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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속 Jun 03. 2022

악플러를 잡아라

단편소설 모음집 첫 번째 이야기

새벽 두 시, 스마트폰 댓글 알람이 정옥의 귀로 날카롭게 꽂힌다. 그녀는 어둠을 밝히는 휴대폰 액정 불빛에 눈이 부셔 미간을 찌푸리며 바라보다 깊은 한숨을 내쉰다. 또다시 그녀의 블로그에 악플이 달렸다. 악플은 3일에서 4일 간격으로 새벽녘 원색적인 짧은 글귀로 정옥의 심기를 거슬리게 했다. 오늘의 악성 댓글은 ‘정옥이는 난쟁이 똥자루’였고 늘 같은 패턴으로 악플은 3분 안에 지워지곤 했다. 80년대 상고를 졸업해 수학을 곧잘 했던 정옥은 보험회사에 경리로 취직을 했으나 변해가는 시대에 발맞춰 나가질 못했다. 정옥이 컴퓨터로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전원 버튼을 눌렀다 끄는 것, 모니터 속 마우스 커서로 원을 동그랗게 그리며 패드 위를 박력 있게 움직이는 것뿐이었다.

 그녀가 3G 터치폰을 쓰다 젊은 강사들을 따라가 신형 스마트폰으로 바꾼 건 최근 일로 그녀는 자신의 구글 계정과 이메일 주소, 어플 등을 모두 강사들에게 부탁할 수밖에 없었다. 정옥은 주로 ‘액정이 너무 작아 잘 안 보이네. 50대가 되니 눈이 침침해요. 쌤이 이것 좀 해줄래요?’ 등의 말로 기계치임을 숨기곤 했지만 정옥이 스마트폰을 바꾼 첫날, 원장실에서 젤 네일로 멋을 부린 긴 손톱 끝으로 액정을 쿡쿡 찌르며 폰이 고장 난 것 같다. 전화받기가 안된다고 하는 푸념을 엿본 몇몇 강사들로 인해 이미 주변에선 그녀가 다룰 수 있는 기계라고는 헤어드라이어가 전부라는 말이 나돌 정도였다. 그런 그가 스스로 힘겹게 운영하는 학원 홍보 블로그에 악플이 달리고 있으니 환장할 노릇이었다. 지적인 날 선 비판의 댓글이라면 지방 소도시에서 영어학원을 운영하며 제법 원생을 거느리고 있는 그녀의 성공을 질투한 이들의 일그러진 자격지심으로 치부하며 강사들 앞에서 푸념하는 척 해결책을 함께 모색해 볼 수 있겠지만 그럴 수 없었다. 블로그에 달린 댓글이 순식간에 지워지기도 하거니와 내용 자체가 천박해 자신조차도 남과 공유하는 것이 꺼려졌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정옥이 젖은 짝짝이’나 ‘정옥이 입에서 똥내 폴폴’ 같은 저급한 표현들로 이를 무시하지 못하고 하루 종일, 기분이 나쁜 자신에게까지 화가 날 정도였다. 하루는 ‘정옥이는 유부남 킬러’라는 악플이 달리자 자신의 휴대폰을 집어던지는 제스처를 하며 분노에 부들거리다, 악플러를 잡겠다는 일념으로 사이버수사대의 도움을 받기 위해 컴퓨터로 인터넷 검색창을 더듬거렸지만 아무리 키보드를 두드려도 영자만 찍혀 더 스트레스를 받은 날도 있었다.  

  네이버 아이디 ‘하마’ 그녀가 포착한 악플러의 단서 전부다. 정옥은 토끼도 기린도 고양이도 아닌 왜 하마일까 곰곰이 생각했다. 악플러는 하마처럼 덩치가 큰가? 아니면 하마처럼 하품할 때 입속이 훤하다 못해 목젖까지 보이는가? 하마, 그 망할 하마만이 하루 방문자가 5명 내외인 정옥의 블로그에 악의적인 댓글을 달고 있다. 정옥은 일급 청정수를 흐리는 미꾸라지 같은 하마를 찾아내 법의 심판을 받게 하겠단 각오로 잠자리에서 부스스 일어났다. 정옥은 미꾸라지는 늪이나 논 혹은 농수로 등의 진흙이 깔린 곳에서만 서식한다는 사실을 까맣게 모르는 듯 ‘미꾸라지 같은 하마 새끼’라고 혼잣말을 하며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정옥이 하마의 댓글을 스마트폰으로 읽으며 액정을 검지로 툭툭 건드리자 화면이 하마의 블로그로 넘어갔다. 그녀의 심장이 두근거렸다. 지금껏 악플이 달릴 때마다 나름의 시도를 해봤지만, 하마의 블로그까지 들어온 것은 처음이었다. 정옥은 오늘이 기회라고 생각했다. 만약 손가락을 잘못 놀려 엉뚱한 화면이 나온다면 자기혐오에 빠질 것만 같아 손끝을 조심히 움직였다. 악플러의 블로그 분명 이곳에 범인에 대한 단서가 있다. 정옥은 야심한 밤 치킨을 뜯으며 TV로 보았던 미국 수사물 드라마를 떠올렸다. 마치 자신이 드라마 속 미모에 지성까지 갖춘 금발의 요원이라도 된 듯 새초롬한 표정을 지으며 액정을 뚫어지게 바라봤지만 블로그에는 그 어떤 게시물도 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직감적으로 자신에게 앙심을 품고 있는 자의 소행이란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녀는 달아난 잠을 뒤로하고 자신의 반백 년 인생에서 존재했던 적들을 반추해 보았다.

  용의자 1 로즈쌤, 박장미는 정옥이 막 개원을 했을 때 학원에 큰 도움을 준 개국공신으로 정옥과는 고등학교 동창이었다. 호주인과 결혼하며 한국을 떠났던 장미는 결혼생활 26년 만에 이혼으로 고국으로 돌아왔다. 원생이 열 명도 채 되지 않던 학원 초창기에 월세를 함께 걱정해주고 자리가 잡힐 때까지는 정해진 월급도 받지 않고 남는 수익을 정옥과 나누기로 한 진정한 친구였다. 그 시절 차량 운행 기사도 둘 수 없어, 장미는 공강 시간을 쪼개 자신의 카니발 차량으로 아이들을 픽업했다. 그러다 가벼운 접촉사고가 났고 장미의 과실로 몇십의 합의금을 상대 차량에 물어줘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장미는 그래도 정옥이 자신을 외면치 않으리란 실오라기 같은 희망의 끈을 쥐고 있었다. 정옥도 내심 자신에게 의지하려는 장미의 심산을 이미 꿰뚫고 있던 터였다. 호주인 남편을 두고 한국인 이민자와 눈이 맞아 무일푼으로 쫓겨나듯 이혼당한 장미를 안타깝게 생각해 자신이 꾸리는 일터로 부른 건 정옥이었다. 오십 줄, 무경력에 편의점이 아니고서야 영어 몇 마디 할 줄 안다고 장미를 반갑게 여길 업장은 한국에는 없다고 생각한 정옥은 그런 장미를 거둔 자신이야말로 시궁창 같은 장미의 인생에 드리운 한 줄기 고귀한 빛이 아닐까 생각했다.

  장미는 사고를 수습하고 학원으로 돌아와 머쓱한 웃음을 지으며 정옥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래도 사람 안 다친 게 어디야. 정말 가벼운 접촉사고였다니까. 내 잘못도 있으니 정옥이 네가 다 돈을 내는 건 아닌 것 같아. 내가 40만 원 보탤 터이니 나머지는 네가 내줘.”

정옥은 장미의 태도가 뻔뻔하다고 생각했다.

  “장미야 말은 바로 해야지. 네가 보태는 게 아니고 내가 널 도와주는 거잖아.” 정옥은 6번의 쌍꺼풀 수술로 도무지 눈꺼풀의 쓰임을 다 하지 못하고 축 늘어진 눈꼬리로 장미를 매섭게 보자, 장미 역시 화가 솟구쳤다.

  “너야말로 말은 바로 해야지. 내가 누구 일을 돕다 사고가 났는데? 네 학원 일이잖아!”

  감정이 폭발한 두 사람은 마치 여고 시절로 타임머신이라도 탄 듯 서로의 머리끄덩이를 잡고 뒤엉켰다. 정옥의 손이 장미의 머릿속을 헤집고 기름진 두피 위 푸석푸석한 머리칼을 앙칼지게 쥐어뜯자, 꽉 낀 청바지를 억지로 입다 가랑이 실밥이 터지듯 우두득 장미의 머리칼이 뽑혔다. 장미의 비명에 정옥도 놀라 손을 뗐고 두 사람은 양손에 서로의 머리칼을 한 줌씩 쥐고는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서로 아무런 말이 없었다. 정옥이 손을 털어내자 우수수 장미의 머리칼이 하얀 대리석 바닥 위로 떨어졌고 두 사람은 약속이라도 한 듯 학원 바닥 위에 기하학적으로 떨어진 머리칼만을 응시할 뿐이었다. 여고 시절 한 구멍 세 머리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짙고 풍성했던 장미의 머리칼은 어디 가고 새치까지 생긴 그녀가 정옥은 낯설다고 생각했다. 장미는 자신의 머리통을 감싸 쥐며 울상이 되어 학원을 박차고 나갔고 그 후 그녀는 영어학원을 관뒀다. 정옥은 겁도 없이 무보험 주제에 앞장서서 픽업을 돕겠다고 말한 장미를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리 멍청하니 돈 없는 이민자랑 바람나 거지꼴로 호주에서 쫓겨난 루저 신세라고. 박장미는 그 후, 학원이 자리를 탄탄히 잡은 뒤까지 정옥이 거느리고 있는 강사들에게 안줏거리로 회자되곤 했다.      

  “만만한 게 나지? 무슨 낯짝으로 네 따위가 나한테 악플을 달아? 사고는 지가 쳐놓고!” 정옥은 마치 눈앞에 머리를 감싸 쥐고 울상으로 서 있는 장미가 보이는 듯, 허공을 표독스럽게 쏘아보았다.     

  용의자 2 레이첼 쌤, 김민지는 정옥의 학원 전성기를 함께 이끈 인물이었다. 4살 때부터 영어를 접해 혓바닥 위에서 버터가 녹을 정도로 유창한 발음의 소유자로 교실 문밖으로 새어 나오는 민지의 영어 발음을 들은 학부모들은 지방 소도시의 영어교육 수준에 감탄할 정도였다. 정옥은 그런 민지에게 조각조각 합판으로 나뉜 흡사 쪽방촌을 방불케 하는 교실 중 제일 크고 창문까지 달린 교실을 쓰도록 했다. 창문 없는 교실의 문을 열 때면 아이들이 내뿜는 탁한 공기에 땀 냄새까지 섞여 헛구역질까지 날 정도였지만 민지의 교실에선 비 오는 날엔 비 냄새, 눈 오는 날엔 눈 냄새가 났다.

  정옥은 평소 말수도 적고 묵묵히 자신의 몫을 해주는 민지에게 샌드위치나 삼각김밥 등 간단한 요깃거리를 책상 위에 다른 강사들 몰래 두곤 했다. 정옥은 자신에게 만약 딸이 있다면 민지 같지 않았을까 종종 생각하곤 했다. 그런 민지가 평소 일언반구도 없다가 결혼을 한다며 정옥에게 청첩장을 들이밀었다. 게다가 정옥에게 부케를 받아달라는 부탁까지 했다. 과거 정옥은 프로 부케 잡이였다. 작고 마른 체구에 약삭빨라 눈앞에 날아오는 부케를 단번에 휘어잡아 친구들에게 부케 잡이로 일 순위였다. 정옥도 부케 잡이로 활약하던 시절에는 또래처럼 결혼하고 아이도 낳고 평범한 주부로 살아갈 앞날을 그려보곤 했다. 정옥은 민지에게 축하한다는 인사도 없이,

  “갑자기 결혼한다니 당혹스럽고 섭섭하네요. 어휴, 다 늙어서 쌤 부케를 어떻게 받아요. 젊고 예쁜 친구에게 부탁하세요. 결혼식엔 꼭 갈게요.”  

민지는 정옥의 반응을 예상했다는 듯,

  “제 주변에 예쁜 미혼은 원장님밖에 없어요. 그리고 제게 은인이나 다름없는 원장님이 제 부케를 받아주신다면 영광일 거예요.”

민지의 말에 정옥은 흐뭇한 미소를 감출 수가 없었다. 입꼬리가 찢어지게 환하게 웃는 자신의 모습이 반대편 유리창에 비치자 민망한 듯 표정을 고치곤 그제야 결혼을 축하한단 인사말을 민지에게 전했다.

  정옥은 한 달 뒤 있을 민지의 결혼식에서 두 번째 주인공이기에 만반의 준비를 했다. 가장 가까운 대도시인 천안으로 백화점 쇼핑을 갔고 가판에 누워있는 옷이 아닌 매장 안에 세로로 구김 없이 걸린 신상 원피스를 할인 없이 79만 원에 구매했다. 홈쇼핑에서는 29만 9천 원짜리 가정용 피부관리기를 구매해 저녁마다 눈가 주름위를 다림질하듯 꾹꾹 힘주어 문질러댔다. 정옥은 순백의 드레스를 입은 신부 옆에 신부만큼이나 눈부신 미소로 부케를 받는 자신의 모습을 그려보았다. 민지의 돌싱 삼촌이나 노총각 사촌 오빠가 자신에게 눈길을 주는 상상을 하며 주책맞다고 생각했지만 번지는 미소를 숨기진 않았다. 단골 미용실에 정옥이 뿌리 염색을 하러 갔을 땐 이 나이에 부케 받고 다니는 게 민망하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이 사람 저 사람 상대하며 인간관계에 도가 튼 미용실 원장은 무슨 소리냐 원장님 외모는 누가 봐도 30대 중후반으로밖에 안 보인다며 정옥에게 애초 계획에 없던 두피 클리닉 정기권 50만 원을 끊도록 만들었다. 민지만큼이나 정옥도 나름 결혼식 준비를 정신없는 나날을 보냈다.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보던 다른 강사들 사이에선 자신의 결혼식엔 원장을 초대하지 말아야겠다는 무언의 다짐들이 오고 갔다.

  드디어 정옥이 그토록 기다리던 민지의 결혼식이 다가왔다. 정옥은 민지에게 축의를 얼마나 해야 할지 고민에 빠졌다. 민지는 같은 지역 제철 회사를 다니는 남자를 만나 신접살림도 학원에서 도보 십 분 거리의 임대아파트에 차렸기에 분명 외벌이로는 생계가 어려워 보였다. 그렇기에 5만 원으로 퉁 칠 인연은 아니었다. 오 년 넘게 단돈 만 원의 임금 인상도 없이 함께 한 정이 있는데 50만 원 정도를 해야 할지 잠시 고민했지만, 후에 정옥이 결혼을 할 때 민지가 되갚기엔 부담스러운 금액이란 생각이 들어 배려해 10만 원으로 결정했다. 웨딩드레스를 입은 민지는 옷에 박힌 수천 개의 비즈만큼이나 반짝였고 정옥도 옛 명성만큼이나 단박에 부케를 잡아채 실수 없이 결혼식은 마무리되었다. 민지가 신혼여행으로 일주일 동안 자릴 비운 사이 그녀의 수업은 원어민을 돌리며 문제없이 마무리되는 듯싶던 차에 정옥에게 또 하나의 고민거리가 생겨났다. 바로 민지의 월급이었다. 일주일 치의 월급을 빼고 입금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 아니면 월급을 몽땅 줘야 하는 것 인지, 정옥은 오너로서 왕관의 묵직한 무게로 두통이 생길 지경이었다. 하지만 민지라고 어찌 정옥의 계산법을 피하겠는가. 정옥은 민지의 월급 중 1/4을 제하고 나머지를 송금했다. 그날 오후 강사 회의 때, 민지와 친한 린쌤이 벙글거리며 말을 하기 전까지 정옥은 자신의 깔끔한 결단력에 만족했다.

  “원장님 좋으시겠어요”

정옥은 영문모를 린의 말에 왜냐고 이유를 물었다. 그러자,

  “레이첼 쌤이 괌으로 신혼여행 가면서 인천공항 면세점에서 원장님 드릴 프라다 카드지갑을 산다고 저한테 색을 골라달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원장님은 핫핑크를 좋아한다고 알려줬죠”

정옥은 사색이 된 얼굴로,

  “어쩜 좋아 내가 실수했어. 어떡해. 린쌤 그 말을 왜 이제 하는 거야. 나 진짜 레이첼 쌤한테 잘못했다.”  

  정옥은 두 발을 동동거리며 징징대는 소리를 이어가다 레이첼 쌤이 오해하기 전에 통화를 해야 한다며, 시작도 안 한 강사 회의를 파했다. 정옥은 린에게 레이첼 오늘 입국하는 날이 맞냐고 재차 확인했다. 린이 맞다고 아까 한국에 잘 왔다길래 푹 쉬고 내일 보자는 인사까지 나눴다고 했지만 정옥은 레이첼과 연락이 닿지 않았다. 정옥은 평소 게임 하트를 주고받는 용도로만 쓰던 카카오톡까지 더듬거리며 메시지를 남겼지만, 메시지의 숫자 1은 사라지지 않았다. 만약 레이첼과 통화가 된다면 멋쩍게 웃으며 내가 다른 강사 월급과 헷갈렸다고 쌤한테 단 한 번도 주지 못한 유급휴가를 이번에 멋지게 주려 했는데 나이를 먹어 실수한 것이라고 변명할 멘트도 준비했지만,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그 다음다음날도 레이첼은 원장의 전화를 받지 않았다.

  “명품 선물을 할 거면 나한테 언질을 줬어야지. 그래야 나도 생각해서 월급을 안 깠을 것 아니야. 축의금에 유급휴가에 둘 다 바란 건가? 내가 자선 사업가니? 김민지 그렇다고 연락 다 씹고 학원을 관둬? 나 주려고 샀다던 프라다는 구경도 못 했는데 악플은 내가 써야 맞지!”  새벽녘 정옥은 악플러를 유추하다 울화통이 터져, 죄 없는 베개만 벽으로 집어던진 채 씩씩거리다 잠이 들었다.

  정옥은 자신의 선에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젊은 강사들에게 도움을 청하기로 했다. 정옥은 강사 회의를 위해 이른 출근을 한 강사들 앞에서 이렇게 말했다.

  “여자의 몸으로 사업체를 운영한다는 것은 십자가를 이고 가시밭을 길을 가는 것과 같군요.”

  정옥은 근엄한 표정을 지으려 했지만 6번의 쌍꺼풀 수술로 탄력을 잃은 눈까풀은 이를 돕지 못하고 정옥을 맹꽁이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없는 정옥은 검지로 흐르지도 않은 눈물을 닦는 시늉을 하며 잠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영어교육의 황무지와도 같았던 이 시골 마을에 아이들의 날개에 바람을 불어넣어준다는 마음으로 학원을 개원했건만 다른 이들은 내가 곱게 보이지 않나 보네요. 쌤들, 난 어쩌면 좋죠? 남편도 부모도 형제도 없고 의지할 곳이라곤 하나님과 여러분뿐인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무게를 잡는 원장의 모습에 다른 강사들은 어쩔 줄 몰라 쉽사리 말을 못 붙이고 있는데 최 고참이자 학원의 고인 물, 린이 침묵을 깼다.   

  “원장님,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생긴 건가요? 원장님은 혼자가 아니셔요. 저희가 있잖아요. 망설이지 말고 어서 말씀해 주세요.”

  “린쌤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워요. 실은 나 사이버테러를 당하고 있어요. 원색적인 비난에 참담하답니다. 악플러 새끼를 어떻게 잡죠?”

  강사들과 원장이 머리를 모으고 악플러를 잡을 방법을 모색했다. 일단 악플의 증거를 모은 뒤, 원장님이 직접 경찰서로 가 신고를 하자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 모욕죄가 성립되기 위해서는 공연성, 피해자 특정성, 모욕적 행위 등의 3요소가 충족되어야 한다고 지방 사립대 법학과를 졸업한 지니가 침까지 튀기며 비장하게 말했고 인 서울 끝자락 대학교 컴퓨터 공학과를 나온 클로이가 악플의 PDF를 따서 빼박 증거를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옥은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으로 그들을 보았다. 인터넷의 익명성 뒤에 숨어 비겁하게 욕설을 배설하는 악플러로 인한 연예인들의 자살까지 언급되었고 강사들은 원장님은 자신들이 지키겠다며 정옥을 안심시켰다. 클로이는 정옥에게 휴대폰 댓글 알람이 울리면 바로 전화를 달라고 자신이 블로그로 들어가 악플의 PDF를 따겠다고 말했고 정옥은 이번에야말로 악플러의 정체를 밝히고 자신 앞에 그를 무릎 꿇려 머리를 조아리게 할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했다. 정옥은 처음으로 블로그에 달릴 악플을 손꼽아 기다렸다. 그러나 웬일인지 지난 수개월 동안 새벽녘 정옥의 잠을 설치게 만들던 악플이 잠잠했다. 이상한 노릇이었다. 학원 강사들에게 수치심을 무릅쓰고 악플을 고백한 뒤로 조용해진 악플에 정옥은 왠지 꺼림칙했다. 정옥은 악플러가 과거의 지나간 인물의 아닌 현재 자신의 곁에 머무르고 있는 이 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머리카락이 주뼛섰다.

  정옥은 지금껏 악플러가 남긴 악플을 곱씹어보았다. 마음이 상해 유심히 생각해보지 않았던 ‘정옥이는 유부남 킬러’의 ‘유부남’으로 현직 강사 중 용의자는 클로이와 린으로 압축됐다. 정옥은 3년째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 밥을 먹고 섹스를 하는 애인이 있었다. 술자리에서 지인에게 능력 있는 이혼남을 소개받고 진지하게 어른의 연애를 시작했고 만남과 헤어짐에 지쳤던 정옥은 그와 결혼하고 싶었다. 그래서 사계절을 보낸 후 자존심 상하지만 먼저 결혼 이야기를 꺼냈다. 하지만 그는 정옥이 상상했던 ‘좋다’는 대답이 아닌 고개를 푹 숙인 채 한숨만 쉴 뿐이었다. 정옥은 그때의 무겁게 내려앉은 공기 냄새를 선명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가 입을 떼기까지 몇 분의 침묵은 소음보다 더욱 정옥의 마음을 시끄럽게 만들었다.

  “정옥아, 나 아직 이혼 못 했어.”

  그는 유부남이었다. 정옥은 지난 일 년간 이혼남인 척 자신을 속인 남자 친구에 대한 분노보단 당장 결혼을 할 수 없다는 허탈감에 씁쓸했다. 정옥은 그에게 언제 이혼하냐 물었고 그는 그 후로도 2년 동안을 이혼 조정 기간이라 칭하며 정옥과 애인 사이를 유지했다. 지방 사립대 법학과를 졸업한 지니에게 정옥이 자녀가 있으면 이혼 조정이 3년씩도 걸리냐고 물었을 때 지니가 3개월이면 숙려기간은 끝나고 협의 이혼 시 그마저도 없이 이혼할 수 있다는 얘기를 듣기 전까지 정옥은 그와의 결혼을 꿈꿨다. 학원 송년회 2차 노래주점에서 클로이와 린만이 남자 정옥은 울면서 그들에게 3년간 남자 친구에게 농락당한 이야기를 했다. 지금껏 학원을 경영하며 강사들에게 자신의 사생활을 이야기한 처음이자 마지막 순간이었다. 술기운이 아니었다면 결코 입 밖으로 내뱉지 않았을 텐데, 정옥은 폭탄주를 끊어야겠다고 생각하며 그 당시 자신의 눈물을 재생 냅킨으로 닦아 주고 시큼한 파인애플 안주를 입에 넣어주며 위로했던 클로이와 린에 대한 배신감으로 몸이 부들거렸다. ‘이것들을 어떻게 하지’ 정옥은 악플이 다시 달리도록 악플러로 추정되는 두 강사를 한 명씩 쑤셔보기로 했다.  

  정옥은 월말 교재 정리로 정신없이 풀칠하고 성적표에 테이핑 하는 강사들을 교실 밖 복도에서 둘러보았다. 클로이 교실에 다다르자 정옥은 창 하나 없이 비좁은 교실 속 삐딱하게 놓인 철제 의자를 신경질적으로 걷어차며 “교실이 왜 이렇게 어지러워.”라며 코앞 클로이에게 다 들리는 혼잣말을 한 뒤 그녀 앞에 섰다. 그리곤 무표정한 얼굴로 클로이가 정리해 논 지난달  교재를 대충 훑어보며 “에휴 내가 이럴 줄 알았다니까.”를 시작으로 윽박지르기 시작했다.

  “클로이쌤 애들 동영상 표가 왜 이래요? 동영상 관리 제대로 안 하실 거예요? 그리고 쌤이 영국에서 유학하고 온건 아는데 솔직히 말할게요. 애들한테 왜 영국식 악센트로 수업하세요? 우리 영어학원은 오리쥐널 아메리칸 악센트를 추구하는 곳인데.”

 정옥은 부러 ‘오리지널’을 토악질이 올라오기 직전 입속 천장 위치에 혀를 두고 발음했다. 정옥은 사십 넘어 필리핀에서 6개월간 어학연수를 다녀온 바 있다. 클로이는 동그란 눈을 더욱 동그랗게 뜨고 인상하나 구기지 않고 정옥에게 말했다.

  “그런데 미국에 가본 적도 없으신 분이 어떻게 오리쥐널 아메리칸 악센트를 아세요? 저는 평범한 지능을 가지고 영국에서 7년을 살았으니 발음이 쉽게 안 바뀌네요. 좋게 말씀하셔도 다 알아들으니 화내지 마세요. 예쁜 얼굴에 주름 생기세요.”

정옥은 자신의 비난에 능글맞게 웃어넘기며 돌려 까기까지 하는 클로이가 분명 악플러라고 확신을 했다. ‘잡았구나 네 이년.’ 정옥은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클로이와 더 이상 말을 섞지 않고 쌩하니 원장실로 향했다. 생각할수록 클로이는 무서운 사람이었다. 악플을 싸질러놓곤 정옥을 위하는 척 악플의 PDF를 따 증거를 만들어준다며 언제든 전화를 달라던 사람, 실실 웃으며 빙그레 쌍쌍바가 되어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은 다 하는 성격, 정옥은 홀로 클로이를 상대했다는 큰코다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곤 이럴 땐 머리가 팽팽 돌아가고 오랫동안 자신과 클로이를 겪어본 린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모든 수업이 끝나고 정옥은 린에게 면담을 요청했다.

  “무슨 일이세요. 원장님?”

린이 다정한 말투로 묻자 정옥은 가슴속에 켜켜이 쌓아놓았던 굴욕감과 치욕스러움으로 울컥 눈물이 날 것만 같아 마른침을 여러 번 삼키곤 어렵게 입을 뗐다.   

  “나 악플러가 누군지 알 것 같아요. 클로이예요. 나한테 이럴 사람은 그년밖에 없어, 그래서 말인데 린쌤이 날 좀 도와줘요. 나 고발할 거야. 날 얼마나 우습게 봤으면 매일 보는 오너한테 그런 상스러운 댓글을 쓰겠냐고. 빌어도 용서 안 할 거야. 클로이 전과자 만들 거야.”  

  정옥은 연장한 젤 네일 손톱이 부러질 만큼 힘을 주어 볼펜을 꽉 쥐었다. 그런 정옥을 측은하게 바라보던 린도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그런데요 원장님, 혹여나 클로이쌤이 악플러가 아니면 뒷감당은 어쩌시려고요? 지금 학원 중학반 학부모들 모두 클로이쌤 하나 보고 아이들을 보내고 있잖아요.”

정옥은 마그네슘이 부족한지 오른쪽 눈 밑 애교 살을 심하게 떨며 고까운 말투로

  “린쌤, 중학반이야 날려도 그만이야. 지금 내가 그런 모욕을 당하고도 클로이를 아쉬워할 것 같아요? 날 도울 거예요, 말 거예요?”

  “..... 도와야죠.”

클로이와 두터운 친분을 자랑해서인지 린이 난처한 표정을 지었고 정옥은 혹여나 대화가 새어나갈까, 린 쪽으로 몸을 더욱 가까이하여 속삭이듯 말했다.

  “분명 오늘 악플이 달릴 거예요. 악플이 달리면 내가 새벽에라도 쌤에게 전화를 할게요. 그러니 PSP를 따줘요. 따는 방법을 설명 들었는데 솔직히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어요.”

린은 정옥의 말실수를 정정해주곤 알겠다며 도움이 되도록 노력해보겠노라 이야길 하고 자릴 떠났다. 정옥은 린이 앉았던 텅 빈 의자를 주시하며 잠시 잊고 있던 ‘하마’라는 악플러의 닉네임을 떠올렸다. 클로이와 하마는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일까. 정옥은 둘 사이의 교차점을 찾기 위해 좋지 않은 기억력을 더듬기 시작했다.  

  “언제가 하마 이야기를 강사들이 하고 있었던 것 같은데”

 정옥이 쌍꺼풀 수술 전 단추 구멍이라 친구들에게 놀림받던 눈을 가늘게 뜨자, 좁아진 시야로 과거의 어느 날 강사들이 옹기종기 모여 정옥 없이 깔깔거리던 장면이 뚜렷해지기 시작했다.

  “뭐 때문에 그렇게 즐거워요 쌤들?”

식어 빠진 분식집 마감 떨이 떡볶이와 튀김 간식을 사 들고 막 학원에 들어선 정옥이 관심을 보이자 클로이가 퀴즈를 낸다며 물었다.

  “원장님 하마랑 악어랑 싸우면 누가 이기게요?”

  “당연히 악어죠. 그런데 그게 왜요?”

  “왜 악어일 거라고 확신하세요?”

답은 말해주지 않고 자꾸만 꼬치꼬치 질문하는 클로이에 슬슬 짜증이 나던 정옥은 신경질적으로 대답했다.

  “쌤은 동물의 왕국 못 봤어요? 악어 이빨을 봐요. 어떤 동물이 남아나겠어요?”

클로이가 가소롭다는 듯 ‘풉’하고 단발의 코웃음을 친 뒤에 정옥의 눈을 똑바로 마주 보며,

  “틀렸어요. 하마가 얼마나 포악하게요. 생긴 건 퉁퉁하고 동글동글 귀엽지만.”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 정옥 옆에서 린도 한마디 거들었다.

  “아프리카에서는 악어에 물려 죽은 사람보다 하마에 물려 죽은 사람이 더 많대요. 심지어 사육사도 하마에 물려 죽는 일이 종종 있대요.”

클로이가 린의 말에 맞장구를 치며,

  “맞아요. 특히 모성애가 강해서 아기 하마를 건드리면 큰 사달이 난다죠.”

 모든 정황이 클로이를 향했고 클로이의 심기를 건드린 정옥은 오늘이야말로 결전의 날이 되리란 확신이 들었다. 밤 9시 퇴근 후 혹여나 잠들어 댓글 알림 소리를 못 들을까 싶어 새벽 12시부터 4시 사이 30분마다 휴대폰 알람을 설정하며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는데 10시도 안 된 시간에 어플 알림 소리가 ‘띠링’하고 울렸다. 정옥은 자신이 환청을 들은 것이 아닐까 의심하며 스마트폰 창을 열었고 그토록 기다리던 악플이 6개월 전에 올린 블로그 포스팅에 떡하니 달려 있었다. ‘똥 멍청이 정옥이’ 빛의 속도로 지워지는 악플의 증거를 또다시 놓칠라, 정옥이 조바심을 내자 땀 때문에 액정 위로 손가락이 자꾸만 미끄러졌다. 겨우 린 번호를 찾아 전화를 걸었고 길지 않은 수화음 끝에 ‘여보세요’의 ‘여’만 듣곤 정옥은 다다다 자신의 말을 쏟았다.

  “린쌤! 빨리 PSP 따줘요. 클로이가 드디어 미끼를 물고 악플을 달았어요. 어서요! 당장요!”

  “무슨 소리세요. 원장님?”

  “아니 린쌤 나랑 아까 오후에 면담했잖아요. 클로이년이 악플러고 내가 가만 안 둔다고. 진짜 똥 멍청이가 누구더러 똥 멍청이래. 나 참 기가 막혀서 린쌤 내 얘기 듣고 있어요?”

  “저 클로이예요 원장님”

  정옥 평생 이보다 더 무서운 악몽은 꿔본 적 없었다. 꿈이 마치 실제 같다고 생각하자 시간이 멈춘 듯 멍한 정옥의 귓가로 수화기 넘어 가느다란 클로이의 호흡 소리만 이어졌다. 영겁 같던 수 초가 지나고 클로이가 말을 이었다.

  “전화로 할 이야긴 아닌 것 같네요. 학원 앞 동태찌개 집으로 와주세요.”

  정옥은 무슨 일이지 영문을 알 수 없었지만 뭔가 단단히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화장을 지우곤 돌아다니지 않는 정옥이지만 다시 화장할 기력도 마음도 들지 않아 반 토막 나, 옹졸해 보이는 눈썹에 보라색 모자만을 눌러쓰고 집을 나섰다. 정옥이 단골 동태찌개 집 문을 열자 클로이와 린이 상기된 표정으로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정옥이 말없이 다가가 자리에 앉자 세 사람의 시선은 둘 중 누가 먹었는지 알 수 없는, 테이블 위 아가미 살이 발라지고 눈알까지 파여 너덜너덜해진 동태 대가리로 약속이라도 한 듯 쏠렸다. 누구 하나 쉽사리 입을 열지 못해 적막만이 감돌았다. 테이블의 무거운 침묵을 깬 건 평소 정옥을 ‘예쁜 아가씨’라 불렀던 동태찌개 집 남자 사장이었다.

  “두 딸이 엄마를 기다리느라 밥을 천천히 먹었구나. 아줌마는 식사를 안 하셔도 배가 부르시겠어요. 장성한 예쁜 딸이 둘이나 돼서”

사장의 사람 좋은 웃음소리가 한동안 이어졌고 린과 클로이는 화들짝 놀라 정옥의 표정을 살폈다. 정옥의 오른쪽 입술 끝이 파르르 떨리는 걸, 린이 봤고 클로이는 정옥이 무릎 위에서 힘껏 주먹을 쥐고 부들대는 걸 봤다.        

  “나가서 얘기해요. 쌤들”

정옥은 강사들의 눈도 마주치지 않고 평소 친하게 지냈던 사장한테 인사도 없이 쌩하니 동태찌개 집을 나섰다.

  2:1의 상황, 정옥은 자신이 2쪽에 있는지 아니며 혼자인지를 찌그러진 하트가 그려진 라떼  한 잔을 앞에 두고 진지하게 생각해봤다. 일단 커피숍에서 착석한 모양은 벽을 등지고 상석에 홀로 앉은 정옥이 누가 봐도 1쪽이었다.

  “그만 벌서고 오늘의 일에 대해 어서 이야기 나누죠. 린쌤 전화를 어째서 클로이쌤이 받고 두 사람은 퇴근 후 집에 안 가고 왜 같이 있는 거죠?”

정옥이 말문을 트자, 린이 손이 시린지 뜨거운 커피잔을 양손으로 감싸 쥐더니 한숨을 한번 쉬곤 질문에 대답했다.

  “오후 내내 배가 고팠는데 클로이쌤이 같이 저녁을 먹자고 하셔서 학원 앞 동태찌개 집에 함께 간 거예요. 그러다 원장님한테 전화가 왔고요.”

  “아니 두 분이 같이 저녁은 먹었다 쳐도 왜 린 쌤 전화를 클로이가 받냐고? 둘이 짜고 나 멕이는 거 아니야? 지금 이 상황?”

정옥의 언성이 높아지자 잠자코 있던 클로이가 특유의 코웃음을 치더니,

  “월말 교재 정리로 온 강사들이 바빠서 쫄쫄 굶고 있는데 김밥 한 줄 사와 혼자 드셨죠? 린도 똑같이 종일 굶어서 제가 밥 사주려고 저녁 먹고 가자고 했어요. 그리고 우리 셋이서 스마트폰 같은 기종으로 바꿨잖아요. 폰팔이가 원장님한테는 작년도 모델을 팔아보려고 수작 부렸는데 제가 컷 한 것 기억하시죠? 테이블이 원형이라 갑자기 벨이 울리니 린 폰이 제껀 줄 알고 저도 모르게 실수로 받은 거예요. 그런데 뭐 제가 악플러라고요?”

클로이가 악플러라는 확신이 있고 일이 이렇게 된 이상 정옥은 체면 차리기를 관두기로 했다. 그리고 만고의 진리, 목소리 큰 사람이 싸움에서 이긴다는 명언을 떠올렸다.

  “악플 싸지른 주제에 혓바닥이 길다? 너 내가 모를 것 같아? 그런 쌍스러운 악플 쓸 년은 너밖에 없어!”

정옥의 보라색 모자가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린의 손을 따뜻하게 만들었던 커피잔은 테이블 위에 쏟아졌고 클로이가 자신의 얼굴을 양손으로 감싸 쥐고 흡사 짐승처럼 울부짖자 카페의 모든 눈이 정옥에게로 몰렸다. 정옥의 반쪽만 남은 눈썹은 그녀의 혼란한 감정을 모두 담기엔 덧없이 짧기만 했다. 모자가 벗겨지자, 정옥이 평소 주근깨라고 우겼던 검버섯은 셀카가 잘 나오는 카페의 황색 등 아래 더욱 도드라져 보였다. 벌어진 모양새는 마치 폭력이 오고 간 상황 같았지만 세 사람은 서로의 몸에 털끝도 건드리지 않았다. 자기 분에 못 이긴 정옥이 스스로 모자를 벗어던졌고 조준이 틀어져 테이블 위 린의 커피잔을 맞췄으며 클로이는 악플러로 오해받은 것이 억울해 혼자 울음을 터트린 것이다. 클로이가 안정을 찾고 정옥이 주섬주섬 내동댕이친 모자를 다시 주워 쓰고 린이 어질러진 테이블 정리를 마치자 세 사람은 후다닥 커피숍을 나왔다. 금요일 밤이라 그런지 많은 행인이 거리에 복작였고 세 사람은 같은 방향으로 가고 있으나 일행으로는 보이지 않을 거리를 유지하며 걸었다. 바닥엔 저팔계가 족발을 뜯고 있는 족발 가게 홍보용 만 원짜리 가짜 지폐가 흩뿌려져 있었다. 정옥은 떨어진 돈인 줄 알고 가짜 지폐를 주우려다 자세히 보곤 흠칫 놀라 한 발자국 앞서가던 클로이의 팔뚝을 잡았다. 클로이도 멍하니 걷다 원장이 갑자기 팔뚝을 잡고 늘어지자 놀라 그 자리에 멈춰 섰다. 클로이는 민망해하는 정옥에게

  “원장님이 절 그렇게 생각하는 줄은 꿈에도 몰랐네요.”    

정옥은 전단지 속 족발을 한껏 베어 문 저팔계가 소름 돋게 징그러웠다. 그리고 그 가짜 돈을 밟고 멈춰 선 클로이의 붉어진 눈을 한동안 응시했다. 자신이 숙이고 먼저 사과를 한다면 책임감 강한 클로이는 학원을 관두지 않으리란 생각이 들었지만, 정옥은 사과하고 싶지 않아 멈춰 선 클로이와 린을 비켜 지나며 인사도 없이 집으로 향했다. 다음날, 클로이는 몸살감기에 걸렸다며 결근했다. 결근 연락도 린을 통해 전해왔다. 정옥은 클로이가 펑크 낸 수업을 어떻게 때울지 골머리를 앓다가 스마트폰을 뒤적거렸다. 어제 블로그에 달렸던 “똥 멍청이 정옥이” 악플은 역시나 사라지고 없었다. 악플의 증거를 놓쳐버린 허탈감에 하릴없이 갤러리를 보던 정옥은 깜짝 놀랐다.

  “똥 멍청이 정옥이가 캡처됐다! 세상에나!”

정옥은 ‘하느님 감사합니다’를 연발하며 스마트폰을 기도하듯 모은 두 손으로 움켜잡았다. 린에게 전화를 급히 건다며 폰을 만지다 얻어걸린 행운이었다. 정옥은 같은 건물 3층에 40대 남자 원장이 운영하는 빌 게이츠 컴퓨터학원을 떠올렸다. 그리고 텅 빈 원장실에서 자신 앞에 무릎 꿇고 머리가 바닥에 닿게 납작 엎드려 두 손을 싹싹 빌고 있는 클로이를 머릿속에 그려보았다. 그러자 정옥의 양쪽 입술 끝이 미세하게 올라가더니 흡사 모나리자 같은 미소가 지어졌다.

  두 달의 시간이 흐른 뒤 정옥은 경찰에게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악플러가 특정됐고 사과를 받고 끝낼 것인지 아니면 소송을 이어갈 것인지를 묻는 전화였다. 정옥은 악플러의 신상이 궁금하여 묻자 그는 같은 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60대 여성이라고 말해줬다. 클로이가 아닌 것에 묘한 섭섭함을 느끼며, 잠시 고민하다 악플러에게 욕을 한 사발 퍼붓고 쿨하게 사과를 받고 끝내는 것이 분풀이에 도움이 될 것 같아 자신의 휴대폰 번호를 악플러에게 알려줘도 좋다고 경찰에게 전했다. 서너 시간 뒤 저장되지 않은 번호로 전화가 울렸고 정옥은 악플러의 전화인 것을 직감적으로 알아차렸다. 스마트폰을 한 손에 쥐고 심호흡을 두어 번 한 뒤 목소리를 가다듬고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 죄송합니다.”

  “당신 악플러 맞죠?”

  “네, 정말 죄송합니다.”

  “우리 일면식도 없는 사이로 아는데 무슨 억한 심정으로 제게 그런 상스러운 악플을 쓴 거죠? 입이 있으면 죄송하다고만 하지 말고 말을 해보세요!”

  “원장님과는 건너 건너 아는 사인데 여자의 몸으로 번듯한 학원을 운영하고 멋있게 사는 모습에 시기 질투를 느껴서 그랬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용서해주신다면 참회하며 살겠습니다.”

여자의 말에 정옥은 일었던 분노가 사그라짐을 느끼며 흥분을 가라앉히고 침착하게 말을 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죠. 60대인 걸로 아는데 나이도 먹을 만큼 먹은 분이 입으로 글로 죄를 짓는 건 아니죠.”

  “네네 압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생각 외로 공손한 악플러의 사과에 정옥은 다신 그러지 말라며 고소는 없던 일로 한다고 전화를 끊었다. 악플러를 잡아서 사과를 받고 나면 후련해질 줄 알았는데 이상하게도 마음 한구석 찜찜함이 사라지지 않았다. 일면식도 없는 악플러 때문에 성실하게 장기근속해온 클로이가 관두고 중학반이 해체되고 어수선한 학원 분위기 속 늘어나는 학부모들의 컴플레인은 덤이었다. 정옥은 통화를 마치고 원장실의 투명한 통유리창 너머로 분주히 움직이는 강사들을 보다가 다시 자신의 스마트폰을 열었다. 그리곤 통화목록 속 긴장해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악플러의 휴대폰 번호를 보는데 끝 번호 네 자리 3355, 어디서 많이 봤던 번호인데 정옥은 휴대폰 연락처 목록에 숫자 3355를 검색하자 저장된 이름이 딱 하나 떴다. 희뿌연 연기 속에 숨어있던 악플러의 정체가 정옥의 눈앞에 또렷하게 그려졌다. 정옥은 스마트폰을 책상 위에 두며 혼잣말로 나지막이 읊조렸다.

  “너였구나. 너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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