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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트륨 Sep 27. 2020

입싱! 그리고 14일의 격리기간(Quarantine)

코로나를 뚫고 날아간 싱가포르 #1

14일의 격리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다. 순탄치만은 않았던 건 확실한데 주 중에는 일에 바빠서 사실 원래 출근하는 시간보다 훨씬 일찍 일어나서 일을 시작하고 퇴근시간을 훌쩍 넘겨서 침대로 돌아갔고, 주말에는 침대에서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 하필이면 주말에는 와이파이가 계속 끊어져서 넷플릭스를 보다가도 간간히 끊어지는 연결 때문에 복구될 때까지는 멍 때리고 있거나 잠을 잤다. 거의 사진도 찍지 않았고 밥도 배가 고파서 먹기보다는 그냥 먹긴 먹어야 하니까 먹은 듯...


8월쯤에 입싱을 할 것이라고는 어렴풋이 생각하고 있었지만 갑자기 현실로 다가오면서 정말 잘한 선택인지 모호해졌고 이런 시기에 나라를 떠나는 게 맞는지에 대한 현실적인 고민과 잠깐 내려놓고 가는 나의 짧은 인간관계가 못내 아쉬웠다. 대학생 때 공부하러 떠날 때는 다른 나라로 가는 게 마냥 설레기만 했는데, 싱가포르로 떠나는 1주일을 남겨두고는 후회와 불확신의 늪이었다. 결국 떠나기 전날은 거의 잠을 못 잤고 퉁퉁 부은 얼굴로 다음 날 짐을 마저 챙겼다.


입싱과 자가격리 시작

싱가포르는 이번이 두 번째 방문인데, 공항에 도착하자 미처 한국에서 읽지 못한 카톡들이 와있었다. 그제야 실감이 난 것 같다. 6년 만에 다시 방문한 공항의 냄새를 맡으며 입국심사를 통과했다. 사실 다들 마스크를 쓰고 있어서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듣지 못해서 몇 번이고 되물었기에 조금 민망했다. 입국을 위한 서류 뭉텅이를 꺼내서 검사를 받고, 손목에 14일 동안 의무 착용해야 하는 시계를 차고 나니 택시를 타는 곳으로 나가라며 안내해 주었다. 굉장히 자유도가 높았기에 내가 제대로 나온 건지 헷갈리기 시작했지만 이미 자정에 가까워져 가는 시간이었기에 가장 앞에 있던 택시를 잡아타고 짐을 싣고 회사에서 마련해준 30일간의 임시 숙소로 향했다.


정신이 없긴 없었나 보다. 혹시 몰라 올해 초에 신용카드 해외 결제를 막아둔 걸 안 풀고 왔다는 걸 깨달았다. 겨우겨우 짐에서 환전해 온 돈을 꺼내 지불했다. 제대로 확인하고 내렸어야 하는데 내가 말한 곳과는 조금 거리가 있는 곳에 내려준 택시기사님...^^ 로밍이 되지 않아서 지도 앱도 작동하지 않았고 주변에 무료 와이파이도 없었기 때문에, 아예 이상한 데에 내려주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다행스럽게도, 조금만 더 걸어가면 되는 것 같았다. 30킬로에 육박하는 캐리어를 끌고서 겨우 목적지에 도달했을 때 체크인 관련해서 받은 메일이 생각나서 캡처해둔 사진을 보고 현관문을 열었고 마주한 광경은 가파른 계단이었다. 미국 여행을 할 때, 워싱턴에서 방문한 호스텔이 이랬었는데...라고 생각하며 3층까지 짐을 꾸역꾸역 끌어올렸다. 이미 12시를 넘은 시간이었기 때문에 주변에는 도움을 요청할만한 곳도 없었고, 해외에 혼자 덩그러니 남겨졌다는 기분을 느끼며 기내식도 먹지 못해 에너지가 거의 없었지만 끙차끙차 젖 먹던 힘을 짜내었다.


문을 열고 들어간 방은 생각보다 깔끔했다. 복층에는 살아본 적이 없는데 위층에 침실이 있고 아래층에 욕실과 작은 간이 부엌, 그리고 일을 할 수 있는 책상이 있었다. 처음 들어가서부터 동남아 특유의 퀴퀴한 냄새가 나기는 했지만, 그런 것을 하나하나 곱씹지는 못하고, 와이파이를 연결하려고 애썼다. 부모님께 잘 도착했노라고 메시지를 보내 두고 대강 샤워를 하고 너무 피곤해서 잠을 잘 수 없는 기분이라 수면 영양제를 챙겨 먹어야지 싶어서 냉장고를 열어보니 물이 없었다. 그냥 먹지 말고 자볼까 싶다가도 내일 당장 일을 해야 하는데 잠을 못 자면 힘들 것 같아서 수돗물을 받아서 마셨다... 서울에서도 안 해본 행동을 싱가포르에서 하고 있는 것이 우스웠다. 그렇게 꾸역꾸역 삼킨 영양제는 효과가 전혀 없었고 5분에 한 번씩 잠에서 깨면서 선잠을 잤는데 이걸 과연 잤다고 할 수 있나...? 그러다가 갑자기 숙소에 도착하고  나서 와츠앱(Whatsapp)으로 MOM에게 연락을 해야 한다는 것을 깜빡한 게 생각났다 ㅋㅋㅋㅋ 숙소 도착 후 1시간 내에 해야 하는 것을 거의 두세 시간 뒤에 했으나 다행히 별일은 생기지 않았다. 그러고 나서도 도저히 잠이 오지 않아서 시차가 다른 곳에 사는 친구에게 연락을 해보았는데 다행스럽게도 말동무가 되어 주어서 날이 밝을 때까지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때웠다. 도저히 잠이 다시 오진 않아서 그렇게 싱가포르에서의 첫 아침을 맞이했다.


싱가포르에 이미 살고 있는 친구에게도 잘 도착했다고 연락을 하고 나니 어서 일을 하라며 보내준 랩탑과 온도계, 그리고 심카드 등이 도착했다. 심카드를 꽂고 어제 미처 완료하지 못한 MOM 앱을 깔고 첫 번째 온도 보고를 했다. 하루에 세 번 MOM 앱에 온도를 업데이트해야 하는데 생각보다 잊지 않고 잘 등록했다. 전화는 딱 첫 번째 날부터 둘째 날 각각 한 번 씩 왔고, 어디에 머무르고 있는지, FIN번호 그리고 생년월일을 묻고 끊는 짧은 전화였다. 다만 목소리가 굉장히 끊어지고 작아서 도대체 내가 영어를 듣고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동시에 이 억양에 언제쯤 익숙해질지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뭔가 먹어야 되나 하는 생각이 들었을 즈음에는 싱가포르에 살고 있는 친구가 보내준 배달 음식이 도착해서 감격하면서 먹었다. 이렇게 받기만 해도 되나 생각이 들었지 뭐... 오후쯤에는 IT팀, 그리고 인사팀과 차례로 미팅을 마치자 일을 하기엔 내가 너무 지쳐있다고 판단되어 다시 침대로 기어 올라갔다. 하지만 계속 잠은 오지 않아서 멍 때리고 있다가 화요일을 맞이했다.


화요일부터 목요일까지는 싱가폴인지 한국인지 헷갈릴 정도로 일이 바빠서 일을 하고 지쳐 잠들고 손목에 장착된 시계 덕분에 엄청난 통증을 느끼며 파스를 덕지덕지 붙였다. 파스를 가져와서 참 다행이지... 어디 나가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손목의 통증을 마냥 참기만 해야 했다면 너무나도 고통스러웠을 것 같다. 한국에서 가져오지 않은 폼롤러가 그리워지기까지 했다. 격리 기간 중에 음식은 그랩을 통해 시켰는데 불운은 여기서도 계속되었다. 야쿤 카야 토스트를 아침으로 먹고 싶어서 주문했는데, 무슨 이유인지 돈만 결제되고 배달이 오지 않았다. 내 실수인가 싶어서 또다시 주문을 했지만 두 번째 주문도 마찬가지로 도착했다는 메시지만 받고 오지 않았다... 야쿤 카야 토스트는 굉장히 맛있고 저렴한 음식인데, 배달로 시켜먹으니 서비스 비용과 small order fee가 더해져서 $15라는 어마어마한 금액이 되어버렸다. 그래도 먹고 싶어서 주문했는데 오지 않아서 너무 화가 나서 그랩에 연락해서 리펀드를 요청해두고 스타벅스로 대강 음식을 다시 주문했다. 30분도 안되어 도착한 스벅 음식을 보고... 내 실수가 아님을 깨닫고서 그랩의 회신을 기다리기로 했다. 첫 번째 오더에 대해서는 바로 즉각 환불 처리가 되었으나, 두 번째 오더에 대해서는 제대로 주문이 되었다면서 아주 이상한 주소를 알려줬다. 내 주소가 아닌... 그런 난생처음 보는 주소... ^^ 그래서 그 부분에 대해서 다시 회신을 했고 다다음날쯔음 모두 환불을 받았다.


두 번째 주차로 들어선 Quarantine, 도무지 swab test 일정이 오지 않았다. 첫 주에 진행될 것이라고만 막연하게 생각했는데 오지 않아서 아 이러다가 격리기간 지나도 못 나가는 것 아닌가라는 두려움이 음습했다. 인사팀에 한번 확인해달라고 연락을 하자마자, 손목의 팔찌가 윙윙 대면서 일정을 보내주었다(나를 지켜보고 있나...). 날짜가 정해지니 뭔가 마음의 준비를 위해서 후기글을 찾아보게 되더라. 다들 생각보다 엄청 고통스럽진 않았고 참을만했다고 했지만, 나는 굉장한 겁쟁이이기 때문에 아무 악몽까지 꾸면서 손꼽아 기다렸다. 그리고 싱가포르에 도착하고 처음으로 바깥으로 나가는 날이라 왠지 설레기도 하고 복합적인 감정이었다. 물론 이 테스트 일정 때문에 일을 미리 처리해야 한다는 굉장한 부담이 있었지만 어차피 해야 할 것 빨리 하고 바깥공기나 마시자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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