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히와 첫 만남에서 어색해 별별 소리를 나누다 보니 대학교 정문 근처 찜닭집 통유리를 힐끗 보다 닭다리를 뜯던 여자랑 눈이 마주쳐 서로 민망했다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맛있어 보여 먹어보고 싶은데 찜닭은 혼자 먹으러 갈 수가 없어 여태 못 먹어 봤다니 병히가 다음 주에 같이 가자며 날을 잡았다. 얼레벌레 그의 애프터 신청에 응했지만 병히를 또 보는 것엔 그닥 관심이 없었다. 그저 오래도록 사모한?! 찜닭을 먹자니 좋아서 약속을 잡았을 뿐.
그렇게 병히와 찜닭 반마리를 가운데 두고 앉아 식사를 시작하는데 그가 내 앞접시에 하나뿐인 닭다리를 턱 올려주는 것이 아닌가! 나는 됐다고 네가 먹으라 했지만 병히는 닭다리 여기 또 있어하며 닭봉을 집어갔다. 거기에 내가 먹는 속도에 맞춰 천천히 먹는 병히의 배려까지, 그를 향한 호감이 조금 싹트기 시작했다.
본격적인 연인이 된 후로 병히는 고기를 먹을 땐 늘 첫 쌈을 싸서 나에게 먹여줬다. 회를 먹을 때도 첫 쌈은 내입 속으로 들어왔다. 독이 있나 먼저 싸준다고 우스갯소리를 했지만 그 마음을 읽은 지 오래였다. 부족할 때 바로 추가가 가능한 음식을 먹을 땐 병히는 스퍼트를 올리며 빠르게 양껏 먹었는데 나와 함께 나눠 먹어야 하는 음식일 땐 내가 먼저 배를 채울 때까지 기다리며 천천히 먹었다. 내가 아 배부르다 이제 못 먹어하면 병히는 그제야 속도를 내서 남은 음식을 먹었다.
어제는 오랜만에 집에서 김밥을 쌌는데 두 딸들에게 한 접시씩 김밥을 썰어주고 병히와는 세줄을 썰어 한 접시에 두고 나눠먹었다. 역시나 천천히 먹는 병히. 그의 느린 젓가락질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러다 문득 궁금해져 물었다.
"예전에 우리 두 번째 봤을 때 찜닭 먹으러 갔잖아. 닭다리 나주고 넌 왜 닭봉을 닭다리라고 하면서 먹은 거야?"
"닭봉이 닭다리 아니었어?! 그거 미니 닭다리 아니야?"
와장창, 과거의 아름다운 감동이 박살나버렸다. 내일모레면 마흔인 인간이 세상에 닭봉을 닭다리로 알았다니! 혼자 하나뿐인 닭다리를 먹는 내가 민망할까 봐 한 소리라고 지난 십 년을 믿었는데.... 그럼 설마 첫 쌈을 내게 싸주는 것도 정말 상하거나 독이 있을까 봐??
목이 막혀 김밥이 들어가지 않았다. 서너 개를 먹곤 내가 젓가락을 내려놓자 병히는 와구와구 남은 김밥을 먹기 시작했다.
가끔은 진실을 모르는 편이 더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천천히 먹는 내 남자 병히는 닭봉을 닭다리로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