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이질성'으로 '공공성'을 표현해내다

[예술과 철학] 『브릿징 홈, 런던』의 '장소 특정성'과 '공공성'

서도호 ‘Bridging Home, London’.  [Image courtesy of the artist=Victoria Miro Gallery]
서도호 작가의 『브릿징 홈, 런던』(이하 '브릿징 홈').
런던의 웜우드 스트릿(Wormwood Street) 육교 위에 전시되었던 공공미술 작품이다.


   강력한 토네이도에 휩쓸려 날아다니던 한옥 건물 한 채가 엉뚱하게도 영국 도심 한복판에 불시착한 것일까. 작고 소박한 모습의 한옥 건물은 주변의 거대하고 육중한 현대식 건물들과 전혀 어울려 보이지 않는다. 한옥을 둘러싸고 있는 푸른 대나무 숲은 아스팔트 도로와 콘크리트 벽면, 두꺼운 유리창들이 늘어선 도시적인 풍경 속에서 생뚱맞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게다가 뒤쪽의 고층건물들이 모두 하늘을 향해 끝없이 솟아오르려는 듯한 형상을 취하고 있다면, 『브릿징 홈』은 오히려 땅을 향해 미끄러져 내려가려는 듯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이처럼 『브릿징 홈』은 주변의 것들과 너무나 대조되는 모습을 띠고 있기 때문에 배경 장소 속으로 쉽게 녹아들어가지 못한다.


   주변 환경과의 ‘이질성’ 또는 ‘부조화’는 종종 공공미술 작품이 실패하는 원인으로 지목된다. 시카고 딜레이 플라자에 설치되었던 피카소의 『Untitled』 작품이 대표적인 예이다. 흔히 ‘Chicago Picasso’로도 불리는 해당 조각 작품은 주변 공간의 성격과 맥락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자의적으로 설치되었다는 이유로 ‘Plop’ Art라는 조롱을 받았다. 미술관에 있어야 할 작품이 엉뚱한 곳에 퐁당(plop) 떨어졌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비판을 수용하여 오늘날의 공공미술 작가들은 작품을 창작할 때 그것이 놓일 공공장소와의 연결성(이른바 '장소 특정성')까지도 고민한다.


   그렇다면 다음과 같은 의문을 던질 수 있을 것이다. 『브릿징 홈』은 장소 특정성을 완전히 무시하고 있기에 '공공성'을 결여한 작품이 아닐까? 즉, 주변 환경과 조화로운 방식으로 통합되지 못하기에 ‘실패한’ 공공미술의 사례로 평가해야 하지 않을까? 필자는 이러한 의문에 대해 “전혀 그렇지 않다.”라고 답할 것이다. 『브릿징 홈』은 장소 특정성을 무시하는 작품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을 둘러싼 공간과 적극적으로 관계를 맺는 작품이라고 이해해야 한다.


   예술의 내적 자율성과 완결성을 강조하는 이른바 '모더니즘' 사조의 작품들과는 달리, 『브릿징 홈』은 작품 그 자체만으로 의미가 완성된다고 볼 수 없다. 『브릿징 홈』의 의미와 가치는 그것이 놓인 특정한 장소적 맥락 속에서만 파악할 수 있다. 만약에 『브릿징 홈』이 전혀 다른 성격의 장소에 설치된다면 작품 본연의 의미가 상실되거나 변질될 것이다. ‘장소 특정적’ 미술이 ‘특정한 장소나 공간과의 관계 속에서만 성립하는’ 미술을 의미한다고 보았을 때, 『브릿징 홈』은 이러한 정의에 잘 부합하는 작품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브릿징 홈』이 런던의 도심에 위치해 있을 때에만 드러나는 의미란 무엇일까? 『브릿징 홈』은 런던 지역 이주자의 역사를 돌아보고자 런던 공공예술축제 '아트 나이트(Art Night)'와 도시조각 프로젝트(Sculpture in the City)의 공동 발주로 제작된 작품이다. 이러한 제작 배경을 고려할 때, 해당 작품은 낯선 도시에 새롭게 정착하려고 시도하는 사람들이 경험하는 문화적 차이와 긴장감을 표현한 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어쩌면 아래로 점점 기울어져가는 듯한 ‘집’의 형상은 생소한 문화권 속에서 배제되고 주변화 될 수밖에 없는 이들의 불안정한 생활나타낸 것인지도 모른다.


   이러한 작가의 의도는 다른 장소, 이를테면 사적 주거공간인 한옥 공동체 한가운데에서는 성취될 수 없었을 것이다. 토네이도에 휩쓸리기 이전에 자신의 고향이었을 한옥마을에서 『브릿징 홈』은 더 이상 ‘타자’나 ‘주변인’의 역할을 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낯선 곳으로 이주해 온 이방인의 정체성’은 지극히 현대적이고 인위적이며 서구적인 런던의 도심 풍경 속에서(또는 이와 유사한 성격의 장소에서) 가장 잘 표현되는 것이다.



   이때 ‘타자’, ‘소수자’, ‘이방인’을 상징하는 『브릿징 홈』은 자신이 위치한 낯선 환경과 관계 맺기를 거부한 채 고독한 모습으로만 서 있지 않다. 『브릿징 홈』은 다리 한가운데에 서서 자신을 지나치는 런던의 시민들에게 대화와 소통을 요청하고 있다. 서도호 작가는 도시의 이방인들도 자신의 목소리를 표출하기 원한다는 것, 낯선 세계와 소통하기를 원한다는 것을 자신의 작품을 통해 드러내 보이고자 했을 것이다. 작품이 건물과 건물 사이를 ‘이어주는’ 육교 위에 설치되었다는 것, 작품의 제목이 ‘Bridging(이어주는)’ Home이라는 점에서 이를 유추해 볼 수 있다.


   그리고 바로 이 대목에서 공공미술의 토대가 되는 ‘공공성’에 대한 바람직한 해석이 도출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공공성’은 단순히 특정 공동체 속 다수의 사람들이 공유하는 가치나 이해관심을 의미하지 않는다. 진정한 공공성은 저마다 다른 목소리를 가진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고, 일치하지 않는 의견을 대화와 소통을 통해 조절해 나감으로써 도달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의미의 ‘공공성’이 달성되기 위해서는 결코 일방적으로 배제되는 ‘타자의 목소리’가 있어서는 안 된다. 『브릿징 홈』은 은폐되고 묵살되기 쉬운 ‘타자의 목소리’를 오히려 전면에 내세운다는 것, 그리고 이를 통해 진정한 ‘공공성’의 의미를 개시한다는 점에서 성공한 ‘공공'미술 작품이라고 할 것이다.





첫 번째 이미지 출처: 화제의 서도호 런던 설치작품 ‘올해의 공공미술’에 선정 (newspim.com)

두 번째 이미지 출처: 런던 한복판 육교에 한옥 한 채 날아와 걸렸네 (chosun.com)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