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제주지앵 Feb 08. 2024

프라닭?

수영을 시작하고 건강한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프라닭?

와이프가 툭 하고 던졌다. 나는 모른 체하고서 덥석 받으면 되는 것일 뿐 어려운 건 없다. 아니, 어려운 건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어렵다.

과체중 또는 경도 비만인 내가 수영을 해서 살을 빼야겠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고, 살을 빼고서 멋진 몸매로 수영을 배워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을 봤을 때, 나는 수영을 힘든 운동보다는 물놀이 가서 우아하게 물살을 헤치는 정도로 생각했던 것 같다. 지금도 사실은 굉장한 체력을 요하고 체력적으로 힘들고 그렇지는 않다. 다만 숨을 쉬기가 어려워 힘든 것뿐. 그런데 수영을 한 지 1개월 정도가 지났는데 체중이 줄었다.


생각건대, 내 수영 수준을 보았을 때, 과격한 운동량이라든지 수영이란 운동 자체가 칼로리 소모가 많아서 그런 건 아닌 거 같고, 다만, 새벽에 일어나려면 저녁때 일찍 자야 하고, 일찍 자더라도 술을 마시고 잔다거나 하면(야식에 당연히 술이 따라온다. 야식은 그냥 기본 베이스) 당연히 새벽 기상이 어려우니 술을 평일에는 거의 마시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까지 쌓아 온 나의 술살이 좀 빠지는 거 아닌가 싶다. 1년 내내 거의 매일 맥주 두 캔 정도는 섭취하고 잤으니, 이 정도 몸을 유지하고 있는 것도 솔직히 감사해야 한다고 생각은 한다. 아무튼 그 술과 야식 살이 빠지는 것 같다. 수영을 시작하고 수영보다는 수영으로 인한 부차적인 생활이 나를 건강한 중년 남성으로 이끌고 있다는 것.


그런데 이게, 점점 새벽 기상이 일상화되고, 수영도 뭐 좀 재미있어지고, 할 만하다고 생각하기 시작하니, 인간이 좀 느슨해지기 시작하는 느낌이다. 흡사 다이어트 한약 환을 먹을 때, 처음에는 의지에 불타고 긴장도 되고 혹시나 술을 마시면 잘못되는 것 아닌가 하는 걱정에 자제하던 야식과 술을, 약에 적응이 좀 되고, 몸도 좀 가벼워진다 싶어 지니 그 찰나에 다이어트 약이 소화제처럼 느껴져 버려서 약 먹기 전보다 더 먹기 시작하기 직전과 같은 느낌이다. 점점 낌새가 보이기 시작한다. 이틀 전부터 출출하다는 핑계로 작업하다가 한 캔씩 마셨더니, 오늘도 이 시간에 슬슬 삘이 오기 시작한다.


그러던 와중에 와이프가 ‘프라닭?’ 하고 툭 던진다. 배부른 거 싫어하고, 야식 먹는 거 별로 안 좋아하고, 평소에 정말로 먹고 싶은 메뉴가 거의 없고, 몇 숟가락 먹지도 않았는데 배부르다고 하고, 짜파게티를 둘이서 먹는데 두 개만 끓인다고 하는, 그냥 말 그대로 살 안 찌는 그런 스타일인 와이프가 ‘프라닭?’ 하고 툭 던진 거다. 평소에 이런 제안을 받으면 나는 무조건 받는다. 잘 먹는 내가 생각하기에 와이프를 좀 멕여야 한다는 강박도 있고, 그런 날이 거의 드물기 때문에 배가 부르더라도 무조건 응한다. 그런데 오늘은 좀 저어된다. 심지어 저녁도 안 먹은 와이프의 제안인데도.


더스트 백에 담겨 배달된 프라닭 취퀸. 요즘 우리의 최애 메뉴 씬 프라이드! 다 와이프가 시킨 것이다. 나는 먹기 싫은데.


프라닭은 꼭 더스트 백에 넣어서 치킨을 보내준다. 참 열성이다. 와이프를 위해서 희생을 했다. 육아 휴직을 하고서 있는 나를 물심양면으로 도와주는 와이프를 위해 이 정도는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최대한 와이프의 입맛이 돌게끔 맛있게 먹어줬다(먹은 게 아니라 먹어 준 것이다.). 요즘 많은 도움도 못 되는 남편인데, 이런 거라도 잘해야지 하는 마음이다. 그래도 푸라닭 씬 프라이드는 값도 저렴하고 먹고 나서 부담도 적으니 그걸 시켜달라고 요구했다. 씬(thin)이니까.


수영 초보 탈출기를 기획했는데, 수영을 핑계로 다른 일만 기록하는 거 같다. 오늘 숨쉬기가 조금 되어서 기분 좋았는데, 이런 상태라면 내일 어찌 될지 걱정이다. 와이프의 제안을 괜히 받은 거 같다. 다 와이프 때문이다.


**프라닭이야 푸라닭이야?

작가의 이전글 논어를 읽다 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