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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전토끼 Jun 08. 2024

'좋소'와 '스타트업', 그 이름과 시선의 덫

작은 경험에서 깨달은 고정관념의 덫



'좋소' , '스타트업(Start-up)'


데칼코마니처럼 닮은 듯 다른, 이 두 단어를 보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비슷한 것 같기도 하고, 한 끗 차이인 것 같은데.. 스타트업이 뭔가 있어 보이는(?) 느낌이네~.'


좋소란, 흔히 우리가 블랙기업(Black Company, 노동자를 정신적, 물리적으로 착취하는 기업을 지칭)이라고 하는 중소기업을 말한다. 개인적으로 <좋좋소>라는 드라마를 재미있게 봤는데, 앞서 말한 중소 블랙기업들의 클리셰(Cliché)를 해학적으로 풀어낸 작품이라서 인상적이었다.


그럼, 스타트업(Start-Up)은 어떨까?

뭔지 모르게 미국갬성이 가득 묻어나는 단어이자 한 편의 청춘 드라마가 생각나는 용어다.


젊은 초엘리트들이 머리를 맞대며 밤새 기획 회의를 하고, 훈남 혹은 훈녀일 것 같은 천재적인 대표가 열정적인 피칭(Pitching, 투수가 공을 던지듯 투자자에게 프레젠테이션을 던지듯 한다는 의미)을 할 것 같은 장면들이 스친다. 때론, 예상하지 못한 장애물을 만나더라도 천재적인 대표의 기지 혹은 구성원들의 젊음과 패기로 극복하는 전형적인 청춘 드라마, 그 자체이다.



유사해보이는 중소기업인데 스타트업에서는 상큼함이 묻어나오는 반면, 좋좋소에서는 걸쭉한 막걸리의 느낌이 묻어난다 ⓒtvn, WATCHA



좋소와 스타트업에 대해 글 초반부터 구구절절하게 설명한 이유는 얼마 전 겪었던 경험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앞서 설명한 '좋소' 혹은 '스타트업'의 이름과 시선에 대한 편견에 갇히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를 알게 되었다.



그 경험은 남편과의 사소한 대화에서부터 시작됐다.


남편: "우리 회사 동료의 친구가 스타트업 대표인가 봐, 글로벌 시장을 대상으로 우리나라 화장품 마케팅 해주는 업체 같은데, 한번 지원해 볼래? 영어 잘하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해서 내가 추천했거든!  한번 면접이라도 봐봐~재택근무도 되고 파트타임(part-time)도 된대!"
나: "오~정말? 괜찮을 것 같다. 글도 쓰면서 여기서 일해보면 좋겠네!!, 면접은 언제 보는 거야? 이력서 같은 거 보내야 하나?"
남편: "아~, 일정은 회사 동료에게 물어보고 확정되면 알려줄게!"
나: "어 알았어!, 고마워!!"



'이제는 정말 남주혁과 수지가 나온 스타트업 같은 글로벌한 스타트업에서 일해보는 것인가?'라는 설렘 반, 기대 반과 함께 기업정보를 찾아보았다. 많이 알려진 기업은 아니라 정보가 몇 없었지만, 홈페이지 자체도 영어로만 되어 있어서 그런지 글로벌한 분위기가 물씬 났다. 그리고 최근에 투자도 받았고, 대표의 이력을 찾아보니 "S대 경영학과" 출신이었다.


'와~!, S대 경영학과 출신에 글로벌 시장을 대상으로 K-뷰티 마케팅 플랫폼 사업을 하다니.. 멋진데?, 이런 대표가 경영하는 곳이라면 믿고 지원할 수 있겠다.'라는 생각을 했다.


이런 내 기대와는 다르게 남편과의 대화를 끝으로 며칠이 지나도록 아무런 연락도 없었다.


그리고는 어제, 면접보기 2시간 전에 급하게 남편에게 연락이 왔다.

면접일정이 잡혔다고 이야기를 듣는 순간, '화상미팅으로 하는 건가?'라는 생각을 하며 약간 긴장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황당하게도 그 대표는 카톡으로 내게 연락을 했고, 그것도 내가 먼저 인사하기 전에는 인사도 하지 않고 잠자코 있었다. 이런 자유로운 면접 형태(?)는 외국계 회사생활 때도 듣지도 보지도 못해서 당황스럽긴 했지만, 스타트업의 채용문화인가 싶어서 적응해(?) 보기로 했다.


3시에 일정이 있어서 2시에 면접을 보겠다고 미리 이야기를 했다. 나름 면접 시 물어볼 내용도 정리하고 정성스럽게 면접 준비를 했다. 그러나, 실상 면접에서 그 대표의 반응은 다음과 같았다.


"죄송한데, 제가 일정이 지연되어서요, 2시 45분쯤에 통화 가능하실까요? 5시 이후도 좋습니다."



이 말을 들은 나는 황당했다.

분명 3시에 일정이 있다고 사전에 이야기를 했는데, 개인사정(일정 지연)을 면접 중간에 말하며, 무작정 면접 시간을 미뤄 달라는 것이다.



황당하기도 하고 언짢기는 했으나 그래도 소개해준 남편의 회사동료분 그리고 남편을 생각해서 5시 이후에 연락을 달라고 했다.



개인일정을 후다닥 정리를 하고 5시 정각이 될 때를 기다렸다.

역시나 연락이 없었다. 이제는 정말 내 인내심의 한계까지 다다른 것 같았다.



그리고는 대표에게 "늦어도 5시 반까지는 전화 주셨으면 합니다"라고 보냈다.


그 대표님은 역시나 5시 반이 지나도록 연락이 없었고, 난 다음과 같이 회신을 보냈다.

"안녕하세요 대표님, 지원의사 철회하겠습니다. 전화는 별도로 안 주셔도 되고요.

 지원 기회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말이다.



내 카톡을 주구장창 확인 안 하고 하루 종일 면접 일정만 일방적으로 지연했던 그 대표는 그 카톡을 보내자마자, 2분 뒤에 바로 전화가 왔다. 그러고서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안녕하세요, 제가 사과드리려고 전화드렸습니다. 제가 휴대폰을 분실해 가지고 지금 찾았거든요. 그래서 카톡 확인 못했어요~정말 죄송합니다."


변명치고는 너무 어이가 없어서 로봇처럼 "네 괜찮습니다."라고 말하며 전화를 끊었다. 차라리 좀 더 그럴듯한 변명이라도 했으면 이해가 됐을 텐데 말이다 마음에 안 들면 그냥 직접 말을 하지. 그 변명이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채용 예정자와의 일정을 소중하게 생각했다면, 상황이 어떻든 연락을 확인하고 소통하는 것을 소홀하게 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재밌는 것은 전화를 끊고 나서 그 대표는 내게 구구절절한 장문의 카톡을 보내왔다.

내용은 대략 이러하다.


"다시 한번 죄송하며, 핸드폰을 이전 미팅 장소에 놓고 왔다. 그리고 원래 미팅시간은 2시가 아니었다, 커뮤니케이션 착오가 있었다, 미안해서 소정의 선물을 준비했다."


그 대표가 소명한 이유들은 지극히 사소한 것이라서 내 마음을 풀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리고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고분고분할 때는 내 연락을 본채 만채 무시하다가, 갑자기 안 한다고 하니까 왜 이렇게 호들갑이지? 본인이나 기업의 이미지 및 평판을 생각해서 그런 건가?'



혹여나 본인 및 본인 기업의 평판을 고려했다면 애초에 그렇게 행동하면 안 되는 것인데, 무엇을 믿고 그렇게 행동했는지 궁금할 따름이었다. 아니면 "(나보다) 학벌도 그저 그렇고 경단녀 주제에 내가 써주겠다는데, 네가 뭐 어쩔 건데?"라는 심사였을까, 그래서 예상하지 못한 당당한(?) 태도에 당황한 것인가 싶기도 했다.



자신이 하는 행동, 소위 비즈니스 매너는 '좋소'처럼 하면서, 타인에게는 마치 '스타트업'의 유능한 대표로 인정받고 싶은 듯한 이중적인 모습을 보며, 화도 났지만 많은 생각이 들었다.



이런 작은 경험을 통해 학벌, 지위, 사회적 관념, 타인의 시선과 같은 덫에 내 인생의 방향이나 선택 혹은 틀이 갇혀버리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소위 있어 보이는 것들만 기준해서 판단하면, 본질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말 그대로 함정에 빠질 수 있음을 몸소 겪었다. 한편으로는 '글로벌 스타트업'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게 해 준 해당 스타트업 대표에게 감사의 말을 전한다.



과연, 그 대표가 내게 어떤 소정의 선물을 줄지는 모르겠지만, 무엇을 주든 거절할 예정이다.

마지막으로, 면접 기회를 주신 대표님께 사업이 번창하시길 바라며, 아래의 명언을 조심스럽게 조언드려 본다.


ⓒ 20세기 폭스 홈엔터테인먼트 코리아











헤더 이미지Andreas Haslinger,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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