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사업
넷플릭스에 영화 수리남이 떴다.
추석연휴를 맞아 볼만한 영화가 없던 차에 냉큼 전편보기에 올라탔다.
사실 영화적 완성도나 작품성에 관해선 아쉬운 점이 많았다. 구성의 쫀쫀함도 부족했고 2시간짜리 영화로 만들어졌어야 할 영화를 6편 시리즈로 늘리면서 늘어진 부분은 풍선에 바람 빠지듯 애써 팽팽했던 긴장감이 쭈구러져 버리기도 했다. 연기력을 깔수 없는 수많은 필모를 가진 명배우들임에도 배역에 충실히 녹아들지 못하는 모습 역시 연출력의 아쉬움으로 남았다.
그럼에도 현지 못지않은 배경과 긴 호흡을 무난히 이어간 부분에선 연출자의 노련함이 보였다. 무엇보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영화만큼은 아니지만 개인적으론 비슷한 경험이 있었기에 어느샌가 나는 감정이입이 되어 몰입하고 있었다.
열대 우림 지역, 치안이 불안정한 빈민국에서 벌어지는 장면들은 남편과 내가 지난 필리핀에서 겪었던 악몽과 분명 오버랩되는 부분이 있었다. 수리남 못지않게 부정부패가 만연하며 경찰과 공무원들도 돈으로 매수가 가능한 곳이 바로 필리핀이었다. 극중에서 노련한 사업가이자 협상가인 강인구(하정우 분)만큼은 아니었지만 우리 역시 당시 사업을 해보고자 한국에서 막 도착한 풋내기들이었고 그런 우리 주변으로 돈냄새를 맡고 모여든 하이에나들은 곳곳에 있었다. 그중에서도 소름돋았던 부분은 영화의 핵심인물인 목사 전요환(황정민 분)과 처음으로 대면하는 장면이었다.
필리핀에 도착후 남편이 진행했던 사업이 곤란에 빠진 걸 알았을때 우리는 그야말로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다. 지인도 없이 둘이 해결하기엔 감당할수 없어 보였고 필리핀이란 나라에 대해 아는 것은 터무니없을 정도로 형편없었다. 한숨과 눈물 속에 살고 있던 타운 하우스내 이웃들에게만 우리의 사정을 털어놓으며 신세한탄을 했다. 한국인들만 사는 타운하우스였고 직접적으로 사업적 연관이 없는 이들이며 같이 아이를 키우는 입장이었기에 좀더 편안하게 다가갈수 있었던 것 같다.
그 중에 참 곱고 아리따웠던 이웃은 당신이 다니는 한인교회의 목사님을 한번 찾아가 보는게 어떻겠느냐 조심스럽게 얘기했다. 본인도 필리핀 생활 초기에 여러 어려움을 겪었고 그 어려움을 해결해준 분이 그 분이며 다른 교인도 이 목사의 도움을 받아 누구도 해결하지 못할 것만 같았던 일까지 해결된 적이 있다고 했다. 자기가 아는 선에선 왠만해선 그분이 해결못할 일은 없는 것 같다며 사정을 얘기해둘 터이니 만나 보라 했다.
당시 우리는 지역 한인회에서도 딱히 도움을 줄수 없단 회의적인 얘기를 듣고 온 터라 몹시 위축되어 있는 상태였다. 그녀의 말처럼 그렇게 유능한 목사라면 종교가 없는 우리지만 진심으로 하나님 앞에 무릎꿇고 남은 평생을 교회에 헌신하며 살 결심까지 했다.
큰 기대를 안고 소개받은 교회에 방문하여 목사를 만났다. 교회는 아주 크지도 작지도 않았지만 깨끗하고 안전한 지역에 자리하고 있었다. 필리핀에 온지 오래되었다는 목사는 꽤나 세련되고 멀끔했으며 생각보다 젊어 보였다. 자녀를 모두 필리핀에서 키워 아이들은 한국말과 영어, 따갈로우어까지 가능하며 우리에게 도움이 필요하다면 아들이 동석하여 필리핀 현지인들과의 통역을 맡아줄 수도 있다고 했다. 우리가 처한 상황을 주의깊게 듣더니 현지인 매니저를 만나는 자리에 자신도 함께하여 그들의 저의를 파악해 보겠노라 했다.
정말 고마웠다. 우리는 교인도 아니었고 초면이었기에 그 정도 호의를 보여준 것만 해도 감사한 일이었다. 더불어 목사와 함께한다면 우리가 가진 언어의 한계를 뛰어넘어 해결의 실마리가 잡힐것 같았다. 우리 앞에서 눈하나 깜짝 않고 거짓말 하던 그들이었지만, 목사 앞에선 진실을 말할수도 있겠다 기대했다. 만날 날을 잡아 연락을 드리기로 하고 이야기를 마무리하려는 그때 목사는 웃으며 얘기했다.
"제가 아는 분중에 지금 상황보다 더 어려운 상황에 직면했던 분이 계셨습니다. 여성분이셨는데 필리핀에서 하고자 하던 일이 다 안되어 이대로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다고 해요. 그때 마침 교회가 보였고 그 교회로 들어가 수중에 가진 전재산을 남김없이 모두 주님께 바치고 간절히 기도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분에게 기적이 일어난 겁니다. 전혀 예상치 못한 분이 그분께 무상으로 집과 가게를 빌려주겠다 나섰고 그곳에서 사업을 시작한 그분은 지금은 크게 성공하셨습니다. 주님의 뜻은 그렇게 간절한 분들께 이뤄집니다. "
"와, 그런 일도 있군요. 부러울 뿐입니다. "
사실 그때 남편과 난 그 말뜻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다. 바보같이 그 얘길 액면 그대로 어느 성공한 사업가의 기적같은 이야기 정도로만 들었으니 말이다. 그저 부러워만 했을 뿐 그 내용의 핵심은 '수중에 가진 전재산을 주님께 바치고' 였던 게 아니었을까 나중에야 짐작이 갔다. 그때 당시 우리는 벌어진 현상황에 멘붕이 온 상태라 둘다 약간 얼이 빠진 사람들 같았다. 뭔가 아쉬운 표정을 짓던 목사는 체념하듯 다음 만남을 기약하며 정중히 우리를 배웅했다.
현지인 매니저와 만나기로 한 날은 일요일이 지난 그 다음주 중이었다.
예배가 있는 일요일, 같은 타운하우스의 교인이 찾아와 우리에게 당연한듯 함께 교회에 가자고 했다. 지난번 일도 있고 또 앞으로 도움받을 일도 있었기에 주저하면서도 우리는 단정한 옷을 입고 교회에 도착해 구석자리에 앉았다. 피아노 반주에 맞춰 성가대가 부르는 찬송가가 울려퍼졌고 지난번 만났던 목사는 십자가 밑에서 두 손을 모으고 눈을 꼭 감은채 몸을 앞뒤로 흔들며 열렬히 기도를 하고 있었다.
지난번 목사실에서 만났던 모습과는 또 사뭇 달랐던 그 얼굴은 지나치게 극적이었다. 그 표정과 몸짓, 쥐어짜던 몰입은 어느 연극배우의 과한 제스쳐를 연상시켰다. 평소 냉소적이었던 우리라면 그 자리를 참을 수 없었을 것이나 그날은 어떻게든 이 어색함을 받아들이고 도움을 받아 우리가 처한 난관을 극복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는지라 스멀스멀 올라오는 낯간지러움을 구겨넣으며 목사의 과한 몸짓을 외면했다.
예배가 시작되고 기도와 찬송가가 이어졌다. 그리고 목사는 구석에 앉은 우리를 보며 마이크에 대고 말했다.
"오늘 이 자리에 주님의 인도로 함께한 분들이 계십니다. 일어선 분들께 큰 박수로 열렬히 환영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서 우리의 이름을 호명했고 모두의 박수속에 우리는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쭈뼛쭈볏 일어나 인사를 했다. 참으로 어색한 순간이었고 이어진 예배속에 헌금시간이 되었다. 옆자리에서 서서히 전해져오는 헌금함을 보며 우리는 곤란한 눈짓을 주고받았다. 헌금을 생각지 못하고 따로 돈을 준비해오지 못한 것이다. 수중에 가진 돈이라곤 우리나라 돈으로 1000원 정도 지폐 밖에 없었고 그 돈을 넣기엔 차라리 넣지 않으니만 못한 것 같았다. 참으로 난감한 순간, 결국 헌금함이 우리앞에 도착했고 남편은 눈을 질끈 감으며 패스시켜 버렸다.
'처음 왔으니 이해하겠지. 다음부턴 준비해오는 걸로 알겠지.'
민망함을 애써 위로하며 낯짝을 두껍게 문질렀다. 아마 그때 목사는 대략 우리를 파악했던 것 같다. 정말 돈도 없고, 돈 낼 생각도 없는 사람들이라 생각하지 않았을까..
이후 현지인 매니저와 만나는 자리에서 목사는 빠른 영어로 대화를 주도했지만, 내용은 사실 새로울 건 없었다. 우리가 준 정보를 토대로 매니저에게 확인하는 자리였을 뿐, 현지인 매니저는 우리에게 했던 내용 그대로 같은 대답만 반복했고 목사까지 대동한 자리에 불려나와 앉아있는 자체가 심히 불쾌하다는 태도를 숨기지 않았다. 짧게 끝난 그날의 만남 이후 목사는 우리에게 이들의 이러한 비협조로는 해결이 어려울것 같다며 본인은 더 해줄것이 없을 것 같다 얘기했다.
사실 그 정도만이라도 고마웠다.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컸지만, 그가 해준 노력에 대해선 진심으로 고맙게 생각했다. 당시 같은 한국인들끼리 그 누구도 우리와 같이 곤란한 상황에 엮이려는 사람은 없었다. 영어가 능통했던 현지에서 만나 알던 분은 우리의 요구를 매니저에게 영어로 통역만 좀 해달란 부탁에도 필리핀인들은 사람 얼굴을 잘 기억하기 때문에 자기 얼굴이 노출되면 언제 어떤 위험이 닥칠지 모른다며 여기는 소리소문없이 죽는 일이 새로울 것 없는 곳이라는 말로 거절하기도 했다. 그 와중에 이정도라도 나서서 도움을 준 목사가 고맙지 않을 수 없었다.
며칠이 지난 후, 다시 시작된 현지인 매니저와의 대화는 몹시 껄끄러웠다.
지난번 목사와의 만남 이후로 그들은 대놓고 우리에게 적대감을 드러냈다. 나 역시 그녀에 대한 의심을 대놓고 드러내며 집요하게 따지자 그녀는 비웃듯 한통의 문자를 보내왔다. 그 문자를 본 남편과 난 피가 거꾸로 솟는 듯했다.
문자는 목사가 그때의 만남 직후 그녀에게 보낸 것으로 내용은 그 자리는 자신이 원해서 나간 자리가 아니며 당신을 의심해서 한 말들은 아니었다는 것, 오해는 없기를 바라며 자신은 그녀를 믿는다는 내용이었다.
이어진 그녀와의 통화에서 그녀는 말했다.
"목사가 너희 편인줄 알고 있지? 그 사람은 여기서 우리랑 잘 지내고 싶어하는 사람이야. 더이상 목사 앞세워서 분란 만들지마. 그 사람은 우리 편이니까."
그땐 잠시잠깐 그 절박한 마음에 우리도 독실한 기독교 신자가 될수 있을 줄 알았다.
낯선 이국땅에선 교회가 최고의 안식처이며 우리도 사람들과 교류하고 정보를 얻어 현지에서 잘 살려면 모든 의심을 거두고 냉소를 거두고 열정적인 믿음을 가져보리라 생각했었다.
지금도 우리는 여전히 무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