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짝
손을 들어 흔들어 보세요.
맞은편으로 지나는 여성이 그가 들이칠 줄 안다는 듯이 걸음을 옮긴다. 그는 그녀를 의식하지 않고 자연스레 발걸음을 옮긴다. 나는 저러한 신호를 무시한 채 여전히 걷는다. 특별히 걸음을 옮겨야 할 상황을 제외하곤 말이다. 왜 아무도 의문을 갖지 않는 걸까? 나는 단 한 번도 내세운 적 없는 질문을 던져본다.
그러니까 그는 영웅일 거야 아니 그는 그저 부끄러운 것이 아닐까?
엉터리 질문들을 접은 지 꽤 오래됐다. 붕대를 칭칭 감고 하루 종일 저린 다리를 끌어 안아야 하는 수고를 안다면 절대 저런 행동은 하지 않을 테니 말이다. 그 사이에 그들이 그토록 갈망하는 인간다움에 대하여 A4용지를 가득 채울 정도의 이론을 내세우는 편이 편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편이 나은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쭈욱 이런 상태로는 말이다.
문명화된 정보화 시대에 이런 구닥다리 이론은 어쩌면 영영 잠든 채 깨어나지 못할지도 모른다. 인간의 일자리를 기계가 대신 채우고, 인공지능이 인간을 위협하고 있는 시점에서 인간다움을 이어나가기 위한 거룩한 작업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는 반사회적 기계 같은 사고일 테니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나는 그들이 전파하는 그 위대한 작업을 두고 눈을 떼지 못한다. 사고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신호는 대게 인간의 것과 거리가 멀다. 대체로 인간은 알아듣거나, 알아보지 못한다. 그럼에도 하루 종일 기계처럼 신호가 오간다. 나는 어줍짢게 그 언저리에서 신호에 대해 연구하는 연구가 정도가 되었다. 그 모든 신호들을 무시한 채로 말이다. 나는 이 부분에서 꽤 놀라운 인간의 진보라고 설득력을 더해 이론을 쌓아가는 중이다. 시간을 나누고, 더해가는 순리 역시 같은 선상에서 바라보고 있다. 과정이 순탄치 않다.
요즘엔 SF영화에서나 볼 법한 타임머신과 같은 미래진보적 논리의 위험성에 대해 연구 중이다.
탐구와 탐미라는 두 단어를 두고 고민한다.
아니, 인간다운 편안한 상태란 무엇인가에 대해 떠올린다.
이론은 생각보다 성행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본성이란 본디 선하게 흐르기 마련이니 말이다.
참고로 운전 면허는 만 18세 이상이 되어야 취득 가능하다. 부녀자 및 노약자, 어린 아이에게는 꿈같은 이야기다. 이러한 간단한 원리조차 이해하지 못한 채 쉴 새 없이 오가는 신호에 대하여, 나는 통행이 일정한 고속도로 위 가변차로의 달콤한 휴식을 떠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