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동중앙도서관 사례를 중심으로
올림픽파크포레온으로 이사 온 후 내가 제일 만족도가 높은 것은 강동중앙도서관이다. 서울시 구립 도서관 중에서 건물 연면적으로 1위이고 인문·예술에 특화되어 총 보유 장서도 12만 권이나 되는 도서관계의 슈퍼 루키라 해도 무방하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여유시간이 날 때면 자주 간다.
도서관을 좋아한다지만 그렇다고 다독이나 숙독을 하진 못 한다. 최근 내가 책을 한번에 얼만큼 읽을 수 있나 봤더니 딱 2mm 정도의 페이지를 읽는게 최대치였다. 시간도 1시간이 채 넘지 못한다. 그냥 도서관이라는 공간에서 이 책 저 책 구경하는게 사실상 진짜 취미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독서가 취미라고 하기엔 많이 민망한 지경이다.
특히나 아들이 군대에서 독서삼매경에 빠져 제대 이후에도 경제나 철학 관련 책을 많이 읽고 있어 나도 자연스레 그 쪽 책들을 쳐다보게 됐다. 그래서 자연스레 도서관에서도 100 철학 쪽 서가에 책들을 유심히 살펴 보게 된다. 그리고 최근 유튜브로 인도철학 관련된 영상들을 보게 되면서 200 종교 쪽 서가들도 기웃거리곤 한다.
그러면서 발견한 몇가지 소소한 사실들을 정리해 보고자 한다.
죽음 관련 책들이 많다
이 글을 쓰게 된 결정적 이유다. 이 도서관이 인문·예술 특화 도서관이다보니 사회과학이나 자연과학쪽 책은 많지 않다. 철학에도 세부 분류가 있을텐데 그 중에 '죽음'에 대한 책이 서가 한쪽면의 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여기저기 다른 서가들을 살펴봐도 특정 주제의 책들이 이렇게 많이 보관되어 있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왜 그럴까 매우 궁금해졌다.
왜 죽음에 대한 책들이 많이 있을까?
한국의 높은 자살률 때문일까, 고독사 때문일까, 초고령화 때문일까라는 의문이 자연스레 들었다.
죽음을 학문적으로 바라보는 죽음학(Thanatology) 관련 책들이 대부분이겠지만, 죽음의 '현장'이나 연명의료결정법과 관련된 의료 환경에 대한 책도 발견할 수 있었다. 호스티스/장례지도사/특수청소업체 등 죽음 현장에 매우 가까이 직면한 사람들의 이야기들도 철학이란 분류에 맞지 않음에도 보였다. 이런 책들은 사회과학 분야가 아닐까 싶은데 말이다.
어쨌든 결국 왜 죽음 책이 이렇게나 많은지 궁금해버렸고 무료한 일요일에 시간 떼우기 꽤나 좋은 아이템을 발견하게 된 셈이다.
죽음 관련 책들의 트렌드
이 시기 죽음 관련 책은 잘 살기 위한 지침서에 가까웠다. 죽음을 앞둔 이들의 지혜를 빌려 바쁜 현대인들에게 현재를 즐기라고 조언하는 책들이 많았다. 죽음 자체의 공포보다는 죽음을 통해 사랑, 용서, 행복과 같은 따뜻한 가치를 재확인하는 힐링 코드가 강했다.
가장 대표적인 책은 셸리 케이건의 <죽음이란 무엇인가>이다. 죽음을 감성이 아닌 이성과 논리로 분석하려는 흐름이 나타났다. 예일대 철학 강의를 담은 두꺼운 책이 한국에서 매우 이례적으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슬픔이나 위로를 배제하고 죽음을 지적 탐구의 대상으로 삼아 쿨하게 분석하려는 젊은 층의 욕구가 반영됐다고 볼 수 있다.
과거가 교훈이나 철학이었다면 지금 죽음 관련 책들은 구체적이고 현실적이다. 1인가구의 증가와 고독사의 공포가 사회적 트라우마로 작동하면서 죽음이 먼 미래의 일이 아닌 당장 내 부모, 나의 미래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2018년 연병의료결정법 시행으로 연명치료를 스스로 거부할 선택권이 있게 되면서 웰다잉(Well-dying)의 방법에 대해 중장년층이 고민하기 시작한 것이다.
사실 할 얘기는 위가 다이다.
그런데 추가적으로 얘기하고 싶은게 있다.
우리나라 책의 주제가 다양하지 못하다는 점이다.
칸트와 니체 책이 많다
서양철학 분야는 칸트와 니체 외의 책을 찾기가 어렵다. 질 들뢰즈나 미셸 푸코 책도 많이 없는 편이다.
회사 바로 앞에 교보문고가 있어서 종종 간다. 거기도 마찬가지로 철학쪽 서가에 가봤더니 '칸트'와 '니체' 관련 책이 어마무시하게 많더라.
총류나 시리즈물을 제외하면 도서의 다양성이 다소 빈약해 보인다.
종교 분야 책들이 너무 적다
종교 분야 서가가 초라하다. 인근 철학이나 심리학 쪽은 책들이 많은데 유독 종교는 책이 너무 적다. 그나마도 기독교 관련 책들이 많고 다음은 불교다. 힌두교, 유대교, 기타 종교에 대한 책들은 정말 찾기 어렵다.
믿음으로서의 종교가 아니라 학문으로서 종교가 필요한 사람에게는 아쉬운 부분이 아닐까 싶다.
소셜미디어에 짧게 짧게 쓰는데는 익숙한데 이 정도 호흡의 글도 쓰기에 벅차다. 글쓰기 훈련이 많이 필요하다고 느낀다. 첫 포스팅이라 쓰면서도 생각이 꼬이는 일이 자꾸 생긴다. 아무래도 나중에 탈고를 다시 해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