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외쿡살이

고장난 영어막귀

그해 여름 영국에서 일어났던 일_English Episode1.

by 후룩쥔장

강도보다 더 무서웠을 두 명의 꼬레안


영국에 도착하고 난 이후로 여러가지 사소한 절차들이 있었다.

우선 학교 학생카드부터 시작해서 은행을 열어야 했다. 이곳의 은행은 울나라처럼 아무나 통장을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닌 신용이 뒷받침 되어야만 통장을 만들어준다. 일명 '뱅크 어카운트 오픈'이란 것인데.. (울나라 말로 하자면'계좌개설') 정확한 주소지가 있어야 하고, 학생들은 학교에서 신용장을 써주고 그럼에도 직장이 없기 때문에 까다로운 몇가지의 조건들이 있었다.


처음 학교에서 지정해준 은행으로 써준 신용장을 들고 찾아갔다. 이곳 은행에는 주로 인도계 애덜이 많이 근무한다. 얼굴이 흑인도 아닌 것이, 백인도 아닌 것이, 황인도 아닌 것이 묘하게 뒤섞인 듯 하면서도 보기에 나쁘지 않은, 게다가 은행에서 일하는 애덜은 이곳에서도 앨리트 출신들인지 나름 뭔가 기품이 흐른다고나 할까?

처음으로 만난 애가 인디언 계통의 이름을 갖고 있던 인도 남자직원이었다.

무슨 방으로 부르더니 왜 왔냐고 묻길래.

"우리 은행 열어야 해. 너네가 열어줘야겠어. 해줄래?"

"음. 그래? 그럼 이 종이에다 너의 자료를 적어봐."

모 적는거야 그리 어려운거 아니니까..

그럼에도 같이 간 언니와 나는 서로 단어를 비교해 가며 잔뜩 긴장한 채 서류를 채웠고, 그 녀석은 우리가 건네준 서류를 보고 난 후 잠시 나갔다 오며 모라모라 한다. 우리는 무슨 안 좋은 일이 있는줄 알고 잔뜩 긴장한채 눈만 말똥말똥..

한참을 말하고 나더니 묻는다.

"무슨 말인지 알겠지? 그럼 이제 됐지?"

우리 고개를 저으며.

"미안.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몰겠어. 다시 해주면 안될까?"

그 정도의 서비스 정신도 없으면 은행원도 아니지..

이 녀석 일말의 귀찮은 표정없이 다시 첨부터 똑같이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제 한 삼분의 일은 대충 감으로 때려잡았지만, 몬 넘버가 어쩌구 저쩌구 하는데 우리네 상식으론 이해가 안 간다.

"자. 이제 이해했지? 너네 가도 돼."

"미안. 아직도 몬 말인지 몰겠네. 어쩌지?"

그 녀석. 약간의 흔들리는 눈빛이 있었으나 이내 다시 친절하게 첨부터 설명.

아.. 이제서야. 이해가..

딱 반만.. 웁쓰..-.-;;

"정말 알겠지? 문제없지?"

"어... 어... 그러니까.. 어... 이게 모 어쨌다는 건데? 모가 온다구? 그거 받아야된다는 거야?"

"그러니까. 다시 첨부터 설명하자면.. 너네 집으로 카드가 가는데.. 핀넘버가 어쩌구 저쩌구.. 이제 알겠지? "

알긴 몰 알겠냐만, 더 이상 물어볼 염치도 못 되는 터라 억지로 고개를 주억거리며.

"어... 어.. 그래.. 알겠어.. 그니까 일단 기다리면 되는거지? 우리 아무런 문제없지? 고마워. 땡큐"

항상 그노므 '땡큐' 소리는 기가 막히게도 경쾌하게 하는 터라.

'쏘리~'와 함께.

그러나..

은행문을 나서면서 우리는 서로 마주보며 물었다.

"쟤 모라는 거야? "



그렇게 기다리던 뱅크에서의 레터는 이주가 지나도 오지 않았다.

다급해진 우리로서는 그게 있어야 신분이 보장되어 여러가지를 해결할 수가 있던 터라 그 당시 그 머스마가 주었던 명함을 만지작거리며 만났다 하면.

"너가 전화해봐라. 얘가 그때 안 오면 전화하라고 했던거 같아."

"언니는.. 언니가 나보단 그래도 낫잖우. 난 듣는게 안돼서리... 언니가 전화해 봐."

서로 미루다가 어느날 드뎌 전화하기로 결심..

아침부터 거의 초긴장으로 보낸 우리는 수업이 끝나자마자 가까운 공중전화 부스로 달려갔다.

전화카드를 꺼내들고도 한참을 심호흡을 한 후, 같이 갔던 한국언니가 전화를 했다.

"헬로우.? 아... 어... 이즈.. 디스... 니케쉬.. 파텔? 휴우."

잠시 동안의 침묵이 흐르고 이 언니의 표정은 그 짧은 시간동안 수많은 의혹의 표정이 스쳐 지나가더니만.

"어.. 아.. 에... 히즈 돈트.. 아.. 나우? 아... 에... 오케이.. 아일 콜 힘. 레이터..바이.땡큐~"

"언냐. 모래? 왜 안 보냈대?"

"음.. 그 사람 지금 자리 없대."

"엥? 그 말 하나가 모 이리 길어?"

"몰라. 모라모라 어찌나 빨리 말하는지.. 나중에 다시 전화하래. 밥먹으러 갔대.."


이후로도 우리는 서로 번갈아가며 몇 번의 전화를 시도했으나 그때마다 정작 당사자는 부재중이고 전화를 대신 받아주는 사람의 말도 못 알아들어 진땀을 삐질삐질 흘려야했다.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 결국은 내가 종이에 장문의 영작을 한 후, 심호흡을 하고 수화기를 들어 상대방이 전화를 받자마자.

"헬로우~ 캔 아이 스피크 투 '니케쉬 파텔?" 오우? 히즈 낫 데어? 쏘리. 밧 아이 해브투 텔 유. 아이 웬투 유 유어 뱅크 ... (블라블라)"

상대방이 말할 틈도 안 주고 그냥 영작문의 종이를 들고 냅따 읽어버리고 나니, 그제서야 속이 다 후련해지더라는..쩝..

상대방은 내가 워낙 강경하게 줄줄 말하니까 굉장히 심각한 상황이라 생각했던지 그제서야 확인해 보겠다며 몬가 조치해줄 낌새를 보이고 전화를 끊고 난 후 난 십년 묵은 체증이 가라앉는듯했다.

한 이삼분도 안 되는 그노므 전화를 하고 난 후, 그 후유증으로 인하여 우리는 이후 모든 스케줄을 외면한채 힘이 하나도 없이 아픈 머리를 쥐어싸고 집으로 직행하여 침대에 몸을 뉘였으니 아.. 불쌍했던 우리의 날들이여....

그러나 그 이후에도 은행에서의 난리법석은 여전하였던 것인데...



며칠이 지나도 뱅크에서 아무런 소식이 없자 우리는 드뎌 용감하게 학교 옆에 있는 같은 은행의 체인을 방문하여 물어보기로 했다. 몇 번의 심호흡을 한 후 들어선 뱅크의 인포메션으로 달려가서 당당하게 여직원에게.

"하이~. 우리 뱅크 레터를 못 받아서 그거 물어보러 왔어. 너네 은행 왜 그러냐?"

"아. 그래? 여기 앉아서 좀만 기다릴래. 우리가 처리해주께."

한 5분쯤 기다리니 우리 이름을 부른다.

데스크로 가니 금발의 하이얀 얼굴을 한 코뼈 진짜 높은 전형적인 영국 남자애가 앉아있더니 물어본다.

"너네 왜 왔는데?"

"아. 그러니까 우리가 온 거는.. 불라불라.. 도대체 우리의 카드는 지금 어디에 있는건데?"

"그래? 이름 불러봐. 아. 내가 컴퓨터로 봐줄께. 음... 그 카드 지금 발송됐어. 기다려봐."

"왓? 머시염? 언제 보냈다는 건데? 너네 믿을수가 없구나. 한달이 지났는데 이제야 보냈어?"

"그러니까 기다렸다가 그걸 갖고 다시.. 어쩌구 저쩌구. 알겠지?."

"....."

"그러니까 다시 말하자면.. 어쩌구....저쩌구.. 알겠니?"

"... 쏘리.. 모르겠는데.. 어쩌지? 머가 어케 됐다구?"

"오우. 노우.. 너네 어느 나라에서 왔어?"

"우리 한국..(아. 쪽팔려.. 나라 망신인데..쩝..)"

"잠깐만 기다려봐. (홀을 향해 외치며..) 여기 누구 한국말 할 줄 아는 사람 없어여?"

"...............(우띠) 알았어. 됐어. 대충은 알아들었어. 그니까. 니가 한 말이.."

"자. 얘들아. (애써 침착함을 유지하며) 다시 말해줄께. 그러니까. 카.드.가.지.금. 발.송.이..... 알.겠.니?"

"아... 그 얘기구나. 알았어. 미안하다. 우리가 좀 영어가 딸려서 말야.."

"그래. 이제 됐지? 가서 기다려봐. 안녕."

윽...

돌아서 나오는 우리의 발걸음은 신발에 추를 달아놓은 것처럼 무겁기만 했으니.

아.. 쪽팔려...

은행문을 나오자마자 우리는 서로 마주보며.

"근데 그노므 짜식. 정말 재수없게 생겼지? "



이후로도 이어진 은행에서의 악연은 끝나지 않았으니.

며칠 후 그 머시마가 말한대로 은행에서 기다리던 카드는 도착하였으나 핀넘버(비밀번호)를 알아보기 위해 카드를 들고 찾아간 은행에서 이번엔 다른 머시마가 데스크에 앉아 있었고 우리는 당당하게 카드를 내밀며핀넘버를 요구했다.

그러나..

카드를 들고 조회해보던 그 영국은행원.

"야. 이거 못쓰는 거야. 캔슬된거네. 이거 버리자."

꾸깃..

엉? 이게 또 먼소리염?

"그게 몬소리야? 왜 못써?"

"너네 카드 다시 발급됐네. 이번 주에 다시 새 카드 너네 이전 주소로 갈꺼야. 기다려봐."

"머시염? 우리가 언제 새거 보내달라 했는데. 니네 맘대루 왜 보내는데?"

"글쎄. 우리도 잘 몰겠는데, 너네가 개설한 은행에서 다시 보냈네. 이전 주소로 가서 갖고 오는 수밖에 없겠다."

"머시염? 우린 지금 둘다 이사해서 거기 갈수가 없는데. 언제 그걸 또 받아갖고 오냐?"

"그래도 할수 없어. 그게 있어야 돼. 그러니까 그걸 갖고오면.. 주소가 어쩌구 저쩌구. 불라불라.. 알았지?"

".... 쏘리.. 몬 말인지 몰겠는걸.?"

"그러니까 다시 설명하자면 그걸 갖고...(블라블라).알았지?"

"...어... 음.. 그러니까.. 그게... 이걸 갖고... 모라고?"

"애들아.. 몰 모르겠다는 거니? 다시 하나씩 말해봐라."

"어. 그니까 이게 그걸 갖고 와야 한다는 거냐고..."

이후 그 머시마는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고 겨우 어찌 알아들은 듯한 우리는 모두 해피해 하며.

"넘 고마워. 담에 카드 갖고 다시올께. 안녕."

그러나..

은행문을 나서면서 우리가 한 대화는 또 사뭇 달랐으니..

"언니. 그니까 카드가 새 주소로 온다는 거지?"

"모? 언제 그랬어? 이전 주소로 가서 갖고 오라는 거 아녔어?"

윽...

같은 말 듣고도 서로 다른 해석하기..

이것이 우리의 주된 버릇이었으니...

어쩌란 말인가...

쩝..



그럼에도 뱅크에서는 아무런 레터도 오지 않았다.

내 말처럼 새로 이사한 곳으로도, 또 그 언니의 말처럼 먼저 주소로도 그 어느곳으로도 레터는 오지 않았다.

그리하여 우리는 다시금 은행문을 들어서게 되었던 것이니..

지난번 만났던 친절한 영국 머시마가 이번에는 지 방으로 부르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그들도 우리는 도저히 데스크에서는 해결할수 없는 골칫덩이라고 생각한 것임에 틀림없었다.

"하이. 무슨 일로 왔니?"

"하이~(방긋 웃으며) 우리 지난번 만난적 있지? 잘 있었니?"

"그래. 기억하고 있어. 또 무슨 일이니?"

"글쎄. 그노므 레터가 아직도 안왔지 모야. 도대체 어디 간 걸까? 너 좀 알아봐 줄수 있겠니?"

"음... 보자.. 음.. 알겠다. 너네 카드 어디 있는지.."

"잉? 정말이야? 어디 있는데?"

"잠깐 기다려봐."

잠시 그넘이 나간 틈을 타서 우리는 서로 마주보며

"도대체 어디 있다는 거야? 우리 또 이번에도 실패하는거 아냐. 어쩜 좋아. 나 돈도 없어서 송금받아야 하는데.. 후유~"

잠시 후 들어온 그넘의 손에는 두장의 편지봉투가 들려 있었으니.

"짠~ 얘들아. 너네 카드 여기 있지! 내 손은 매직핸드란다. "

"와~ (한껏 감탄하는 척하며) 정말 너 대단하구나.. 넘 신기하다."

"드뎌 카드가 왔구나. 이제는 쓸수 있단다. 자 여기다 서명하고.. 근데 너네들 런던에 온지 얼마나 됐니?"

"음.. 그러니까 한달."

"하고도 이주 됐지"

내 대답에 이어진 언니의 대답.

"하고도 열네시간.하고도 이십분하고도 삽십구초."

언니의 대답에 이어진 그넘의 대답.

"..."

그리하여 결국 우리는 카드를 손에 넣는데 성공하였고 돌아서 나오는 발걸음은 한없이 가볍기만...

했을까...??

남들은 쉽게도 받더니만 우리는 왤케 힘든거야.

아.. 영어가 나를 미치게 한다.



이 글은 10년전 늦은 나이에 영어를 배워보겠다며 떠났던 영국 런던에서의 나의 경험담이다.

노트북 속 파일을 정리하다 오랜만에 읽게 됐는데 지금 봐도 어찌나 부끄럽고 웃기던지..

지금도 안 들리는 영어지만 그때는 더 안들렸던...

그럼에도 그때의 젊음과 용기와 추억이 몹시도 그리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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