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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속 Oct 10. 2022

처절한 구애의 춤

나 혼자 밥을 먹고 나 혼자 춤을 추고

  동물 다큐멘터리에서 암컷의 시선을 받기 위해 화려한 날개를 쫙 펼친 채 구애의 춤을 추는 공작새를 봤다. 그리고 외쳤다. 바로 저거야!

  세상에 당연한 건 없지 않은가. 연애 때는 날 어떻게 한번 해보려고 갖은 애를 쓰고 공을 들였던 병히가 결혼 후 나의 존재를 당연시 여기는 게 거북하던 참이었다. 병히를 불러 소파에 앉히곤 화면 속 공작새를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저거봐. 짝짓기 한번 해보려고 춤추는 저 처절한 몸짓을! 앞으로 너도 날 위한 구애의 춤을 춰줘."

  늘 헛소리를 하는 나와 오래도록 함께한 병히는 쿨하게 알았다며 대신 너도 구애의 춤을 추라고 나에게 요구했다. 합의된 우리의 조건은 간단했다. 진지하게 성심성의껏 상대가 감동하거나 웃음을 터뜨릴 춤사위를 출 것. 그리고 시작된 숨 막히는 눈치게임.

  늘 화기애애하던 부부의 저녁시간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이쯤이면 그가 열렬한 구애의 춤을 추고 난 그 모습을 한동안 흐뭇하게 감상하다 그의 부름에 응하는 그림을 그렸건만. 그가 도무지 춤을 출 기미가 보이지 않자 보다 보다 못해 물었다.

"구애의 춤을 출 생각 없니?"

"전혀 없는데? 네가 추려면 추던가."

왠지 내가 내 발등을 었단 예감이 스쳤다. 불여우 같은 자식. 나도 출 생각 없거든? 그렇게 차가운 공기를 머금은 시간이 며칠이나 흘렀다.

  병히와의 기싸움에 지쳐 내가 먼저 물꼬를 터보려 아이들을 재우고 소파에 누워 스마트 폰을 보는 병히 앞에서 두 눈을 딱 감고 춤을 췄다. 아... 춤이라기보다 그를 웃겨서 굴복시키려는 계획이었다. 자유분방하게 팔다리를 휘두르며 그를 주시하자 병히는 힐끗 춤추는 나를 보더니 춤을 참 웃기게 춘다고 말하곤 다시 휴대폰 액정에 코를 박았다. 구애의 춤은 그렇게 응답 없는 혼자만의 처절한 몸부림으로 끝나버렸다. 에라이.

  병히는 지금껏 내 앞에서 한 번도 구애의 춤을 추지 않았다. 그래요. 솔직히 말할게요. 나만 췄어요. 

  평소에도 웃긴 춤을 자주 췄지만 뭔가 구애라는 타이틀을 붙이자 자존심이 상했다. 동물의 세계에서도 구애를 먼저 하는 암컷은 보지 못한 거 같은데... 어이없는 건 나의 구애의 춤을 그가 몹시 좋아했다는 점이다. 병히는 빵빵 터졌다. 도른 자의 구애의 춤을 상상해 보시라. 허를 찌르는 웃음을 주려고 종일 심사숙고해 스우파 저리 가라 고민하여 만든 안무이기에 자부심도 있었다. 그는 껄껄 웃으며 좋아했지만 그걸로 끝이었다.

  병히는 내게 "넌 도라이야" 욕 같은 칭찬을 하곤 다시 폰 게임을 했다. 분명 '구애'의 춤이건만 별다른 액션이 없어 날 허탈하게 만들었다. 구애의 뜻을 모르나? 내가 지금 구애를 했는데 왜 다시 폰을 보는 거지?? 병히의 폰을 빼앗아 창밖으로 내던지고 싶었다.

  게다가 절대 먼저 춤을 추지 않는 그. 어떻게 하면 저 무거운 궁둥이를 소파에서 떼어낼까? 나도 구애의 춤을 보고 싶은데 보여줄 생각이 전혀 없는 얄미운 남편에게 이번에도 내가 분하게 당하고 말았다.(부들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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