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금요일 오후 두시쯤 대학 동기 유정에게 오랜만에 전화가 왔다. 반가워 받았더니,
"인스타 친구 추천에 이지속이 뜨길래 너랑 이름이 비슷해서 들어가 보니 브런치가 뜨더라. 딱 글을 읽자마자 너구나 했어."
그랬다. 늘 지나치게 앞서 나가는 나는 언젠가 출판될 나의 서적을 홍보하기 위해 생전 해본 적 없던 인스타그램을 최근에 개설했다. 출판 계약을 했냐고요? 아니요. 그냥 미리 홍보용으로 만들었는데요?!
소개란에 떡하니 브런치 주소까지 올려놨는데 그걸 보고 유정이가 연락한 것이었다. 대학생 때도 싸이월드에 웃긴 글들을 올리더니 여전히 재밌는 글을 쓴다며 깔깔거리는 유정이에 솔직히 당황했다. 브런치에 필터 없이 내 별별 사생활을 다 썼는데 아는 사람이 본다는 게 좀 껄끄러웠다. 그래도 오랜 친구니 아무렇지 않은 듯, 구독이랑 하트, 애정 어린 댓글을 부탁하며 전화를 끊었다.
통화 후 한동안 좀 멍했다. 워낙 내 속 얘기를 안 하는 성격이고 병히와의 갈등이나 푼수 같은 이야기 등 주변인에게 하지 않았던 이야기를 글로 풀어낸 것이 아차 싶었다. 그래도 부끄럽거나 거짓은 없었기에 괜찮다고 다독였지만 유정의 연락을 받은 후 인스타의 연락처 연동은 해제했다. 유정은 바로 내 브런치 구독하기를 누르곤 나를 모르는 척 존댓말로 재밌다는 댓글까지 달았다.
그녀와는 스무 살 신입생 오티에서 처음 만나 단짝이 되었다. 얼굴은 귀염상인데 늘씬해서 과에서 인기가 많았다. 같이 다니면 왜인지 유정의 그림자 혹은 춘향 아씨를 뫼시는 향단이가 된 듯한 기분이 들곤 했지만 유쾌한 유정이가 항상 좋았다. 2학년이 되면서 세부 전공이 달랐기에 자주 어울리진 못했다. 그래도 제일 친한 대학 친구였다. 성인이 된 후 사귄 친구이기에 보이지 않는 선은 있었다. 그 선은 내가 그었다. 미주알고주알 일상을 나누거나 자주 만나지 않았다. 그래도 졸업 후 서로의 생일에 만남은 지속했다.
나는 천안까지 한 시간 반 거리였고 유정은 사십 분 거리였기 천안을 만남의 장소로 골랐다. 후에 유정이 결혼 후 천안에서 살게 됐어도 우린 장소 변경 없이 천안에서 만났다. 그저 유정을 만나서 수다를 떨고 노는 것이 좋았는데 어느 순간 왜 나만 가야 하지? 유정인 왜 우리 집 근처 삽교천은 놀러 오면서 날 만나러 오진 않을까. 하는 의문이 생긴 후로 마음속 선은 더 굵어졌다.
유정이 결혼할 때 난 서울에서 기자를 했는데 내심 청첩장을 주러 서울에 오지 않을까 기대했다. 유정이 오면 망원동에서 가고 싶었던 식당을 가야지 했는데 그녀는 결혼 준비로 시간이 없다며 모바일 청첩장으로 초대를 대신했다. 그땐 그동안 알게 모르게 쌓인 섭섭함이 물밀듯 밀려왔다. 2년 뒤 나도 그녀를 내 결혼식에 모바일 청첩장으로 초대하며 소심한 복수를 완성했다.
유정은 내 결혼식에 아이와 남편까지 데려와 진심으로 축하해줬다. 먼 거리라 기름값이라도 챙겼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그래서 마음속 선을 가늘게 다시 그렸다. 결혼 후에는 비혼 때처럼 서로의 생일을 만나서 챙길 수 없었다. 그래서 유정의 생일을 챙기지 않고 넘어갔는데 내 생일에 그녀가 카카오 기프티콘을 보내왔다. 고맙다고 넙쭉 받으면서도 뭔가 미안한 감정이 들었다.
유정은 첫아이를 가져 태동을 하는 동영상도 아이의 초음파 사진도 종종 보냈다. 한 번씩 먼저 영상통화를 걸기도 하고 둘째 아이의 성별이 딸인걸 알았을 땐 격양된 목소리로 전화해 기쁜 소식을 전해줬다. 그에 반해 난 유정에게 생일 축하인사가 아니고서야 일상을 먼저 묻지도 내 일상 속 소소한 소식을 전하지도 않았다.
언제나 선뜻 내게 노크를 해주는 고마운 친구인데 쪼잔하고 소심한 성격으로 선을 끗고 벽을 세운 것이 미안했다. 내 브런치가 발각됐을 때 당황한 것도 미안했다. 생판 남에겐 좋다고 창피한 것도 모르고 치부를 들어내 놓곤 오랜 친구에겐 껄끄러워했으니.... 유정은 아마 이 글도 읽을 것이다. 이 자리를 빌려 그녀에게 한마디 해야겠다.
"내 단짠 인생이 웃기지? 재밌게 읽어줘. 언젠가 내 책이 나오면 천안에 가서 직접 선물할게. 사랑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