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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잠자냥 Dec 05. 2020

아무것도 아니기를 바랐지만 '안티 히어로'가 된 사나이

찰스 부코스키, <호밀빵 햄 샌드위치>




내 앞에 뻗은 길을 볼 수 있었다. 나는 가난했고 앞으로도 계속 가난하게 살 것이었다. 하지만 딱히 돈을 원하지는 않았다. 내가 뭘 원하는지 몰랐다. 아니 알았다. 나는 숨을 수 있는 곳,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는 곳을 원했다. 무언가 된다는 생각은 소름 끼칠 뿐만 아니라 구역질까지 났다. 변호사나 지방 의원, 기술자나 뭐 그런 게 된다는 생각은 얼토당토않아 보였다. 결혼하고, 아이를 갖고, 가족 구조의 덫에 갇히고, 매일 어디론가 일하러 나가고 얼토당토않았다. 단순한 일이라도 뭔가 한다는 것, 각종 행사에 참여한다는 것, 가족 소풍이나, 크리스마스, 독립 기념일, 노동절, 어머니날…… 인간은 이런 것들을 견디기 위해 태어났다가 죽는 것인가? 차라리 접시닦이가 되어 작은 방으로 홀로 돌아가서 나 혼자 술 마시다 죽는 편이 나았다. (275쪽)


찰스 부코스키의 작품을 처음 읽었던 때는 2012년. 그 작품은 <우체국>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내가 또 부코스키의 작품을 읽게 될 줄은 몰랐다. 그런데 <우체국>을 읽은 뒤, 음 괜찮은데, 한 권만 더 읽어볼까? 해서 <여자들>을 읽었고, 그다음에 한 번만 더 하면서 읽은 책이 <팩토텀>이다. 그러고 나서 나는 그의 작품이 또 언제 번역되어 나올까 기다리는 처지가 되었다. 고백하건대, 몇 번은 그의 시가 읽어보고 싶어서 웹사이트 여기저기를 돌아다니기도 했다. 그렇게 이 안티 히어로 작가, 아무것도 아니기를 바랐지만 결국 한 사람의 위대한 작가가 된 ‘찰스 부코스키’와 그의 분신인 ‘헨리 치나스키’에 나는 빠져버렸다. 나도 모르게…

그러다가 모 출판사에서 나온 부코스키의 말년 일기 <죽음을 주머니에 넣고>를 읽으면서 어떤 부분에서는 조금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게다가 기대도 하지 않았는데 <호밀빵 햄 샌드위치>가 번역되어 나온 것을 보고는 앗! 소리를 지르며 장바구니에 바로, 그의 책을 담았다. 그의 시집도 속속 번역되어 나오고 있다. 나는 어쩌다 이 아무것도 아니기를 바랐던, 그저 여자와 술과 담배와 책만 있으면, 골방에서 글만 쓸 수 있다면 행복했다는 이 남자. 찰스 부코스키, 헨리 치나스키에게 빠져 버린 것일까?

자연스럽게 <호밀밭의 파수꾼>이 떠오르는 <호밀빵 햄 샌드위치>는 바로 내가 반해버린 한 쓸모없는 인간, ‘헨치 치나스키’의 성장기를 엿볼 수 있는 책이다. 기대했던 대로 이 책은 정말 여러 의미로 내 마음을 흔들었다. 특히 저 위의 인용 구문….  저 구절은 곧 ‘헨리 치나스키’ 아니, ‘찰스 부코스키’의 세계관이랄까, 작품 세계를 단정적으로 드러낸 게 아닐까 싶다. 나는 그리고 바로 그 생각을 사랑해마지 않는 것이다.

물론 부코스키 이전에도 그저 아무것도 되지 않기를 바라면서, ‘위대하고’ ‘훌륭하고’ ‘쓸모 있는’ 것들을 향한 역겨움을 토로하거나 성장이나 진보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 작가나 작품들은 분명 존재했다. 하지만 작품에 쏟아부은 작가의 생각과 실제 삶이 일치한 이들은 그리 많지 않다. 작품으로는 성장이나 발전, 진보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면서도 실생활은 윤택하기 그지없어서 먹고사는 것을 걱정할 필요가 전혀 없는 귀족이거나 부유한 집 자식이거나 물려받은 유산이 많거나 등등 고등유민인 작가들이 많았다. 그러한 이들이 작품에 그런 생각들을 아무리 펼쳐도 실생활이 그렇다는 사실을 알면 어쩐지 배신감이 느껴지거나 공허한 말장난, 헛소리로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찰스 부코스키는 삶과 작품이 거의 일치했다. 그러니까 적어도 그가 자신의 분신인 ‘헨리 치나스키’를 통해 ‘무엇인가가 되기를 바라는’, 아니 ‘되어야만 하는’ 인간 존재 방식에 의문을 제기하고 반기를 들었을 때, 그 의문은 결코 헛소리이거나 공허한 말장난이 아닌, 진실이자 진심으로 다가온다. 때문에 그 울림도 감동도 고스란히 전해진다.

소년 헨리 치나스키는 빈민가, 가난한 집에서 아버지의 폭력에 시달리고, 한없이 약하기만 한 어머니를 연민하며 자란다. 학교에서도 마음을 둘 만한 친구를 만나기는커녕 이방인처럼 계속 겉돌기만 할 뿐이다. 그러다가 우연히 가지도 않은 대통령 연설 장면을 마치 직접 본 것처럼 지어낸 글이 선생님의 인정을 받는다. ‘독창적’이라면서. 거기에 또 우연히 친구 따라 마신 와인 맛에 빠지면서 술을 마시면 기분이 좋아진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드디어.... 지역 도서관에서 ‘책’을 만나게 된다. D.H. 로렌스, 셔우드 앤더슨, 헤밍웨이, 헉슬리, 도스토예프스키, 투르게네프, 고리키 등등. ‘불 꺼!’ 고함치는 아버지 몰래 이불 밑에서 과열된 독서등을 켜고 책을 읽으며 헨리 치나스키는 점점 ‘마법’의 세계로 빠져든다. 숨을 만한 공간에서 술과 책과 함께 사람들과 떨어져서 홀로 있을 때 가장 평온해하는 ‘헨리 치나스키’가 그렇게 탄생한 것이다.


 나는 인간 혐오자도 아니고 여성 혐오자도 아니었지만, 혼자가 좋았다. 작은 공간에 혼자 앉아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시면 기분이 좋았다. 나는 항상 나 자신의 좋은 친구였다. (400쪽)


‘헨리 치나스키’는 그 작고 누추한 공간에서 담배와 술, 책과 문학과 함께 성장하고 늙어간다. 어떤 사람들에게, 아니 이 세상을 사는 대부분의 이른바 ‘정상적인 삶을 사는’ 이들의 눈에 헨리 치나스키는 어쩌면 아무것도 아닌 술꾼, 주정뱅이, 룸펜, 한량, 실패자, 루저일지도 모른다. ‘쯧쯧 왜 저러고 사냐’ 손가락질하며 동정할 만한 대상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바로 그 루저 ‘헨리 치나스키’가 '안티- 히어로'라고 불리는 까닭은 그가 ‘독립된 개체로서 생각하고 행동할 자유’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안간힘 쓰고 살아갔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이 우체국에서 일을 하게 될지언정 적어도 그러한 ‘의식’만큼은 잃어버리지 않으려 애쓰며 살아갔기 때문이다. 그 안티 히어로 ‘헨리 치나스키’의 웃기고도 슬프고, 쓸쓸하면서도 외롭고 어쩐지 뭉클한 성장담이 <호밀빵 햄 샌드위치>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그래, 사람들이 원했던 건 그거였다. 거짓말. 아름다운 거짓말. 그게 바로 사람들이 필요로 했던 것이었다. 사람들은 바보였다. 내게는 삶이 더 쉬워지겠지. (115쪽)

처음 맞닥뜨린 진실이란 무척 우스울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다른 사람의 진실이 나의 진실과 같을 땐, 그가 마치 그것을 나를 위해서만 말해 주는 것만 같다. 근사한 경험이었다. (216쪽)

 “현실로부터 숨어 버리면 결코 작가가 될 수 없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바로 그게 작가들이 하는 짓이지!” (375쪽)

나는 세계사에 관심이 없었다. 오로지 나의 역사에만 관심이 있을 뿐. 무슨 헛짓거리인가. 부모가 성장기를 지배하고, 마음대로 휘두른다. 그런 다음 자기 혼자 나설 준비가 되었을 땐, 다른 사람들이 제복을 억지로 입혀서 엉덩이에 총을 맞도록 내보냈다. (38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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