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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주지앵 Feb 15. 2024

나도 번쩍거리는 물안경을 쓰고 싶다.

수영을 좀 더 잘하면 수영장 살 기세다.

한 달이 지나 두 달을 채워간다. 털과의 심적 갈등을 겪었던 첫날, 어색한 첫 만남을 가진 초보반 수영 강습생들은 선생님의 말씀에 집중했다. 선생님은 “수영을 좀 배워보신 분?”이라고 물으셨고, 15명 정도 되는 사람들 모두 손을 들지 않았다. ‘역시 새벽 초보반이로군.’ 속으로 나는 생각했고, 나는 정말 순수한 청년이었던 것이었다. 또다시 물으시기를, ”물이 무서우신 분 계세요? “ 나는 손을 들지 않았지만, 몇몇 분들이 솔직하게 손을 들었다. 나도 솔직한 것이었다. 지금으로부터 30년 정도 전에 집 앞 청하 목욕탕에서 친구들과 동생과 냉탕에 뛰어들어 잠수하며 놀았었으니, 난 물을 무서워하지 않았다. 지금도 안 무서워할 것이다. 그래서 안 들었다, 손을. 어쩌다 보니 첫 수영 강습에 첫 입수에 첫 번째 자리에 서게 되었고, 보기 좋게 나는 물을 무서워한다는 것을 최소한 15명의 강습생 앞에서 드러냈다. 새삼 깨달은 것이다. 난 물을 무서워하고 있었던 것이다.


숨을 한껏 들이마시고 얼굴을 물에 묻는 순간! 아차 싶었다. 아, 이게 아닌데? 30년 전보다 물속은 답답했다. 허우적거리는 나를 한참 쳐다보다가 ‘건져’ 올린 선생님은 피식 웃으면서 아까 왜 손 안 들었냐고 물었고, 난 물을 무서워하는 줄 지금 알았습니다라고 컥컥거리면서 엄청나게 겸손하게 인정해 버렸다. 첫 타자라서 뒤에 14명의 초보자들이 날 바라보고 있었는데, 내심 물이 이렇게 무서운 것이다라고 본을 보였다고 생각하고 그들을 바라봤지만, 3~4명만 빼고는 다 웃고 있더라. 역시 말만 초급반이었지, 진짜 초급은 몇 명 없는 것이었다. 사실 제목에 속은 것이 40년 인생 동안 한 두 번이었겠나 싶었지만, 순진하게 다시 그 제목을 믿어버린 내가 참… 그 길로 나는 맨 뒷자리로 밀려났다(사실 내가 앞에 서고 싶어서 선 건 아니니까 밀려났다는 표현이 좀 억울하지만…).


수평 뜨기, 발차기, 킥판 잡고 발차기, 음파 하면서 킥판 잡고 25미터 가기, 오른쪽으로 사이드킥, 팔 돌리기, 손 뻗고 물속 걸어가면서 음파 호흡 해보기, 여섯 번 킥에 한 번 팔 돌리기 하면서 자유형 등등. 한 달 만에 자유형 교육 내용 교수-학습 완료! 그런데 도대체 물속에는 30년 전에 들어가 보고 이제 처음 수영 배우는 사람에게, 즉, 초보에게 한 달 안에 이걸 다 하는 게 맞는 건가? 할 수 있는 건가?


중간고사 결과, 과락. 꼴찌에서 세 번째. 진짜 초보자 중 2등. 중간 결과가 나오자 이제 초보들은 초보들끼리 즐거워진다. 초보들의 마음은 초보들이 아는 것이다. 더 드러낼 실력도, 더 숨길 실력도 없다. 이제 서로 말도 편히 하고, 말만 초보자들이 우리 앞에서 출발할 때, “저게 초보 맞아?” 하면서 함께 분노했다. 우린 초보라며 연대감을 한창 쌓고 있을 무렵, 점점 이탈자가 생길 모양새다. 그게 나라면 좋겠는데,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이 현실. (강습생 중에서도) 우리 초보 여성 회원 한 분이 배영으로 치고 나간다. 심지어 선생님께 “오, 잘하는데?”라는 엄청난 칭찬도 들으면서 자유형은 아니더라도 배영으로 치고 나간다. 정말로 꽤나 하는 모양새다. 뭐라도 하나 잘하니 참 좋겠다 생각하는 찰나, 내심 나의 위안이었던, 우리 초보 젊은 남성 친구가 안 나온다. 배영 시작하면서부터, 선생님의 “우리 이제 자유형도 꽤나 하죠?” 하는 말씀 이후부터 슬슬 안 나오기 시작하더니, 이제 아예 안 나온다. 이제 마지노선이다. 나와 나보다 한창 형님 한 분, 둘 남았다.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인데,  왜 그런지, 점점 소품에 눈이 간다. 화려한 것들. 번쩍거리는 것들. 그리고 메이커가 크게 쓰여있는 것들에 눈이 간다. 아무래도 개강하기 전에 강의 준비를 먼저 하지 않고, 쇼핑을 먼저 하던 와이프와 와이프 선배(내 선배이기도 한)와 같은 마음인가 보다. 수영장 1층 아레나 소품샵에 계속 눈이 간다. 남들한테 내 눈은 안 보이는 그런 물안경이 난 꼭 쓰고 싶은 것이다. 그런 물안경은 멀리서 봐도 번쩍거린다. 며칠 전 간신히 머리를 쳐들며 호흡을 하게 되었던 그날, 아주 신나서 아기 아침 준비하는 와이프에게 눈치 없이, “이제 숨 좀 쉬니 더 잘하려면 물안경이 좀 필요할 거 같아. 대정에 아레나 도수 물안경 판대.”라고 수영 가방 내려놓기 무섭게 이야기했더니, “그래, 사, 사, 수영복도 좀 화려한 거로 사. 실력이 없으면 우선 옷이라도 잘 입어야지.”라며 역성을 들어준다. 멍석 깔아주는 건 좋은데, 실력 없으면이란 말에 왠지 씁쓸해져서 “그래, 뭐, 다들 하는 호흡, 그게 뭐 자랑이라고 뭘 또 사냐.” 하며 제풀에 꺾여 버렸다. ’그리고 난 눈이 나빠서 도수를 꼭 넣은 물안경을 사야 하니, 예쁜 것도 못 산다. 아레나 도수 물안경 파는 곳을 알아놨으니 나중에 사면되지 뭐.’ 속으로 생각하면서, 꼭 아레나로, 오리발이랑 캐릭터 그려져 있는 수모도 같이 사야겠다고 다짐한다. 정말로, 머리를 들지 않고 호흡하면 대정에 직접 가서 꼭 사야겠다. 장사 안 되어서 그 가게 문 닫으면 안 되니 꼭 직접 가서 산다.


자유형 50M 쉬지 않고 하면 수영장 살 기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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