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동물원 주차장 입구에 오면 오래된 포차들이 늘어서 있다. 건지산 둘레길을 걷고 온 사람들이 들르고, 축구를 마친 이들이 단체로 모여 앉아 삼겹살에 소주를 걸치던 곳이다. 색 바랜 파란색 플라스틱 의자 위로 번지는 조명, 지글지글 고기 굽는 소리와 술잔이 부딪히는 소리 사이에 오가는 말들 속에 소박하지만 따뜻한 ‘삶의 온기’를 느낄 수 있던 곳이다.
어느 날 한 가게의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며칠 전만 해도 냉장고를 정리하던 모습이 눈에 선한데. "그래서 그랬구나!" 모든 음료수를 꺼내어 테이블 위에 종류 별로 가지런히 놓던 모습이 이제야 그 이유를 알았다. 그때는 단순한 냉장고를 청소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지금은 현수막이 떼어지고, 천막 안 테이블 자리들도 모두 사라져 있었다. 이제 장사를 안 하나보다.
그날 이후 그곳에 머물 때마다 자꾸 발걸음이 멈췄다. 경기가 어려워 버티지 못한 걸까, 아니면 사장님의 건강 문제로 더 이상 하지 못하는 걸까. 어떤 사정인지 굳게 닫힌 텅 빈 가게를 보며 궁금해졌다. 이유라도 알면, 알 수 없다는 사실이 오히려 더 마음을 서글프게 했다. 의지와 상관없이 그만뒀을 상황이 뭔지 모르게 아팠다.
언젠가 남은 포차도 이 거리에서 하나둘 사라지겠지. 퇴근 후 친구들과 술 한잔 기울이며 위로받던, 고된 하루를 정리하던 그곳. 사람들과 삶을 나누던 추억의 공간으로 남을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기쁨이었고, 또 누군가에게는 위로이자 버팀목이었다. 그 모든 시간이 불 꺼지듯 사라졌다는 사실이, 그날따라 유난히 쓸쓸하게 다가왔다. 반백년을 살아온 나 또한 언젠가 그렇게 사라지겠지.
"인생 참 덧없다."
"무엇을 위해 아등바등 사는가."
"무엇이든 언젠가는 사라진다."
당연한 말이라 더 슬프게 다가온다. 어둠이 있기에 별이 빛나듯이 죽음이 있기에 삶이 더 가치 있다. 밝게 켜진 조명들 사이에 굳게 닫힌 텅 빈 가게를 보며 소중했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해 주었다. 어쩌면 이별을 준비한다는 건, 그렇게 사라진 자리에서 남은 빛을 바라보는 연습인지도 모른다. 문 닫기 전에 한 번 들렀을걸.
결국 죽음, 이별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삶의 방식이다. 사라짐을 두려워하기보다 그 안에 깃든 의미를 바라본다면 조금은 덜 무섭겠지. 이별을 준비한다는 것은 지금 이 순간을 온전히 살아내는 일이다. 그렇게 오늘을 다해 살아낸다면 언젠가 다가올 이별 앞에서도 조금은 덜 흔들릴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