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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로 Oct 23. 2022

그깟 백일장

언젠가 때가 오겠지




 “상금이 200만 원이야. 200만 원 벌어 올 테니 나 없이도 내일 잘 보내고 있어.”

 “200만 원? 우와! 엄마 파이팅! 상금 받으면 나 맛있는 거 많이 사줘.”

 둘째 아이는 나보다 더 신이 났다.

 마로니에 공원에서 여성 백일장이 열린다는 광고를 보았다. 보는 순간 나가봐야겠다고 생각하고 달력에 동그라미를 쳐 두었다. 20매 분량의 동화를 그날 정해진 글제로 세 시간 안에 써내는 대회였다. 가족들에게는 200만 원 받아 오겠다며 큰소리는 쳤지만,  나가는데 의의를 두는 마음이었다. 글을 열심히 쓰는 사람들 사이에 끼여라도 있으면 나도 몇 줄을 쓸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동화 작가라는 꿈을 가지게 된지도 이제 2년이 다 돼 가는데, 뭐라도 해 봐야 할 것 같았다. 마로니에 공원에 가서 글을 쓰는 사람들을 직접 보고 함께 쓰며 좋은 기운을 받고 싶었다. 나에게는 백일장이 꼭 필요한 시점이었다.

저녁을 보통 때보다 많이 먹은 둘째는 그날따라 자꾸 더 먹고 싶다며 냉장고를 뒤졌다. 결국 피자 두 조각을 더 먹고 배가 빵빵한 채 잠이 들었다. 그때 말렸어야 했는데….     


드디어 백일장의 날이 밝았다.

그러나, 둘째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엄마, 나 속이 너무 안 좋아. 아침 못 먹겠어.”

그러면서 화장실에 다녀오더니 더욱 안색이 안 좋아졌다.

 “배 아파.”

나는 급히 배탈 약을 찾아 둘째의 입에 털어 넣었다.

 “이제 괜찮을 거야. 또 배 아프면 보건실 가서 약 먹고 좀 누워있어.”

 아이의 힘든 얼굴을 애써 외면하며, 불안한 마음으로 아이를 학교에 보냈다. 나는 번개처럼 준비를 마치고 백일장 행사장인 마로니에 공원으로 출발했다. 둘째 아이 배가 학교에 가서는 씻은 듯이 낫기를 바라며 지하철에 올라탄 내 마음은 흔들리는 지하철만큼 불안 불안했다.

 ‘약 먹었으니 괜찮겠지….’

주문인 듯 기도인 듯 내 마음을 다독이며 애써 백일장 현장을 상상했다.

 마로니에 공원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때 주머니 속에서 불길한 전화 진동이 느껴졌다.

아니나 다를까 아이 학교 전화였다. 학교에서 불시에 기분 좋은 전화가 오는 일은 없다. 나는 긴장한 채 전화를 받았다.

“어머님~OO이가 배가 아파서 화장실을 들락날락하네요. 보건실에서 약을 먹고 왔는데도 계속 아픈가 봐요. 조퇴하고 집에 가야 할 것 같아요.”

 백일장이 열리는 마로니에 공원에 도착하기 두 정거장 전이었다.

“아, 네~ 선생님. 집으로 보내 주세요. 감사합니다.”

감사할 것도 없는 상황에 버릇처럼 굽신 모드로 전화기에 꾸벅 인사했다. 전화를 끊고 고개를 드니, 지하철 창문에 어두운 얼굴을 한 중년 여자가 서 있었다. 백일장에서 동화를 써서 상을 받겠다는  야무진 포부를 가졌던 아줌마는 순식간에 바람 빠진 풍선처럼 볼품없어지고 말았다.

이제 두 정거장 남았는데…. 금방 쓰고 올까? 가서 구경이나 해볼까? 글제라도 보고 올까?

고민하는 사이 정거장이 또 다가왔다.

 

고향이 아닌 타지에서 결혼하고, 아이를 키우며 독박 육아에 단련이 될 만큼 됐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순간은 언제나 힘들다. 나 아니면 아무것도 안 되는 상황. 육아에 대한 모든 책임을 오롯이 나만 짊어져야만 하는 상황. 백일장 가겠다고 회사에 있는 남편을 조퇴시킬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고 아픈 아이를 혼자 집에 내버려 두고 얼마나 좋은 글을 쓸 수 있을지 전혀 자신 없었다.

 “다음 정류장은 혜화역, 혜화역입니다….”

 혜화역에서 내리면 마로니에 공원이다. 나는 혜화역에 내렸다. 백일장이 아닌, 나의 아이가 있는 집으로 가기 위해서였다.

한숨이 나왔다. 영유아기부터 잔병치레를 달고 살았던 아들은 언제나 내 마음 졸임의 1순위였다. 특별한 외출이나 친구와의 약속으로 들떴던 날, 아들은 아플 타이밍을 재고 있었던 듯 앓아누웠다. 아이가 아파서 내 계획이 취소되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아들에게 전화했다.

 “많이 아파? 찜질팩 전자레인지에 2분 데워서 배에 좀 올리고 있어. 엄마 곧 갈게.”

 “엄마, 미안해. 나 때문에 200만 원 놓쳤지? 내가 커서 열 배로 갚아줄게.”

 배는 아프지만, 입은 살아있는 아들 덕분에 나는 웃을 수밖에 없었다. 200만 원이 내 지갑 속에 들어오기라도 한 듯, 아들의 너스레 덕분에 구겨졌던 마음이 펴졌다.

오늘만 날인가. 그깟 백일장이 뭐라고, 백일장은 또 열릴 것이고, 백일장 아니라도 글 쓸 기회는 많다. 나는 한숨 반 웃음 반으로 백일장에 대한 미련을 모두 삼켰다.

맞은편 정거장에 지하철이 오는 소리가 들렸다. 내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백일장이 아니라, 이번 지하철이었다. 나는 아이가 누워있을 집을 향해, 거의 뛰다시피 한 종종걸음을 급히 내디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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