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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속 Sep 13. 2022

시시껄렁한 닮은꼴 찾기

어마어마한 유전자의 힘

  학창 시절 친구들은 내게 드류베리모어의 웃는 하관을 닮았다고 했다. 누군지 몰라 나중에 인터넷 검색을 하곤 크게 실망하며 어디가? 왜? 몹시 의아했다.

  병히는 연애 초기 내게 배우 엄지원을 닮았다고 했다. 엄지원이라니, 내 기준에서도 예쁜 여배우였기에 기분이 좋았다. 결혼 후 병히는 내가 밥을 먹고 불룩 나온 배를 두드리면 장인어른이 언제 여길 오셨냐며 일어나 넙쭉 인사를 하곤 했다. 저걸 죽여 살려.

  대학 졸업반 땐 카라의 강지영을 닮았단 소릴 자주 들었는데 뭐 기분이 썩 괜찮았다. 어딜 가든 내게 어디서 많이 본 인상이라고 했는데 그래서 스스로 이 구역 흔녀로구나 생각하며 주변인들의 얼평을 초월한 지 오래였다.

  누가 봐도 못생긴 나의 혈육 종부는 이국주가 방송에만 나오면 채널을 돌렸다. 누나랑 닮아서 꼴 보기 싫다고 그녀를 싫어했다. 뭐 하관이 닮은 것도 같고 체형이 비슷한 거 같기도 하고. 종부는 누나의 도플갱어는 이국주니 방송국 근처는 얼씬거리지 말라며 진지하게 말하곤 했다.(이국주님 팬이라 나야 영광이지!)

  내가 생각하는 닮은꼴은 연예인 중에는 없었다. 인정하긴 싫지만 난 종부랑 닮았다. 종부랑 같이 옷가게를 가서 열심히 옷을 골라주는데 주인아주머니가 쫓아다니며 둘이 남매죠? 되게 닮았네요. 했는데 집중하느라 그 소릴 못 듣고 대답을 못했다. 가게를 나오자 종부는 누나는 나를 닮았다는 소리가 그렇게 싫었냐며 아줌마가 세 번을 얘기했는데 누나가 대꾸를 안 해서 민망했다고. 아.. 그랬구나. 누가 봐도 종부와 나는 남매로 보일만큼 닮았구나.

  종부는 진짜 못생겼는데 나도 그렇다니, 그동안 옹벽처럼 단단했던 내가 미인이란 착각은 그렇게 산산이 조각나버렸다. 진짜 예뻤으면 연예인이 되었어야지. 발에 차이듯 흔한 외모가 친근하여 들었던 칭찬을 진짜로 믿었던 내가 순진했다고. 그렇게 외모 자신감을 잃자, 거울 속에서 기미가 올라온 칙칙한 피부에 자글자글한 눈가 주름을 가진 하관이 발달한 아줌마 한 명이 날 주시하고 있었다. 최면이 풀려버린 것이다.

  연애 때처럼 내 외모를 칭송하던 병히도 없고 사회생활 만렙으로 칭찬을 남발하던 동료도 없고 나를 미스코리아를 내보내겠단 패기의 아빠도 없으니 최면이 풀릴 수밖에.

그래서 다시 정신을 다잡고 자기 최면을 걸었다. 애 둘을 낳은 삼십 대 후반의 아줌마치곤 성형 수술도 안 한 외모치곤 나는 상타치다. 이 정도면 선방다.

  여담으로 병히의 닮은꼴도 소개하자면 그는 찰리와 초콜릿 공장의 미니어처 부족민 움파룸파를 닮았다. 처음 그를 소개받을 때 주선자에게 움파룸파를 닮았지만 착하다는 소릴 들어 설마 진짜일까 의심했는데 정말 닮아서 놀랐던 기억이 있다.

  병히 얼굴엔 여럿이 존재하는데 움파룸파 지분 6에 전현무 2, 추신수 2를 가지고 있고 이발 후 얼굴 컨디션이 좋은 날은 후하게 평가하면 임창정살짝 있었다. 연애 때 3미리의 콩깍지가 동공을 덮었던 시절엔 그에게서 소싯적 최애 배우 양조위를 보기도 했다.

  이토록 다채로웠던 병히의 닮은꼴은 현재 한 명으로 추려졌으니, 바로 나의 시어머니. 

(시어머니, 병히, 원이, 진이와 외출할 때면 걸음걸이까지 똑같은 강렬한 유전자의 힘을 몸소 체감했다. 거기에 홀로 이방인이 된 듯한 소외감은 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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