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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잠자냥 Feb 04. 2021

운명처럼 다가온 보물 같은 책

빅토리아 토카레바, <티끌 같은 나>



책에도 운명 같은 게 있다. 아니, 운명이라기보다는 잘 알지 못하는데도 왠지 호감이 가는 그런 책. 처음 보는데도 분위기나 느낌이 좋아서 왠지 눈길이 가고 그래서 알고 싶고 궁금해지는 그런  사람 같은 책. 그래서 급기야 읽게 되는 책. 읽고 나서는 아, 그래 역시 내 느낌이 틀리지 않았어, 확인하게 되는 책. 빅토리아 토카레바의 <티끌 같은 나>가 내겐 그런 책이었다. 처음 들어보는 작가였음에도 이 책은 왠지 눈길이 갔고 궁금했다.  아마도 내가 러시아 문학을 좋아하고, 그런 중에 현대 러시아, 그것도 여성 작가의 작품을 접한 적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 나는 러시아 문학을 좋아하고 즐겨 읽으면서도 돌아보면 단 한 번도 여성 작가가 쓴 작품을 읽은 적이  없었다. 도스토예프스키를 비롯해 톨스토이 등 대문호라는 그들의 작품 중에 그려진 러시아 여성이 정말 러시아 여성의 표본일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게다가 오늘날 러시아 여성의 모습과는 또 다를 것이다. <티끌 같은 나>의 첫 작품을  읽으면서부터 나는 그 익숙하면서도 새로운 러시아 세계를 황홀하게 거닐게 된다.   

표제작인 ‘티끌 같은 나’에는 그동안 러시아 문학 작품을 읽으면서 만나지 못한 새로운 여성이 등장한다. 천사에서 유래한 이름인 ‘안젤라’는 카자흐인 마을인 마르트노프카에서 태어났다. 한때 교사였던 어머니는 알코올 중독으로 학교에서 쫓겨나고 이제는 소를 돌보며  살아간다. 아버지는 게을러서 거의 방 안에서 나올 줄 모른다. 그런 그녀에게 이 작은 마을은 꿈을 이루기에는 한없이 좁은 우물일 뿐이다. 안젤라는 노래 부르기를 좋아하고, 가수가 되고자 무작정 모스크바로 떠난다. 우여곡절 끝에 영화 관련 일을 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알고 지내는 ‘키라 세르게예브나’를 알게 되고 그이의 집에서 가사도우미 일을 하며 기거하면서 가수가 될 날만을 손꼽아  기다린다. 드디어 오디션 기회가 주어지지만 재능보다 ‘돈’이 필요하다. 가난한 안젤라에게 그런 큰돈이 있을 리가 없고, 안젤라는 이 큰 도시에서 계속 가사도우미, 청소부, 비서, 심부름꾼 역할 등을 하며 노동에 지쳐만 간다. 청소, 다림질, 풀 먹인 셔츠가 꿈에 나올 지경이다. ‘노래라는 정체를 알 수 없는 학 한 마리를 잡겠다며 남이 싸 놓은 똥을 치우고 끊임없이 닦고 청소하느라 세월을 낭비’한다. 과연 안젤라는 자기의 꿈을 이룰 수 있을까? 

이 중편은 그야말로 ‘티끌 같은’ 안젤라가 자기의 꿈을 이루기 위해 부단히 애를 쓰는, 그러나 생각처럼 잘 풀리지 않는 과정을  지난하게 보여준다. 그런데 이 ‘안젤라’라는 캐릭터는 지금까지 러시아 문학에서 본 여성 인물과 조금 다르다. 젊고 세파에 찌들지  않은 그녀는 어떤 면에서는 순박하고 성실하면서도 돈 맛을 알지 못하고, 지금까지도 세상에서 당근이 가장 달다고 생각하는 아가씨이다. 순박하다고 해서 누군가에게 착취만 당하는 스타일도 아니다. 자기가 원하지 않는 것, 자신의 길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은 단연코 싫다고 말할 줄도 안다. 그녀의 당당한 면은 가수 오디션 장면에서도 엿볼 수 있다. 무작정 “옷을 벗으라”는 요구에  “왜요?”라고 묻는 장면이나 자신을 좋아하게 된 부잣집 남자 ‘니콜라이’에게 하는 태도만 봐도 그렇다. 가사도우미 일을 하다가 그  집의 부유한 집주인의 정부가 된다는 설정은 어찌 보면 익숙한 장면이기도 하지만 안젤라는 그 부자 남자를 이용하지는 않는다. 


키라는 니콜라이의 정부가 된 안젤라에게 부자를 낚았으니 이제는 그의 아이를 낳아 그를 오래도록 잡아두라고 말하는데, 안젤라는 되묻는다. “뭐 하러 그렇게 해요?” 사실 니콜라이 또한 안젤라가 아이를 낳을 거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돈 많은 친구들을 보면 애인들이 앞  다투어 아이를 낳았다. 그들의 돈과 안락한 생활을 아이를 앞세워 보장받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안젤라는 다르다. 아이는 언제든 또  낳을 수 있다며 아이를 낙태한다. “아이를 낳기 전에 먼저 나 스스로 다시 태어나야 해요”라고 말하는 것이다. 니콜라이는 내게  돈이 많은데 대체 왜 아이를 지웠느냐고 묻는다. 안젤라는 자신은 ‘무일푼’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부자 애인은 있지만 그의 돈은  자신의 돈이 아닌 것이다. 니콜라이를 얻은 그녀에게 그 자체가 성공이라고 말하는 이들을 안젤라는 이해할 수 없다. 그녀는 다른 사람의 성공이 아닌 자기 자신의 성공을 원하기 때문이다. 그녀 자신만의 성공, 그 길을 가기까지 그리 쉽지는 않아 보인다.  그럼에도 노동하고, 사랑하고, 자기 재능을 꽃피우고자 끊임없이 애쓴다. 그런 모습들이 인상 깊다.

이 작품의 또 다른 중심은 ‘키라 세르게예브나’가 맡고 있다. 키라는 남편과 함께 살았는데 이름은 인노켄치로, 그는 안젤라 아버지와  공통점이 많았다. 두 사람 다 모두 빈둥거리면서 아내가 벌어다 주는 돈으로 살아간다. 게다가 키라는 하나뿐인 아들을 애써서 대학  철학부에 입학시키는 데 성공하지만 그녀의 아들은 온갖 현학적인 용어나 철학 사조는 잘 알아도 무능력한 탓에 여자가 오래 붙어 있지  못한다. 때문에 안젤라처럼 순박하고 성실하면서도 일도 잘하고 재능도 있는 (그러나 돈은 없는 가여운) 아이가 자기 아들의 짝이  되면 참 좋을 것이라고 생각해 둘을 이어주려고 생각하기도 한다. 이처럼 ‘티끌 같은 나’를 비롯해 이 책에 등장하는 남자들은 몇몇  이들을 제외하고는 일하지 않고 아내가 벌어다 주는 돈으로 살아가는 무능력한 존재로 그려진다. 그렇지만 딱 거기까지라서 게으르고  무능력하지만 폭력을 쓴다든가 등등 ‘악한’ 남자는 등장하지 않는다. 때로는 그들에게 연민이 느껴질 정도이다. 그들 또한 이 작품에  나오는 여성 못지않게 인생에 시달리는 나약한 인간임이 드러난다. 그래서 내가 이 책을 좀 더 좋아하게 된 것 같다. 


키라 세르게예브나는 평생 거물을 낚으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결국 잉여 인간 취급을 받는 인노켄치와 함께 살았다. 사실 그 대단한  거물들은 막상 가까이에서 겪어 보면 하나같이 배신자에다 비열한 인간뿐이었다. 반면 인노켄치는 한결같이 믿음직했다. 즉 완벽한 사람은 없다. 리더십이 있다는 것은 그만큼 단점이 많다는 걸 의미했다. 무엇이 더 중요한지 수도 없이 갈등하게 된다. 옷으로  비유하면 리더십은 남에게 보여 주기 위한 외출복이고 인품은 평상복이다. 물론 선택은 개인 몫이다. (‘티끌 같은 나’, 27쪽)

그녀는 두 부류의 남편이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첫 번째 부류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사람이고, 두 번째 부류는 돈 많은 남자였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남편은 아내한테 붙어서 살아간다. 그러면 여자는 둘이서 함께 움직이는 느낌이 든다. 물론 힘든 일이다. 반면 돈  많은 남자는 자기가 원하는 대로 행동하고 무례하며 결국은 아내를 버린다. 무거운 짐을 홀로 지고 가는 당나귀로 살 것인지,  자기를 마구 짓밟고 척추를 부러뜨려도 참고 살 것인지 선택은 각자의 몫이다. 물론 지조와 성공 두 가지를 다 갖고 싶은 게 사람  마음이다. 하지만 하나를 가지면 하나를 잃는 법이다. (‘티끌 같은 나’, 96쪽)


나는 첫 번째 작품인 ‘티끌 같은 나’보다 두 번째 작품 ‘이유’가 좀 더 좋았다. ‘이유’의 주인공 또한 여성이다. ‘마리나  이바노브나 구시코’는 바쿠의 평범한 러시아 가정에서 태어나서 평범한 청소년기를 지나 교육대학원에 들어가 교사가 된다. 사랑하는 남자를 만나 결혼하지만 삶은 그리 쉽지 않다. 남편은 자신을 온몸으로 사랑해주고 일도 열심히 하는데 그녀는 살아가는 게 버겁기만  하다. 남편과 사랑을 나눌 때도 어디 가서 돈을 구할지, 내일 아침에는 뭘 만들지 시험을 어떻게 볼지 등을 고민한다. 그러던 중에  아들이 태어나고 딸이 태어나고 그녀의 삶은 한층 더 버거워진다. 더는 이렇게 살 수 없다고 생각한 마리나는 남편에게 섹스를 거부하는데, 그러자 남편은 곧 그녀를 떠난다. 


모성애는 축복이라고들 한다. 하지만 돈과 집안일을 도와줄 사람이 있을 때라야 비로소 행복을 느낄 수 있는 법이다. 이 모든 것이 있고  아이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아무것도 없이 힘만 든다면 스스로 사람이 아닌 비 맞는 한 마리 말이라고 느낄 수밖에 없다.  (‘이유’, 182쪽)



젊은 나이에 남편이 떠나버리고 홀로 남겨진 마리나. 아이들을 키우기 위해 억척스럽게 살아간다. 그러는 중에 루스탐이라는 새로운 사랑도 찾아온다. 이 사랑은 그녀를 행복하게 만든다. 하지만 인생이 그렇듯이 모든 게 그녀 뜻대로 흘러가지는 않는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보니 아들도, 딸도 자기가 바란대로 자라지 않았고, 심지어 알코올 중독 며느리에 범죄와 연루된 사위까지 가족이 되어 있다. 왜 다른 이들은 사람답게 사는데 내 자식들만 이 모양일까? 도대체 내가 무슨 실수를 한 것일까? 내가 뭘 그렇게 잘못한 것일까?  러시아 지식인들이 자주 하는 질문인 ‘누구의 잘못인가?’ ‘그리고 '무엇을 할 것인가?’를 떠올려 봐도 이미 늦었다. 그토록 사랑한 루스탐과도 종교 이유로 결혼하지 못하고 이제 완전히 홀로 남겨진 마리나는 죽음을 생각하기에 이른다. 그녀는 그렇게 죽고 말  것인가.

‘이유’의 마리나는 조금 자기 멋대로인 구석이 있지만 억척스러우면서도 부지런하고 따뜻한 사람이다. 그런 그녀의 성품이 이 작품에서 두 사람의 인생(아니 여러 사람을)을 구한다. ‘루스탐’과 ‘안나’가 그렇다. 어떤 면에서는 절망에 빠져 죽고 싶은 순간에 루스탐이나 안나가 마리나를 살게 해주기도  했다. 마리나와 안나의 연대가 이루어지는 장면에서는 마음속에 따뜻한 바람이 불어오는 것 같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작품에서 내  마음을 울린 것은 루스탐과 마리나가 재회하는 장면이다. 루스탐과 마리나의 관계는 체호프의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이나 윌리엄 트레버의 단편 ‘그 시절의 연인들’을 떠올리게 한다. 불륜이기에 헤어질 수밖에 없었지만 오랜 세월이 흘러  다시 만난 그들. 젊음도 청춘도 모두 사라진 뒤 생의 온갖 고통을 겪고 다시 만난 그들의 모습에서는 서글픔이 밀려온다. 


루스탐은 마리나를 쳐다보았다. 그녀에게서 과거에 있던 무언가가 사라졌다. 다름 아닌 젊음의 눈부심이었다. 대신 희미하나마 슬라브인 특유의 선이나 파란 눈은 여전했다. 루스탐은 서서히 그녀에게 익숙해지고 있었다. 삶은 그들을 찌그러뜨리는가 하면 포옹도 하고 버스에서  만난 집시들처럼 소중한 것을 훔쳐 달아났다. 하지만 그들은 살아 있고 아픈 데도 없으며 몸 안에는 마트료시카처럼 옛 모습이 숨겨져  있었다. (‘이유’, 317쪽)


루스탐과  마리나뿐만이 아니다. ‘첫 번째 시도’의 ‘마라’와 ‘디미치카’, 서로 헤어졌지만, 중년이 되어 한 사람은 아픈 몸이 되고,  그런 그 사람 곁에서 아무렇지 않은 척 돌봐주다가 허무하게 돌아가는 또 다른 한 쪽의 모습. 그 장면 또한 연민 가득하다. 수면제 없이 잠을 자지 못하는 전남편이 약병을 놓고 간다. 그걸 전해주기 위해 자신의 차림새는 전혀 생각하지 못하고 거리로 나가  전남편의 모습을 쫓는 마라. 마라는 열차 맞은편에서 그를 발견한다. 그는 시선에 초점이 없다. 자신과 함께 있을 때는 절대 볼 수 없는 모습이다. 그녀와 함께 있을 때는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애쓴 거였다. 하지만 혼자가 되자 기운이 빠지면서 절망과  고독이 그를 덮친 것이다. 디미치카는 아내가 배신해도, 뻔뻔해도, 반송장이어도 그녀만 있으면 됐다. 무너진 남편의 모습, 늙어버린  모습을 보고 마라는 그를 부르고 싶었지만 그런 그가 너무 안쓰러워 그저 목이 메어 온다. 한때 사랑했지만 헤어진 채로 늙어버린 두 사람이 재회하는 장면은 인생의 모든 고단함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것 같아 왠지 눈물이 난다.

이렇게 진지하게 썼지만 <티끌 같은 나>는 뜻밖에 웃음이 터지는 장면도 많다. 위트와 유머러스함도 빛난다. 조용조용 담담하게 오늘날 러시아 여성의 꿈과 욕망 삶을 이야기한다. 그러면서도 섬세하고 다정한 어조로 인간 자체에 대한 연민을 잃지 않는다. 어떤  문장은 시처럼 아름답다. 그래서 이 리뷰에서는 인용이 다른 때보다 많다. 그 문장들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싶어서이다.


10년이라는 세월 동안 우리의 사랑은 지치고 매일 입는 작업복처럼 무덤덤해졌다. 하지만 나는 새로운 삶을 시작하지 않을 것이며 내 미래는 스텝 지역처럼 길고도 단조로울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우리는 그들을 배웅하고 돌아오는 동안 서로 낯선 사라처럼 말없이 걷기만  했다. 어쩌면 남편 역시 나와 같은 생각을 했는지도 모른다. 우리 아이는 잠에서 깨어나 울고 있었다. 내 삶이 딱해서 아이가  우는 것만 같았다. (‘첫 번째 시도’, 358쪽) 

바다 멀리, 한편으로는 그리 멀지 않은 깊은 바다에 배가 떠 있었다. 선장이 망원경으로 바닷가와 그곳에서 조용히 회전하는 발레리나를  발견했다. 해가 지기 시작했고, 대지와 바다, 슬픔, 새, 사람 그리고 그날 하루와 작별 인사를 했다. 하늘 곳곳이 분홍색과  산딸기 색으로 어지러이 물들었다. 어찌나 아름답고 충만한지 누군가와 이별을 앞둔 것 같았다. (‘남이랑 우리가 무슨 상관이죠’.  411쪽)

 
요즘  나는 신간을 사보면 곧 중고로 되판다. 넘치는 책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처음에 이 책도 그럴 거라고 생각하면서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나는 이 책을 다 읽은 뒤 책꽂이에 잘 꽂아두었다. 세월이 흘러 읽으면 또 다르게 다가올 것 같다. 그때는 문장, 문장 연필로 밑줄을 그을 것이며, 내가 만일 필사를 한다면 빅토리아 토카레바의 이 작품들을 할 것 같다. 이 이의 다른 작품을 장바구니에 바로 담은 것은 말할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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