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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잠자냥 Dec 03. 2020

살구 더미에서 시작된 아름답고도 놀라운 이야기

리베카 솔닛, <멀고도 가까운>




당신 앞에 살구 한 알이 놓여있다. 아니, 살구 더미라고 하자. 당신은 그 살구를 바라보며 무슨 생각을 할까? 그 살구로 무엇이든 이야기를 해보라고 한다면, 당신은 어떤 이야기를 펼쳐놓겠는가? 나는 살구에 대한 특별한 기억이 없다. 그렇기에 살구를 한참 바라본다 하더라도 이렇다 할 이야기가 떠오르지 않을 것 같다. 그럼에도 ‘살구’로 무엇이든 이야기를 해야 한다면, 나는 아마도 상상으로 이야기를 만들어내야만 하리라. 그렇다 하더라도 그 안에는 내가 말하고 싶은 것들, 그 이야기를 통해 누군가와 소통하고자 하는 내용은 분명 담겨 있을 것이다.

리베카 솔닛의 <멀고도 가까운>은 바로 그 ‘살구’ 한 알, 아니, 살구 더미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녀는 살구에 대해 아주 많은 이야깃거리가 있는 듯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살구는 어머니의 살구나무에서 수확한 살구들이다. 그리고 그 어머니는 이제 늙고 병들어 솔닛을 비롯한 가족의 도움 없이는 홀로 살아가기가 어려운 상태이다. 알츠하이머를 앓는 어머니는 나날이 상태가 나빠져만 간다. 어머니와 나, 즉 그녀 사이가 다정하고도 애틋했다면 어머니의 병은 한결 더 아프고 안타까우며 서글프게 다가왔으리라. 물론 다정하고 사이좋은 관계가 아니었대도 부모의 병 앞에서 자유로운 자식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그녀가 ‘살구’에서 시작하는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어머니와의 관계가 그리 순탄하지만은 않았음을 곧 알게 된다.

아니, ‘순탄’ 하지 않은 것을 넘어서서 그녀는 어머니와의 관계에서 많은 고통을 받아온 듯하다. 딸의 재능과 외모를 시기하고 질투하는 어머니, 그래서 통제하고 다스리고 늘 비난과 흠잡는 말을 쏟아내며 딸을 괴롭히는 어머니라니! 그럼에도 응급 상황이 닥치면 다른 형제-아들들-가 아닌, 딸에게만 전화를 걸어 도움을 청하는 어머니. 솔닛은 그런 어머니의 심리 상태가 궁금해서 왜 다른 형제들에게 전화를 걸지 않고 늘 나만 찾느냐고 질문한다. 어머니의 대답은 이렇다. “음, 너는 딸이잖니. 너는 온종일 집안에만 있으면서 아무것도 안 하잖아.” 솔닛은 어머니의 이런 말에 작가의 삶은 그렇게도 받아들여질 수 있으리라 이해하지만, 평생을 이런 식으로 이야기하는 어머니와 함께 살았다면 어찌 상처 받고 고통받지 않았으랴.

그러나 우리 삶의 모든 고통이 그렇듯, 그녀의 고통도 단지 그저 ‘고통’만으로 끝나지는 않았다. 그녀는 어머니와의 관계에서 겪는 어려움, 고통을 피하고자 어린 시절부터 책과 글쓰기를 도피처로 삼았다. ‘어린 시절의 나는 쉬지 않고 책을 읽으며 말은 거의 하지 않았다. 의사소통의 가치를 회의했고 무시당하거나 벌을 받을까 봐, 무언가를 들킬까 봐 두려워했다’ (99쪽) 그랬기에 그녀가 작가가 될 수 있었고, 이토록 먼 나라의 나조차도 그녀의 글을 읽고 이렇게 깊은 감명을 받고 있지 않은가.

‘고통’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니, 이 책에서 읽은 또 다른 인상 깊은 일화가 떠오른다. 솔닛은 의대생이었던 체 게바라가 동료 의사 그라나도와 함께 나병 환자촌을 돌아다니며 겪은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그 이야기에서 그녀는 나병과 고통의 상관관계를 발견한다. 나병은 박테리아로 감염되어 손, 발, 피부 등에서 아무런 감각을 느끼지 못하게 한다. 고통을 느끼는 능력을 상실하는 것이다. 그런 감각이 사라지기 때문에 돌보지 못하게 된다. 손, 발, 피부가 문드러져가도록 좀처럼 느끼지 못하기에 그 아픈 부위를 돌보지 못하는 것이다. ‘느껴지지 않는 것은 선뜻 돌봐 줄 수가 없다. 당신의 손발이 당신에게 잊힌다. 반면에 고통은 지켜준다.’(153쪽)라고 솔닛은 말한다. 고통이 있기에 자신을, 삶을, 돌볼 수 있다는 언뜻 보면 단순하지만 깊은 통찰력이 담긴 이야기를 체 게바라의 일화를 통해 우리에게 전하는 것이다.

이렇듯 <멀고도 가까운>은 ‘살구’에서 시작되어 아이슬란드, 얼음, 프랑켄슈타인, 메리 셀리, 나니아 연대기, 당나라 화가 우다오쯔, 사드, 체 게바라, 알츠하이머, 한센병, 암, 싯다르타, 북극곰 그리고 다시 살구 등 전혀 관련 없을 듯한 것들을 엮어 한 편의 아름답고도 감동적인 이야기를 함으로써 마침내 어머니를 이해하고, 자신의 고통 또는 상처를 치유하며 더 나아가 이 이야기를 듣는 이들에게도 어떤 치유의 힘을 불러온다. 때문에 그녀의 이야기는 힘이 세다. 자신의 목숨을 지켰던 셰에라자드의 그 천일 동안의 이야기처럼 말이다.

책을 처음 받아 들었을 때는 그저 알츠하이머를 앓는 어머니와의 평생의 불화와 화해를 담은 이야기일까? 그렇다면 너무 진부한데.... 했으나 그것은 순전히 나만의 기우였다. 온갖 소재들을 씨줄과 날줄처럼 엮어 풍부하고도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전하고, 그 안에는 말 그대로 ‘읽기’와 ‘쓰기’ ‘고독’과 ‘연대’, 즉 함께 살아가는 삶에 대한 감동적인 이야기가 담겨 있다.



도서관은 세상으로 가득 찬 은하수다. (99쪽)

글쓰기는 누구에게도 할 수 없는 말을 아무에게도 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모두에게 하는 행위이다. (100쪽)

우리 모두는 눈앞의 인간관계보다는 깊은 어딘가에서 홀로 지내는 것이 아닐까? (100쪽)

인간이 자신의 몸을 하나의 전체로 인식하는 데 있어 고통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156쪽)

충분히 깊게 이해한다는 것은 일종의 용서이자 사랑이다. 그건 단지 결점을 덮어주는 것과는 다르고, 무언가를 과시하려는 것도 아니다. (341쪽)

용서란 대부분의 경우 다른 누군가가 아닌 당신 자신에게 주는 것이니까. (342쪽)

삶은 온갖 사연으로 가득한 은하수 같은 것이고 우리는 지금 우리가 누구이며 어디에 있는지에 따라 그때그때 몇 개의 성운을 고를 수 있을 뿐이다. (359쪽)


이렇듯 문장 또한 아름답다. 몇 가지만 옮겨도 그 자체로 어떤 하나의 명언, 또는 잠언이 될 정도이다. 때문에 나는 이 책을 덮을 즈음 삶을 조금은 더 사랑하게 되고 곁에 있는 사람들을 조금은 더 이해하게 되며 사랑하게 되더라. 오랜만에 내 주위의 아끼고 사랑하는 이들에게 한 권씩 선물하고 싶은 책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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