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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사회복지사 Jul 20. 2020

안녕, 반가워~둘째야!

# 둘째의 기억

제주도의 비 오는 날, 어느 여름.

2018년 6월 여름, 아내와 단둘이 3박 4일 제주도 여행을 떠났었다. 첫째가 태어난 후로 처음 떠나는 여행이었다. 얼마 만에 갖는 둘만의 시간인지, 타임머신을 타고 결혼 전 연애하는 때로 다시 돌아간 듯한 기분이 들었다. 제주도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그간 육아로 잠자고 있던 연애 세포가 깨어나기 시작했다. 


여행 셋째 날이었다. 그날은 비가 많이 내렸다. 굵직한 비가 세차게 내려서 커피숍으로 비를 맞으며 이동했다. 풍림 다방이었다. 빨간 페인트칠된 돌에 새겨진 풍림 다방 글자가 멀리서도 한눈에 들어왔다. 낡은 슬레이트 지붕에 현무암 돌담과 수국이 참 예뻤다. 비까지 오는데 커피숍의 분위기를 더 운치 있게 했다.  

커피숍 문을 열자마자 달랑달랑 풍경 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손님을 맞이하는 풍경소리가 고즈넉한 커피숍 안을 울려 퍼졌다. 비 오는 날씨 탓에 조금은 쌀쌀했는데 적갈색 원목 인테리어로 마음까지 편안해졌다.       


사실 수요 미식회 맛집이라 일부로 들렸었다. 아내와 나는 고민하지 않고 방송에서 추천한 메뉴를 시켰다. 녹색 커피잔에 풍림 브레붸가, 파란 커피잔에 풍림 티라미슈가 나왔다. 커피 잔은 풍미 깊은 커피 맛과 어우러졌다. 아내와 나는 우두둑 슬레이트로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차를 마시며 한껏 분위기를 냈다. 


제주도에 간다면 풍림 다방은 꼭 다시 들리고 싶은 곳이기도 하다. 마침 지금도 비가 오는 데 빗소리는 잠시 2018년 6월 여름으로 되돌려 놨다.  


# 안녕, 반가워~ 둘째야!

커피숍에서 비 소리를 들으며 그날 일정을 확인했다. 그러다가가 아내와 앞으로의 계획을 나눴다. 서로 오랜만에 분위기에 취했었나 보다. 아내는 포스트잇에 서로 하고 싶은 말을 적어보자고 했다. 제주도에서, 그것도 아이 없이 비 소리 들으며 오롯이 아내와 단둘이 커피 한잔을 마시는데 어찌 분위기에 안 취하겠는가. 

     

아내는 선물이라며 노란 서류 봉투를 쓰윽 내밀었다. 선물이라고 하기에는 포장이 허술했다. 보통 노란 서류봉투에는 아빠가 사 오는 붕어빵이 들어있지 않은가. 봉투를 건네받으며 의아했다. 


의심 가득한 표정으로  봉투를 열어봤다. 두 줄이 선명한 임신 테스트기이었다. 두 줄을 보자마자 뜨끈 미지근하게 반응했었던 첫째 때 순간 떠올랐다. 속으로 다시 기회가 왔다 싶었다. 사실 언제가 될지 몰라도 둘째 임신 테스트기를 받으면 그때만큼은 제대로 반응을 보여야지 하고 벼르고 있었다.     


사실 둘째는 계획 임신이었다. 아내와 나는 첫째와 둘째가 3년 터울이면 좋겠다고 생각했었고 3년 터울을 위해 아내와 나는 밤새 전투적으로 임했었다. 하지만 임신이 계획대로, 생각대로 되지 않았다.  그해 둘째를 임신하지 않으면 3년 터울 계획이 물거품으로 돼 버릴지도 몰랐다. 


그때는 임신되지 않아 아내도 지칠 때로 지쳐 있는 상황이었다. 첫째와의 3년 터울은 체념하고 있었고 둘째가 임신했을 거라고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예상하지 못한 둘째 임신 소식은 결국 나를 무장 해제시켰다.


제주의 (주) 전주의 (), 사랑해! 주주.

갑작스러운 둘째 임신 소식이었지만 그동안 바라고 바랐던 둘째 임신이었기에 더 가슴이 벅찼다. 아내에게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지었고 계속 임신 테스트기를 다시 보고 두줄을 확인했다. 어쩌면 제주도 여행 중 풍림 다방의 기억이 가장 강렬했던 이유이지 않을까.


아내는 둘째 태명을 짓자고 했다. 아내가 둘째는 어떤 태명으로 했으면 좋겠냐고 내게 물었다. 그때부터 머리를 이리저리 굴렸다. 


첫째 때는 초음파 사진에 보이는 첫째가 콩알만 해서, 달님 나라 공주님이 낳은 콩알이라, 달콩이라고 지었었다. 아내는 러블리한 태명을 싫어했지만 나의 성화 같은 밀어붙임에 어쩔 수 없이 달콩이라고 지었었다. 


둘째 태명을 뭐로 지을지 고민됐다. 러블리한 태명은 아내가 싫어할 테고 좀 더 의미 있는 태명을 지으려고 열을 올리고 고민했다. 순간 불현듯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제주의 주, 전주의 주. 주주. 제주에서 둘째 임신 소식을 들었고, 전주에서 태어 날 둘째이기에 나름 의미가 있었다. 


아내에게 둘째 태명으로 주주는 어떻냐고 물어봤다. 아내도 좋다며 첫째 때보다 만족하는 표정을 지었다. 더 이상 고민하지 않았다. 탕탕 이쯤 되면 태명 짓기 장인으로 임명을.


벌써 둘째가 기기 시작하더니 걸음마를 떼 걷기 시작했다. 자신의 요구가 있으면 엄마, 아빠를 부르고 눈웃음치며 장난치기를 좋아한다. 둘째는 귀여운 악동 같은 캐릭터다. 둘째라서 그런지 몰라도 눈치도 빠르고 형을 모델링 삼아 뭐든 따라 하고 형과 같이 하려 든다. 방긋방긋 베내 짓 하던 아이가 벌써 이렇게 컸다니 새삼 시간이 속절없이 빨리 지나감을 느낀다. 


비가 오는 날, 둘째를 처음 만난 그때가 떠올라 몇 자 끄적끄적해본다.(사실 비 오니까 제주도 가고 싶은 마음이 더 크다. 제주도 가고 싶어요.) 


주주, 지호야~ 지금처럼 건강하게 그 웃음 잃지 말고 행복하게 자라렴.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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