찍먹여행자의 미지근한 여행기1 [동생과, 아오모리]

집순이 동생 겨우 꼬셔 떠난 10년 만의 일본여행 [일본 아오모리 편]

by 방랑 소피아


“야! 나 미국 가는 거 몇 달 안 남았는데, 나랑 일본여행 한번 가야지 않겠어!?”

나의 미국 이민행 날짜가 세 달 앞으로 다가와 하루하루 감정이 크게 요동치는 때였다.


최대한 가족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기로 마음먹었으나, 연차가 몇 개 남지 않은 동생과는 유독 시간을 함께 보내기가 어려워 주말을 이용해 2박 3일로 짧게나마 일본여행을 함께 다녀오기로 했다.


동생화 함께 다녀온 마지막 일본 여행은 어언 10년 전, 오사카.

그것은 나도 유경이도 처음 가 보는 일본 여행이었다.

그리고 그 여행을 시작으로, 나는 일본여행에 푹 빠져 10년간 10개가 넘는 도시를 여행하게 되었다.


오사카나 후쿠오카, 도쿄 같은 유명한 관광도시를 또 갈 수도 있었지만

근래 들어 회사생활로 마음고생 많이 하고 있는 유경이에게 일본의 작은 소도시를 느껴보게 하고 싶었다.


24년 5월 말, 그렇게 우리는 일본 아오모리에 도착했다. 아오모리는 일본 본섬의 최북단이자 삿포로가 있는 홋카이도의 바로 아래에 위치한 지역으로 우리나라에 비해 비교적 여름에도 서늘한 기후를 띄는 지역이다. 아오모리는 사과로 유명한 지역이지만, 삿포로만큼이나 겨울풍경이 멋져 겨울 여행지로도 유명하다고.


다른 도시에 비해 여행자가 많지 않은 지역이라, 인터넷에서 접할 수 있는 정보도 한정적이었다. 그리고 그 점이 나의 여행욕구를 더욱 자극했다. 비교적 허술한 여행정보를 가지고 도착한 아오모리 공항. 확실히 서울보다 선선하고 쾌적한 날씨였다. 손에 들고 온 청자켓을 걸쳐 입고 아오모리 시내로 가는 공항버스를 찾아 나섰다.


'그래! 내가 바라던 모습이 바로 이거야!'

공항버스로 30분 만에 도착한 아오모리역. 키 큰 건물이 없어 청아하게 파란 하늘이 통째로 눈에 들어오는 곳.

차도 사람도 북적이지 않고 조용하고 평화로운 작은 도시. 이런 일본 소도시의 모습을 동생과 함께 나누고 싶었다. 일정 빡빡하게 관광하는 여행 대신, 우연히 들어간 카페에서 하릴없이 커피를 마시고 즉흥적으로 일정을 만드는 그런 여행을 동생과 함께 하고 싶었다.


사전에 예약해 둔 아담한 체인호텔에 짐을 맡기고 본격적으로 아오모리 시내 관광에 나섰다. 시내라고 해봤자, 관광지가 오밀조밀 모여있어 하루 반나절이면 다 둘러볼 수 있는 그런 곳.


2박 3일로 이루어진 우리의 일정은 첫째 날은 시내 구경, 둘째 날은 놋케동 먹기, 셋째 날 공항 가기 정도로 아주 간략했는데, 그 이유는 나와 여행을 다닐 때면 늘 고통을 호소하던 엄마와 동생을 보며 몇 번의 시행착오를 겪어 보았기 때문이다.


보통의 나라면 미리 일정을 다 짜서 다니는 J형 인간이지만, 나와 반대인 동생의 성향을 고려해서 일부러 일정을 정하지 않고 왔다. 그럼에도 유경이에게는 약간 힘에 부칠만한 일정이었을 것이다 (좌절).


시내 관광을 하기에 앞서, 호텔에서 5분 정도 거리에 있는 삼각형 모양의 특산물판매점 (아스팜)에 갔다. 당이 떨어지면 안색이 바뀌는 동생의 컨디션을 최상으로 만들어 두기 위해서였다. 사과가 유명한 아오모리는 관광객이 있는 곳이면 어디에서나 사과파이를 판매하고 있다. 음식에 딱히 취향을 타지 않는 나는 그 차이를 알 수 없었으나, 꽤나 미식가인 유경이 말로는 이 아스팜에서 판매하는 사과파이가 제일 맛있었다고 한다.

"하나에 500엔!? 세상에, 아무리 관광 상품이래도 좀 너무 비싼 거 아냐!?" 하고 기함하는 내 목소리가 들리기는 하는 건지, 유경이는 이미 두 번째 파이를 구매하고 있었다. 너무 비싸다고 볼멘소리를 하긴 했지만, 맛있기는 했다.


사과파이를 한입 크게 베어 물고 밖으로 나와 아오모리 해변가를 따라 단정하게 놓인 산책로를 걸었다. 아직은 얼음장같이 차가운 바닷물에 발도 담가보고, 마치 가을이 벌써 온 것처럼 살짝 차갑고 깨끗한 바람을 맞으며 쾌청한 하늘만큼이나 상쾌한 기분을 느꼈다.


작은 도시를 여행하면, 딱히 위치를 찾아보지 않아도 걷다 보면 모든 곳에 도착하게 되어있다. 그래서 아등바등 길을 찾아보지 않고, 발이 닿는 대로 마음이 가는 대로 무작정 걸어볼 수 있다. 그렇게 우리는 마치 처음부터 계획했던 것 마냥 네부타 박물관에 자연스럽게 도착했다. 처음부터 네부타 박물관을 가기로 작정하고 나온 것은 아니었지만, 걷다 보니 도착한 빨갛고 세련된 건물에 매료되어 들어가지 않을 수 없었다. 해안가를 따라 놓인 산책로가 우리를 이 네부타 박물관 앞으로 이끌어주었다.


네부타 마츠리는 매년 8월 아오모리에서 열리는 큰 행사로, 거대한 종이인형 안에 등을 넣어 수레를 꾸며 거리를 행진하는 민속 축제라고 한다. 이때에 우승한 네부타를 전시하여 둔 것이 네부타 박물관이 되겠다. 박물관 내부에 들어가면 정말 어마무시한 크기의 화려한 종이인형이 가득한데, 이 모든 것이 수작업으로 이루어진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8월에 진행된다는 이 축제가 얼마나 웅장하고 장관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8월에 아오모리를 여행하는 사람은 정말 잊지 못할 경험을 하고 돌아가지 않을까? 각 지역의 이런 특색 있는 민속 축제가 잘 유지되고 있다는 것이 아주 고무적이라고 생각했다. 네부타 박물관을 나와, 바로 앞에 있는 A팩토리 (특산물판매점)를 잠시 보고 호텔로 향했다.


아직 호텔 체크인도 하지 않았는데, 이미 몹시 많은 것을 둘러본 기분에 뿌듯함이 크게 일었다. 아마 이 지점부터 유경이는 슬슬 진이 빠지기 시작했을 테다. 그래서 다시금 그녀의 당을 채워주어야 했다. 호텔로 향하는 길, 다코야키를 판매하는 가게를 발견하고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들어갔다. 약간 과장해서 내 주먹보다 조금 작은 크기의 다코야키 세트를 구매하고, 편의점에도 들러 다른 간식을 몇 가지 구매했다. 호텔에 체크인해 짐을 풀고서는 우리가 사 온 간식을 하나씩 음미했다. 일본 여행은, 과연 식도락 여행이다. 나처럼 '맛'에는 별 관심이 없는 사람도 길거리 간식하나를 먹고도 "음~ 이 맛이지!" 하는 소리를 내뱉게 하는 나라. 편의점에서 대충 사온 샌드위치나 생크림빵 하나도 값어치 톡톡히 하는 나라. 그제야 비로소 내가 지금 일본여행을 왔다는 것을 깨닫는다.

여행의 묘미는 먹고 자는 것, 그게 절반 이상이다. 간식을 거나하게 먹고서는 한두 시간 낮잠을 늘어지게 자고 일어나 유경이와 함께 어둑해진 아오모리 시내로 나왔다. 비록 배는 아직 꺼지지 않았지만, 일본까지 와서 생맥주를 곁들인 저녁을 먹지 않고서는 하루를 제대로 마무리했다고 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선선한 날씨가 좋아 발길이 닿는 대로 걷다가 우연히 야외자리가 준비되어 있는 소박한 이자카야를 발견하여 들어갔다. 영어는 찾아볼 수도 없는, 손으로 적힌 메뉴판을 보며 사장님과 손짓발짓으로 겨우겨우 주문에 성공했다. 모둠꼬치와 찐 대나무죽순 그리고 거품 가득한 생맥주. 부드럽고 따뜻한 대나무죽순과 고춧가루 살짝 뿌려진 마요네즈의 조합이 정말 환상적이었다.


단연코, 내 인생 최고의 맥주 안주를 고르라고 한다면 이 날 먹었던 찐 대나무죽순을 고르리라.


완벽한 날씨 덕이었을까, 여행이라는 설렘 덕분이었을까 그간 아무에게도 말한 적 없던 마음 깊은 곳에 있던 고민을 동생에게 털어놓게 되었다. 뜬금없고 공상적인 이야기로 들릴 수 있을만한 그 말들을, 유경이는 허투루 듣지 않고 진심으로 듣고 공감해 주었다. 너 같은 동생을 둔 나는 정말 행운이구나. 기분 좋게 생맥주를 연거푸 마시고서는 얼큰한 얼굴을 하고 호텔로 돌아왔다.


기분 최상의 완벽한 여행 첫날밤이었다.




늘어지게 늦잠을 자고 일어난 둘째 날, 역시나 완벽한 선선한 날씨. 아오모리에서 유명하다는 놋케동을 먹기 위해 교사이 센터로 향했다.


교사이 센터는, 티켓을 구매하여 자신이 원하는 해산물을 자유롭게 선택해 자신만의 해산물덮밥을 만들어 먹을 수 있는 곳이다. 우리는 2000엔을 내고 20장의 쿠폰을 구매했다. 하나는 밥, 하나는 미소수프, 두장은 생새우, 두장은 관자... 그렇게 뚝딱 놋케동이 완성되었다. 여러 가게를 돌아다니며 티켓과 해산물을 교환하는 행위나 일행이 어떤 해산물을 골랐는지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또한 새로운 음식을 시도하는 것을 좋아하는 유경이의 반응을 보는 것 또한 재미있는 요소였다. 가족과 함께 여행하며 가장 행복한 순간은, 그들이 즐거워하는 것을 볼 때이다. 먹는 것에 진심인 유경이가, 눈을 반짝이며 맛있게 먹는 것을 보면서 '역시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간이 판매대에서 판매 중이던 카카오콜라는 아주 별미였다!)


아무런 계획 없이 여행을 와서 좋은 점은, 그날의 기분에 따라 일정을 새로 만들 수 있다는 점이다. 배부르게 점심을 먹고 나와 정처 없이 시내를 걷기 시작했다. 적당하게 건조하고 시원한 바람과 따사로운 햇살에, 마냥 걷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날씨였다. 30분가량 버스를 타고 이동하면 꽤 유명하다는 미술관에 가볼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면 오늘 하루가 다 끝나버릴 것이 분명했다. 짧은 2박 3일의 여행을 그렇게 보내고 싶지는 않았다. 조금 더 여유롭고 느긋한, 오히려 약간 지루할 수 있는 그런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그래서 애당초 계획에는 없었던 세이칸 여객선 박물관에 다녀오기로 했다. 이 박물관은 전날 다녀온 네부타 박물관 바로 옆에 있으면서도 호텔에서도 걸어서 10분 거리에 위치해 있어 부담 없이 가볍게 다녀오기 좋아 결정한 것이었다. 별다른 기대감 없이 방문한 여객선 박물관은, 아오모리 여행 일정에 있어서 나에게 가장 인상 깊게 남은 일정이 되었다.


4층건물에 달하는 거대한 여객선이 80년간의 항해를 마치고 정박하여 있는 모습은, 정말 장관이었다. 그 역사를 여실히 느낄 수 있던 내부는 아직까지도 운행을 하고 있는 듯 잘 유지되어 있었다. 예스러운 내부 모습이 정겨우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으스스한 분위기를 자아내어 마치 과거에 돌아와 시간여행 하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오래된 물건과 장소에는 확실히 무언가 말로 형용하기 어려운 그런 에너지가 있는 느낌이다.


우리의 여행이 막바지로 향하고 있었다. 오늘 저녁과 내일 아침을 먹고 나면, 우리는 다시 한국으로 향하는 비행기를 타고 있을 것이다. 벌써 아쉬운 마음이 송골송골 맺힌다.


'아차! 우리 라멘을 한 번도 못 먹었는데!?' 그때서야 라멘을 좋아하는 우리가, 라멘을 아직 한 번도 먹지 못했다는 것이 생각났다. 하지만 주말이라 문을 연 라멘가게가 별로 없다.


겨우겨우 찾아낸 역 근처 작은 라멘가게. 현금밖에 받지 않는 가게라, 가지고 있는 동전까지 탈탈 털어 라멘 두 그릇을 시켰다. 짜고 느끼한 맛이 가득했지만 라멘을 먹고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감격의 눈물이 흐를 지경이었다. 그렇게 여행의 마지막 밤이 지나가고 있었다.


한국으로 돌아가는 날 아침에는 호텔 바로 앞에 있던 레트로풍 브런치 카페에서 여유롭게 조식을 먹고 공항으로 가기로 진작부터 정해두었었다. 아오모리에 도착해서 내가 가장 기대하고 있던 일정이 바로 이곳에서의 조식이었다. 눈을 뜨자마자 짐을 싸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호텔을 나와 바로 옆의 카페로 향했다. 올드한 느낌의 간판과 계단, 가게에 들어서자마자 사방에 보이는 고즈넉한 소품과 분위기. 지브리 애니메이션 '고양이의 보은' 그리고 '마녀배달부 키키'가 절로 생각나는 장소였다. 자리에 앉자마자 가슴이 두근거렸다. 알록달록한 공예유리창 밖으로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마치 애니메이션의 한 장면에 들어와 있는 기분이었다.

손그림으로 장식된 종이 메뉴판을 받자마자, 싸한 기분이 들었다.

'여기 혹시.... 현금만... 받는 건가...?'

그리고 그 싸함은 역시 틀리지 않았다. 우리가 가진 현금은 두 명의 브런치 값으로 지불하기엔 약간 부족한 금액이었다. '아아, 현금을 남기기 싫어 지난밤 계속 현금으로 결제를 한 것이 문제였나...! 왜 인간은 한 치 앞의 미래를 보지 못하는 것인가...!'


하지만 후회하기엔 이미 늦었다. 이제 와서 현금을 인출하러 가기엔, 공항으로 출발해야 하는 시간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아쉬운 마음에 계속 뒤돌아보기를 몇 번, 이대로 우리의 마지막 식사를 통째로 날릴 수는 없었다. 카드가 가능한 다른 브런치카페를 찾아 나섰다.


다행히도 유경이가 근처에서 스크램블에그와 소시지를 중심으로 한 유럽식 브런치를 판매하는 무난한 식당을 찾아냈다. 꼭 가고 싶었던 카페를 이용하지 못했다는 것은 아쉬웠지만, 그런대로 새로 발견한 식당에서의 식사도 나쁘지 않았다. 가볍게 식사를 마치고 공항으로 향하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동생과 오랜만에 단둘이서 함께한, 두고두고 생각날 일본여행이었다. 이틀 내내 맑고 푸르던 하늘이, 우리가 떠나는 날에는 회색빛으로 비가 톡톡 내리고 있었다.


남은 잔돈으로 공항에서 애플파이를 사 먹으며 아쉬움에 괜스레 기념품가게들 흘깃거렸다.


그때 뒤에서, 동생의 작은 탄식이 들렸다.

"아... 현금.... 여기 있었다..."


그렇다. 현금은 동생이 다 관리하고 있었는데, 지갑 귀퉁이에 구겨져 있던 1000엔을 못 본 것이다.

아뿔싸.

그렇지, 이래야 내 동생이지.


"덕분에 여기서 애플파이 또 먹고 얼마나 좋아!? 데힛!?" 하고 웃는 유경이의 얼굴을 보며 아쉬움인지 분노인지 알 수 없는 어떤 감정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여러모로, 두고두고 여운이 남을. 짧고 굵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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