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3-3. ‘설록’이 차문화 헤리티지를 키워가는 방법
‘설록차’ 좋아하시는 분!?
어린 찻잎을 사용해 더욱 맑고 깨끗한 느낌을 주는 녹차의 대명사 설록차, 차문화가 지금처럼 섬세하고 다양해지기 이전에는 어딜 가나 모두들 티백 형태의 설록차를 즐겨 마셨던 것 같다.
그런데 잠깐,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설록차를 녹차의 한 종류로 알고 있지만, 설록차는 실은 ‘브랜드네임’이라는 것!
아모레퍼시픽의 창업주인 고 서성환 회장의 우리 차를 향한 아름다운 집념은 잘 알려져 있다. –잘 모르겠다면, 혹시 제주도 여행을 갔을 때 서귀포의 오설록O’sulloc 티 뮤지엄에 들른 적이 있지는 않은가!?-
서성환 회장은 일찍이 화장품사업으로 해외를 자주 드나들었는데, 해외에서 그 나라의 전통차를 대접받을 때마다 우리나라에도 나라를 대표할 고유의 차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아쉬움이 컸다고 한다. 우리나라에도 분명 차를 마셨던 문화가 존재하건만, 아픈 역사를 지나며 그 맥은 완전히 끊겨있었고, 서성환 회장은 손수 차밭을 일구어 우리 고유의 차문화를 잇기로 결심한다.
‘우리 차’라면 응당 우리 땅에서 자란 찻잎으로 만드는 것이 인지상정. 1979년, 서성환 회장은 돌과 바람뿐이던 제주에 차밭을 일구기로 결심했다. 제주의 기후는 차나무가 자라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었지만, 사람의 손 한 번 닿지 않은 채 버려져 있던 척박한 땅을 일구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당장 수익이 나지 않아도 오직 우리 고유의 차문화를 정착시키겠다는 집념 하나로 서성환 회장은 제주의 험난한 자연과 사투를 벌였다. 첫 10년간은 모두가 고생만 했을 뿐, 이윤이 정말 전혀 나지 않았다고 하니, 우리 고유의 문화를 일구겠다는 서성환 회장의 ‘아름다운 집념’이 아니었다면 오늘날 제주에 푸르른 차밭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1983년, 아모레퍼시픽-당시엔 태평양-은 ‘눈 덮인 한라산 다원에서 생산된 깨끗한 녹차’ 설록차를 첫 출시한다. ‘한라산 어린 찻잎으로 만든 좋은 녹차’-당시의 광고카피에 따른 표현이다- 설록차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우리 고유의 차문화’도 함께 움트기 시작했으나...
인기가 너무 많아도 문제, 설록차가 너무나 인기를 끈 나머지 녹차를 지칭하는 일반명사처럼 되어버린 것이다. 발음마저 입에 착 붙은 나머지 사람들이 너도나도 녹차를 ‘설록차’라고 부르며 브랜드의 가치는 오히려 희석될 위기에 처하는데...
그리하여, 우리 회사에 다음의 두 가지 미션이 떨어졌다.
-Mission 1 설록차의 일반명사화를 방지하라!
-Mission 2 새로 건립하는 차 박물관을 녹차문화를 대표하는 브랜드로 만들어 달라!
2000년대에 접어들며 1979년부터 시작된 우리 차를 향한 아름다운 집념은 마침내 결실을 맺기 시작했고, 아모레퍼시픽은 제주도 서광다원 입구에 차 박물관을 개원할 계획을 세운다. 이 박물관은 우리의 차문화를 보존하고 전파하는 것 이외에도 설록이라는 브랜드를 아모레퍼시픽 고유의 유산으로 확실히 정립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이 프로젝트의 중심은 ‘설록’이 될 수밖에 없었고, 우리 버벌브랜딩팀은 한국 차문화의 기원 –Origin of Sulloc-이라는 뜻을 담은 O’sulloc을 아모레퍼시픽의 오랜 집념의 결실을 담을 차 박물관의 브랜드네임으로 제안한다.
오’설록이라는 브랜드네임은 설록차에서 차를 떼어내어 브랜드가 보통명사가 되어버리는 희석화를 방지하면서 앞에 간단히 한 글자만을 추가하여 설록을 효과적으로 보존했다. O’는 Origin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감탄사로도 읽을 수 있어 품질에 대한 경탄, 우리 차에 대한 아모레퍼시픽의 집념과 열망 등을 두루 표현할 수 있었다.
결과물만 놓고 보면 작업과정도 순탄했을 것 같지만, 실제로 이 프로젝트는 3주라는 짧은 기간 내에 브랜드네임과 디자인, 로고를 함께 제시해야 했기 때문에 매우 긴박하게 이루어졌다. 일정이 너무 촉박한 나머지 제주도로 향하는 비행기에서 담당 경영진이 직접 프로젝트 브리핑을 해주었고,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가운데 완공을 앞둔 차 박물관을 마주한 순간은 마치 드라마 속 한 장면을 방불케 했다. 이탈리아 건축가가 설계한 박물관은 독특한 디자인은 물론이고, 제주도를 대표하는 돌 현무암으로 싸인을 만들어 현지의 색채와 친환경적 터치를 더한 점과, 건물 상층에 위치한 오!전망대에서는 아름다운 집념이 일구어낸 넓고 푸른 녹차밭을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는 점 등이 특히 매력적이었다.
2001년 제주도 서광다원 입구에 설록차뮤지엄 O’sulloc이 개원했고, 오’설록은 관광명소로서 큰 인기를 끌게 된다. 오’설록은 처음엔 다구와 차 제조공정을 보여주고 시음을 제공하는 제주 현지의 박물관 브랜드였지만, 사람들의 뜨거운 사랑을 받으며 이후 서울 명동에 제주의 정취를 물씬 담은 O’sulloc tea house 1호점을 연 것을 위시로 하여 전국으로 확산되었고, 아모레퍼시픽의 모든 차 카테고리를 포괄하는 Family Brand로 정착해나가고 있다.
오’설록은 아모레퍼시픽이 고집해온 우리 차를 향한 집념과 열정의 결과물인 ‘설록’에 약간의 Twist와 Creativity를 첨가하여 편안하게 읽히는 브랜드네임이면서, 일반명사화로 인해 침범 받고 있던 브랜드의 유산-Brand Heritage를 타브랜드가 침해할 수 없도록 확실히 정립한 사례이기도 하다. 아모레퍼시픽이 오랜 집념으로 일구어온 차문화 사업의 핵심정수를 효과적으로 담고 있었기 때문에, 오’설록은 박물관 브랜드를 넘어 아모레퍼시픽이 생산하는 모든 차문화 제품을 아우르는 차문화 브랜드로 확장될 수 있었다.
아참, 차나무는 동백과의 나무라고 하는데 –동백을 영어로 Camellia라고 하는데 차나무의 학명이 카멜리아 시넨시스(Camellia Sinensis)이다- 아모레퍼시픽의 화장품 사업은 동백기름으로부터 시작되었으니, 아모레퍼시픽 사업의 근간인 아시아의 향장문화와 우리 차문화 두 가지 모두 동백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이 참 흥미롭다.
‘동백’은 아모레퍼시픽의 사업의 동인이 되어 든든한 근수저를 만들었고, 설록과 설화수, 진설의 ‘설’은 새하얀 눈 속에서 움트는 강인한 생명력으로 부단히 브랜드 헤리티지를 갈고 닦은 끝에 아모레퍼시픽을 마침내 금수저로 완성했다. 아모레퍼시픽의 우리 차를 향한 아름다운 집념과 실현은 금수저를 만드는 것은 결국 근수저라는 것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사례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