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의 거짓말
자연의 모든 감각이 깨어나는 봄날이다.
햇살은 따스하고, 볼을 스치는 바람은 간지럽다.
그래서 더, 그날 엄마의 말은 거짓말처럼 들렸다.
“치매가 시작되었대.”
나는 그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아니,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
엄마는 요즘 그림을 그린다.
팔십이 넘어 시작한 취미였고, 그 안에서 재미를 느끼고 계신다.
우리는 약속도 했다. 아흔이 되면 전시회를 열자고.
그 약속이 이렇게 빨리 흔들릴 거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15년 전, 10월 어느 날 시어머님이 쓰러졌다.
그날 이후로 어머님은 아들도, 손주도 알아보지 못했다. 물론 며느리인 나도.
2년을 넘게 모시는 동안, 어머님은 나를 “언니”라고 불렀다.
집 안을 따라다니며 같은 질문을 몇 번이고 반복하셨다.
“밥은 왜 안 줘?”
나는 그 질문에 처음처럼 대답하려고 애썼다.
응급실로 실려 가던 날, 어머님은 떨리는 손으로 나를 꼭 잡고 또 한 번 나를 불렀다.
“언니…”
돌아가신 지 10년이 넘었지만, 그 느낌은 아직도 손끝에 남아 있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엄마만큼은 지켜드리고 싶었다.
10년이 넘도록 아침마다 전화를 건다.
조금은 귀찮아하실 만큼, 조금은 길게 붙잡아두고 싶어서 5분은 꼭 넘기겠다는 마음으로
이야기를 이어간다.
내가 전화를 거는 시간은 늘 6시 10분 전후다.
전화를 걸면 엄마는 기다렸다는 듯 먼저 인사를 건넨다.
“꿀모닝~~~”
그럼 나도 화답한다.
“꿀꿀.”
우리는 짜인 각본처럼 아침 인사를 이어간다.
“꿀잠 잤어?”
“응, 잘 잤어. 엄마는?”
늘 같던 아침이었다.
그래서 나는 괜찮을 거라고 믿고 있었다.
얼마 전이었다.
“어제 아침에는 밥 먹는 걸 까먹었어.”
엄마는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나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배고팠겠다’가 아니라,
‘아침 안 먹은 걸 어떻게 알았어?’라는 말이 먼저 올라왔다.
점심때가 되어서야 밥솥에 밥이 그대로 있는 걸 보고 알았다는, 그 말이 더 아팠다.
잠깐의 침묵이 흐른 뒤에야 입을 열 수 있었다.
“배고프지 않았어?”
그리고는 아무 일 아니라는 듯 자연스레 다른 이야기를 이어갔다.
앞으로 어떤 시간이 올지 나는 시어머님을 통해 짐작할 수 있다.
상황은 조금 다를 수 있겠지만, 막바지엔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걸 알기에 자꾸만 생각이 멈춘다.
어디까지 기억하실까. 아직까지는 아침을 챙겨 먹지 않았던 것 외에는 특별한 이슈를 알지 못한다.
함께 생활하는 것이 아니다 보니 놓쳐도 놓친 줄 모르고 지나갈 것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 할 수 있는 것들을 떠올린다.
사랑한다고 말하기.
예쁘다고 말하기.
고맙다고 말하기.
잘하고 있다고 말하기.
더 많이 듣고,
더 자주 찾아가고,
같이 있는 시간을 의미 있게 보내기.
엄마는 긍정적이고 단단한 사람이다.
그래서 조금은 더디게 진행될 거라고, 조금은 더 오래 머물러 줄 거라고 믿는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평소처럼 전화를 걸었다.
엄마의 첫인사가 듣고 싶어서.
잠시 뒤, 수화기 너머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꿀모닝~~~”
나는 그 짧은 인사말을 듣고 한 번 더 안도한다.
'꿀모닝' 인사가 유치하다며 안 하신다더니, 이제는 자연스럽게 입에 붙었다.
하루를 여는 우리의 암호 같은 인사를, 엄마는 언제까지 기억하실까.
아침마다 해주던 '사랑해'라는 말은 언제까지 들을 수 있을까.
오늘도 나는 같은 말을 건넸다.
“엄마, 사랑해.”
아직은 엄마가 그 말의 의미를 알고 있는 시간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