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귀자와 '원미동 사람들' 그리고 지금의 부천

부천은 어떻게 '아프리카 BJ'들의 성지가 되었는가

by 쟈크 내리다




양귀자(梁貴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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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5년 전라북도 전주시 출생.

연작 소설 『원미동 사람들』의 저자이다.

문예장학생으로 원광대학 국문과를 졸업, 1978년 <문학사상> 신인상을 수상하며 이름을 단단히 하였다.


저작으로는『귀머거리새』, 『원미동 사람들』, 『지구를 색칠하는 페인트공』, 『길모퉁이에서 만난 사람』, 『슬픔도 힘이 된다』 『희망』,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 『천년의 사랑』, 『모순』을, 산문집 『내 집 창밖에서 누군가 울고 있다』, 『삶의 묘약』, 『양귀자의 엄마노릇 마흔일곱 가지』, 『부엌신』 등이 있으며 장편동화 『누리야 누리야』가 있으며


『원미동 사람들』로 유주현문학상을, 1992년 『숨은 꽃』으로 ‘이상문학상’을, 1996년 『곰 이야기』로 ‘현대문학상’을, 1999년 〈늪〉으로 21세기문학상을 수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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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속 '원미동'은 실제하는 지명이다. 경기도 부천시의 법정동으로 주민수 27,750명으로 꽤나 사이즈 있는 도시. (통계청 기준,마포구 합정동의 인구는 15,925명 으로 집계되었다.)

서울 중심부와 직선거리 약 20KM 내외인 수도권에 해당한다.

Group 4.png 원미동-서울 구조표

양귀자의 연작소설집 원미동 사람들의 구조는 지리상 이분법을 기초로한다.

'서울 그리고 서울이 아닌 곳'은 등장인물로 하여금 교양과 비교양으로 구분되는 지표가 된다.





kor3_83-6.jpg 이미지 출처 : 국토 교통부

서울과 멀지 않은 거리에 있는 부천은 어떻게 아프리카 bJ들의 성지가 되었을까?


원미동 이후의 부천, 그리고 왜 BJ들이 모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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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귀자의 『원미동 사람들』 속 부천은 “도시가 되기 전의 도시”였다. 서울의 팽창을 받아내는 완충지대, 꿈을 이루기엔 부족하고 포기하기엔 아직 이른 사람들이 모여 살던 곳. 그곳의 특징은 문화의 부재가 아니라, 문화가 아직 굳어지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원미동은 조용했지만 텅 비어 있지는 않았다.

문제는 시간이 흐른 지금의 부천이다.

부천은 분명 문화 콘텐츠를 갖고 있다. 영화제, 만화, 영상 산업, 브랜드로서의 ‘문화도시’. 하지만 이 문화는 찾아오는 문화라기보다는 유지되는 문화에 가깝다. 서울처럼 새로운 사람이 끊임없이 유입되며 판을 흔들지 않는다. 대신 주거 단지로서 안정화된 도시가 된다. 출퇴근하고, 돌아와 쉬고, 다시 서울로 나가는 구조. 도시의 리듬이 ‘체류’가 아니라 ‘회귀’로 고정된다.

이 지점에서 문화는 서서히 퇴색된다. 사라진다기보다 음지로 이동한다.

공식적인 문화는 축제와 행사로 남고, 비공식적인 문화는 골목과 방 안으로 숨어든다. 양귀자의 시대에는 그 음지가 동네 술집과 슈퍼 앞 평상이었다면, 지금은 스마트폰 화면과 스트리밍 플랫폼이다. 공간이 사라지자 무대가 바뀐 것이다.

최근 이슈가 된 아프리카 BJ들의 집결과 방송 금지 논란은 그래서 우연이 아니다. 이들은 문화가 없는 곳에 생겨난 존재가 아니라, 문화가 드러나지 않는 도시에서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 무대를 만든 사람들이다. 주거 도시는 소비자가 많고, 감시자는 적고, 밤은 길다. 콘텐츠를 만들기에 의외로 최적의 조건이다.

흥미로운 건, 이 BJ들의 방송 내용이 대부분 극단적으로 새롭지 않다는 점이다. 일상 이야기, 먹방, 술, 다툼, 하소연. 『원미동 사람들』에 실렸다면 충분히 한 챕터가 되었을 이야기들이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이 삶은 더 이상 문학으로 기록되지 않고 실시간으로 송출된다는 것, 그리고 플랫폼의 규칙에 의해 언제든 차단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동진 식으로 말하자면, 이 현상을 도덕의 문제로만 바라보는 순간 분석은 멈춘다. 이것은 취향의 문제도, 일탈의 문제도 아니다. 도시가 더 이상 이야기를 생산하지 못할 때, 사람들은 스스로 이야기가 된다는 구조의 문제다.

원미동은 사라졌지만, 원미동적인 삶은 여전히 남아 있다. 다만 이제 그것은 골목이 아니라 스트리밍 창 안에 있다. 그리고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을 ‘퇴폐’라고 부르기 전에, 왜 이 도시에서는 다른 방식의 문화가 떠오르지 못했는지를.

부천은 지금도 살기 좋은 도시다. 하지만 살기만 좋은 도시는, 어느 순간 말이 없어진다. 말이 사라진 자리에 가장 먼저 등장하는 것은 늘 가장 시끄러운 목소리다. BJ들은 그 결과이지, 원인이 아니다.

양귀자가 지금의 부천을 쓴다면, 아마도 원미동 사람들 대신 원미동 방송들’을 썼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소설은 여전히, 우리가 외면한 삶에 대해 조용히 묻고 있을 것이다.

“이건 정말 그들만의 문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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