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지속 Jul 26. 2022

도끼병이 사람 잡네

스파이를 잡다 편

  지금부터 여러분은 도끼병 환자가 보는 세상을 엿보게 될 예정입니다. 그 환자가 누구냐고요. 누구겠어요? 지속이지.

  지속에겐 오랜 지병이 있었다. 바로 도끼병이었다. 봉기는 자신과 판박이인 지속을 항상 예쁘다고 했다. 지속은 봉기 혼자 자가 분열하여 만든 생명체처럼 모르는 사람이 봐도 딱 부녀 사이였다. 지속은 자신이 기억하는 어린 시절부터 아빠에게 예쁘다는 소리를 귀에 딱지에 앉게 들었는데 뽀얗고 오동통한 볼때기가 귀여운 편이었지 예쁘진 않았음에도 봉기는 지속이를 미스코리아를 시킨다 모델을 시킨다 난리였다. 초등학교 저학년까지 봉기는 진심으로 딸을 그렇게 생각했다.

  커갈수록 봉기는 기대와 많이 다르게 자라는 지속의 외모에 미스코리아 타령은 쏙 들어갔다. 대신 공부를 열심히 하라고, 네가 성공할 수 있는 건 이제 공부쪽이랬는데 안타깝게도 지속은 공부를 못했다.

  그때부터였나. 지속은 봉기가 심어준 남다른 외모 자신감이 있었다. 도대체 왜 있는지 모르겠지만 여튼. 도끼병으로 노처녀 원장 학원에 영웅이 된 적이 있었는데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이야기니 들어봐 주시길.

  여자만 드글드글한 학원에 어느 날 젊은 신규 강사가 채용됐다. 미혼 남자였는데 호감형도 아니고 원장에게 들은 나이보다 더 노안으로 무매력자였다. 같이 일하는 동료, 그 이상 이하도 아닌 감정이었다. 헌데 여기서 지속의 도끼병이 도졌다. 지속은 당연히 남자 강사가 별로였는데 남자 강사는 아니지 않을까 하는 염려였다. 이런 생각을 한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아래층 입시학원 남자 강사들이 영어학원에 예쁜 강사가 있다고 엘리베이터에서 봤다고 이야기 나눈 게 지속의 지인을 통해 귀에 들어왔다. 물론 학원에 다른 여자 강사들도 많았지만 설명한 외모가 딱 지속이었다. 긴 머리에 하얀 여자. 참나, 나잖아. 이 사람들이 대놓고 얘길 하면 차는 한잔 마셔줄 텐데. 용기가 없어서야. 지속은 혀를 끌끌 찼다.

  아래층 남자 강사들도 이런데 같은 공간에서 더구나 유머러스한 지속과 생활한다? 이건 뭐 큐피드가 화살을 손으로 심장에 갖다 내리꽂는 일이었다. 지속은 쓸데없이 벌써부터 난감했다. 그래서 그 신규 강사와 최대한 말을 섞지 않고 부딪히지 않으려 노력했다.

  그런데 좀 예상과 달랐다. 지속의 눈에 띄려 알짱거려야 하는 남자 강사가 지속에게 관심이 전혀 없었다. 그는 그사이 존이라는 영어 이름으로 불렸다. 말도 안 돼! 어떻게 나를 안 좋아할 수가 있지? 지속은 존이 게이가 아니면 여자 친구가 있다고 생각해 그를 향한 경계태세를 좀 내려놓았다.

  휴, 아주 골치 아플 뻔했는데 참으로 다행이었다. 한데 존이 좀 수상했다. 뭐가 수상했느냐. 일을 지나치게 열심히 했다. 학원 쓰레기 분리수거까지 했다. 그건 청소 이모님이 하시는데 그 모습을 본 원장은 존의 성실함에 감탄했다. 학원에 젊은 남자가 있으니 든든하다며 회식 때 냉동삼겹살 집만 찾아가던 원장이 존과는 볏짚 삼겹살을 먹으러 갔다.

  일이 이렇게 돌아가자 지속의 눈에 존은 거슬리는 뾰족한 가시였다. 저 새끼를 어떻게 뽑아내지? 아무리 봐도 수상한데 저 얼굴이 어딜 봐서 나보다 어리냐고. 지속은 다시 존을 향한 다른 의미의 경계태세를 작동했다. 그렇게 레이더를 작동하던 중에 출근길에 우연히 앞서 가는 존을 발견했다. 지속은 천천히 그의 뒤를 밟으며 가고 있었는데 갑자기 존이 멈춰 서더니 가로수에 걸린 불법 현수막의 느슨해진 끈을 동여매는 것이 아닌가! 저건 뭐지? 선행이라고 보기엔 지나친 오지랖이었다. 아무리 오지랖퍼여도 굳이 남의 현수막을 재정비해주는 일은 없지 않나. 지속은 멈춰, 존이 시야에서 사라지길 기다렸다. 그리고 그가 안보이자 빠른 걸음으로 그가 만지던 현수막을 보러 갔는데. 지저스, 얼마 전에 새로 생긴 영어학원의 현수막이었다.

  위장 취업한 스파이. 지속은 이 사실을 원장에게 알렸다. 원장은 배신감에 분노했고 존을 제외한 모든 강사들을 소집해 비상사태를 알렸다. 지방 소도시에서 제법 큰 학원이었기에 일어난 일이었다. 원장은 존이 쓴 이력서를 보여줬는데 지속은  내용이 모두 거짓일 거라고 인민재판을 열자고 제안했다. 일단 혹여나 지속이 본 것을 알게 되어 보복을 당할 수 있으니 익명의 학부모 제보가 들어온 것으로 꾸며 존을 압박해 스스로 죄를 불게 만들자고 의견을 제시했다.

  존을 의자에 앉히고 다른 강사들이 그를 둘러쌓다. 원장이 흥분을 가라 앉히고 존이 타 영어학원의 현수막을 거는 모습을 본 목격자 이야기를 꺼내며 연유를 묻자 그가 한숨을 쉬더니 고개를 떨어뜨렸다. 그는 탑영어학원의 원장이었다. 결혼도 했고 애도 셋이나 있었다. 주민등록번호도 자신의 남동생 것이었다. 고등 대상 학원을 운영했기에 오후엔 성실한 존으로 밤엔 원장 크리스로 이중생활을 이어온 것이었다. 존은 무릎을 꿇고 사죄했고 원장은 그를 내쫓는 것으로 사건을 조용히 덮었다.

  원장은 지속에게 모두가 존의 연기에 속아 넘어가 호의적이었는데 어떻게 수상한 걸 잡아냈는지 물었고 지속은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나를 안 좋아하고 나에게 관심이 없어 이상했단 소릴 어떻게 하겠는가. 도끼병은 지랄병인데.

  누구든 지속의 레이더에 걸리면 탈탈 털렸다. 또 누구를 털어볼까. 결혼 후 오직 한 명, 이젠 병히밖에 없지.

  


작가의 이전글 기억의 냄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