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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담 Sep 09. 2021

글 쓰기 싫은 날 냉면

날도 덥고 이유 없이 짜증 나고 속이 답답하다. 며칠째 노트북의 하얀 스크린과 깜빡이는 커서 때문에 속에서 화가 부글부글 끓는다. 뭐라도 일단 써봐야지 마음먹어도 뭘 어떻게 왜 써야 하는지 몰라 방황한다. 키보드로 아무 말이나 두드리다가 이내 지워버리고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다. 괜히 빈 스크린을 노려보다가 포기하고 부엌으로 간다. 오늘처럼 글 쓰기 싫은 날은 냉면이다.


냉동실을 열어 꽁꽁 얼어버린 냉면 육수를 꺼낸다. 하얀 냉기를 뿜는 냉면 육수 팩에서 네모난 육수 덩어리를 조심스럽게 그릇에 담아 전자레인지에 살짝 돌려준다. 소금을 살짝 넣은 물에 미리 삶아둔 냉면 사리는 얼음물에 박박 헹구어준다. 꽉 막혔던 속이 조금은 풀어지는 것 같다. 얼얼해진 손끝으로 탱글탱글한 면 사리의 물기를 탈탈 털어 커다란 사발에 예쁘게 담고 고명을 준비한다. 묵은지를 잘게 썰어도 맛있고 열무김치도 좋지만 채 썬 양파와 사과 그리고 오이를 곁들여 먹으면 진짜 꿀맛이다.


식초 맛으로 냉면을 먹는 나는 겨자와 식초를 왕왕 때려 넣고 골고루  비벼준다. 후루룩 쭉쭉 넘어가는 냉면처럼 내가 쓰는 글도 막힘없이 시원하게  써지면 얼마나 좋을까. 살얼음을 우적우적 씹으며 생각한다. 미국 작가 제임스 볼드윈은 글을 쓰는 고통, 그리고  고통을 인내하는 (훈련/사랑/운과 더불어) 결국 재능보다 중요하다고 했다.

출처 링크

Something that irritates you and won’t let you go. That’s the anguish of it. Do this book, or die. You have to go through that. Talent is insignificant. I know a lot of talented ruins.Beyond talent lie all the usual words: discipline, love, luck, but most of all, endurance.
  — James Baldwin’s Advice on Writing


어디 내놓기 부끄러운 나의 이야기를 꾸역꾸역 타이핑하고 업로드하는 것은 힘들고 고통스럽다. 누가 시키는 것도 아닌데... 고통을 참고 인내하는 것이 정말 재능보다 중요할까. 꾸준히 쓰다 보면 정말 평양냉면처럼 사람을 홀리는 글을 쓸 수 있을까. 쓰기 싫으면 안 써도 되는데 나는 '잘' 쓰고 싶어서 엄한 속을 앓는다. 남은 냉면 국물을 들이켜고 다시 글을 쓰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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