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면허

안전과 삶의 질 사이에서

by jiwu

2년 전 80세가 넘으신 아버지의 차를 팔았다. 정확히 말하면 팔아버렸다. 반강제적으로 면허증을 반납하시게 만들었다. 아버지의 순발력이 예전 같지 않다는 걸 여러 차례 목격하고서 내린 결정이었다. 평생 노련한 드라이버를 자부하셨던 분이었지만 80세가 넘으면서 브레이크를 밟는 타이밍이 미묘하게 늦어졌고, 차선 변경 때 사각지대 확인이 부자연스러워졌다. 안전이 우선이라고, 혹시 모를 사고를 예방하는 게 맞다고 설득했다.


그때는 옳은 결정이라고 생각했다. 아버지도 표면적으로는 수긍하시는 것처럼 보였다. 의외로 담담하게 받아들이셨지만 상실감이 매우 크셨을 것이다. 그런데 경기도로 이사를 온 뒤, 내 생각이 바뀌었다.


서울 도심에 계신 친구분들을 만나러 가시는 일이 이제 아버지에게는 하나의 원정이 되어버렸다. 집에서 버스정류장이나 지하철 역까지 걷고 환승을 하고, 다시 걸어서 목적지까지. 예전 같으면 30분이면 도착했을 거리가 이제는 한 시간 반이 넘게 걸린다. 게다가 요즘은 고령자가 서 있다고 해서 자리를 양보받는 일도 많지 않다. 이동 자체가 부담스러워지셨다. 여전히 활동적으로 생활하시지만, 체력적으로 많이 힘이 든다는 표현을 자주 하신다. 평생 차로만 이동하시다가 70대 이후에야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시작한 분인데.


안전과 삶의 질 사이에서 내가 너무 성급하게 선택을 강요한 것 같다.


언론에서는 고령 운전자의 사고 소식이 나올 때마다 면허 반납을 독려한다. 정부도 고령자 면허 반납 지원금(1회성 교통카드 지급)을 주며 자진 반납을 유도한다. 물론 필요한 정책이다. 하지만 뭔가 순서가 잘못된 것 같다. 면허를 반납하라고 하기 전에, 대체 교통수단은 충분히 마련되어 있는가? 고령자가 편하고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는 시스템은 갖춰져 있는가? 수도권에 사는 고령자가 이런데, 지방 소도시는 어떨지 짐작이 간다.


아버지 같은 분들에게 필요한 건 단순히 교통비 지원금이 아니다(그것도 1회성에 불과한). 집 앞에서 필요한 곳까지 편하게 갈 수 있는 실질적인 이동 수단이다. 버스 노선이 확충되고, 좀 더 이용자 친화적인 대중교통 시스템과 시설이 갖춰져야 하고, 필요하다면 고령자 전용 콜택시 같은 서비스가 지금보다 활성화되어야 한다. 이동권이 보장된 다음에야 면허 반납을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


고령 사회로 접어든 우리나라에서 이 문제는 점점 더 많은 가정이 마주하게 될 현실이다. 나도 조만간 마주할 문제다. 이동권은 주택 문제와도 연결되어 있다. 이동권이 보장되지 않으면 더욱더 서울과 수도권으로 사람들이 집중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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