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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항상샬롬 Jan 18. 2022

매일매일 자기 앞 수표에 도장을 찍다

내가 겪은 사회생활 이야기 8

  아이스크림가게에서 알바를 하다가 고등학교 후배의 소개로 새로운 곳에 면접을 보게 되었다. 그곳은 바로 은행이었는데 후배가 은행에서 파트타이머로 일을 하다가 일이 생겨 그만두게 되면서 나를 추천을 했고 면접을 보게 된 것이었다.


  워낙에 사람들과 친화력이 좋고 인상이 좋고 말도 시원시원하게 잘하는 성격이라 면접을 잘 보았고 주말을 쉬고 그다음 주부터 근무를 하게 되었다.


  내가 맡은 일은 창구에서 일하는 게 아니라 창구에서 일하는 직원분들의 업무를 뒤에서 지원해주고 은행의 전반적인 사무직 일을 보는 것이었다. 각종 서류들을 찾아주기도 하고 분류해서 철을 만들기도 하고 복사를 하기도 하고 말이다.


  재일 재미있고 신기했던 것은 동전 기계였다. 동전을 기계에 넣으면 금액별로 포장이 되어 나오는 기계였는데 매일 하는 데도 질리지도 않고 신기했더랬다.


  그리고 매일 하면서도 덜덜 떨리고 무서웠던 것은 자기 앞 수표에 은행 이름과 지점이 들어 있는 도장을 찍는 것이었는데 실수해서 잘 못 찍으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늘 긴장을 했던 것 같다.


  처음에는 이게 다 돈이라는 생각에 엄청 들뜨기도 하고 신기해서 기분이 묘했는데 나중에는 그냥 종이에 도장을 찍는다는 생각으로 바뀌면서 직업병이 되었구나 싶었다.  


  전화를 받아 담당자를 연결해주는 등의 통화를 하도 하다 보니 "친절히 모시겠습니다. **지점 아무개입니다."라는 잠꼬대도 많이 했다는 엄마의 말을 듣기도 했다.


  은행 직원분들 모두 정말 좋으셨는데 언니들, 주임님, 그리고 2층 식당에 이모님, 청원경찰 대리님과도 금방 친해져서 즐겁게 일했던 기억이 난다. 오죽하면 나는 퇴근 후에도 일부러 남아 그분들에게 식당에서 토스트를 만들어 대접을 하기도 했다.


  나야 파트타이머라 6시 전에 칼퇴근이었지만 직원분들은 매일매일 은행 시제를 맞추느라 늦게까지 일하는 경우가 많아서 출출할 때 드시라고 간식을 만들어 드렸었다.


  친해진 언니들 그리고 주임님들과 퇴근 후 회식도 자주 하고 여행으로 단합회도 자주 다니기도 할 정도로 정말 좋았는데 내가 근무한 지 1년 반이 되던 어느 날 우리 은행과 다른 은행이 합병을 하게 되었다.  


   합병을 하자 우리 지점에 계시던 차장님과 주임님이 다른 곳으로 가시고 새로운 대리님 두 분과 주임님이 오셨다.


  두 대리님들은 실적을 올려 지점장님에게 잘 보이려고 어찌나 경쟁을 하는지 손님들만 오면 무조건 차 접대를 하는 통에 나는 매일 30-40잔 이상의 커피와 차를 타는 심부름을 하게 되었고 좋았던 지점 분위기도 점점 이상해져 갔다.


  하도 차심부름을 하다 보니 나중에는 너무 화가 나고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내가 은행에서 일을 하는 건지 은행에서 커피와 차를 타는 기계가 된 건지.

 

  정직원도 아닌데 항의할 수도 없고 항의한다고 달라지는 것도 없을 것 같아 합병한 지 서너 달 후 나는 파트타이머 일을 그만두었다.


  그만두고 나오는데 은행 옆에 있던 이동통신 지점 매장에 붙여 있는 구인 글을 보았다. 그리고 다음날 면접을 보러 갔다.


다음편에 계속.

   

  https://brunch.co.kr/@sodotel/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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