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서 자영업하기_'발효의시간' #2
제주 시내에서의 첫 가게 이야기_ '발효의 시간'1에 이어진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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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의 마지막날, 개업식 같지 않은 개업식을 했습니다.
제주도라는 타지에서 그나마 알던 얕은 인맥의 몇몇 지인들을 초대해 간단하게 식사를 대접하는 자리였습니다. 거창한 머릿고기도, 고사 떡도, 화려한 화환도 없는 참으로 조촐한 개업식이었습니다. 그냥 지인들에게 가게 보여주고 식사 대접한다는 생각이었기에 부담도 별로 없어 당일 아침 장보고 오후부터 주섬주섬 요리를 시작했더랬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모든 일을 닥쳐서 하는 성격이라 전날까지도 무사태평했던 것 같습니다. 당일엔 예상보다 좀더 많은 분들이 오셔서 가정식 집들이 음식으로만 생각했던 저의 음식들은 많이 부족했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와 생각해보면 참 여러모로 부족했던 초보사장이 아니었나 생각이 듭니다. 한마디로 '무식해서 용감'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정신없는 하루를 보내고 다음날이 되었지만 사장이자 주방장이었던 전 여전히 현실파악을 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손님 접대를 겨우 끝냈다는 안도감만 끌어안은 채 다음날 식당으로 출근을 했습니다. 한바탕 집들이를 거나하게 끝내고 몸도 마음도 지친 느낌인데 정작 시작은 지금부터라니 무엇부터 해야할지 몰라 멍해져 있었습니다. 가게 문은 열었지만 손님이 온다는 보장도 없었고, 오픈한 첫날부터 이곳을 누가 알고 올까 싶었고, 또 온다 해도 무슨 메뉴를 시킬까 도저히 감이 오질 않았습니다.
"첫날인데 오늘 무슨 손님이 오겠어? 오늘은 그냥 쉬엄쉬엄 앞으로 할 일이나 생각해보자"
그런데 그때 문이 열리고 첫 손님이 들어왔습니다. 가게 인테리어 공사 때부터 궁금해했던 동네 분들중 몇 분이셨습니다. 저는 들어온 손님을 보고도 제 눈을 믿을 수 없었고 어떤 준비도 되어 있지 않았기에 당황하기 시작했습니다. 손님을 보는 것도 두려워 고용한 알바에게 주문을 맡기고는 주방 쪽문에서 눈만 빼꼼히 내어놓은 채 테이블쪽을 신기한 듯 바라만 봤습니다.
첫 손님이 주문한 돈까스 2인분.
아, 정말 제 생애 최악의 요리였습니다. 소금과 후추로 밑간만 해 놓은 흑돼지 안심 덩어리를 꺼내고 떨리는 손으로 그제서야 밀가루, 달걀, 빵가루를 묻혀 기름에 투하했습니다. 소스는 식자재 마트에서 급조한 시판 돈가스 소스를 그냥 부어 내었고, 역시 같은 곳에서 구입한 시판 오이피클을 곁들였으며, 양배추를 투박하게 채쳐 역시나 급조한 시판 샐러드 드레싱을 올렸습니다. 그것만 하는데도 손이 덜덜 떨리고 등에선 진땀이 났습니다. 완성된 음식을 알바를 시켜 손님에게 전한 후엔 그 자신없음에 테이블쪽은 쳐다보지도 못한 채 주방으로 들어온 알바생한테 조심스레 물었습니다.
"손님들 반응이 어때? 맛 없게 먹지?"
서울 이태원에서 오랜 기간 바텐더로 일했던, 저보다 요식업에서의 잔뼈가 굵었던 그 친구는 새침한 얼굴로 말했습니다.
"네. 맛없게 먹고 있어요. 돈가스의 고기는 뻑뻑해 보이구요. 손님들 표정도 안 좋아요."
"......"
부끄러워 쥐구멍이 있으면 들어가 숨어버리고만 싶었습니다. 자존심도 너무 상했고 이 지경이 될 때까지 준비도 안한 제 자신이 한심해 이대로 가게 문을 닫고 집으로 가 버리고만 싶었습니다. 그럼에도 식당은 이제 오픈을 했고 저는 더이상 '오픈을 준비하는 예비사장'이 아니었기에 더이상 물러설 곳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첫 손님을 보내고 그 다음 손님도 또 돈까스. 역시나 자신 없이 내놓을 수 밖에 없었는데 그렇게 첫날의 매출은 어느덧 10만원이 되어 있었습니다. 이 실력으로 음식을 내었다는 사실이 부끄러워 견딜 수가 없는데 또 꾸역꾸역 돈은 받아 매출이 찍혔다는 사실에 초짜 사장은 신기하기만 했습니다.
다음 날부터 부지런히 인터넷을 검색하고 식자재 매장을 찾아 꼼꼼히 재료를 골랐습니다. 소스를 직접 만들어 남편과 알바생을 불러 맛을 평가하게 했고 수정을 거쳤으며 메뉴별로 주문부터 조리까지의 과정을 시뮬레이션했습니다. 이미 내가 전문 요리사의 과정을 밟은 것이 아닌 이상, 간단하면서도 쉽게 할수 있는 레시피를 골랐고 그렇게 고른 레시피대로의 소스와 피클은 시판되는 것보다 훨씬 맛이 좋았습니다. 어차피 스스로 많이 모자란 주방장임을 알고 있었기에 손님에게 용기있게 다가가 음식 맛이 어떤지 묻고 그들의 이야기를 경청했습니다. 손님들의 입맛이 다 똑같지는 않아 누구에게는 맛 있기도, 또 누구에게는 맛 없기도 하는 차이가 있었지만 대체적으로 맛의 기준점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손님들의 지적을 겸허히 받아들였고, 또 저의 첫 알바생이었던 이태원 바텐 출신의 그녀에게서 많은 도움을 받아 레시피를 개선해 나가고 업그레이드해 나갔습니다. 몇가지 기본 메뉴 외에는 고정하지 않고 매달 신메뉴를 출시한 후 반응을 보아가며 메뉴를 수정해 나갔습니다. 변동이 많은 메뉴판은 프린트물이 아닌, 칠판을 사용하여 수시로 지웠다 쓸수 있게 했습니다. 모든 소스는 가능하면 직접 만들었고, 제주도라는 특성을 이용해 제철 채소와 과일을 이용하였으며 감귤을 불고기 소스와 샐러드 드레싱에 접목했습니다. 고기는 생고기만 썼으며 빵가루도 육지에서 공수받은 생빵가루만을 고집했습니다.
그렇게 아무것도 모르던 식당의 쥔장이자 주방장은 조금씩 발전해 나갈수 있었고 그 시간이 최소 3개월은 걸렸던 것 같습니다. 그때까지 하루 매출은 10만원을 오갔고 월말 결산날이 오면 계산기를 두드리는 제 몸과 마음은 한없이 무겁기만 했습니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