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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속 Oct 01. 2022

나의 웨딩 촬영 이야기

사진작가는 왜 사진을 확대했는가?!

  한 번쯤 웨딩 촬영을 주제로 썰을 풀고 싶었다. 결혼한 지 6년 차가 되자 지난날의 굴욕이 소화됐는지 웃음으로 승화할 자신감이 생긴 것도 있고 혼자만 그날을 떠올리며 웃기엔 아쉽달까? 그럼 시작해볼게요.

  본디 털털하고 치장에 관심 없던 난 결혼식을 앞두고도 똑같았다. 친구들은 승모근 마사지를 받았네, 신부 웨딩 케어 패키지를 끊었네, 샐러드만 먹네 난리였지만 그들이 그러든가 말든가. 누구나 다 하는 네일케어조차 받지 않았다. 도대체 무슨 자신감이었을까.

  웨딩촬영을 앞두고도 다이어트는 개나 주라며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차피 보정으로 돼지를 토끼로 만드는 세상 아니던가. 정말 아무 준비 없이 촬영을 갔다. 그리고 그 아무 준비도 안 한 것이 엄청난 후폭풍으로 돌아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스튜디오에서 드레스를 고르는데 대부분이 민소매 아니면 튜브탑 드레스로 노출이 있었다. 뭐 어깨나 가슴골 노출은 문제가 아니었다. 나는 깨인 오픈된 여성이지만 유일하게 단 한 곳의 신체부위만 유교 걸이 됐으니 바로 겨드랑이다. 신부케어 패키지에 겨드랑이 레이저 제모도 있었는데 레이저는 따갑지 않은가. 받지 않았다. 그땐 그래도 되는 줄 알았다.  촬영 전날 면도로 수풀을 벌초하고 와서 괜찮을 줄 알았다. 두 팔을 들어 겨드랑이를 오픈하는 자세는 없겠지. 다행히도 그런 망측한 자세는 없었다. 사진작가와 헬퍼 분이 촬영 내내 극찬을 해주어 기분이 고조되고 얼굴도 상기됐다. 독사진을 촬영할 때 특히나 환호성을 지르며 내게 자신감을 주었는데 덩쿨로 꾸민 벽 앞에 서서 아련한 눈빛으로 사진을 찍을  마치 아이돌의 엔딩 포즈처럼 나 자신에 취했다.

"오! 좋아요 신부님, 저기 덩쿨 잎을 한번 톡 건드려볼래요?"

나의 연기가 좋으니 사진작가도 신이 나 여러 포즈를 시켰고 난 팔을 들어 덩쿨 잎을 톡 건드리며 치명적인 표정으로 카메라를 응시했다. 박수가 터져 나왔고 칭찬을 받으며 촬영을 무사히 마쳤다.

  비록 키가 작은 병히때문에 커플 사진은 다 의자에 앉거나 창문틀 같은 소품에 앉아 찍어 앉은뱅이 커플 사진뿐이었지만 그게 최선이라니 믿을 수밖에.

  옷을 갈아입고 나오니 사진작가가 사무실로 우릴 불렀다. 그는 컴퓨터 모니터를 내 쪽으로 돌리더니 오늘 촬영한 사진을 샘플로 몇 개 보여줬다. 오! 생각보다 예쁘게 나왔네. 그때 그가 마지막으로 촬영한 덩쿨벽 사진 속 신부님 표정이 좋았다며  확대했는데,

  세상에나.... 확대된 사진 속에 샤프심이 박힌 듯 짧은 겨드랑이 털이 선명하게 보이는 것이 아닌가! 수치스러워 죽은 사람이 혹시 역사적으로 있나요? 없다면 오늘이 내가 역사에 남는 날?! 동공이 갈 곳을 잃고 흔들렸다. 옆에 서있는 병히를 힐끔 보니 병히도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어색한 미소만 지었다. 민망함에 시간이 멈춘 듯 얼어있는데 사진작가가 아무렇지 않게 사진 보정 예시를 보여준다며 펜을 들더니 내 겨드랑이 샤프심 털 위로 슥슥 왔다 갔다 했다. 그러자 거뭇한 겨드랑이가 그의 섬세한 펜 놀림으로 새하얀 눈밭으로 변하는 것이 아닌가? 다시 슥슥 하더니 허리선이 잘록해지고 또 슥슥하니 두 턱도 사라졌다. 참 신기했는데 신기함이 쪽팔림을 이기진 못했다. 이런 식으로 보정을 해드리겠다 말하는 그에게 잘 부탁한다고 어버버 말하곤 도망치듯 원본 파일이 담긴 USB를 챙긴 채 차에 올랐다.  병히와 서로 아무 말이 없었다. 얼굴이 화끈거리고 울고 싶었다.  레이저 제모를 받을걸 후회하고 또 후회했다.  정도면 털털한 여자로 공개처형 당한 꼴이라고....

  누군가에게 말하는 것도 창피해 잊으려 한 웨딩 촬영의 뼈아픈 기억이다. 그래도 촬영 결과물은 훌륭했다. 난 매끈한 겨드랑이를 병히는 인체공학을 무시한 엄청난 길이의 정강이를 갖게 됐으니. 오늘도 서재에 놓아둔 웨딩 액자를 보며 혼자 실없이 웃었다. 아! 이젠 여러분과 같이 웃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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