기를 바라며

by 제주지앵

생각건대, 레거시 미디어의 내용은 우리의 욕망 또는 의지들이 외재화(outtering)되고 발화된(uttering) 형태라고 할 수 있다. 즉, 미디어는 현실에서 하기는 힘든, 결핍된 욕망을 보여주거나 대신해 주어서 대중들을 대리만족 시켜준다. 한때 어떤 프로그램들이 유행했는지, 그 당시 우리는 무엇을 원했는지 가만히 생각해 보면 충분히 그 둘 간의 상관관계를 짐작해 볼 수 있다.

얼마 전까지는 일상에 치여 밥 한 끼 해 먹는 것조차 잊고 사는 우리를 위해, 세 끼를 대신 ‘해 먹어주는’ 프로그램들이 유행했었다. 도전과 오디션의 형태로 형식은 변했지만, 요즈음에도 ‘밥을 맛있게 제대로 차려서 먹는다.’라는 프로그램의 대명제는 변하지 않고 성행하고 있다. 즉, ‘잘 먹고’ 살고 싶은 욕망이나 ‘잘 먹지 못하고 사는’ 결핍을 미디어가 반증해 주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대중은 환호하고 만족한다.

한때 제주의 ‘모습’이 나오지 않은 채널을 찾아보기 힘들었던 때가 있었다. 말 그대로 핫플레이스였다. 미디어에서는 제주의 아름다운 ‘모습’과 제주의 평화로운 ‘고요함’으로 도심 속 일상에 ‘지치고, 떠나고 싶은’ 욕망들과 삶의 ‘여유로움’이 결핍된 뭇사람들을 위로한다면서 제주를 - 실제로는 제주의 겉모습을 - 마구 소비했다. 거기에 도민들도, 도정도 편승했다. 공유재를 누구나 죄책감 없이 과잉 소비하듯 제주는 소비되었다. 그 화려한 소비에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제주는 관광객 폭발에 환호했다. 한참이 지나고 겉모습으로 채울 욕망들은 대체로 채워졌고, 미디어는 또 다른 곳으로 눈을 돌려 더 이상 소비할 것 없는 제주의 ‘모습’을 방치했다.


어느 식사 자리에서 장안의 화제작이었던 <폭싹 속았수다>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주로, 다시 돌아온 미디어의 관심을 발판으로 제주 관광에 청신호가 다시 켜지면 좋겠다는 내용이었다. 그 말인즉슨, 기존처럼 제주를 다시 소비할 기회가 왔으니, 물 들어올 때 노 저어야 한다는 것으로 이해했고, 나는 그러나 이번 현상은 다른 시각으로 봐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나는 <폭싹 속았수다>나 그 이전의 <웰컴투 삼달리>, <우리들의 블루스>와 같은 작품들에 대중들이 연이어 환호하는 것은 일상에 ‘지치고’, 대중 속에서 ‘외롭고’, ‘슬프고’, 가족과 친구가 ‘그리운’ 지금 사람들의 결핍을 제주가 가지고 있는 공동체와 연대의 모습, 제주만이 가지고 있는 남모를 애환, 제주 사람들의 평범한 일상에서 치유받고 있는 것이라고 보았다.

이 작품들이 그리고 있는 매력적인 우리의 본질은 무엇인가? 무엇이 저들을, 그리고 우리를 감동하게 하고 눈물짓게 하며 멍든 가슴을 치유하는가? 우리는 한 번쯤 이 질문을 곱씹어볼 만하다. ‘하늘이 베풀었다’라는 천혜(天惠)의 자연을 제주는 가지고 있지만 그것 말고, 좀 더 제주가 가지는, 뭐랄까, ‘배지근한’, ‘뭉근한’ 그런 것이 없을까? 아마도 아직은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그런 것이 앞으로 제주의 가치, 관광을 선도할 무형의 자산이 될 것이다. 단순히 관광객 몇 명이 드라마 덕분에 더 왔고, 어느 곳에서 촬영을 했고, 주인공 누가 어느 오션뷰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브런치를 먹었네 하는 것을 추수(追隨)하는 것이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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