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홍색이 곱고 예쁜 걸 어떡해
‘시어머니가 분홍색 한복을 입으신다네요.’
이런 제목은 너무 자극적이다.
결혼준비 커뮤니티에 올렸다간 아마 순식간에 인기글이 되어 성난 댓글이 주루룩 달릴 테지.
하지만 이왜진, 제곧내. (이게 왜 진짜? + 제목이 곧 내용)
말 그대로다. 시어머니는 다가오는 결혼식에 분홍색 한복을 입기로 하셨다.
아들만 둘을 낳은 우리 시어머니는 분홍색을 참 좋아하신다.
그런데 딸이 없으니 분홍색 한복을 입으실 일이 없으셔 첫아들의 결혼식 때도 다홍치마를 입은 사돈을 부러워하셨다고 한다.
그도 그럴게 그때 입으신 청록색 한복도 물론 아름다우셨지만, 분홍색은 더 찰떡같이 잘 어울리신다.
내가 봐도 그런 걸.
‘기왕이면 다홍치마’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그 색은 분명 여심을 흔드는 색이야.
사실은 나도 하얀 웨딩드레스보단 분홍색 드레스가 더 입고 싶다.
그러니 시어머니라고 크게 다르지 않을 테다.
여자는 핑크, 남자는 파랑.
코흘리개 시절부터 사회적으로 학습해 온 이 자연스러운 고정관념 속에는 여자 아이라면 당연히 쥬쥬(혹은 비비)가 그려진 분홍색 가방과 실내화주머니를 손에 들었어야 했고, 남자아이라면 퍼런 계열에 로봇(혹은 공룡)이 꼭 그려져있어야 했다.
물론, 잘못된 성관념이다.
색에는 성별이 없으며, 지금은 무려 2024년.
핑크가 잘 어울리는 남자는 사랑스럽다는 수식어를 얻게 되는 그런 때이다.
그러나 결혼식만큼은 아직도 여전하다.
신부 측은 분홍계열을 입고 신랑 측은 푸른 계열을 입어 각 혼주를 구분시킨다.
만약 당신이 친한 친구의 결혼식에 가서 그 친구의 어머니께 축하인사를 드리고 싶다면, 일면식 없는 사이라 해도 유전자로 얼굴을 감식하는 방법보다 색으로 어머니를 구분해 인사드리는 편이 빠를 것이다.
그만큼 극명하게 색이 신랑과 신부를 구분 짓고 있다.
그러니 아들의 엄마는 푸른색 한복을 입을 수밖에.. 하지만 분홍색이 자꾸 눈에 아른거린다.
그래서 나는 제안했다.
어머님, 분홍색 한복을 입으시지요.
그럴까?
안될 게 무어 있나요. 입으셔요.
그래서, 그러기로 했다. (어차피 친정엄마는 안 계신다.)
심지어는 내가 만들어 드리기로 했다.
덕분에 요즘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긴 하다만 꽤나 재밌고 의미 있는 작업이라 열심을 다하고 있는 중이다.
(본래는 예단드릴 때 한복을 지어 같이 드릴 생각이었으나, 미루다 보니 발등에 불 떨어져 이제 곧 완성을 앞두고 있다. 어서 마무리해야지.)
시어머니가 분홍 한복을 입는다. 라… 극히 드물긴 하겠지만 아예 없는 일은 아닐지도?
최근 인기리에 종영된 드라마 ‘내 남편과 결혼해 줘 ‘를 보면 으마으마한 성격의 시어머니도 분홍색 혼주 한복을 입고 나온다. (그래서 욕을 바가지로 먹긴 하지만…)
드라마에서 사진작가는 시어머니를 보곤 신부 어머님이냐며 물어본다. 아니요. 어머니가 아니라 시어머니인 것을 알고나자 작가의 의아한 표정. 그리고 갸우뚱한 고개.
내 결혼식날에도 남들이 보기엔 이상해 보이겠지?
그러나 사람들이 뭐라고 웅성웅성 쑥덕거리든 간에 알게 뭐람. 이제부턴 시어머니도 내 어머니지.
알게 모르게 흉보는 사람이 있으려나 싶지만, 며느리가 손수 만들어 입혀드렸다 하면 꽤나 정성스럽게 보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그래서 오늘도 열과 성을 다해 작업 중!
조금 특이하겠지만, 우리만은 특별한 거라 해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