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딸 원이가 국제학교에 붙으며 시댁에서 쭈구리였던 나의 위상이 반등하여 하늘을 콕콕 찌르던 시기였다. 시어머니가 나의 얼굴을 빤히 보더니,
"너 기미가 심하다? 피부과 티켓 끊어줄까?"
육십 대 후반인데도 피부만큼은 탱글한 시어머니의 반가운 제안이라 신이 나 좋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나이 마흔에 처음으로 피부과에 가서 관리를 시작했다. 원장님은 할아버지였는데 얼굴엔 주름하나 없었지만 목이 자글자글했다. 얼굴과 목의 이질적인 피부결을 보며 레이저가 효과가 있긴 하구나 생각하며 설레는 마음으로 시술받았다. 기미를 제거하는 레이저는 누군가 내 눈밑에 불을 지른 듯한 열감과 통증을 주었다.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자고 내가 이러고 있나, 새로 시집갈 것도 아닌데 하는 현타를 세 번 정도 때려 맞자 시술이 끝났다. 나는 끙끙 거리며 관리실에서 석고팩으로 열감을 식혔다. 이 짓을 9번이나 더 해야 한다고?! 집에 돌아온 날 밤, 얼굴엔 시커먼 딱지가 얼룩덜룩 생겼다. 이 꼴로 애들 등하교를 어떻게 시키지? 동네방네 레이저 시술을 광고하는 꼴인데 어쩌나 고민하다 나다운 선택을 했다. 내 얼굴을 보고 놀라는 학부모들에게 레이저 시술을 맞았노라 호탕하게 밝히며 이것이 부의 상징이 아니겠냐. 과시하려고 모자도 안 썼노라 너스레를 떨며 껄껄 웃었다.
그렇게 삼주에 한 번씩 피부과를 가니 어느덧 그곳은 나의 영역이 되었고 주변 학부모 서넛에게 입을 털어 티켓을 끊게 만들자 날 향한 원장님의 추앙이 시작되었다. 내 피부결을 극찬하며 타고난 살결이라고 말해주거나 간호사를 긴급히 불러,
"이지속 씨 오로라 엠플 서비스!"를 절도 있게 외쳤다. 오로라 뭐?! 내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자 간호사는 우리 원장님처럼 고객한테 퍼주는 분이 없다며 원장과의 완벽한 콤비플레이를 보여줬다.
난 원장의 쇼맨십을 보며 저러니 땅값 비싼 이곳에 신축건물의 두 개층을 유지하며 운영하는구나 생각했다.
레이저 시술을 할 때면 내가 소개해준 학부모 뫄뫄씨도 열심히 관리하고 있다며 고맙다는 인사치레도 잊지 않았다. 거기에 내가 끊은 티켓으로는 추가 비용을 내야 하는 스콜피온 시술을 특별히 해주겠다며 허허 웃는 것이 아닌가.
당신의 쇼맨십, 마음에 들어요.
더 이상 피부과는 단순히 관리를 위한 곳이 아니었다. 나의 자존감을 마구 올려주는 칭찬봇 할아버지의 멋들어진 쇼맨십을 관전하는 곳. 일상의 힐링 그 자체였다.
남편은 능구렁이 노인네의 상술이라고 했지만 그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확 울쎄라, 써마지 질러버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