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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정은 May 27. 2024

짜장면과 나무젓가락

어른이 되어가는 시간

나무젓가락 한 쌍을 떼어내다 말고 갑자기 <짜장면> 얘기가 나온다. 난생처음 중국집에 가서 짜장면을 먹는데 나무젓가락을 깔끔하게 떼어내는 일이 굉장히 힘들었다고, 앞에 앉은 누군가 옛날 얘길 꺼낸다.

반짝반짝 윤기가 돌던.. 검은빛에 가까운, 캐러멜색 소스를 얹은 짜장면 그릇을 보면서
마음이 두근거렸던 생각이 난다.

서툰 솜씨로 면발을 뒤적이던 때가 모두에게 있었다. 가지고 있던 에너지의 절반쯤은 나무젓가락을 반듯하게 떼어내느라 써버리고, 나머지 절반의 기운으로 양손에 젓가락을 하나씩 잡고 뒤적거렸을 테다. 면이 서로 엉겨 붙어 쉽게 떨어지지 않을뿐더러, 떨어진다고 해도 소스와 골고루 섞기란 쉽지 않았다. 오로지 젓가락을 무기 삼아 혼자서 분투하고 있으면 마주 앉아있던 어른이 그릇을 바꾸어 주었는데 그 안엔 잘 비벼진 빛깔 좋은 짜장면이 수북했다.

꽤 긴 시간을 누군가 비벼주는 짜장면을 먹다가, 어느 날 스스로 가능해지는 날이 온다. 누군가 사주던 짜장면을 제 돈을 주며 사 먹고, 나아가 부모님을 모시는 식사에서는 요리도 하나, 근사하게 주문하며 뿌듯해지는 날이 오는 것이다.

어른이 되는 시간은 길고 모호하지만 그걸 알아차리는 순간은 불쑥 찾아든다. 예를 들면, 양쪽 손에 쥐던 젓가락을 어느새 한 손으로 쥔 채 능숙하게 면을 비비다 말고 아 이제 어른이구나, 깨닫는 것이다.


_ 써놓고 마음에 들었던

5월 24일 금요일 방송분 #평소의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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