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15. “왜?”라는 질문

너의 생각을 듣고 싶다

by 소담


입사한 지 1년쯤 지나 심리상담사와 미술치료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대학에서 청소년교육학을 전공하면서 심리상담에 대해 얕게 익힌 적은 있었지만, 막상 장애인 직원들을 정기적으로 면담하면서 도움을 주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기 때문이다. 자격증을 취득했다고 해서 당장 눈에 띄는 변화가 생긴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그 자격증을 일종의 약속처럼 삼았다. 조금이라도 더 진지하게, 조금이라도 더 전문적으로 직원들과 마주하기 위해서였다.


그즈음, 한 청각장애 직원과의 대화가 오래도록 내 마음에 남았다. 면담을 하면서 나는 여러 질문을 던졌다.

“네가 그렇게 생각한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몰라요.”

“그때 어떤 말을 해주고 싶었어?”

“몰라요.”

“네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이유는 뭐라고 생각해?”

“그냥요.”

“그때 기분이 어땠을까?”

“몰라요.”

“몰라요라는 말속에 들어 있는 너의 생각을 말해본 적이 있니?”

“없어요”


지금 이렇게 글로 옮겨놓으면 다소 건조하고 기계적인 대화처럼 보이지만, 그 순간의 나는 간절했다. 첫 번째 질문이 어려워서 답하지 못했을까 싶어 두 번째 질문을 던졌고, 그마저도 힘들어 보여 세 번째, 네 번째 질문으로 이어갔다. 그러나 돌아오는 대답은 여전히 “몰라요”뿐이었다. 나는 점점 답답해졌지만, 동시에 그 짧은 두 음절 속에 무언가 깊은 벽이 있다는 것을 느꼈다.


시간이 흘러, 나는 그 대화가 단순한 실패가 아니었음을 알게 되었다. 십 년이 지난, 며칠 전 그 직원이 내게 말했다.

“그때 점장님이 울면서 그러셨잖아요. 내가 ‘몰라요’라고밖에 대답할 수 없는 건 제 잘못이 아니라고요. 아무도 제 안에 있는 생각을 물어봐주지 않았고, 들어주려고 하지 않았으니까 그렇다고요. 점장님은 제 ‘몰라요’ 안에 어떤 생각이 있는지 알고 싶다고 하셨잖아요. 그래서 하나씩 말하는 연습을 해보자고, 도와주겠다고 했었잖아요. 그래서 지금은 제가 이렇게 말을 잘할 수 있는 거예요.”


그 말을 들은 순간, 나는 가슴이 뭉클해졌다. 그때는 미처 몰랐다. 그러나 “몰라요”라는 대답은 단순한 회피나 무지가 아니라, 세상이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려 하지 않았던 결과라는 것을. “왜?”라는 질문이 중요한 이유는 거기에 있었다. 그 질문은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라, 상대의 마음에 숨어 있는 문을 두드리는 노크였다.


“행복하니?”, “행복이 뭐라고 생각해?”,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해?” 이런 질문들이 바로 생각의 문을 여는 손잡이가 된다. 처음에는 어설프고, 대답은 모호할지라도, 질문은 차츰 상대의 내면을 비춰주는 등불이 된다. 그리고 그 불빛 아래에서 상대는 자기 안의 감정을 들여다보고, 비로소 언어로 꺼낼 수 있게 된다.


물론 이 과정은 오래 걸린다. 그러나 나는 지금도 믿는다. “왜?”라는 질문이야말로 그 기다림을 견디게 하는 가장 강력한 도구라고. 줄탁동시(啐啄同時)라는 말처럼, 병아리가 안에서 껍질을 쪼는 순간 어미 닭이 밖에서 맞춰 쪼아주어야 생명이 태어난다. 마찬가지로, 누군가 안에서 자기 이야기를 꺼낼 힘을 모으고 있을 때, 바깥에서 “왜?”라는 질문으로 문을 열어준다면, 닫혀 있던 마음의 문은 언젠가 스스로 열리게 된다.


나는 지금도 “몰라요”라는 대답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안에 숨어 있는 수많은 가능성을 본다. 언젠가 그 말들이 진짜 대답으로 바뀔 날이 있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기 때문이다. 결국 삶은 그런 질문과 대답의 반복 속에서 조금씩 풍성해지는 것 아닐까. “왜?”라는 짧은 물음표는 그렇게 누군가의 세계를 넓히는 가장 긴 여정의 시작이 된다.


keyword
이전 14화14. 처음 마주한 ‘토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