찍먹여행자의 미지근한 여행기2 [전직장동료와,몽골]

술쟁이들의 즉흥여행, 전 직장동료 지수와의 [몽골 울란바토르 편]

by 방랑 소피아

'나는 찍먹 여행자구나!'라는 깨달음을 얻게 된 것은, 내 친구 중에는 자신이 좋아하는 나라나 도시를 여러 번이고 재방문하는 사람이 꽤 있기 때문이다. 그와 반대로 나는, 한번 갔던 여행지는 아무리 좋았다고 해도 어지간해서는 재방문하지 않는 편이다. 아무리 마음에 들었던 여행지라 할지라도 나에게 더 큰 설렘을 주는 장소는, 언제나 내가 가보지 못 한 새로운 여행지이다.


깊게 한 나라를 여행할지, 얕게 여러 나라를 여행할지 고르라고 한다면 나는 무조건 후자를 선택하는, 수박 겉핥기식의 여행에 최적화된 사람이다. 그러나 나는 이미 대략 50여 개 이상의 도시를 방문했다. 그렇다 보니 한정적인 시간과 금액으로 매번 새로운 여행지를 찾아내는 것에는 한계가 있었다. 내가 가보지 않은, 그렇지만 치안도 나쁘지 않으면서 너무 오래 걸리지 않아 다녀올 수 있는 그런 곳을 찾아내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다.


그러다가 발견한 것이 몽골이었다. 이름조차 신비롭고 매력적인, 몽골. 사실 몽골을 마음에 둔 것은 3년도 더 된 이야기이다. 그러나 늘 혼자 훌쩍 떠나는 것이 익숙한 나에게, 몽골여행의 진입장벽은 너무나 높은 것이었다. 대중교통이 발달되지 않은 몽골은, 외국인이 내국인 없이 운전을 하는 것이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어 대부분 패키지로 여행을 가거나 네이버 카페에서 동행을 만들어 가는 것이 일반적이었기 때문이다.


'아아.. 패키지 아니면 동행이라니..'


나 홀로 여행을 즐겨하는 나는, 낯선 사람 가득한 여행을 도무지 상상할 수 없었다. 열정 가득한 사람이라면, 어떻게든 나 홀로 자유여행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떠났겠지만 나는 그렇게 뜨거운 열정을 가진 사람이 아니다. 여행 스케줄을 짜는 것에 그만큼의 에너지를 쏟아붓는 것은 나에겐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몽골은 마음에 두고도 포기한 것이 수십 번.


그러나 이제는 정말 가야 할 것 같은 확신이 섰다. 이번이 아니라면 왠지 더 이상 기회가 쉽사리 찾아오지 않을 것만 같은 기분이 강하게 들었다. 그래서 4년 전 회사동료로 만나(회사동료보다는 늘 매일 같이 술 먹고 다음날 점심에 해장을 함께 하던 해장동료가 더 적합한 표현) 현재까지 친구로 지내고 있는 지수에게 바로 카톡을 보냈다.


"지수야, 몽골어때"

(1분 뒤)

"아 콜이쥬. 언제 갈래유?"

(당황) "어? 이렇게... 바로...?"


그렇다. 그녀는 NO라는 단어를 모르는 사람이다. 그 점을 잘 알고 있기에, 나의 이 갈대 같은 마음을 잡아줄 여행 동료로 단박에 지수가 생각난 것이다. 우리는 몽골 여행 계획을 세워야 한다는 것을 핑계로 바로 술약속을 잡았다.


여행 계획은 안중에도 없는 고주망태 술자리가 두어 번 지나간 뒤, 드디어 6월. 우리 둘은 몽골 울란바토르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여러 가지를 비교하고 고민한 끝에 우리가 선택한 것은, 한 중견여행사의 단체 패키지 투어였다. 단체 패키지의 가장 큰 장점은 큰 리무진 버스를 타고 이동한다는 점인데, 삼십 대의 우리에게 그것은 그 무엇보다도 가장 매력적인 장점이었다.


공항에서 한국어를 유창하게 하는 가이드를 만나, 버스로 향했다. 20여 명의 단체. 정말 오랜만의 패키지 투어에 왜인지 몹시 들뜨기 시작했다. 내가 아무것도 찾아보지 않아도 목적지에 딱딱 내려주고 딱딱 밥 먹게 해주는, 이렇게 편한 관광이라니! 이 좋은 것을 왜 여태 기피했는가 모를 일이었다.


공항을 나오자마자 펼쳐진 광활한 초원과 푸르다 못해 춥게까지 느껴지는 하늘을 보고 '와...!' 하는 탄성이 저절로 나왔다.


버스를 타고 달리는 내내, 눈에 걸리는 풍경은 푸른 초원에 자유롭게 노닐고 있는 수많은 동물들의 무리였다. 당시 가이드의 설명에 따르면, 다 주인이 있는 동물들이지만 낮에는 이렇게 자유롭게 돌아다니다가 어두워지면 알아서 자신의 집으로 다 돌아간단다.


비단 가축이 아니어도, 관광지에서도 대형 개들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돌아다니며 낯선 관광객에게도 인사하고 다니는 것을 쉽게 볼 수 있었다. 특히나 그 강아지(라고쓰고 엄청 큰 개라고 읽는다)들은 사람에 대한 경계심이 하나도 없는지, 처음 본 사람에게도 마치 오래 알고 지난 사람처럼 반갑게 꼬리 치며 달려드는 아이들이었다.


몽골에서는 동물도 사람도 자연의 일부 일 뿐, 누구나 자유롭고 평화롭게 지내는 것처럼 느껴졌다.

생각보다 거대했던 칭기즈칸 동상과 톨강 관람을 마치고 걱정반 기대반이었던 게르 숙소에 도착했다.


레트리버보다도 큰 멍멍이가 우리를 반겨줬다. '너 언제 나랑 만난 적 있니?' 싶을 만큼 반갑게 맞아줬다. 생전 처음 만나는 고양이도 우리를 기다렸다는 듯이 맞이했다. 몽골, 도대체 뭐지? 모든 동물들이 이렇게 인간 친화적이라고? 세상에 너무 귀엽잖아!그것이 몽골에 대한 나의 첫인상이었다.


지수와 나는 지독한 술쟁이다. 그런 우리가 여행을 같이 떠나면서 술을 챙겨 오지 않았을 리 만무했다. 이미 공항에서 소주를 두 병 챙겨 왔고, 몽골에 도착하자마자 몽골 맥주를 캐리어에 쑤셔 넣었다. 다른 일행은 일정이 끝났을 저녁 10시, 우리들의 일정은 그제야 비로소 시작되었다. 냉장고도 없는 게르 속에서, 우리가 술을 차갑게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은, 얼음장같이 차가운 물을 텀블러에 담아 그 안에 술을 담궈두는 것이었다. 그렇게 담아 둔 술을 하나하나 까먹으면서 새벽 2시가 되기를 기다렸다. 그즈음이 되면, 별하늘이 가장 예쁘다는 후기를 본 탓이었다.


비몽사몽 어질어질하며 겨우 맞이한 새벽 2시의 몽골 하늘은, 별이 쏟아질 것 같다는 말이 과장이 아니라는 걸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장관이었다. 지수는 "저는 지금 당장 죽는다고 해도 좋을 만큼 행복해요..."라고 연거푸 내뱉었다. 자칫 느끼하게 들릴 수 있는 그 말은 당시의 몽골 하늘을 보면 전혀 이질감이 들지 않을 만큼 아름다웠다. 그 하늘만큼은 그림으로 대체할 수 없어, 사진으로 대신한다.

우리는 장장 2시간을 목이 꺾이도록 하늘을 바라보았다. 사진으로 차마 다 담을 수 없었던 그 하늘을, 이렇게나마 남길 수 있어 기쁘다.


지수와는 이미 수년간 알아오며 서로 알게 모르게 많은 비밀을 나눈 사이이지만, 이 날만큼 깊고 심오한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는가 싶을 만큼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낯선 곳에서 밤을 함께 보낸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을 열기에 충분한 조건이었지만, 이 날 바라본 몽골 밤하늘은, 마치 모든 시공간을 초월한 듯한 느낌이 들어 어떠한 이야기를 해도 서로 다 이해할 수 있을 것 만 같은 시간이었다.


별하늘 한번 본 것으로 뭐 이렇게 너스레를 떠냐 싶으시다면, 꼭 한번 몽골 테를지에 가보기를 추천드린다.


다음 날은, 테를지 국립공원 트레킹이 있던 날이었다. 전 날 과음과 밤샘활동(밤하늘 별 보기)이 있었던 우리는 몸을 제대로 가눌 수 없을 만큼 힘들었다. 그러나 둘 중 누구 하나 오바이트나 포기 없이 트레킹을 끝까지 마무리했다. 우리 아직은 젊구나라는 것에 감사하는 시간이었다.


트레킹 시간 이후에는 몽골 전통 음식인 '허르헉'을 먹고 승마체험을 하기로 예정되어 있었다. 그러나 가뜩이나 숙취로 인해 속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우리에겐 허르헉을 먹기란 쉽지 않았다.


허르헉이란 몽골에서 귀한 손님이 왔을 때에 대접하는 고기찜인데, 우리가 접한 것은 신선한 양고기 찜이었다. 운이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우리는 식당 입구에서 우리의 점심이 될 양이 방금 전 죽임을 당하여 머리와 장기가 다 분리된, 요리할 준비가 된 날 것의 상태를 두 눈으로 목격하고야 말았다. 그것으로 인해, 원래도 양고기를 잘 먹지 못하는 나와 지수는 숙취까지 있던 당시의 상태에서 허르헉을 먹어볼 시도조차 하지 못하고 자리를 박차고 나올 수밖에 없었다(좌절..).


대신 이 날 오후에 있던 승마체험, 가는 길에 발견한 팔에 독수리 얹어보기 체험은 기회가 된다면 반드시 한 번은 해야 할 절대로 잊지 못할 추억이 되었다. 말은 생각보다 쉬이 놀라는 소심한 친구들이기 때문에 큰소리를 내거나 과하게 행동을 하면 놀랄 수 있어 조심해야 한다고 했다. 말 못지않게 겁 많은 나는, 혹여나 그들이 스트레스받을까 겁나서 인사말 한마디 제대로 하지 못하고 승마체험을 시작했다.


그러나 웬걸, 생각보다 말들은 장난기도 많고 오히려 겁 많은 인간을 잘 알아채는 것 같았다. 내가 겁 많고 소심한 걸 어떻게 알았는지 일부러 구석으로 몰아넣고, 일부러 소리 하나하나에 리액션을 크게 하는 듯 보였다.

개별적으로 시간을 가졌던 독수리 체험도 마찬가지였다. 새들도 겁 많은 사람, 소심한 사람을 잘 알아보는 듯싶었다. 오버하여 행동하는 사람은 피하면서도 나처럼 잔뜩 졸아있는 사람 곁에서는 위풍당당한 표정을 유지했다. 생각보다도 독수리가 너무너무 무거워서 손을 제대로 들지 못하는 나를 보며, 오히려 빼-액 소리를 지르는 듯 느껴졌다. 본능이나 감각이라는 것이 내 생각보다 강력한 것이구나 하는 것을 느끼고 온 날이었다.


이 날은 다행히도 자유시간이 꽤 긴 날이었다. 오전부터 트레킹과 다양한 동물체험을 다녀온 우리는 마트에서 간단하게 장을 바와 숙소인 게르로 돌아왔다. 전날 제대로 잠도 자지 못하고 술만 잔뜩 마신 덕분에, 간식을 먹고서는 바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다른 간식은 기념품으로 가져가기 위하여 캐리어에 고이 넣어두었지만, 한가지 초콜릿만큼은 아낌없이 먹고 주변 일행에게 나누어 주었다. 노오란 열매가 그려진 샛노란 색의 초콜릿인 이 것은, 입에 넣자마자 "어우 셔!!!"를 연발하게 만드는 아주 강력한 신맛의 초콜릿이었다. 지수는 이거 버리고 가야겠다고 했지만, 나는 오히려 특색 있는 간식거리라는 생각이 들어 집에 고이고이 모셔왔다.


나만 당할 수는 없지라는 고약한 마음은 아니었다. (아마도)

게르의 발코니에 앉아 맥주를 마시며 이런저런 간식거리를 먹고 있을 때, 3살에서 10살 사이로 되어 보이는 몽골 아이들이 지나갔다. 마침, 한국에서 가져온 젤리가 있던 터라 다급하게 애들을 불러 세워 그것을 그 아이들에게 다 나누어 주었다. 지수와 나누어 먹기 위해 가져왔으나, 먹지 않을 것 같아서 아까워 나누어 준 것일 뿐이었다. 그런데 조금 뒤, 그 아이들이 돌아왔다. 손에 요구르트를 몇 개 든 채로.


언어가 통하지 않는 우리는 손짓발짓을 섞어가며 대화했지만, 당연히 무슨 뜻인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내가 준 젤리에 대한 보답으로 집에서 요구르트를 가져온 것이리라 짐작했다. 이게 뭐라고 마음 한구석이 뜨끈해지는지, 모를 일이었다.


내가 몽골사람들의 정을 느낀 것은 이것뿐만이 아니었다.


몽골의 수도인 울란바토르에서 보내는 첫날이자 마지막 날, 내일이면 한국으로 돌아간다는 아쉬움에 일정이 끝난 후 우리끼리 시내로 술 한잔 하러 나온 순간이었다. 우리 테이블 근처에 있던 몽골 친구들 몇이 와서 말을 걸었다.


"한국에서 왔어요? 나도 한국어 배웠어요!"


그렇게 시작된 우리의 대화는 영어와 한국어, 러시아어가 섞인 대화가 몇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끝이 났다.


끝자락에는 어떠한 대화를 했는지도 기억이 가물가물할 정도로 오랜 시간을 보냈다. 새벽 2시 가까이 호텔에 도착한 우리는 쓰러지듯 잠이 들었고, 여전히 숙취가 해소되지 않은 상태에서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어떻게 시간이 흘렀는지 모를, 너무나 짧은 3박 4일이었다. 올 한 해 많은 일이 있었지만, 가장 잘 한 결정 몇 가지를 꼽으라고 한다면 그중 하나가 드디어 이 몽골여행을 다녀온 것 그리고 그 여행을 지수와 함께 한 것이 되겠다. 최대한 오래도록 지수와 함께 술쟁이로서 행복하게 나이들 수 있다면 좋겠다는 바람이 생긴 여행이었다.


나의 30대 한 자락이 그렇게 지나가고 있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찍먹여행자의 미지근한 여행기1 [동생과, 아오모리]