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로서 살고 싶을 뿐이다.
[여우각시별]은 요즘 챙겨보는 드라마다. 챙겨보는 특별한 이유는 없다. 막장드라마의 소재가 피곤할 때쯤 여우각시별 제목부터가 끌렸다. 드라마에 출연하는 배우도 좋아한다. 공교롭게도 주연배우 둘 다 그전에 챙겨봤던 드라마에 출연했다. [시그널]의 이제훈, [로봇은 아니야]의 채수빈. 이 드라마를 보는 충분한 이유인 것 같다.
어제 장면은 오랫동안 내 머릿속에 맴돌아 생각을 이어가게 됐다.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이수연(이제훈)은 어릴 적에 교통사고를 당했다. 그로 인해 한쪽이 마비되어 휠체어를 타게 된다. 하지만 미스터장(박혁권)의 도움을 받아 마비된 팔, 다리에 보형물을 찼다. 보형물을 낄 때면 장애 1등급인데도 불구하고 보통사람처럼 일상의 삶을 살 수 있다. 오히려 보통 사람보다 초월적인 힘을 사용할 수도 있다. 하지만 어제 장면에서는 이유모를 부작용이 생겼고 당장 그 보형물을 벗지 않으면 최악의 경우 죽을 수 상황에 놓였다. 이수연(이제훈)은 선택해야 했다. 다시 장애인의 삶을 살지 아니면 죽을 수 있지만 계속해서 보형물을 차고 있을지 말이다.
하지만 이수연(이제훈)은 보형물 벗기를 완강히 거부한다. 왜 벗는 것을 거부할까 최악의 상황이면 자신이 죽을 수 있는 일인데 말이다. 죽음의 상황까지 감수하며 지키고자 한 것은 무엇일까. 그 장면에서 평범한 삶을 지키고 싶어 하는 이수연(이제훈)의 간절함을 느낄 수 있었다.
이수연(이제훈)은 평범한 삶을 바랐다. "휠체어를 탄 지난 11년 동안 어떻게 살았는지 아느냐"의 분노 섞인 말속에 그의 간절함은 더해갔다. 보형물의 도움으로 보통사람처럼 자신의 일을 하고 누군가와 관계를 이어갔다. 한여름(채수빈)을 만나 사랑하게 됐다. 앞으로 죽을 수 있다는 사실보다 지금 이 순간의 행복이 중요했다. 평범하게 사는 행복이 죽음의 불안, 공포보다 컸던 것이다. 다르게 말하면 지금의 행복한 순간이 사라질까 두려운 것이다.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전체 인구의 약 5% 정도가 장애인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것은 장애 등급으로 인정되는 대한민국의 수치에 불과하다. 선진국은 우리나라와 다른 기준을 적용해 전체 인구의 20%를 장애인 인구로 본다. 물론 인구수가 다르기 때문에 절대 비교는 할 수 없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선진국은 우리나라가 인정하는 장애 종류, 범위보다 다양하고 넓다. 한마디로 장애를 바라보는 인식이 다르다.
현재 한국의 장애인 관련 법과 제도는 온갖 차별과 낙인이 일상화되어 있는 한국 사회의 인권 수준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장애등급제는 물론이고 ‘장애등록제’ 자체를 폐지해야 한다. 장애인복지법 제2조를 보면 장애인이란 ‘신체적·정신적 장애로 오랫동안 일상생활이나 사회생활에서 상당한 제약을 받는 자’라고 정의되어 있다.
유엔 장애인 권리협약과 비교해보면 차이는 확연하다. 협약에 따르면 장애란 ‘점진적으로 변화되는 개념으로서 장애인 개인의 손상과 더불어 타인과 동등하게 사회에 완전하고 효과적으로 참여하는 것을 저해하는 태도 및 환경적인 장벽 간의 상호작용으로 기인한 것’이라고 정의되어 있다. 즉 장애는 의학적인 소견과 함께 개인이 처한 사회적인 환경을 고려하여 규정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이 개념이 현실에 미치는 영향 또한 지대하다. 한국의 경우 등록 장애인은 전체 인구의 약 4.5% 이지만, 영국은 국민의 약 20%를 장애 인구로 간주하고 있다.
http://www.hani.co.kr/arti/society/handicapped/756480.html
우리나라는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있다. 장애를 개인적인 차원에서 이해하는데 머물고 있다. 생물학적인 요인, 기질적 요인이 전부라고 생각한다. 대부분 장애인에 대해 좁게 이해하는 편이다. 제도와 법 역시 많은 부분의 책임을 개인과 가족에게 떠넘기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통계만 봤을 때 지체장애는 95% 이상이 후천적인 사고에서 생긴다고 한다. 이 말은 우리도 한순간 장애인의 삶을 살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장애에 대한 인식은 나의 상황과 처지에 따라 다르게 반응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이다.
최근 강서구 특수학교 신설 논란이 사회적 이슈였다. 서울시 강서구에서 교육감과 주민이 참석한 가운데 특수학교 설립에 대한 토론이 있었다. 강서구 공진초등학교 폐지 부지에 한방병원이냐 특수학교 설립이냐 하는 문제였다. 그 토론 과정에서 장애 자녀를 키우는 어머니들이 무릎을 꿇었고 그 모습이 SNS상에 뜨거운 감자였다. 2013년 때부터 특수학교 설립을 추진했으나 인근 땅 값이 떨어진다는 주민들의 반대로 무산되었고 올해 한 의원이 한방병원 설립의 공약을 내면서 특수학교 설립 반대자의 힘을 실었다.
http://news.donga.com/home/3/all/20180908/91889726/1
드라마 보면서 이어진 생각이 여기까지 왔다. 이수연(이제훈)은 평범한 삶을 꿈꿨다. 보통 사람의 평범한 일상을 꿈꿨다. 보형물을 벗는다는 의미는 지금의 일상에서 느끼는 행복을 스스로 포기하는 거와 마찬가지일지도 모른다. 자신의 선택으로 죽을 수 있지만 죽음보다 끔찍했던 장애인의 삶을 거부하는 것이다. 잠깐 회상하는 장면에서 한여름(채수빈)이 위험에 빠질 때 어떤 일도 하지 못했던 자신이 끔찍했을 수도 있다. 가까운 사람도 지킬 수 없는 장애인의 삶은 지옥과도 같다.
그들은 비장애인에게 거창하고 대단한 권리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남들처럼 교육받고 싶고 누군가와 어울려 지내보고 싶다. 타인과 관계 맺고 사랑하고 싶을 뿐이다. 하고 싶은 찾고 자신 만의 일을 꿈꿀 뿐이다. 가족, 사회, 일터에서 사회의 일원으로 인정받고 싶을 뿐이다. 그들은 버스를 타고 가는 소소한 일상을 꿈꿀지도 모른다. 마음먹을 때 언제나 자유롭게 여행을 가고 싶을지 모른다. 그들은 욕심내지 않는다. 더 바랄 게 없다. 단지 존재로서 인정받고 사랑받고 싶을 뿐이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비정상과 정상으로 나누는 편협된 인식은 언제 있을지 모를 장애인의 삶에 스스로에게 비수가 되어 돌아올 수 있다. 그렇다고 그들을 동정하고 불쌍히 여기라는 말도 아니다. 어색한 동정과 시선은 그들에게 오히려 상처가 된다. 서로 다름을 포용하고 더불어 살아가는 존재로 인정하고 서로 존중하는 태도면 충분하다. 장애를 둔 부모와 반대하는 부모의 문제만은 아닐 것이다. 이러한 인식이 모아지고 모아져서 제도, 법, 사회, 국가의 시스템이나 구조 변화를 사회복지사로서 간절히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