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살이를 꿈꾸는 당신과 나누고싶은 이야기
제주에 살고 있는 #후룩쥔장 입니다.
코로나가 참 여러가지 변화를 주었지만 우리의 생각까지도 멈추게 할수 있단 걸 느끼는 요즘이네요. 코로나로 인해 스톱된 것들 중 하나인 도서관 폐쇄로 인해 한동안 책을 보지 않았어요. 난 단지 읽기만을 멈추었을 뿐인데 생각조차 멈추었고, 이어서 쓰기조차 멈추는 연쇄효과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한땐 즐거움이었던 #글쓰기 가 어느샌가 노트북을 여는 순간 부담으로 다가왔고, 전업작가도 아니면서 하얀 백지상태의 화면을 보는 순간 머릿속까지 하얘지는 증상까지 이어지고 있네요.
그럼에도 끊임없이 '써야 한다, 기록해야 한다'라는 생각은 강박관념처럼 그렇게 자리잡아 빚쟁이처럼 늘 한켠에 묵은 체증으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거창하게 말하자면 '나는 쓴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관념론이라고나 할까요? 존재하되 존재하지 않은 지난 몇달 동안 저는 제주에서 이런저런 직업을 갖기위해 고군분투했습니다. 오늘은 그간의 기록을 통해 제주에서 한가지 직업만으론 살수 없는 이유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농산물유통 을 하기 위해 계획을 잡고 제주에 온지 2년이 지났습니다.
지난 2년의 시간동안 제철을 맞은 농수산물을 찾아 제주를 참 부지런히도 다녔습니다. 직접 농사짓는 생산자의 입장이 아닌, 수확을 앞둔 재료를 사입하여 소비자에게 판매하는 일이다보니 할수 있는 것과 할수 없는 것은 분명했습니다. 직거래 유통의 대한 나름의 노하우와 시즌별 대처에도 요령이 생길 즈음, 창고겸 사무실로 쓰고있던 집에서 나가달라는 요구를 받았습니다. 집주인은 본인의 사업이 어려워져 저희가 살고 있던 집을 팔려고 하니 나가달라는 부탁 아닌 통보였지요. 너무도 급작스러웠고 아직 계약기간이 남아있어 부당한 요구라 생각했고 그럼으로써 한동안 언쟁과 회유와 협박등이 오갔지만 어쩌겠어요. 저희도 사업을 해본 사람이고 묵여있는 부동산으로 인해 잃게될 기회비용과 속썩음에 대해 잘 알고 있었기에 적당한 타협하에 집을 비워주게 되었습니다. 아이 학교가 멀지 않은 근처로 한여름 이사를 하면서 더불어 사용하던 창고도 없어졌어요. 추석대목을 앞두고 있었지만 준비할 여건이 되지 않았고 그렇게 저는 다시 본업을 잃고 한동안 방황하게 되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단호박이 끝나는 여름부터 초가을까지는 마땅한 제철 농산물도 없는 때라 자의반 타의반 다시 백수가 되었지요. 차라리 이참에 그동안 하지 못했던 디자인 작업도 다시 하고, 적당한 창고도 구해보고, 마케팅 플랜도 다시 짜보고, 온라인 유통에 대한 공부도 하고, 밀렸던 글도 쓰며 쉬었다 가자 싶었지요. 하지만 현실은 항상 그렇듯 생각대로 되질 않았습니다. 숨만 쉬어도 소비되는 생활비란 놈은 언제나 뱀의 혓바닥처럼 그 긴 혀를 날름거리며 굶주린 입을 벌리고 있었고, 그렇게 저는 다시금 구직자가 되어 제주 인력시장을 뒤지기 시작했습니다.
지난 2년 동안 유통업에만 전념한 건 아니었어요.
농산물이란 것이 워낙 제철이란 것이 있다 보니 판매할 마땅한 농산물이 없는 비수기엔 다른 알바자리를 전전했습니다. 여유있게 자금을 들고 내려온 게 아니였어서 꼬박꼬박 들어가는 공과금과 생활비를 충당하기 위해 제주에서 이런저런 일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호텔 조식알바도 가고, 펜션 청소일도 하며, 구내식당 설겆이를 하기도 하고, 골프장 주방 알바를 하기도 했지요. 사실 육지에서의 저의 지난 사회경험들은 이런 일과는 거리가 멀었어요. 하지만 한동안 현업을 떠나 있었고, 이곳 낯선 제주에서는 소용없는 일들이었고, 이젠 나이도 제법 들어버렸습니다.
지난날 회사에서 꼰대라며 싫어했던 당시 부장님들보다 지금의 제 나이가 더 많아진 걸 최근에서야 헤아려 보곤 아연해졌더랬습니다. 어느새 저도 꼰녀가 되어 있던 걸까요? 정규직원이 아니다보니 매번 새로운 곳에 출근해서 새로운 사람들과 인사하고 할일을 전달받고 익숙해질만하면 다시 다른 곳으로 옮기는 생활이 처음엔 몹시 낯설고 위축되기도 했습니다. 바람같이 떠돌이 생활이 싫어 몇번은 정규직으로 입사를 해보기도 했지요. 그러나 그때마다 매번 돌아오는건 비정규직과 크게 차이나지 않는 급여에 비해 주어지는 과도한 업무와 충성심이었고 받아들이기 힘든 위계질서였습니다. 나이가 들면 어쩔수 없는지 가뜩이나 고집쎈 제게 똥배짱까지 주어져 언젠가부터 부당하다 싶은 일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박차고 나오는 일이 습관처럼 굳어져버렸습니다.
호텔 레스토랑 홀서빙은 매니저 자리까지 제안 받았으나 그것이 성수기를 핑계삼아 수시로 불러 일을 시키기 위한 대안이란 걸 알곤 한달만에 그만뒀습니다. 야근까지 총 근무한 시간을 따져 보니 최저알바 시급에도 미치지 못하는 일이었더라구요. 그러면서 정규직이란 이름아래 요구사항은 점점 많아지고 생색은 생색대로 내고 이럴거면 차라리 알바가 낫겠다 싶었죠.
아침 5시간이면 널널하게 끝난다는 조식 담당도 평균 80인분의 메뉴구성부터 재료준비, 요리와 배식, 설겆이까지 혼자 시키는 통에 한달을 일년같은 고단함으로 일한 채 포기하고 나왔습니다. 공기업 구내식당은 그래도 공무원 집단이니 대우가 낫겠지 싶어 드어갔다 100여명의 식판만 죽어라 닦다 일주일만에 나왔네요. 그야말로 설겆이 담당으로 처음 출근하자마자 요리한 후 쌓여있는 대형 냄비며 국통, 후라이팬이 줄줄이 기다리더니 배식이후부터는 쏟아지는 식판에 이틀만에 손가락 관절이 삐그덕거렸습니다.
성수기 한달살기 위주로 운영하는 고급 맨션의 청소일은 하루 평균 35평짜리 한세대일꺼라는 담당자의 말과는 달리 평균 2~3세대는 물론이고 더불어 수시로 쏟아지는 민원 해결을 위해 계단을 오르내리고 침구를 교환하고 곰팡이난 침대를 들어 정리해야 하는 업무가 빼곡한 일이었습니다. 각오하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제가 근무하는 열흘동안 제주의 대형 태풍까지 두번이나 몰아치는 통에 그야말로 바람에 날아갈 뻔하며 나왔습니다.
골프장은 이 시국에도 제주에서 성업중인 곳이고 중견기업 이상이 운영하는 곳이니 안정적이지 않을까 하며 클럽하우스 찬모로 입사한 첫날, 기존 멤버들의 텃세에 완전 기죽어 버렸습니다. 정식 요리수업을 받은적 없는 저의 경력을 비웃듯 어디 호텔 출신인지 보는 이들마다 물어보는 통에 가뜩이나 쫄아있는데 결정적 사건은 이튿날에 벌어졌지요. 다들 입맛이 없다며 점심시간도 거른채 일하고 있기에 저 역시 일하다 인수인계 해주던 같은 팀원에게 양해를 구하고 잠시 의자에 앉아 쉬고 있었습니다. 그날은 정말 별로 일거리도 없는 날이라 그분 역시 쉬고 나왔기에 교대했던 것이지요. 의자에 앉은지 5분도 안됐을때 주방장이 오더니 눈을 매섭게 뜨며 말했습니다.
"지금 다들 일하는거 안 보이세요? 혼자만 힘들어요?"
처음엔 멋적게 웃으며 지금 조금 한가해져서 5분만 쉬는거다 얘기했지만 그는 멈추려 하지 않았어요.
"자기 일만 다하면 끝입니까? 같은 주방에서 이쪽 일하는 거 안 보여요? 팀장인 나한테 얘기는 했습니까?"
정말 기가 막혔어요. 제가 볼때 그 골프장은 그리 바쁜 곳도 아니었고 호텔이나 일반 식당에 비하면 정말 일의 강도는 약한 곳이었어요. 그럼에도 스텝들은 바쁘다, 힘들다 입에 달고 있었고 빨리 처리해도 될 일들을 오히려 질질 끌며 오래 하는게 뻔히 보였거든요. 모든 재료를 일일이 다듬고 썰고 모양을 내고 하는 모습을 첫날 본 저로서는 '쓸데없이 고퀄'이란 인상을 받은 상태였구요. 어쨌든 일류호텔 출신이라는 그들의 자존심과 자긍심에 발맞추려 이참에 저도 제대로 된 요리교육을 받아보자 다독이며 효율성을 따지기보단 퀄리티를 지키자는 각오를 했지만 그 순간은 더이상 참을 수가 없었습닌다.
"팀장님, 지금이 그렇게 바쁜 시간이예요? 거기 메뉴 몇개 나가요? 두분이서 하기 벅찰만큼 많은가요? 그렇게 바쁜데 제가 외면했다면 그건 제가 정말 잘못한 거겠죠. 그런데 솔직히 그런 상황이세요? 점심시간도 건너뛰며 일할만큼 이 업장이 바쁜 곳이예요?"
"바쁜지 안 바쁜지는 주방장인 제가 판단합니다. 그리고 찬모쪽 일도 이 주방에 속해 있습니다. 제 지시를 따르지 않을거면 팀장이 무슨 소용 있습니까? 같은 주방에서 가족처럼 일해야지 내 일만 합니까?"
"정말 바쁜 상황이었으면 당연히 도왔어요. 이게 점심도 못먹고 매달릴 만큼 일이 많은 상황이라고 저는 생각지 않았을 뿐이구요. 노동시간으로 따지면 새벽 6시에 출근해서 지금까지 최소한 30분의 휴식시간은 주어져야 정상이예요. 저는 동료의 양해를 구하고 이제 앉은지 5분 되었구요. 그리고 자꾸 가족 가족 하시는데 왜 우리가 가족입니까? 제 가족은 집에 있는데요. 가족이 아닌데 어떻게 가족이 됩니까?"
나보다 열살은 어렸던 주방장은 분노로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기 시작했어요.
"아, 결국은 팀장인 제 말을 못 따르겠다 그거군요. 그럼 본부장님 불러서 물어봅시다. 팀장 말이 말 같지 않다니 본부장님 불러서 지금 이 상황이 제대로 된 건가 따져보자구요."
불려온 본부장은 난감해하며 얘기를 듣기보다는 서로서로 조금씩 양보하며 지내면 좋겠다, 양쪽 모두 다 틀린 말은 없다, 하지만 같이 일하는 사람끼리 이해하고 도와야한다 등등 읍소 아닌 읍소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전 이 상황도 어이없는데, 친구와 싸우고 쪼르르 엄마 불러 이르는 듯한 주방장의 유치한 모습에 실소를 금할 수 없었습니다. 그야말로 일류 골프장도 아니고 금액도 저렴한 축에 속하는 이 저가 골프장에서 그들이 가지는 그 무한대의 자긍심인지 자존심인지 텃세인지 모를 모습이 참으로 측은해 보였습니다.
그간 제주에서 이런저런 알바를 전전하며 정규직에 대한 기대는 내려놓은지 오래였고 이미 그곳의 정나미가 뚝 떨어진 상태였기에 그냥 내가 그만두겠다 하고 미련없이 나와 버렸습니다. 애초에 저를 뽑았던 이사는 마침 육지에 가 있던 참이라 나중에 이 일을 듣고는 스텝들 다 짤라버린다, 가만 안둔다, 난리였지만 양쪽 다 이해못할 일들이었습니다. 이미 이사와 현업 스텝들과의 감정이 상당히 안좋은 상태였고 조만간 다들 갈아치우겠다며 벼르고 있는 와중에 제가 들어간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어쨌든 전 조직과는 맞지 않았던 것 같아요. 서울에서도 적응하기 힘들었는데 이곳, 제주에서의 조직생활은 더더욱 저와 맞지 않았습니다.
'더이상의 육체 노동은 무리다'
몸도 힘들고 일하는 사람들과의 마음도 힘들었습니다. 다시 사무직으로 눈길을 돌려 예전 했던 업무와 비슷한 일을 하는 한 정부기관 업체에 지원을 했습니다. 따져보면 최저알바 시급밖에 안 되는 정말 박봉이었지만, 그래도 안정적으로 일할수 있다면 오랜만에 9 to 6의 시스템 속에서 비록 모든 근무자가 여자들 뿐이라 해도 기꺼이 일해내리라 다짐했지만, 면접결과는 보기좋게 낙방이었습니다.
참으로 오랜만에 정장을 입고 들어선 사무실에서 바삐 근무하는 직원들을 보며 제가 든 생각은 사실 절망이었어요. 목을 죄는 듯한 조직의 답답함이 바로 거부감으로 밀려 들어오더라구요. 예전에 하던 일이었으니 어떤 일을 할지 뻔히 보였고, 그 안에서 일어날 민감한 신경전과 상사의 요구들이 또 뻔히 느껴졌고, 게다가 정부유관기관이니 빡셀 보고서 작업까지 그려지니 자신이 없어지더라구요. 그걸 이 나이에 책임자도 아닌 말단 계약직원으로 일해야 한다니 더 암울했습니다. 급여가 많은 것도 아니고 정규대졸 초봉에도 못 미치는 박봉의 급여를 받으며 어떤 희망도 없이 말이죠. 그런게 싫어 회사를 나왔고 내 사업을 해보겠다며 고군분투했던 지난 10여년의 시간들이 어찌보면 마냥 힘들기만 한 시간들은 아니었구나 새삼 면접을 기다리는 그 자리에서 지난 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 씁쓸해졌습니다. 한때 면접의 달인으로까지 불리며 왠만한 면접에선 떨어진 적이 없는 저도 이번 2:1의 50% 확률의 게임에서조차 보기좋게 낙방의 결과를 받고 보니 솔직히 이 바닥은 이제 제겐 끝이구나 싶었습니다. 사실 이제 눈도 침침하고 아래하 한글 쓴지도 넘 오래되어 실무에 투입된다 해도 자신은 없었어요. 복잡한 제주 시내까지 출퇴근 시간의 교통지체를 감수하며 다니는 것도 내키지 않았구요.
지난 몇년간 제주에서 고군부투하며 알바와 비정규직을 전전하다 보니 어느새 알바가 익숙해져 버린 것 같아요. 같은 시간을 일하더라도 알바에겐 초과근무나 충성심을 요구하진 않아요. 초과근무 수당에 대한 부담감 때문일 수도 있고, 어차피 그만둘 사람에 대한 기대심이 없기 때문일수도 있지요. 알바란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일만 하는 사람이란 관념이 굳어져있어 오히려 저 같은 사람에겐 편한 타이틀이 되었습니다.
정규직원이란 이름하에 강요되는 '우리는 가족'.
그러니 근무 외 잡다한 업무도 해야 하고, 부당한 일에도 참아야 하고, 쓸데없는 자리에도 소환되는 일련의 일들이 저는 예전부터 정말 싫었습니다. 나이 드니 참아야 할 필요성도, 참을 인내심도 없어졌구요. 그렇다고 제가 먹고 살 걱정없이 취미로 일하는 것도 아니고, 소일거리 삼아 일하는 것도 아니지만 전 그렇습니다.
한국사회에서 정규직이란 이름으로 자행되는 갑질과 부당함에 굴복하느니 차라리 알바로 깔끔하게 필요한 일만 하겠다구요. 다만, 제가 필요한 만큼의 돈을 위해서는 한가지 알바로만은 안되니 이런저런 일들을 병행할수밖에 없지요.
주력으로 하고 있는 유통업을 어쨌든 유지하려 애쓰고, 그 밖에도 틈날 때마다 펜션 청소일도 합니다.
아직 규칙적인 수입은 없지만 블로그 마케팅도 조금씩 하고 해외 마켓도 공부하고요. 아는 동생이 바쁠 땐 동생이 운영하는 소품샵을 몇 시간 봐주기도 하고, 서빙이든 밭일이든 청소든 일당 자리가 가까운 곳이면 가기도 합니다.
어차피 제주에선 한가지 직업만으론 살수 없음을 깨달았고 받아 들였으니까요. 그리고 저는 경단녀이고, 영세 자영업자이며 이곳은 제가 나고 자란 곳이 아닌, 나이 사십넘어 이사온 낯선 지역임을 인정하기 때문입니다.
한해 한해가 연장선상이라기보다는 또 다시 맨땅 위에서 시작하는 '언제나 리셋인생'이지요. 그럼에도 그 모든걸 받아들이기로 하니 예전처럼 울분과 원망, 스트레스로 점철된 일상은 아닙니다.
오히려 매여 있는 곳이 없으니 마음은 가볍고 가진 것이 없으니 잃을 걱정이 없고, 쌓인 관계가 없으니 스트레스도 적어요. 게다가 이 멋진 제주의 하늘과 바다와 꽃들과 초원을 볼 때면 여전히 그 아름다움에 감탄사가 절로 나오니 전 지금 괜찮습니다.
어제 우연히 텔레비전에서 아저씨 영화를 봤어요.
오래전 영화지만 다시 보니 그래도 재밌더라구요. 지금 보면 좀 유치해 보이기도 하는 대사지만 원빈의 대사 중 이 말은 지금의 저에게 참 와 닿더라구요.
너희들은 내일만 살지? 난 오늘만 산다.
내일만 사는 놈은 오늘만 사는 놈한테 죽는다."
언젠가부터 전 오늘만 살거든요.
오늘만 사는 저, 참 다행이다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